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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 의 역습, 거짓이 부른 인과응보

참의부 |2013.08.14 23:17
조회 33 |추천 0

불평등의 제도화

10일 새누리당의 나성린 의원은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자 : 연봉 1~3억 사이는 왜 세금인상 안 한 겁니까?


나성린: (그들은) 사회주도층이고 세금 올리면 굉장히 경제에 악영향 주는 거에요. 경제에 부정적 영향 주는 것이죠.

 

아찔하다. 저 자의 섬뜩한 발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엘리트주의와도 다르고, 낡은 봉건주의라고 하기도 어렵다. 굳이 저 주장을 풀이하자면 ‘불평등의 제도화’쯤 된다. 저 의원의 가치관은 부자감세-서민증세라고 비난받고 있는 새누리당의 경제정책에 놀랍도록 충실하다. 발언의 주인공 나성린 의원은 새누리당의 정책을 관장하는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저 당에서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을 만든다.

 

불평등의 제도화

 

8일 정부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었을 법한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개정안은 발표되자마자 야당과 시민사회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비난의 핵심은 이번 개정안으로 증가하게 되는 서민들의 세부담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연간 근로소득 3450만원 이상의 근로자 434만명의 세부담을 평균 16만~865만원씩 늘린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확보한 1조 3000억원의 예산을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인 자녀장려금·근로장려금 지급에 활용한다고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최소 소득구간의 경우 증가분이 연 16만원에 불과해 중산층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부담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연봉 3450만원을 과연 ‘중산층’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는지, 이시점에서 중산층에게 세부담을 전가하는 정책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각계의 맹비난이 쏟아졌다.

 

정부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들의 주장대로 소득이 올라갈수록 세부담이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고, 세 증가분이 월 1만 3천원 정도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증세의 대상이나 폭을 논하기 이전에 증세에 대한 정부의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맹공을 받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증세 자체가 아닌 거짓말과 말바꾸기에 있다.

 

작년 대선기간 후보 3인은 저마다의 장미빛 복지공약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재원마련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랐다. 이정희 후보는 증세의 당위를 주장했고, 문재인 후보는 증세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TV토론에 나와 “증세는 필요없다”고 단언했다. 

“증세없이도 복지국가 가능하다”고 말했던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선거 후보는 마치 ‘마법의 지팡이’라도 가진듯 보였다. 박근혜 후보의 ‘no증세’발언은 유권자들의 귀에 다른 후보들의 골치아픈 증세계획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랬던 대통령이 취임 6개월만에 전격 증세를 선언했다. 그것도 대담하게 서민들의 지갑에 손을 대겠다고 한다. 강력한 반발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과 여당은 증세의 불가피함을 알고도 조세저항 정서를 의식해 거짓말을 했고, 결국 그 거짓말로 표를 얻어 집권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한 혹독한 비난은 혹세무민의 대가이다. 

 

어제 새누리당의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세부담이 연간 16만원 늘어나는 것을 ‘세금폭탄’이라고 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저 말은 어디서 많이 본 클리셰다. 저 문장에서 공방의 위치만 바꾸면 2005년 종부세논란의 완벽한 재판이 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대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배고픈 서민들의 등골을 빼서 배부른 재벌과 대기업의 배만 채워주는 등골브레이커형 세제개편이다. 세제개편안이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농민에 대한 가렴주구식 세금폭탄으로 귀결됐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의 소득이 털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겠다”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도 어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산층과 서민 세금폭탄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12일부터 ‘세금폭탄 저지 서명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8년 전 자신들을 공격했던 ‘세금폭탄’이라는 말을 그대로 차용해 새누리당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부자감세’논리를 그대로 받아 쓴 것이며, 이런 식이라면 지난 대선 ‘불가피한 증세’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그들은 또다시 말을 바꿔야한다. 

세금은 폭탄이 아니다

 

‘세금폭탄’이란 말의 저작권은 <조선일보>에 있다. 국민의 4대 의무중 하나인 세금에 '폭탄'이라는 과격한 뒷말을 붙였다. 기발하고 섬뜩한 네이밍이다. 지난 2005년 참여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자 조선일보를 필두로 조중동과 보수 경제지들은 자극적인 '세금폭탄론'을 설파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 원내에서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종부세 대상자가 전체 부동산 소유자의 2%도 되지 않는다는 점과 법안이 갖는 긍정적인 취지를 적극 설명했으나, 대중은 그런 합리적인 설명보다 '세금폭탄'이란 자극적인 협박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조중동과 주류언론들이 ‘세금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협박을 가해오자 부유층은 물론 종부세와 전혀 관련이 없었던 중산층, 서민들까지도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질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렇게 참여정부는 ‘세금도둑’이 되었고, 열린우리당은 이듬해 봄 지방선거에서 완패했다.    

 

조선일보에 의해 ‘개발’되고 새누리당에 의해 ‘공인’된 ‘세금폭탄’이란 말은 참여정부시절 비정상적인 조세저항정서를 확산시킨 일등공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누리당 정부가 증세를 시도하려하자 저 흉칙한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인과응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매주 수만명이 모이는 촛불저항을 “후진국의 거리정치”라고 비웃던 사람들이 세법개정안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읍소드린다”, “다시 검토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세금폭탄’이라는 칼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경험이 있는 새누리당은 그것이 불러오는 조세저항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금폭탄’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감세와 작은정부론을 뒷바침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정부여당의 시장주의 폭주를 견제해야할 야당이 그들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차용해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이 누구에 의해 사용되어지든 ‘세금폭탄’이라는 말은 폐기되어야 할 나쁜 말이다. 정부의 이번 세법개정안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비판은 이성적인 언어로 해야한다. ‘세금폭탄’같은 비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비판의 정당성도 사라진다. 세금폭탄이라는 말은 상대의 증세정책을 공격한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듣는 이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략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봐라’는 식의 반격은 곤란하다.

 

민주당도 언젠가 집권할 것이고 또다시 복지재원마련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증세의 적절한 대상과 수준이 무엇인지,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증세까지도 정말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야를 떠나 증세에 대한 고민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그러나 ‘세금폭탄’이라는 말이 살아있는 한 복지국가구현은 불가능하다. 무차별적인 조세저항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큰 가장 걸림돌이다. 민주당은 저 말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한 언제고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정주식《진실의 길 논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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