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 없게 건강하신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린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현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전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월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와 전화로 수다떨던 중에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침에도 통화했는데 무슨일일까 싶어서 친구에게 나중에 전화한다고하고
받은 순간 전 제가 잘못들은줄 알았습니다.
엄마의 울먹임..."00아 어떻데하니...아빠 마음의 준비 해야한단다..."
전 순간 무슨말인가 했습니다. 아침에 엄마와 통화할때 어깨너머로 아빠목소리 들었는데...
특별히 아프신 곳도 없으셨는데...60대중반이신 아버지는 골프를 좋아하셔서
하루에 홀 2번(18홀 2번)을 도실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약간의 고혈압이 있으셨지만
꾸준한 운동과 식생활조절과 약으로 너무 건강하셨습니다.
교통사고도 아니고 갑자기 무슨일인가 했습니다.
CT촬영 중 조영제에 의한 심장쇼크사라고 합니다.
분당의 *병원에서 아버지는 검사하시던 중에 너무 어의없게 한마디 말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딸내미~"이러면서 꼭 안아주셨던 아빠..
다른사람에게 소개할때 "우리집 막내~"이러시던 아빠...
전 무남독녀 입니다...왜 내가 막내냐고하시면 "엄마아빠다음이 너인데 니가 막내지.."이러시던 아빠인데..
저녁 7시...이미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믿기지않는 현실에 멍하게 비행기표를 알아봤습니다..
성수기라고 당연히 자리는 없었습니다...가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비지니스로 하네다에서 12시 비행기를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한국에 가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장례식장로비에 빈소안내에 아빠의 이름과 그 옆에 상주이름에 제 이름이있었습니다.
다리에 힘이들어가지않았습니다..친척분이 절 발견하고 아빠의 빈소로 들어가는 순간
전 무너져내렸습니다...아빠의 얼굴을 본게 딱 1년 전이었기때문입니다...
작년 8월 한국갔다가 보고 이번 휴가때 한국나가면 볼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우리아빠는 집에 있어야 하는데..."우리 딸내미 왔어~"하면서 허허 웃으셔야하는데...
저를 맞이한 것은 까만 띠가 둘러진 아빠의 영정 사진이었습니다.
아빠 가는 마지막 얼굴 봐야한다고 제가 올때까지 입관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시체안치실에서 본 마지막 아빠의 얼굴은 심폐소생술을 오래했어서 검붉어진 얼굴의 아빠였습니다.
언제나 굳게 절 안아주시던 팔은 더이상 움직이지않았습니다. ..
가깝다고 생각했던 일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전 아빠의 곁으로 오기까지 약 20시간이 걸렸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누리겠다고 아빠의 마지막 모습도 제대로 보지못하고...뭐 비싼 얼굴이라고 자주 보여드리지도 못했는지...밀려오는건 후회밖에없었습니다.
딱 한번만 내 이름을 불러주시지...딱 한번만 우리 딸내미...한번 해주시지...뭐가그리급하셔서 그렇게 훌쩍 가버리셨는지...1시간 반동안의 심폐소생술에 단 한번도 눈을 뜨지 않으셨다는 아빠...
고통없이 가셨다고는 했지만 나중에 전후사정을 듣고 과연 고통이 없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CT촬영...무척 위험하다고 들었습니다..사람에따라서 어지러움증과 구토도 일으키고 열도 오른다고...그런데 의사는 있지도않고 촬영기사만있었다고 합니다.
CT촬영을 다 마치고 일어서시면서 어지럽다하시며 쓰러지시고 회색의 거품을 뱉어내시며 심장쇼크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지하의 CT실에 운반용 침대를 가지고 들어가 아빠를 옮기고 엘레베이터로가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려서 1층의 응급실로 옮겨서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빠의 입에는 계속 아빠가 뱉어내신 회생의 거품이 있었다고합니다.
거기 정말 종합병원 맞나요? 그렇게 상황파악이안되나요? 환자가 거품을 뱉어내며 쓰러졌을때
그 사람들이 한것이라고는 아빠의 뺨을 치며 ..."괜찮으세요?환자분 괜찮으세요?"
운반용침대를 가져올때 의사가 같이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쓰러진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어야 하는것이 정상 아닌가요?
이미 응급실에 도착했을때 아빠는 가망 없었던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더욱 어의 없는 것은 CT촬영 할때 아빠는 집에서 입고가신 옷 그대로 촬영하러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제가 첫 월급으로 사드린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돌아가셨습니다.
분명 응급실을 통해서 CT촬영실로 내려가셨습니다.CT촬영때 티셔츠며 바지며 양말이며 구두,벨트...모든것을 그대로 하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다시는 돌아오지않으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옷을 풀어해쳐놓고 돌아가셨다고 선고 내린 후 그대로 방치되셨던 우리 아빠..결국 같이있던 사촌이 아빠의 옷을 추스려 드렸다고 합니다..유가족에게 멱살이라도 잡힐까 무서웠는지..다들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무도 없더랍니다...
의사가 10만분의1의 확률이랍니다...네...종합병원 의사님이 하신 말씀이신데요...
비뇨기과인지 내과인지 방사선과인지 응급실인지...과장님께서 하신 말씀이신데요...
저희 아빠가 특이체질이셨나보죠....아빠의 수명이 거기까지셨나보죠....
그런데 왜 이렇게 아쉬움이 남는 것일까요...왜 이렇게 억울 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요...
아빠가 분당의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을 가셨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똑같은 상황에서 아빠가 쓰러지셨을때 응급실까지가서 심폐소생술을 하지않고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기도 확보를 했었더라면 사실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모든것을 말해도 이미 돌아가신 아빠는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억울 한 맘에 병원을 상대하려해도...그 동안 장례도 치루지못하고 아빠에게 두번 고통을 드릴 수 없어서 부검 할 수 없어서...진상의 진상을 다 부리더라도 아빠가 살아돌아오신다면 못할꺼없습니다.
좁고 지저분한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겼습니다.
아빠가 살아돌아오실 수 있다면...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아빠는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화장터에서 뜨거운 불이 아빠의 몸을 감싸고...한줌의 재로 돌아오신 아빠의 오습에 전 무너져내렸습니다...가슴이 너무 아파서 통곡하고 싶었지만,...제가 무너지면 저보다 더 무너지실 엄마가 옆에 있기에 전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납골당에 아빠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여기저기 있는 아빠의 흔적에...아직도 현실감이 안납니다..순식간에 어의없이 가신 아빠이기에...집안 곳곳에 아빠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기에...
곧 돌아오실것만 같습니다. 그냥 여행가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 전화를 걸면 "딸내미~왜~?"하며 받으실꺼같은데...
워낙 급하게 한국에 갔었어서 직장을 관둘때 관두더라도 다시 일본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제일 걱정되는것은 엄마였습니다.
아빠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 엄마 혼자 남겨두고 와야한다는 사실에 모시고 들어올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시고 들어오자니 아는 사람 하나없고 더구나 말도 통하지않는 외국에 오시면 완전 감옥생활이신데..제가 직장을 다니니 계속 같이 있어드릴 수도 없는데..
오히려 한국이면 아빠가 보고싶으시면 가실 수도 있고 친구분들 교회분들 친척들...엄마와 함께 해 주실 분들이 많으시니까...
엄마와도 상의를 했습니다..엄마는 한국에서 여러가지 정리하지 않으시면 안되서 바로 들어 오실 수도 없다고...제가 일을 관두고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 했습니다만 엄마가 어렵게 니가 하고싶은 분야에 취직했는데 왜 관두냐면서..그렇게 한국들어오면 뭐하고 살꺼냐고....일본에서 경력을 쌓아 들어오던지 거기서 열심히 살라고..엄마는 괜찮다고...그러다 보고싶으면 엄마가 일본 가면 된다고...
그런 엄마를 한국에 남겨놓고 전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매일매일 아침과 밤에 전화합니다...전화비 걱정없이 통화할라고 인터넷 전화 신청해놨습니다.
인터넷에서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후회하지말고 효도 하라고 했던 글들을 보면서
잘해야지....했었는데 그게 또 맘처럼 쉽지 않았었는데...정말 후회가 되네요...
아직 엄마가 계시니까 잘 해 드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