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궁정동총격사건(十二六宮井洞銃擊事件)은 대통령의 비밀 요정 격인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 부속 궁정동 연회장에서 일어났다. 그것 자체가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대통령과 그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 권력자들인 중앙정보부장,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 이렇게 네 명이 저녁에 벌인 술자리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이미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79년의 일이다.
그 자리엔 여자도 둘이 동석했다. 한 여자는 가수이고 다른 한 여자는 여대생으로 아르바이트 패션모델이었다. 대통령과 국가 공직자들이 외부와는 일체 차단된 안가에서 주연을 벌이는 자리에 주흥을 돋우고 술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젊은 여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런 술자리 행사가 한 달에 열 번, 그러니까 사흘 걸러 한 번씩 벌어졌다. 그 자리에 한번씩 왔다간 여자들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TV 탤런트와 가수 등 연예계의 일류 스타들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또 대통령의 술판은 소행사와 대행사로 구분됐다. 소행사는 대통령 혼자서 즐길 때이고 대행사는 측근 권력자 3, 4명이 함께 하는 것을 뜻했다.
이것이 절대군주나 봉건영주 시대가 아닌 20세기 말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가 기밀 보호를 빙자한 중정(中情)의 안가는 권력자들의 전용 연회장으로 이용됐다. 그 국가 기밀의 보호막 속에 대통령의 술과 여자가 숨겨져 있었다. 소문은 더러 나돌았지만 근거 없는 루머라고 깔아뭉개졌다. 그 진상 여부를 아무도 조사하거나 취재할 수 없었다.
● 대통령의 채홍사
그러나 금단의 장막으로 가려진 것 같은 관립 비밀요정에서 벌어진 일들도 햇빛을 볼 날이 있었다. 그 관립 요정의 관리책임자는 김재규(金載圭)가 가장 신임하던 부하로서 10·26궁정동총격사건을 함께 거행했던 박선호(朴善浩) 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다. 그는 김재규와 함께 한 법정 비공개 진술을 통해 처음으로 외부 여인을 동석시킨 대통령 박정희의 술자리 행사에 대해 증언했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의 임무는 언제부턴가 대통령의 술자리 행사에 여자를 조달하고 관립 요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변질돼 있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대통령의 채홍사(採紅使).
채홍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명성을 얻은 일류 TV 탤런트보다는 20대 초반의 연예계 지망생이 무난한 조달 대상이었다. 그 중엔 유수한 대학의 방송·연예 관련학과 재학생도 있었다.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먼저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이 심사했다. 차지철은 채홍사에게 “돈은 얼마를 주더라도 좋은 여자를 구해오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채홍사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보다도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붙여야 할 이름이었다.
차지철의 심사에 이어 여인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 서약과 함께 그날의 접대법을 사전에 엄격하게 교육받았다. 우선 이 자리에 왔던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된다. 술자리에 들어가면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 인사들의 대화 내용에 관심을 표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말을 걸어오기 전엔 이쪽에서 먼저 응석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김재규가 대륜중학교 교사로 잠깐 재직할 때 제자였던 에비역 해병대 대령인 박선호는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할 일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이나 사표를 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의 만류로 그 수치스럽다고 생각한 채홍사 일을 계속하다가 김재규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의 비공개 진술은 최초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은밀한 사생활을 역사에 기록하게 했다. 10·26궁정동총격사건의 원인을 김재규의 최후 진술로 분석하면 유신독재와 야당 탄압, 부산과 마산의 시민항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 정치적 명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사건도 항상 그렇듯이 명분은 표피일 뿐이지 행동의 직접 원인이 되는 비화가 깔려 있는 법이다. 10·26총격의 원인은 상당부분 대통령 박정희의 사생활 문란으로 인한 판단력 마비와 그것에 대한 측근들의 환멸감에 있었다. 유신독재에 대한 비판의식만으로는 그 체제의 실질적 2인자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살해할 동기를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적인 환멸감과 국가안보의 위기의식이 합해졌기 때문에 김재규와 박선호는 자신들이 가장 가까이서 모셔온 ‘각하’를 제거했다고 설명해야 비로소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인간적인 환멸은 흐트러진 사생활을 들여다본 데서 비롯된다. 대통령의 판단력 마비로 인한 국가안보의 위기의식을 절감했던 것이 10·26총격의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김재규는 법정진술에서 자신의 고향 선배요, 직속상관이며 은인인 ‘각하’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오로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박정희의 배반과 국민적 항쟁에 대한 살상진압 우려를 거사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오히려 그는 부하인 박선호가 ‘각하’의 소행사·대행사를 진술하려 하자 뒤에서 소리쳐 제지했다.
그러나 결국 대통령 박정희의 술과 여자에 대한 증언은 채홍사 역할을 해왔던 박선호의 몫이었다.
다음은 1979년 12월 11일 군법회의 제1심 4회 공판에서 피고인 박선호에게 처음으로 대통령 박정희의 술과 여자에 대해 진술하기를 유도한 변호사 강신옥(姜信玉)의 심문이다. 강신옥은 교도소에서 박선호에게 변호인 접견 등을 통해 사전취재를 많이 했으며 암시도 주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박선호는 변호사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중앙정보부의 관리답게 대통령의 비밀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려 했다. 그런 그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고등군법회의 항소심 재판 때부터였다.
☞ 녹음 테이프 자료 1
→ 변호사:피고인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여자 문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피고인 자신이 어린 아이들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 인간적으로 괴로워서, 김 정보부장에게 수차 “도저히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만두게 해달라고 했으나 김 정보부장이 “궁정동 일은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사의를 만류시켰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 피고인:제가 근무하기를 몇 번 꺼렸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에게 하기 어렵다는 여러 가지 사유를 몇 번 말씀 올린 적이 있습니다.
→ 변호사:결국 정보부장이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또 그렇게 해서 할 수 없이…….
→ 피고인:네, 저를 신임하시어 자꾸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변호사:청와대의 차지철 경호실장은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 좋은 여자를 구해달라”고 하면서 실제로 돈은 한푼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도 말만 많아서, 피고인이 경호처장인 정인형한테 “당신이 고르라”고 말했더니 “청와대에서 고르는 걸 국민들이 알면 큰일난다”며 안 된다고 하기에, 피고는 “그러면 골라놓은 사람들에게 좋다 싫다 말이나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까지 했더니 그 이후에는 차 실장도 잔소리가 적어졌다는데, 그렇습니까?
→ 피고인:(나지막한 목소리로)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 변호사:(한참 묵묵히 있다가)피고인은 1978년 8월 11일에 의전과장이 되어서 1979년 10월 27일 면직될 때까지 하루도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데, 그렇습니까?
→ 피고인:네.
→ 변호사:출근한 날에 추석이나 정초 휴일까지 포함되지요?
→ 피고인:그렇습니다.
→ 변호사:휴일을 포함해서 하루도 결근을 하지 않고 계속 출근했다는 말이지요?
→ 피고인:네. 부장님이 언제 어떤 지시를 내릴지도 모르고 그래서 제가 매일 나갔습니다.
→ 변호사:피고인은 어제 말한 소행사나 대행사, 이게 하도 빈도가 심해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라고…….
→ 검찰관: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본건 공소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주시기 바랍니다.
→ 법무사:사건과 관련 있는 건만 신문해주십시오.(검찰관의 이의 제기에 동의하지 않는 말투)
→ 변호사: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재판부에서 대답하지 않게 해도 좋습니다만….
→ 법무사: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 변호사:어떻습니까?
→ 피고인:다시 말씀해주십시오.
→ 변호사:소행사·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 남효주 사무관하고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받았다는데…….
→ 피고인: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 변호사:있죠?
→ 피고인: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 일류 배우들이 왔었다.
10·26궁정동총격사건 군사재판에서 박선호 피고인을 담당한 강신옥 변호사는 항소심에 들어와 채홍사 일을 진술하게 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 박정희의 술과 여자를 폭로하는 증언이었다. 대통령의 방탕과 그로 인한 판단력 마비, 그리고 국가안보 위기, 이것이야말로 10·26총격의 정당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변론이었다. 어느 정도 10·26총격의 정당성이 인정되면 김재규와 박선호 등 피고인들의 죄는 내란 목적 살인에서 단순 살인으로 정상 참작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이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면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박선호는 상당한 심경 변화를 일으켰다. 어차피 죽게 될 바에야 역사적 증언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마치 주색에 빠져 나라를 빼앗긴 군주국가의 마지막 제왕들을 연상케 하는 얘기들이 그의 깊은 가슴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끝내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은 10·26총격이 일어난 해를 넘긴 1980년 1월 23일, 서울 용산 국방부 경내에 설치된 계엄사령부 고등군법회의 2회 공판의 녹음이다.
☞ 녹음 테이프 자료 2
→ 변호사:피고인은 1심에서 변호인이 그날 당일 여자 두 사람을 인솔해온 것을 물었을 때 대답을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 심정입니까?
→ 피고인:그 문제를 제가 답변하게 되면 지금 현재 시내에서 일류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에게 역효과가 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돌아가신 분에게 욕되기 때문에 제가 그 문제를 피했습니다.
→ 변호사:지금도 그런 심경입니까?
→ 피고인: 예. 그 문제를 가지고 제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 변호사:이번에 한 행동의 숨은 동기 중 혹시 그런 사정 때문에 자신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없습니까? 이번에 부장의 명령에 따르기는 했지만 그 행위에 가담하게 된 사정 속에는 무의식중에 그것을 결정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번 행동에 가담하게 된 사정 속에 어떤 숨은 동기가 있느냐 이겁니다.
→ 피고인:제가 무슨 동기가 있었다기보다, 저는 하여간에 일년 내내 하루도 근무를 쉬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특히 불시에 오시기 때문에……. 저는 그때 동기라든가 이런 것보다는 존경하는 부장님의 지시면 무조건 한다는 것 외에는 없고, 만약 그때 다른 지시를 했어도 응했을 것입니다.
→ 변호사:만찬에 참석한 여자 둘을 몇 시에 보냈습니까?
→ 피고인:제가 11시경에 보냈을 겁니다.
→ 변호사:11시경에, 그러니까 거사가 있고 난 뒤에 그날 보냈죠? 그날 돈도 주고 보냈죠?
→ 피고인:네, 완전히 다 계산해서 보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술자리 여인들에게 주는 화대는 지금 돈 가치로 쳐서 보통의 경우 50만~100만원 정도였고, 이름 있는 스타인 경우는 그 두 배를 주었다. 당대 최고의 술자리였음을 감안하면 일반의 상상보다 꽤 짠 편이었다.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룸살롱에서 이름 있는 연예인이나 모델들에게 뿌리는 팁에 비한다면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그 이유는 권력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시중엔 대통령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지원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공급이 많은데 가격이 비쌀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법칙이 적용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런 지원자를 골라 보내주는 마담이 장충동에 있던 모 요정의 마담 김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예계에서 스타가 되기 전 20대 초의 나이 어린 신참들은 마담 김씨로부터 은밀히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쾌히 응낙했다. 이들은 그런 자리에 갔다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그것으로써 연예계의 정상에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급할 때 종종 마담 김씨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고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
술자리 여자를 최종 심사했던 경호실장 차지철은 요정에 소속돼 영업하는 여자들은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고위층과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자랑스레 생각하는 연예계 지망생이 가장 무난한 대상이었다.
또 하나의 원칙은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들여보내지 않는 것, 단골을 만들 경우 ‘각하’에게 부담을 주게 되고 또 보안상의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의 차출 지시로 영화나 TV 프로그램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이런 일로 한두 차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의전비서나 의전과장이란 본래 그 조직과 외부 간의 접촉에 필요한 절차와 일정 등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고위층일수록 만나고 싶어하는 외부 인사는 많고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의전비서가 그만큼 세도를 부릴 수 있게 된다. 즉 고위층과 만나는 시간을 잡아주는 역할이 상당한 영향력을 파생시키는 것이다.
또 의전비서는 대부분 고위층의 심복이다. 자신의 하루 일과표를 관리하는 비서란 자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훤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비서가 나중에 수틀려서 자신에게 불리한 행적을 폭로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평생동지를 의전비서로 삼는 것이 통례이다. 특히 독재자의 경우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하는 역시 경호실장과 의전 수석비서관이었다. 개인 생활과 관련된 비밀스런 역할을 수행하는 부하인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의전과장은 언제부터인가 부장이 가장 신임하는 오른팔이 맡게 돼 있었다.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등 최고 권력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관리하는 직책이 되면서부터였다. 국가 기밀과 정보 관리를 내세워 일반 국민의 눈에 완전히 가려져 있는 중앙정보부에 대통령을 위시한 최고 권력자들의 환락 생활을 뒷바라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 실무 책임자가 의전과장이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부하들은 직위가 높든 낮든 그에게 거의 절대적인 복종심을 보였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한 번 인연을 맺은 부하들은 평생 따라다니며 영욕을 함께 하는 일종의 가신(家臣)문화 때문이다. 즉 국가 공직자 의식보다는 가신 의식이 더 강한 부하들을 중앙정보부의 요직에 포진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선 그의 부하들이 국민이나 국가 또는 대통령보다도 우선적으로 직속상관에게 충성하게 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박선호는 10·26궁정동총격사건 당일 김재규가 권총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그에게 “각하까지 포함됩니까?” 하고 확인했다. 김재규의 수행비서인 박홍주 대령도 이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박선호와 박홍주도 분명히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행동했다. 국가 공조직의 일원으로서보다는 김재규의 가신으로서의 의식이 더 강했던 것이다. 이는 봉건주의 시대 영주의 가신이 국가의 군주보다도 영주에게 더 충성을 바치는 것과 똑같은 양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앙정보부장의 부하들이 보인 복종심의 배경은 김재규의 인격과 신망에 있었다. 김재규가 평소 부하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를 수 있는 존경의 대상으로 비쳐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박선호와 박홍주는 법정에서 최후 진술 때까지 “평소 존경하던 김 부장님의 명령이라서 그대로 따랐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다음은 1980년 1월 24일 고등군법회의 항소심 3회 공판에서 행해진 박선호의 최후 진술이다. 그는 법정에서 하는 것으로는 마지막인 이날 진술을 통해 대통령의 술판에 관한 증언을 남기려 했으나, 재판부 법무사의 제지로 끝내 시원스레 토로하지 못했다.
☞ 녹음 테이프 자료 3
→ 법무사: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박선호 피고인 앞으로.
→ 피고인:제가 지금 여기에서 최후 진술을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존경하는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아직까지 원망이나 비판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 저희가 거기서 근무하면서 부장님께 구국을 위해, 민주를 위해 수시로 청와대에 들락날락하시면서 간혹 저희에게 숨통이 막히는 절박한 상황을 전달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일깨워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고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되도록 길러주신 데 대해서 제가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당일에 있었던 상황은 1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긴박한 상황에서 아마 어느 누구도, 1백명 중 90명은 반드시 그 행동을 그대로 취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그 진행 과정에서,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제가 궁정동 일대 모든 건물을 관리하고 있으며 제 밑에 많은 부하들이 있습니다만, 완전히 사살을 목적으로 했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저는 구두로 지시만 했으면 됐습니다. 그러나 부장님의 뜻이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 과연 누구를 사살하고 누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흔히 각하 정도는 납치하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윗분이 하는 일을 제가 알 바도 아니고, 하달하신 명령에만 충실하기 위해서 했고……. 전우를 살리려고 들어갔다가 오히려 희생시킨 데 대해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제가 그 장소를 피했어도 될 것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지금 제 부하였던 이기주·유성옥·유석술·김태원 이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나와 있습니다만, 제가 지시한 대로 한 쪽으로 몰아라, 왜냐하면 총성이 났을 때 일단 저희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부장님이 희생당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염려해서 한 군데로 몰라고 지시했고, 이 사람들은 내용도 모르고 따라 했다가 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데 대해서 가슴 아픕니다. 아무튼 이 부하들에 대해서만은 관대하게 처리해주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 법무사:범죄에 관계되는 사항만…….
→ 피고인:예.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 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 법무사: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 피고인:예?
→ 법무사:피고인의 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말하시오.
→ 피고인:예. 그래서 제가 일년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 사흘에 한 번 펼쳐진 술자리
박선호 피고인의 변론을 담당한 강신옥 변호사는 초기에 중앙정보부에서 그의 임무와 사건 담당 동기, 당일의 행적 등을 정리하다가 사건에 대한 의문이 풀려감을 느꼈다. 변호사들은 수시로 교도소에 가 피고인 접견을 하며 공판에서 주고받을 반대신문 내용을 준비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교도소에서 박선호 피고인을 접견해 당시까지 숨겨졌던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강신옥은 처음 김재규 피고인의 사선 변호인단 21명에 포함됐으나 김재규가 사선 변호인단의 변론을 거부하는 바람에 박선호의 변론에 주력하게 된다. 김재규는 변론이 오히려 자신의 10·26거사를 퇴색시킨다며 구차하게 사선 변호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노라고 피력했다.
10·26궁정동총격사건 당일 박선호는 서울 시내 플라자 호텔과 내자 호텔에 다녀온다. 그날 술자리에서 시중들 여자를 데리러 간 것이다. 유신독재체제의 핵심 권력자들의 술판과 그 자리에 불려온 여자 두 명. 그는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감을 느꼈다. 권력자들의 타락상으로 예로부터 언제나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 술과 여자가 아니던가?
강신옥은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품었던 자신의 의혹이 풀려감을 깨달았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방탕과 판단력 마비 때문에 국가위기가 다가옴을 절감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부산과 마산의 반정부시위 사태가 이미 자제의 한도를 넘었고, 밖에서는 미국 측의 압력이 전해져오고 있었으니 그것이 국가위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강신옥 변호사는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대통령의 비밀 요정 관리와 채홍사 역을 해온 박선호 피고인을 통해 박정희의 타락상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
1979년 12월 11일 오후 보통군법회의 제4회 공판.
오전에 박선호·박홍주 등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부하들에 대한 검찰관 사실심리가 끝난 데 이어 변호인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 녹음 테이프 자료 4
→ 변호사: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의 임무는 정보부 궁정동 사무실에 있으면서 궁정동에 있는 다섯 개 연회장을 관리하고 정보부장을 보필하는 비서까지 겸하고 있다는데요?
→ 피고인:네.
→ 변호사:궁정동 다섯 개 연회장은 피고인이 의전과장이 되기 전부터 있던 구관과 현재는 가동이라 부르는 신관, 세검동 및 피고인이 와서 새로 건축한 나동과 다동을 말하는데, 그렇습니까?
→ 피고인:네.
→ 변호사:이번에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식당은 앞서 말한 나동입니까?
→ 피고인:네.
→ 변호사:피고인이 관리하는 다섯 개 연회장은 대통령이 혼자 사용하시거나 이번에 사건이 생겼을 때와 같이 대통령·경호실장·비서실장·정보부장, 이 네 사람이 연회를 가질 때 사용하는 장소라던데 사실입니까?
→ 피고인:네. 그렇습니다.
→ 변호사:궁정동 연회가 있게 되면 청와대 경호실 경호처장인 정인형이 피고인에게 전화로 연락을 주는데, 대통령 혼자 오실 때는 ‘소행사’라고 말하고, 네 사람이 같이 오실 때는 ‘대행사’라는 표현을 한다는데, 그렇습니까?
→ 피고인:그렇습니다만, 그 행사 관계는 참고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때 박선호의 진술은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됐다. 무언가 꺼리는 말투가 역력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여기서 바짝 더 다그쳤다. 대통령 박정희의 부도덕성과 타락상이 부각될수록 10·26총격이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변호사:아까 검찰관 신문할 때 얘기하다 말았는데, 그날 몇 시 몇 분에 플라자 호텔에 간 일이 있죠?
→ 피고인:…….
→ 변호사:그때 플라자 호텔에 간 것은 바로 그날 연회장에서 도와줄 여자를 데리러 간 거죠?
군사법정에 긴장이 흐르는 사이 “야, 얘기하지 마”라는 작은 외침이 박선호의 등 뒤에서 터졌다. 피고인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재규가 박선호의 답변을 제지하는 목소리였다. 김재규는 법정진술에서 박정희의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그는 유신독재체제와 박정희의 영구집권 욕심에 대해서만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 외의 사생활은 거론하지 않았고 대통령 박정희를 호칭할 때마다 깍듯이 존칭어를 썼다.
그런 그가 이날 공판에서 박정희의 치부를 은폐하기 위하여 부하의 진술을 막기까지 한 것이다. 오랫동안 ‘모신’ 상관에 대해 애증이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이에 박선호도 잠시 ‘양심선언’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법정에는 잠시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무언가 최고 권력자의 내밀한 문제가 숨겨진 것인가? 법정에서도 공개적으로 말 못하는 사연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 피고인: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는 답변 말미에 살짝 웃음기를 띠었다. 그러나 강신옥 변호사는 이날 준비해온 대로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 변호사:플라자 호텔에서 내자 호텔로 간 것도 여자를 데리러 간 거죠?
→ 피고인:……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가 거듭 답변을 거부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박정희의 술자리와 여자 조달행각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박선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 변호사:그래서 도착한 것은 몇 시죠?
→ 피고인:제가 오니까 이미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약 6시 30분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 절대권력은 절대 타락한다
박선호 피고인이 대통령의 주연 담당이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처음부터 군 검찰관은 사실신문에서 피고의 진술을 통제하고 나섰다. 박선호가 10·26총격 당일의 행적에 대해 진술하면서 대행사 얘기를 꺼내자 검찰관은 재빨리 “네, 알겠어요”라면서 말을 더 이상 못하도록 끊었다. 또 행사 준비차 플라자 호텔에 갔다면서 다음 말을 이으려 하자 검찰관은 급히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을 막았다. 플라자 호텔은 그가 대통령의 술자리에서 시중들 여자들을 만나 데려오는 약속장소였다.
이는 군 검찰관이 피고인을 신문할 때 사건 발생의 전후관계를 따져 밝히는 것보다 대통령의 사생활 보호에 더 비중을 두었다는 얘기가 된다. 또 검찰관이 그런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 군사재판은 법정의 옆방에 보안사령부 파견관이 대기하면서 지시 메모를 수시로 전달한 이른바 ‘쪽지재판’이었다.
10·26총격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김재규 피고인이 주로 고도의 정치 문제를 진술한 데 비해 박선호와 박홍주 피고 등 그의 부하들은 핵심 권력자들의 사생활과 권력투쟁상을 묘사했다. 1979년 12월 11일 오전 보통군법회의 4회 공판에서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증언한 궁정동 관립 비밀 요정의 대행사·소행사는 극히 일부 알 만한 사람만 아는 일이었다. 권력층 주변 사람들은 이를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눈감아 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의 그런 행태를 이해할 리가 없을 것이다. 당시까지 그런 비화는 국가 기밀과 함께 묻혀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이 알든 모르든 그날의 궁정동 행사는 결국 “절대권력은 절대로 타락한다”는 금언을 실증하는 자리였다.
☞ 녹음 테이프 자료 5
→ 검찰관:피고인. 구속되기 전에 직업은 무엇이었습니까?
→ 피고인:잘 안 들립니다.
→ 검찰관:잘 안 들려요? 이번에 구속되기 전에 직업이 뭐냐고……?
→ 피고인: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었습니다.
→ 검찰관:피고인은 해병 대령으로 예편한 사실이 있지요?
→ 피고인:네.
→ 검찰관:대령으로 예편한 다음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되기까지의 경력을 얘기해보십시오.
→ 피고인:예편된 다음 해인 1974년도에 중앙정보부 총무과장으로 들어가서 부산의 정보과장을 거쳐 거기서 의원면직을 하고, 그 다음에 현대건설 사우디 현장에서 안전과장으로 일년 간 근무를 하고 돌아와서 중앙상사라는 상사를 차려 대표로 근무하다가, 지난 해 8월 11일에 비서실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 검찰관:그러니까 작년 8월부터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근무했지요?
→ 피고인:그렇습니다.
→ 검찰관:본래 의전과장이 하는 일이 뭡니까?
→ 피고인:네?
→ 검찰관:의전과장이 하는 일이 뭡니까? 임무…….
→ 피고인:의전과장이 하는 일은 궁정동에 있는 본관, 즉 정보부장님의 집무실과 각하가 쓰시는 구관, 가동, 나동, 다동, 이 다섯 개 건물의 관리를 하고, 주로 제가 하는 90퍼센트의 일은 각하 행사를 지원하는 일이었습니다.
→ 검찰관:피고인과 피고인 김재규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 피고인:과거에는 사제지간으로서,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성장해 오는 데 있어서 여러 면으로 제게 많은 충고와 지도를 해주신 분으로서 제가 항상 존경해왔습니다.
→ 검찰관:피고인 김재규가 제3군단장으로 있을 당시에도, 피고인이 대륜중학교 동문들과 같이 방문한 사실이 있지요?
→ 피고인:네, 그렇습니다.
→ 검찰관:피고인 김재규가 유정회 국회의원과 건설부 장관으로 있을 당시에도 피고인이 찾아가 인사를 나눈 사실도 있지요?
→ 피고인:네, 그렇습니다.
→ 검찰관:피고인이 이번에 중정 의전과장으로 취직하게 된 것도 피고인 김재규의 힘이 컸죠?
→ 피고인:네.
→ 검찰관:피고인이 보기에 피고인 김재규와 전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사이가 어떻다고 생각했습니까?
→ 피고인:제가 근무하면서 정치나 기타 정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마는, 제가 느낀 바로는 모든 면에서 차지철 경호실장은 정보부장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안하무인격으로 한다는 것을 제가 피부로 느꼈고, 또 특히 경호실장으로서 경호 외에 정치 문제를 자꾸 관여하기 때문에 혼선을 일으킨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정보부장님뿐만 아니라 여러 분께서 상당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 검찰관:지난 10월 26일 대통령 각하 주재 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언제 누구로부터 받았습니까?
→ 피고인:26일 오후 4시 25분경에 청와대 경호처장으로부터 오늘은 대행사가 있다, 장소는 나동이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연락을 직접 받고 바로 나동을 관리하는 남효주 사무관에게 나동에서 대행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행사가 있다고 그러면……(“네, 알겠어요”라며 검찰관이 말을 끊음)그래서 준비시켰습니다.
→ 검찰관:김재규 피고인이 남산 분청에서 본관 집무실에 몇 시에 도착했습니까?
→ 피고인:약 4시 30분경으로 생각됩니다.
→ 검찰관:피고인이 식당 관리인인 남효주에게 만찬 준비를 시킨 후에 시내에 손님을 만나러 간 사실이 있죠?
→ 피고인:네.
→ 검찰관:몇 시에 나갔다가 몇 시에 들어왔나요?
→ 피고인:부장님이 4시 30분경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행사 관계를 보고드리고 제가 차를 가지고 바로 플라자 호텔을…….(이때 검찰관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말을 막음. 플라자 호텔은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들을 만나 데려오는 장소들 중 하나였다)
→ 검찰관:그래서 18시 25분경 식당으로 되돌아왔습니까?
→ 피고인:네.
→ 검찰관:피고가 만찬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만찬은 시작되었죠?
→ 피고인:네, 제가 오니까 이미 만찬이 시작됐습니다.
→ 검찰관:만찬 도중에 김재규 피고인이 밖으로 나왔다가 구관 정문에서 피고인을 만난 일이 있죠? 그 경위를 말씀하시오.
→ 피고인:그때 저희는 정보처장과 전부 같이 주방에 있었는데, 남 사무관이 와서 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부장이 나가신 지 한 5분 가량 됐는데 모르고 있느냐 하길래, 제가 당황하면서 플래시를 가지고 구관을 거쳐서 본관에 갔습니다. 보니까 이미 부장님이 나오시고 계셔서 모시고 같이 왔습니다.
→ 검찰관:그때 김재규 피고인 혼자 왔습니까?
→ 피고인:그 뒤에 있던 박홍주 비서관이랑 셋이서 왔습니다.
→ 검찰관:김재규 피고인이 박홍주와 피고인을 구관 침실 뒤쪽 잔디밭쯤 와서 되돌아서면서 “둘 다 모여” 그랬죠?
→ 피고인:네.
→ 검찰관:첫마디에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죽는 거야.” 첫마디가 그거였죠?
→ 피고인:네.
→ 검찰관: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오늘 저녁에 해치우겠다. 방안에서 총성이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처치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던가요?
→ 피고인:네.
→ 검찰관:그때 피고인 김재규가 권총을 휴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 피고인:네.
→ 검찰관:어떻게 알았습니까?
→ 피고인:툭 치면서 권총을 가진 시늉을 해주었습니다.
→ 검찰관:그 후 김재규 피고인이 본관을 가리키면서 “이미 육군총장과 제2차장보도 와 있다. 자네들 각오는 돼 있지?” 했을 때, 피고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 피고인:각오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 검찰관:그때 곁에 있던 박홍주는 어떻게 했나요?
→ 피고인:대답이 없었습니다.
→ 검찰관: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죠?
→ 피고인:네, 침통한 얼굴로 그랬습니다.
→ 검찰관:그러고 나서 피고인이 김재규 피고인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면서 “각하까지입니까?” 라고 물은 사실이 있죠?
→ 피고인:이미 가까이 다가가 있었기 때문에 귀에 댈 것도 없이 그냥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했습니다.
→ 검찰관:각하까지냐고 물은 사실이 있죠?
→ 피고인:네.
→ 검찰관:그때, 김재규 피고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 피고인:“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 정보를 가장 잘 아는 분의 판단이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가장 믿는 부하였던 박선호 피고인은 국내에서 정보를 가장 잘 아는 분의 판단이었기에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소 김 부장이 잘못된 명령을 내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재규 피고인 자신은 물론 회한이야 있겠지만 후회할 입장이 아니었다. 유신독재체제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타도 이유를 밝힌 그의 법정진술은 언제나 당당했고 일관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도 똑같이 확신에 차 있었는지의 여부는 검증이 필요하다.
박선호 피고인은 항소심의 최후 진술에서 결코 판단을 잘못했다거나 일시 오류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는 대통령의 술자리와 여자 문제에 대한 증언을 내놓았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인 1심 최후 진술에서만 해도 대통령의 사생활 비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 이어지는 1심 최후 진술에서 그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에게도 언제나 바른 말을 해서 사실 그대로 보고하는 것을 보고 상관으로서 존경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김재규의 10·26총격으로 한국의 민주화 회복이 10년~20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정당한 행동이었음을 믿고 있었다. 그는 다만 해병도 장교 동기생인 청와대 경호처장 정인형을 설득하다가 실패, 자신의 손으로 쏘아야 했던 것을 가슴 아파했다.
이 점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였던 박홍주 대령은 달랐다. 박 대령은 군대 근무 성적이 좋아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로 발령을 받았고, 10·26총격 당일 상관의 명령이라서 우선 복종했지만 사려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결과라며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 녹음 테이프 자료 6
“물론 본인으로서는 예기치 않았던 일이고 행동에 참여는 했지만 큰 계획도 모르고 실시했던, 생각해보면 많은 복잡한 생각을 가져오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중략)당일 갑자기 부장께서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나 나나 죽는 거야"고 말씀하시고 "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외치며 들어가실 때 본인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단지 부장의 평소의 인격과 판단력과 본인 스스로 갖고 있던 사태 소요에 대한 핵심, 이런 것들만 생각하고 실제 행동에 옮겼던 것입니다.”
박 대령은 현역 군인으로서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며, 일이 잘못돼 법정에 서자 크게 당황한 모습이 진술에서도 나타났다. 실제 박 대령은 정규 육사 18기의 선두주자 중 한 사람으로서 전도가 유망한 장교였다. 그런데도 산동네 전셋집에서 사는 그의 청빈한 생활이 드러나 여러 사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박선호가 박홍주 피고인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같이 1979년 12월 18일, 보통군법회의 제9회 공판에서 1심의 최후 진술을 했다. 군 검찰로부터 사형을 구형받고 재판부의 선고를 남겨둔 시점에서의 진술이었다.
다음은 박선호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다.
☞ 녹음 테이프 자료 7
“본인은 그때 당시의 상황이 지금 도달해도 그와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그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며, 또한 그 진행과정에서 그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며, 또한 그 진행과정에서 지금 곰곰이 생각할 때 저로 인해서 저의 훌륭한 부하들이 이 법정에 서게 됐다는 데 대해서 마음 둘 곳 없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존경하는 재판장님들께서 저의 부하들에 대해 관대히 처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가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고, 단지 그때는 저희가 판단을 잘못했습니다만, 위협을 하면 모든 사람이 행동을 자제할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운전기사까지 저희가 데려갔다는 것, 이렇게 해서 저희가 자진해서 겁도 없이 들어가 전우를 살리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제 손으로 희생을 시키고 나니까 지금 뼈가 저립니다.
제 입장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장님을 제가 존경하게 된 동기에 대한 모든 것은 지난번에 말씀드렸고, 이분이 지시하는 것을 왜 제가 따랐느냐 하는 것도 지난번에 말씀을 올렸습니다만, 부장님은 다른 사람과 달라서 국민이 거꾸로 돌아가도 거꾸로 돌아갑니다가 아니고 바로 돌아갑니다 하는 것, 또한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아픈 데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정확한 판단하에서 일을 집행하시는 것에 대해서 제가 항상 존경하고 따랐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현재 이 나라에서 정보 면에서 가장 정확하게 많이 알고 계시는 분이 정보부장을 3년 가량 하신 김 부장이라는 것은 국민 전체가 아실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께서 직접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건의하시다가 안 되고, 마지막으로 부산까지 가셔서 실제 체험을 하고 오셨고, 또한 부산과 같은 상황이 서울에서 긴박하게 일어날지도 모를 직전에 이와 같은 것을 막지 못했을 때는 옛날의 4·19시위는 어린아이 장난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 저는 이렇게 판단했고, 부장님도 그렇게 판단하심으로써 이것을 행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로 인해서 최소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갈망했던 민주화 회복은 10년~20년은 앞당겨놓은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김재홍 전 한국정치평론학회장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