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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민족주의사학(韓國近代民族主義史學)의 시조(始祖)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 13. 외국위체사건으로 피체 ⑴

참의부 |2013.09.28 12:50
조회 38 |추천 0

●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서 활동

 

1928년은 단재에게 여러 가지로 힘들고 고달픈 해가 되었다. 또 우리 민족의 항일문학사에 길이 남을 여러 편의 작품을 남긴 해였다. 무엇보다도 이 무렵 단재는 독서와 집필에 열중한 나머지 안질이 악화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안질의 악화로 다시는 고국에 있는 가족을 보지 못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에서 실명(失明) 전에 부인과 어린 아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가족에 편지를 보냈다. 서울에서 아들 수범이와 어렵게 생활하던 박자혜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연초에 힘든 길을 걸어 북경으로 달려왔다.

 

1921년에 기약 없이 헤어진 지 7년만의 상봉이었다. 그러나 모처럼의 가족 재회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북경에서 근근히 살아가던 가장은 몇 해 만에 만난 아들과 부인이었지만 오랫동안 가정생활을 영위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실정이었다. 아울러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에게는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1개월간의 북경생활 끝에 부인과 아들을 다시 고국으로 환국시켰다. 이것이 이들 가족이 이승에서 헤어지는 마지막 길이 되었다. 이 때 단재는 49세, 부인은 34세이고, 장남 수범은 7세였다. 박자혜는 환국하여 둘째 아들을 출산하였다.

 

1개월 동안 남편과 동거한 후에 낳은 아들이었지만, 차남은 태어난 지 얼마 후 아버지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영양실조에 따른 병사로 알려졌다.

 

단재 가족사의 비극이었다. 당시 반일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한 지사들 중 누구라도 온전히 가정생활을 꾸리기란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단재의 경우에는 특히 심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희생은 물론 가족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을 끼쳤다. 가족 전체가 파멸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숙명이었다.

 

단재는 1925년 여름 대만인 아나키즘 운동의 동지 임병문(林炳文)의 소개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의 권력투쟁과 민족해방운동 단체의 분열에 이미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처지라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은 항일투쟁의 새로운 출구가 되어주었다.

 

1928년 5월 말에 남경에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한국·중국·일본·대만·베트남·인도 등 동방 각국의 아나키스트 동지들을 규합하여 단결하고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여 자유연합의 조직원리 아래 각 민족의 자주성과 각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이상적 사회의 건설에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서기국 위원으로 한국인 이정규, 일본인 아카가와, 중국인 모일파(毛一波), 왕인수 등을 선출하였다.

 

서기국에서는 제1차 사업으로 기관지『동방(東方)』을 발행하여 아나키즘 선전에 적극 힘쓸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앞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은 1924년 9월 이래 정간 중이던『정의공보(正義公報)』를『탈환(奪還)』이라 개제하여 1928년 5월부터 속간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북경회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결의를 한 기록은 남아 있다.

 

〃一, 불순을 극한 현하의 조선민족운동 반대

一, 일체의 정치운동 부정

一, 사이비 혁명의 허식인 공산전제의 배척

一, 공산당 이용주의자의 애매한 사대주의사상의 청산〃- 이덕일,『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268쪽~269쪽.

 

단재는 1923년에「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한 이해 조선혁명은 무정부주의이념 아래 성취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점점 굳혀가고 있었다.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혁명에의 열정을 억누르고 한국사 저술과 문학에 온갖 정성을 다해 오던 그는 이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이윽고 운동의 일선으로 떨치고 나섰다.

 

그리하여 북경에서 조선인 아나키스트 회담을 열고 대만의 임병문 등 동지들과 협의하여 동방동맹 남경대회가 열리기 1개월 전인 4월에 천진에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대회를 열어 선전기관지 발행을 결의했다. 그리고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한 폭탄제조소의 설치를 결의하였다.

 

단재는 이 대회에서 채택한「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을 집필하였다.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반봉건주의적 입장에서 항일투쟁의식과 조선민중의 증오감이 짙게 반영된「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을 기초하여 발표하였다.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

 

1928년 4월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북경회의에서 채택된 단재의「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의 무산대중, 그리고 동방 각 식민지 무산대중의 피와 가죽과 살과 뼈를 짜 먹어 온 자본주의 강도 제국 야수군(野獸群)은 지금에 그 창자, 배가 터지려 한다. …민중은 죽음보다 더 음산한 생존 아닌 생존을 계속하고 있다.

 

최대 다수의 민중의 최소 수의 짐승 같은 강도들에게 피를 빨리고 살을 찢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의 군대 까닭일까, 경찰 때문일까, 그들의 흉측한 무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는 그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발달 성장해 온 수천년 묵은 괴물들이다. 이 과물들은 그 약탈 행위를 조직적으로 백주에 행하려는 소위 정치를 만들며, 약탈의 소득을 분배하려는 소위 정부를 두며 그리고 영원 무궁히 그 지위를 누리고자 하여 반항하려는 민중을 제재하는 소위 법률·형법 등의 조문을 제정하며 민중의 노예적 복종을 강요하는 소위 명분·윤리 등 도덕율을 조작한다.

 

…민중이 왕왕 그 약탈에 견디다 못해 반항적 혁명을 행한 때도 있지만 마침내 기개 교활한에 속아 다시 그 강도적 지배자의 지위를 허여하여 ‘이폭역폭(以暴易暴)’의 현상으로 역사를 반복하고 말았다. 이것이 곧 다수가 야수들에게 유린당해 온 원인이다.

 

…우리 민중은 참다 못하여, 견디다 못하여…. 재래의 정치·법률·도덕·윤리 기타 일체 문구(文具)를 부인하고자 한다. 군대·경찰·황실·정부·은행·회사 기타 모든 세력을 파괴하고자 하는 분노의 절규 ‘혁명’이라는 소리가 대지 위의 구석구석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울림이 고조됨에 따라 그들 짐싱의 무리가 아무리 악을 쓴들, 아무리 요망을 피운들, 이미 모든 것을 부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세계를 울리는 혁명의 북소리가 어찌 갑자기 까닭 없이 멎을소냐. 벌써 구석구석 부분부분이 우리 민중과 그들 소수의 짐승의 무리가 진형(陳形)을 대치하여 포문을 열었다….

 

알았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의 생존을 빼앗은 우리의 적을 섬멸하는 데서 찾을 것이다. 일체의 정치는 곧 우리의 생존을 빼앗는 우리의 적이니. 제1보에 일체의 정치를 부인하는 것, …그들의 세력은 우리 대다수 민중이 부인하며 파괴하는 날이 곧 그들이 존재를 잃은 날이며 그들의 존재를 잃는 날이 곧 우리 민중이 열망하는 자유·평등의 생존을 얻어 무산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이루는 날이요 곧 개선의 날이니, 우리 민중의 생존이 여기 이 혁명에 있을 뿐이다.

 

우리 무산대중의 최후 승리는 확실한 필연의 사실이지만, 다만 동방 각 식민지·반식민지의 무산대중은 자래로 석가·공자 등이 제창한 곰팡내 나는 도덕의 ‘독’ 안에 빠지며 제왕·추장 등이 건설한 비린내 나는 정치의 ‘그물’ 속에 걸리어 수천년 헤매다가 일조에 영국·프랑스·일본 등 자본제국 경제적 야수들의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압력이 전속력으로 전진하여 우리 민중을 맷돌의 한 돌림에 다 갈아 죽이려는 판일, 즉 우리 동방민족의 혁명이 만일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면 동방민중은 그 존재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존재한다면 이는 분묘(墳墓) 속… 우리가 철저히 이를 부인하고 파괴하는 날에 곧 그들이 존재를 잃는 날이다〃-『개정전집』下, 47쪽~50쪽. 

 

한편 남경의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한 이을규 등은 기존의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활동도 재개하여 이해 6월 1일『탈환』이란 기관지를 발행하였다. 8쪽의 이 기관지는 제1면에「주장」을 실어 발행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글도 단재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확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사하며 우리를 압박하는 정부·법률 및 현재의 도덕 등 사람의 자유의지의 발전을 저해하는 제반 장애물을 박멸코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조선이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를 피자본주의 일본 정부의 수중으로부터 탈환하여 조선 피압박계급의 민중에게 돌리려 한다. 우리는 일본과 대항한다는 민족적 통일전선이라고 호도한 배경하에서 본토 자본계급과의 타협을 영원히 거절한다. …우리는 강권하에 들어간 민중 및 그의 소유를 탈환하기 위하여, 우리는 진정한 사람의 생활을 환원키 위하여 민중의 자발적 충동을 격기(激起)키 위하여『탈환』을 간행하는 것이다. 이것인즉 또한『탈환』의 사명이다.˝

 

또한 창간호에는 3쪽에 걸쳐「연해주의 조선농민을 옹호하라」는 글을 실어 만주 지방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창간호에 이어 6월 15일에는 창간호의 미진함을 보충하기 위해 중간호를 발행하였다.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저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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