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으르렁]은 작곡가 신혁과 줌바스 뮤직이 만들어낸 곡이지만 얼핏 들으면 즉각적으로 초기 유영진이 연상되는 멜로디 라인을 탑재하고 있어 재미있다.여기서 '초기 유영진'이라 함은 동방신기의 록 베이스 SMP 이전,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말하자면 신화의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무렵을 지칭하는 건데, 이 무렵의 유영진은 현재 굳어진 이미지와 달리 [Wild eyes], [Perfect man] 등 적당히 마초 냄새를 가미한 대중적인(그리고 정상적인?) 멜로디의 곡을 쓰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곡가였다.[으르렁]에서 사비 진입 직전과 디브릿지의 멜로디 반전 구간은 특히 유영진 프로듀싱의 신화 음악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
2. 개인적으로는 역대 SM의 보이 그룹 중 신화가 가장 대중적인 음악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앞의 논의는 '최근 SM 음원이 어떻게 대중성을 획득해가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현재 차트에서 선전 중인 [으르렁]을 예로 놓고 보면, (굳이 따지자면 여전히 어두운 톤앤매너 쪽에 가깝지만) 과거 SMP 특유의 비장미가 경량화되어 리듬이 사뿐해지고 보컬도 찢어지듯 절규하는 대신 가성을 섞은 떼창 위주로 돌려 훨씬 듣기가 가벼워졌다.완연한 트랙 베이스의 곡이었던 전작 [늑대와 미녀]와 비교했을 때 다소 전형적이지만 캐치한 멜로디 라인을 강화시켜 놓은 것도 눈에 띄는 부분.작사는 서지음이 맡아 늑대 캐릭터를 이어가면서도 섬세한 표현들을 바탕으로 10대 순정 만화에나 나올 법한 남성성을 구현해냈는데, 히치하이커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대부분의 SM 간판 타이틀 작업을 서지음, 전간디, 켄지, Misfit 등 여성 작사가들이 전담하여 '여성향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또한 도입부의 의뭉스런 신스 루프가 사비의 보컬 멜로디('검은 그림자 내 안에 깨어나/널 보는 두 눈에 불꽃이 튄다/그녀 곁에서 모두 다 물러나/이젠 조금씩 사나워진다')와 브릿지의 베이스 라인을 통해 반복-변형되고 있는 걸 보면 동형반복에 근거한 탄탄한 멜로디 테마가 감지되어 곡 자체로만 놓고 봐도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여러모로 SM 보이 그룹의 곡 치고 이례적으로 높은 음원 소코어를 납득하게 만드는 요인들.
3. EXO에 관해서는 '구 동방신기 혹은 유영진 모델'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식의 리뷰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나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나 분석을 위한 분석에 불과할 뿐이라는 느낌도 든다.멤버 구성 면에선 오히려 슈퍼주니어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는 것처럼 굳이 기획 모체를 의미심장하게 짚어내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는 그간 여러 컨셉트의 보이 그룹을 만들어왔던 SM의 노하우와 경험치가 다양하게 녹아들어간 결과물이 EXO 프로젝트라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다만 확실한 건 현재까지 EXO의 행보가 1세대 SM 아이돌(H.O.T와 그 계승자인 동방신기, 신화)의 성공 방식에 더 근접해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샤이니-f(x)의 2세대 기획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이 방향이 탑 팬덤 형성에 더 유리할 거라는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4. 사실 [으르렁]에서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컨텐츠는 뮤직비디오다.원테이크 촬영인데 카메라 워크와 시점 전환이 아주 인상적.기예단 수준의 기계적인 통일감을 보여주는 안무도 훌륭하지만, [늑대와 미녀]에 이어 12명을 반으로 쪼개 분할 배치하거나 모자를 벗겨 다른 멤버에게 옮겨 씌우는 깨알 같은 퍼포먼스(예전 SM 뮤비들에서도 이런 식의, 예를 들자면 바닥에 물을 깔아놓고 춤을 출 때 물살이 튕기거나 안무 동작이 나올 때 효과음이 삽입되는 등의 '돈 안 들지만 멋있는 깨알 연출들'이 자주 나온다), 후반부에 원형 대형을 만들고 축을 조금씩 틀면서 파노라마 구도를 연출하는 등의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멋지다.세트나 소품의 의미성, 영화적인 미장센 등을 운운하는 고가의 뮤직비디오들보다 뛰어난 아티스트 하드웨어와 발상의 전환이 바탕이 된 '몸으로만 때우는' 저가 뮤직비디오가 훨씬 큰 효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기억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듯.이렇게 '보여주기용 음악'인 SMP의 기본 기조는 점점 입체적인 방식으로 구현되는 중이라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