“사는 게 바빠 책 읽을 여가가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낮에 바쁘면 밤중에 읽고, 갠 날에 바쁘면 흐린 날 읽고, 여름에 바쁘면 겨울에 읽으면 된다. 농경 생활에서나 가능한 얘기지만, 막상 미루어 확장하면 다를 게 없다. 학생들은 학기 중에 바쁘면 방학 때 읽고, 시험 때 바쁘면 시험 끝난 뒤에 읽으면 된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바쁘면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 읽고, 쓸데없는 술자리를 줄여서 읽을 일이다. (-)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채로 피곤에 절어 시작하는 시간 속에는 이런 기쁨이 없다. 삭풍만 분다.” (21p)
“밥을 먹으면 입을 거쳐 위장과 대장을 지나는 동안 영양분은 몸으로 스며들고 찌꺼기는 대변으로 배출된다. 책을 읽으면 눈과 입을 통해 머리와 가슴을 거치는 동안 그 의미를 곱씹고 되새긴다. 나머지는 기억의 창고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밥 먹은 효과는 피부의 윤택으로 드러나고, 책 읽은 보람은 사람의 교양으로 나타난다. 몇 끼 밥을 굶으면 얼굴이 수척해지고 기운을 못쓰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된다. 하지만 책은 읽지 않아도 겉으로는 아무런 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고, 안 하는 일이 없으면서, 책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육신의 기름기만 생각하고, 영혼의 허기는 돌아보지 않는다. 배고프면 아무데나 주둥이를 들이미는 것은 짐승도 다 그렇다.” (42p)
“책을 읽는 까닭은 이치를 깨닫고, 실제의 삶에서 이를 체득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장 구문이나 뜯어보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고, 글재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읽는다. 그 결과 앎은 삶과 따로 놀고, 지식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는다. 많이 알수록 건방지고 교만해지며, 남을 우습게 보고 제 스스로 젠체한다. 이런 독서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62p)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기 판단 없이 남의 생각에 편승한다. 책에 나와 있으니까 진리려니 생각한다. 덩달아 하지 말고 따져 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내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야 모든 것이 석연하고 분명해진다. 따라만 하면 내가 설 자리가 없다.” (74p)
“독서에도 점검이 필요하다. 그저 활자 적힌 종이를 눈으로 한 차례 지나갔다 해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점검은 딴 데 가서 할 것 없이 내 자신에게 하면 된다. 내게 울림이 없다면 성인의 말씀이 무슨 소용인가? 하나하나 점검하고 내 자신에 미루어 ‘그랬구나!’ ‘그렇구나! 하며 읽을 때, 책 속의 활자가 살아나 말씀으로 변하다. 그저 뜻이나 겨우 이해하고 읽었다고 하면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전과 같아진다. 읽으나 마나가 된다.” (88p)
“핵심을 파악해야 독서가 끝난다. 책이 처음부터 핵심을 드러내는 법은 없다. (-) 부지런히 읽고 꼼꼼히 따져라.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을 하고, 두 번으로 안 되면 열 번을 해라. 여기서 막혔다가 저기서 터지고, 뚫렸다고 생각한 데서 다시 꽉 막히는 반복을 거듭하다 보면, 그 속에서 둥근 해나 밝은 달처럼 환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핵심이다.” (90p)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하는 독서가 필요하다. 젊어서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안목이 좁아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나이 들어 계속 벌이기만 하면 망망대해에서 돌아갈 곳을 잃는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년 이후의 독서는 집중처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기웃대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보는 것이 맞다.” (108p)
“판단력과 정신력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조급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 쉬지 않고 꾸준히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식견이 툭 터진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불필요한 만남을 절제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속에서는 독서도 안 되고 발전도 없다.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가 답이다. 고요 속에 정신이 길러진다. 그 힘으로 책을 읽을 때 그 맛이 달고 깊다.” (112p)
“책에서 읽은 글이 내 말 같이 느껴지면 숙독했다고 할 수 있다. 글 속에 담긴 생각이 원래 내 생각과 똑같이 생각되면 정밀하게 생각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연 그럴까? 달리 볼 수는 없을까? 때로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 말을 흔들고 생각을 뒤집어 보는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한 단계 더 나아갈 수가 있다. 앵무새 공부, 원숭이 공부가 안 되려면 점검이 필요하다.” (124p)
“독서의 힘은 차곡차곡 쌓는 온축에서 생긴다.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해서 한 번 두 번 읽다 보면 그 글의 기운이 오롯이 내게로 스며든다. 가락이 먼저 젖어들고, 의미는 뒤따라온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젊은 날 노산 이은상 선생의 [조국강산]이란 시집을 아침에 일어나면 소리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두어 달 그렇게 하니 나중에는 거의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이 시집은 전체가 모두 7.5조의 가락으로 되어있었다. 이때 이후로 한시를 번역할 때 7.5조의 리듬이 절로 살아났다. 할 일이 없어 우연히 되풀이해 읽은 왕발의 [등왕각서] 때문에 변려문의 가락을 완전히 자기화할 수 있었던 임유후의 경우와 비슷했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 싶은 글을 되풀이해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132p)
“읽은 후엔 점검이 필수다. 한 번 읽고 그저 스쳐 지나면 글 따로 나 따로가 된다. 새벽에는 전날 공부를 점검하고, 새 달에는 지난 달 공부를 점검한다.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감는다. 어제 배운 것을 떠올려 보다. 분명치 않거나 모를 부문은 없는지, 덤벙거려 놓친 뜻은 없는지 마음에 비춰보고 몸에 얹어 찬찬히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일어나면 잊지 않도록 잘 새겨 둔다. 그래야 날마다의 공부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238p)
“독서의 보람을 어디서 찾을까? 첫 번째는 이신(怡神) 이다. 책에는 정신을 기쁘게 만드는 성분과 작용이 있다. 좋은 책은 마음을 가뜬하게 해 준다. 좋은 책은 사람을 고양시켜 큰 뜻을 품게 만든다. 좋은 책은 나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책에서 얻는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써먹으려고만 읽는 것은 나쁘지만, 읽기만 하고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죽은 독서다. 책을 읽어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이 높고 넓어지는 것은 생각지 않은 소득쯤 된다. 나를 즐겁게 만들고, 나를 깨어나게 만드는 독서를 해야 한다.” (269p)
“하루에 몇 권씩 읽어 치우는 독서왕을 부러워할 것 없다. 생각 없이 그저 읽어치우는
남독(濫讀)은 자칫 안 읽느니만 못한 수가 있다. (-)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새겨 읽
는 것이 중요하다. 되새김 없이 자꾸 밀어 넣기만 하면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 한 줄을 읽어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열 권 백 권을 읽어도 꼭꼭 씹어 소
화하지 못하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3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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