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한 번 읽어보세요.^^
1~7화 합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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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後悔)
by 용용형제 (Copyright MoonS All Right Reserved)
프롤로그
언제나 그렇듯 삶이라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혹은 미래를 지향하거나,
어찌됐건, 우리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 목을 메고 시간이란 주인에게 개처럼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여기 ‘김준식’ 역시.
그를 다른 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럭저럭 성공해 보일지도 모른다.
적당하게 유복한 집에서
적당하게 공부하여
적당한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나름 대기업이라 하는 ‘대한무역’에 입사하여 10년째 수입 통관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행복했던 가정은, 부모의 황혼 이혼으로 금이 갔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두뇌는 사회와 담배에 찌들어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 마냥 버벅 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적성과 안 맞는 직업을 택해서 아둥바둥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왔지만,
글쎄,
결과는 승진을 2년이나 누락했다.
그래,
결과는 삶의 회의감에 찌들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뿐이다.
맞아.
행복에 겨운 소리 하지 말라고?
역시 글쎄,
행복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깐,
삶의 후회에 대한 결과 역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깐,
준식, 그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면
그는
불행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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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어느 추운 12월 31일
`대한무역’ 이라 적혀있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사무실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김준식.
그의 동료 송호영(35), 다가와서 준식을 툭 치며 말을 건다.
[준식! 축하해!]
[뭐가?…]
준식,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게시판 못 봤어? 이번에는 승진 했두만….한 턱 쏴라….]
[지.랄…..놀리려면 가라….]
호영, 개의치 않고 준식 곁에 의자를 끌어다가 앉으면서
[그건 그렇고…그 멕시코 수입물품 세관 통과됐냐?…고객사에서 난리다…난리…빨리 확인 좀 해줘..]
[고객사 어디?]
[어디긴 어디야….멕시코 옥수수캔! 헹가래 유통 이잖아…]
[아….옥수수 캔…..헹가래…..]
준식, 귀찮은 듯 마우스를 클릭 클릭 하고는
[3일전에 내가 이미 처리 했구만… 왜 난리야….]
[그래?…..근데 왜 아직 못 받았다고 하지?…]
[아…씨…..연말이라 밀리나 보지….좀 기다리라 그래….]
호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으로 걸어가다가 준식을 다시 돌아본다.
[아 맞다….이따 동기 회식 올 거지?]
[몰라…]
준식은 동기회식 따위 영 관심 없는 듯 하다.
[꼭 와라….니 승진축하 겸해서 모이는 거니깐…]
준식은 귀찮은 듯 가라고 손을 휙휙 내젓는다.
호영은 멀리 자신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준식은 걸어가는 호영을 잠깐 바라보다가 여전히 일에 집중 못한 듯 책상에 놓여진 달력을 본다.
<2013년 12월 31일 – 동기회식>
준식, 한참 허공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짓는다.
‘언제부턴가….뭔가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나는….나는….사는게….재미없다….시간이 나에게만 멈춰있다….’
준식의 귓가에 굉장히 느린 시계초침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째….깍…..째….깍….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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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양재동 고깃집
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 목소리로 시끄럽다.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테이블을 길게 이어 붙이고 두런두런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한다.
대부분 검정색 하의에 흰색 와이셔츠. 전형적인 직장인들. 전형적인 회식 자리 모습.
준식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취한 듯 고개를 숙이고 소주잔을 들이킨다.
이 자리에서 겉도는 느낌이다.
이 때, 테이블의 중간쯤에 앉아 있던 준식의 직장 동기회장, 비틀비틀 일어나서, 박수를 두어 번 치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준식도 고개를 돌려 회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항상 웃는 낯으로…뭐가 저렇게 즐겁지? 가식인가? 하긴…완벽하게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으니까….’
동기회장은 웃는 표정으로 계속 박수를 친다. '여길 좀 봐봐! 얘들아!'라고 말하는 듯, 뭔가 즐거운 듯.
준식은 무시하듯 고개를 돌려 다시 소주를 들이킨다.
‘뭐가 그렇게 즐겁냐? 나도 좀 알려줘라....’
[야야! 주목! 술잔들 들어주시고~ 이 동기 회장이 한 말씀 하겠습니다. 흠흠 일단, 올해도 무사히 넘겨준 대 28기 동기 여러분들 축하 드리면서~ 흠, 오늘 이 자리는 트~윽~별히! 2013년 송년회 겸! 드디어! 정말 드디어 승진한 우리 동기......그...]
동기회장의 말이 갑자기 끊기자, 다들 술잔을 든 채로 물끄러미 준식을 바라본다.
[그…아...취했나?.....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나머지 동기들은 ‘준식이….준식이…’ 하며 작은 소리로 동기회장에게 알려준다.
[아....준식이....우리 이준식이!]
준식은 순간 인상이 구겨지며, 앞에 놓여있는 물수건을 동기회장에게 던진다.
[김준식! 김준식....! 이 자식아!…]
나머지 동기들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웃는다.
[알지~ 김준식... 장난친 거고! 암튼! 우리 이준식이 아닌! 김준식 동기께서 드디어 승진한 날 이기도 합니다. 자자... 비록 좀 늦긴 했지만,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
능글맞게 넘어가는 동기회장의 외침에 다같이 ‘건배!’ 라고 외치고, 웅성웅성 준식에게 '축하한다' 라는 말을 전한다.
준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썩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축하를 받아준다.
다시 삼삼오오 서로의 얘기로 산만해지는 분위기.
준식은 홀로 소주를 들이키며, 옆에 앉은 친구이자 회사동료 호영에게 말을 건다.
[호영아....내가....그렇게 존재감이 없냐?.....]
[왜 갑자기 존재감 타령이여...]
[아....씨...발...동기회장이라는 게 내 이름도 모르고.....또....]
[또 뭐?…]
[...... 니들보다 2년이나 늦게 승진하고.….]
[이 년이 또 2년 타령이네....덜 취했냐?.....술이나 마셔.....]
호영은 위로하듯 준식에게 소주를 따라주고, 준식은 단 숨에 들이킨다.
[크.....나의 존재감에 대해 묻잖냐... 애기 좀 해봐...나는! 나는! 씨...발....10년 동안 회사에서 존...나게 쳇바퀴 돌려줬는데....나는! 씨....발.........대체 뭐 한거냐...?]
술을 마실 때마다 반복되는 준식의 신세한탄.
호영은 솔직히 좀 귀찮고 지겹다.
뭔가 따끔한 조언이 필요하다.
[휴....하긴 니가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긴 하지.....뭐랄까....좀 체 나서질 않으니깐...임마...그러니깐....너무 일만 하지 말고, 좀 나서서 얼굴도 알리고 해.... 새꺄... 니 대학 때는 존재감 확실했잖아...]
[대학 때....?]
[2분 벤치.....말야....애들이 니 이름은 몰라도....2분 벤치는 알았잖냐....경영대 퀸카 이하진을 꼬신 그 2분 벤치.....]
준식은 갑자기 대학 때 모습이 떠오른 듯, 입을 삐죽하며 생각에 잠긴다.
‘그래...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하진아… 네가 나한테 물었었지? 후회하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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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어느 봄 날
햇살이 따뜻한 어느 봄 날의 대학 교정.
뒤로 제법 큰 경영대 건물이 보이고, 그 앞 잔디밭에 일정하게 간격을 둔 벤치가 있다.
다른 벤치는 모두 비었고, 가운데 한 벤치에만 대학시절 준식과 ‘경영대 퀸카’ 라고 불리던 ‘이하진’이 조금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아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하진과 그런 하진을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는 준식. 그런 준식의 눈길이 이상했던지, 하진은 책을 보다 힐끔힐끔 준식을 의식한다. 예쁘다.
준식은 개의치 않고 하진을 계속 쳐다보다가, 하진이 이따금 시선을 의식하면 태연한 척 책을 보는 시늉을 한다.
한 동안 그렇게 둘은 앉아 있다가,
하진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옆에 다른 벤치들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려고 한다.
준식도 따라서 황급히 일어난다.
[잠깐만요!]
하진은 음악소리 때문에 준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준식은 다가가서 하진의 어깨를 툭툭 친다.
하진은 조금 놀란 듯 돌아본다. 이어폰에서 계속 들려오는 사랑노래.
준식은 입 모양을 크게 해서 '잠.깐.만.요' 라고 말해준다.
하진은 그제서야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네?]
[축하합니다~ 2분을 버티셨어요!]
참으로 능청스럽게 말하며 박수를 치는 준식.
하진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준식을 바라본다. ‘뭐지? 이사람?’
[사회대...심리학과 1학년 김준식이라고 합니다. 무례인줄 알지만, 그 쪽한테 심리실험을 좀 했는데요...일단 죄송합니다.]
[심리실험이요?]
심리실험이라는 말에 관심이 생기는 하진.
준식은 당당하게,
[개인영역에 대한 실험인데요....제가 그쪽의 개인영역에 이 벤치... 일부러 침범했거든요....]
[네....그런데요?…]
[근데 그 쪽이 2분이나 버텨주었어요...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텨준 사람이 되셨습니다.]
준식은 웃으며 다시 한번 박수를 치고는 들고 있던 책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하진에게 들이민다.
[2분 시간 내주신 김에,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세요. 이거 설문지 인데요....]
하진은 준식이 건넨 종이를 건네받고 살펴본다.
[이거 그냥 백지 인데.. 뭘 적어달라는 건지...]
[이름하고....전화번호 좀....]
준식은 아무렇지 않게 하진의 눈 앞에 펜을 들이민다.
[네?]
그런 준식의 행동이 하진은 좀 어이가 없는 듯,
준식은 이 또한 개의치 않고 들고 있던 책을 펼쳐 하진 앞에 들이민다.
[저희 과 전공책 인데요..심리학개론.....여기 한번 보세요....]
하진은 조금 흥미로운 듯 준식이 들이민 책을 도도하게 쳐다본다.
준식은 책의 한 구절을 펜으로 줄을 치며 소리내어 읽어준다.
[자신의 개인영역에 다른 사람이 침범했을 때, 허용되는 시간은 최대 2분 정도이다. 만약 이 시간이 넘는다면, 그건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거나, 호.감.이 가.는 이.성 인 경우 뿐이다.]
잠시, 정적.
준식은 하진을 빤히 바라보며,
[저는 그 쪽과 관계 있는 사람 인가요?]
[아니요..]
[아~그럼 저한테 호감이 있으신 거군요. 하하하....]
[네?]
계속해서 준식의 페이스로 넘어가는 듯 어이없는 하진.
[근데....... 저도 그 쪽한테 매우! 호감이 있거든요....그러니깐.....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준식은 참 능글맞다.
그런 준식이 하진도 싫지는 않은 듯 살짝 웃어보인다.
하진과 준식의 뒤로 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린다.
그리고 하진의 귓가에 울리던 사랑노래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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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추억은 항상 현실를 잡고 흔들고 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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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식은 한 겨울 차가운 바람을 뚫고 나온 듯, 몸을 연신 떨어대며 비틀비틀 양재역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정말 춥다 추워.
코트에 목도리까지 둘렀지만, 많이 추워 보인다.
준식은 역사 안 벤치에 털썩 앉아,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얼굴은 술기운에 붉어졌고 넋이 나간 채, 살짝 웃는다.
'2분 벤치라….지금 생각해보니 좀 유치하네….'
옛 연인 하진의 해맑은 미소가 불연듯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넌 어떻게 살고 있니? 너도 나처럼 꼬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겠지?...'
다시 한번, 끈질긴 스토커처럼 회의감이 밀려들어올 때,
띠리리리리
열차가 들어오는 신호가 썰렁한 역사 안에 울려 펴진다.
준식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처벅 처벅 스크린 도어 쪽으로 걸어간다.
술 취한 직장인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년의 아줌마.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한 명, 한 명 준식에 눈에 들어온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건지…인생 이란 게 다 이런 건지…'
열차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준식 안으로 들어간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
준식은 들어오자 마자 문 옆 가장자리 자리에 털썩 앉는다.
맞은편에 보이는 젊은 커플. 색깔만 다른 같은 목도리를 하고 핸드폰 게임을 하며 장난을 치고 있다.
준식은 부러운 듯,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순간,
준식의 머리속에서 맞은편 커플의 모습이 예전 자신과 하진으로 대치된다.
똑같이 지하철에 앉아 장난을 치던 예전의 하진과 준식의 행복했던 모습.
준식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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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4!
3!
2!
1!
땡!
.
.
.
젊은 여자의 카운트 소리,
'땡!'
하는 소리에 맞춰
준식은 화들짝 잠에서 깬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커플,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동수야...해피 뉴 이어! 드디어 새해 구나! 새해 복 많이 받거라!....]
앞자리 커플 중 여자가 자신의 연인을 사랑스럽게 쓰담쓰담 하며 새해 인사를 건넨다.
남자 역시, 그런 연인을 보며 따뜻한 웃음을 짓는다. 그의 눈웃음이 참 인상적이다.
준식, 코트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본다.
12시,
날짜가 1월 1일로 넘어간다.
이 때, 지하철 문이 열린다.
지하철 밖 표지판에 '수' 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온다.
[아…약수역....!]
준식은 후다닥, 막 닫히려는 문을 향해 뛰어나가고, 아슬아슬 하게 빠져나간다.
지하철을 허겁지겁 빠져나오자
<옥수역>
이라 적힌 표지판 전체가 화면에 들어온다.
준식은 순간 표정이 구겨진다.
[아..젠장......뭐야…잘못 내렸네...]
준식은 허무한 듯 돌아서서 천정을 보며 터벅터벅 걷는다.
[새해부터 되는 일이 없구....]
라고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쿵!'
맞은편 걸어오던 사람과 부딪힌다.
[아...죄…죄송합니다.....괜찮…?]
"아...아니 예요..." 하며 고개를 드는 여자.
근데, 분명,
이 여자 하진이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정적.
아니
챠챠챠챠챠챠챠
귓가 들리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
마치, 쳇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같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12월 31일
아니
1월 1일의 어느 추운 날.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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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그 때의 너, 지금의 나
챠챠챠챠챠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준식과 하진은 여전히 굳은 체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있다.
열차가 어느새 다 지나가고,
이제
정말 정적.
하진은 고개를 끄떡하며 실례한다는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준식에게서 멀어진다.
준식은 멀어지는 하진을 멍하니 돌아본다.
준식의 발,
움찔움찔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도저히 쫓아가서 잡을 용기가 없다.
하진은 돌아보지 않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준식에게서 멀어진다.
준식은 하진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한동안 정신을 놓은 채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쉬운 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때,
준식의 시야에 들어오는 바닥에 낡은 여자 지갑.
준식은 천천히 그 지갑을 줍고는 앞서 사라진 하진을 쫓아 뛰어간다.
준식은 급하게 지하철 밖으로 뛰어나와, 주위를 다급하게 둘러본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준식의 손에 들려있는 낡은 여자 지갑.
준식은 조심스레 열어본다.
젊고 예뻤던 하진의 얼굴이 박힌 신분증.
그리고 그 옆에 집주소.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신우 아파트>
문득,
10년 전 어느 가을 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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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어느 가을 밤
'신우 아파트'
라고 적힌 다소 낡은 아파트.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오랜된 아파트.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효과음 같이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돈다.
현관에서 조금 떨어진 어두운 주차장에
준식과 하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다..
[뭐? 끝내자고? 그 말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하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준식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준식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진을 바라본다.
뭔가 체념한듯한 담담한 표정이다.
[….너 며칠째 연락도 안되다가…불쑥 집 앞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끝내자고]
[어…이제 그만 하자…]
[지금 장난해?]
[장난 아니야…]
[그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끝낸다면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만난 시간이 있는데…너무 일방적이잖아!]
[이유? 없어….아니 그냥 이제 힘들어….그래…너 말처럼 우리 권태기야…!]
준식과 하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서있다.
계속해서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도는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
하진은 분노에 찬 얼굴로 준식을 노려보고 눈가에는 눈물이 고인다.
준식은 그런 하진을 무시하듯 몸을 돌려 도로 쪽으로 걸어가버린다.
하진은 떠나는 준식을 보고 절규하듯, 소리친다.
[권태기 좋아하네! 소은이 때문이지? 나 다 알아! 니가 걔 만나고 있다는 거! 어떻게 만날 사람이 없어서 내 친구를 만나냐! 넌 쓰레기야! 아니 니네 둘 다 쓰레기야!!]
준식은 하진의 외침에 걸어가다가 멈칫하고, 몸을 휙 돌려 다시 하진에게 다가온다.
[뭐?….]
화가 난 준식.
[쓰레기! 너하고 소은이 둘 다 쓰레기야!]
가을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서있다가,
준식은
하진의 뺨을
세차게....
내려친다.
[.....니 맘대로 생각해라! 암튼 이제 연락하지마!]
준식은 다시 도로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이내 하진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귀뚤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
낙엽이
바람에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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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할 말이 없으면 폭력을 선택한다고 했던가….'
준식은 역 앞 벤치에 앉아 하진의 신분증 앞 면을 보고 있다가 뒷면을 살펴본다.
주소 변경란에 적혀있는 새로운 주소.
<….성동구 옥수동 271-3…>
준식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주소를 지도 검색 해본다.
<현 위치에서 800m>
준식은 추운 듯 코트와 목도리를 여미고,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만지작 하다가,
뭔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식이 일어나자 건너편 큰 상가건물 상단에 있는 전광판이 눈이 들어온다.
<2014 갑오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준식은 전광판 문구를 가만히 보고 서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추운 듯 몸을 웅크리고 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나는 언제부터 변했던걸까.....그떄 그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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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어느 여름 저녁.
한강공원에서 아파트단지로 나가는 굴다리 안.
터벅터벅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준식의 뒷모습.
옥수동 거리를 걸어가는 현실의 준식 뒷모습과 유사하다.
굴다리 안,
주황색 조명에 의해 그림자가 뒤로 길게 늘어져 있다.
하진은 거리를 두고 앞서 가는 준식의 뒤를 따르고 있다가,
발걸음을 빨리 해서 준식 옆으로 다가간다.
[요새 항상 왜 먼저 앞서 가? 나랑 같이 가기 싫어?]
[니가 빨리 오면 되잖아…]
무심하게 대답하는 준식.
[나 걸음 느린 거 알잖아….좀 맞춰주면 안되?]
준식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하진을 돌아본다.
[넌 왜 항상 너한테만 맞추라고 그러냐? 그러는 너는 나한테 맞추는 게 대체 뭔데?]
하진은 말 없이 준식을 올려다 본다.
잠시 정적.
이 때,
둘 옆으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간다.
챠챠챠챠챠...
굴다리 안으로 울려 퍼지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
[변했어…너…]
하진은 속상하다.
하지만, 준식은 하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가며,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어….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라고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챠챠챠챠챠...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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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식은 주택이 늘어서 있는 골목 어느 한 집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집을 올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손에 든 휴대폰 화면을 본다.
<목적지 도착>
준식은 주머니에서 하진의 지갑을 꺼내, 다시 한번 유심히 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한 겨울 찬 바람,
아무도 없는 새벽의 주택가 골목.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준식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준식은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본다.
12시 42분, 1월 1일.
준식은 하진의 집 대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간다.
근데,
대문이 조금 열려있다.
준식은 순간 조금 당황한다.
대문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우편함이 눈에 들어온다.
준식은 들고 있는 지갑과 우편함을 번갈아 본다.
열려있는 문,
조그마한 우편함
그리고
지갑.
계속해서 번갈아 보는 준식의 시야를 통해 그의 고민이 여실히 나타난다.
준식은 초조한 듯 다시 한번 시계를 본다.
12시 44분, 1월 1일
준식은 예전 굴다리에서 자신의 모습이 불연듯 떠오른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어….'
준식은 결심한 듯 우편함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하진의 지갑을 넣으려고 할 때,
꺄아악! 퉁!
하진의 집 안 쪽에서 앙칼진 여자의 비명소리와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준식은 소리에 놀라 순간 동작을 멈춘다.
조금 열려있던 대문이 진동에 의해 조금 더 열린다.
준식은 그런 대문을 다시 한동안 쳐다본다.
'정말…..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걸까?'
준식은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골목 쪽으로 뒷걸음질 쳐 대문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꺄악!
그 때, 다시 한번 하진의 집 쪽에서 여자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린다.
준식은 ‘뭐야’
하면서 또 다시 동작을 멈춘다.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그리고 대문, 열려있는 대문을 본다.
순간,
과거 하진과 다투는 모습과 하진의 뺨을 세차게 내리치던 자신의 행동이 번개처럼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챠챠챠챠챠.....
굴다리 안에서 울리던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마치 쳇바퀴 굴리는 소리처럼 준식의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준식은 다시 하진의 집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대문 쪽으로 손을 뻗는다.
긴장된다.
그때,
하진의 집 대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헉'
놀라는 준식.
그리고
그 앞에서 서있는 하진,
준식을 보고 역시 놀라는 표정이다.
하진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방금 전 지하철에서 봤던 옷차림과 같지만,
누군가에게 뜯긴 듯, 군데군데 단추가 떨어져 있다.
한마디로 꼴이 말이 아니다.
둘은 놀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보며 서있다.
그때,
준식의 시야로 들어오는 하진의 손에 들린 물건.
꽤 무거워 보이는 트로피 같은 물체를 거꾸로 들고 있고 물체의 모서리 끝으로 어떤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마치 걸쭉한 피 같다.
준식은 땅으로 떨어지는 액체와 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준식으로선 상황정리가 안 되는 듯 하다.
그리고 곧이어
하진의 뒤 열린 대문 안 쪽, 집 현관에서 비틀비틀 하진의 남편 '오만수'가 마치 좀비 같이 걸어 나온다.
[이.......이......년이........]
하진은 만수의 목소리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준식의 뒤로 숨는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만수가 씩씩댈 때 몸 주위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하진은 준식의 뒤에서 숨어 겁에 질려 심하게 떨고 있다.
[도....도와줘....]
어둠 속에서 비틀대는 만수의 실루엣.
준식은 하진을 뒤로 숨긴 채, 대문 안 쪽을 계속 주시한다.
만수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는,
[이....이... 씨...발...년! 당장 안 와!]
두리번 대며 하진을 찾는다.
그리고 대문에 서있는 준식을 발견한다.
[다...당신 뭐야...]
만수가 준식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현관 앞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비틀비틀
위태롭다.
준식은 그런 만수를 보고 움찔 하며 조금 뒷걸음질 친다.
[씨....발...넌…뭐...냐...고...! 그 년 어디에 숨겼어!]
만수는 조금 가파른 계단을 위태롭게 몇 걸음 내려오다,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앞으로
쿵!쿵!쿵!
머리를 찧으며 꼬꾸라진다.
육중한 육체가 계단 모서리에 의해 충격을 받으면서 피가 낭자한다.
하진은 준식의 뒤에서 그 장면을 보며 놀란 듯, 들고 있던 물체를
쿵!
떨어뜨린다.
정적.
쓰러진 만수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준식은 천천히 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쓰러진 만수에게로 다가가
[이....이봐요.... 이봐요....정신 차려요....]
쪼그리고 앉아 쓰러진 만수를 살짝 살짝 흔들어 본다.
미동도 없는 만수.
준식은 엎드려져 있는 만수를 조심스럽게 뒤집는다.
피범벅이 된 얼굴.
혀가 길게 빠져있고 눈동자가 올라가 있다.
이건 분명
죽었다.
준식은 놀라서 뒤로 주저 앉는다.
하진도 천천히 죽은 만수 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준식은 뒤로 몸을 질질 끌며 일어난다.
하진은 준식 앞으로 나와 처참하게 죽은 만수의 얼굴을 보고, 역겨운 듯 손으로 입을 막는다.
[니....니가 그런 거야? 저 머리....아까 그 손에 든 물건으로....?]
준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죽은 만수의 터진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만수 미간에 있는 큰 점이 왠지 돋보인다.
[모…몰라….그런가 봐…]
하진도 정신이 나간 듯 하다.
[저 사람 누군데? 남편이야?...]
하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준식은 주머니에서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낸다.
[일...일단, 신…신고부터 하자....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
하진은 그런 준식 곁으로 다가가서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준식의 소매를 빠르게 잡는다.
그리고 애처롭게
[제발.....그러지 마….]
준식은 자신을 올려다 보는 하진을 말없이 바라본다.
챠챠챠챠챠.....
준식의 귓가에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환청이 끊이지가 않는다.
아니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 어쩌려고.....]
하진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도와줘.....준식아.....]
젖은 눈으로 준식을 보며 도와달라는 하진.
그의
옛 연인.
준식의 머리 속에 오래 전 굴다리에서 다투던 모습이 또 스쳐지나간다.
그 때,
준식과 하진의 옆으로 지나가던 자전거…
그 자전거가 굴다리 끝에서 멈추고,
준식에 귓가를 때리던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환청도 멈춘다.
그리고,
자전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현실의 준식, 그 자신.
준식은 굴다리 끝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다투고 있는 과거의 자신과 하진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다.
지금,
도와달라며 준식의 소매를 잡고 있는 오래 전 사랑했던 연인의 손.
그 애처로운 떨림.
예전 항상 먼저 내밀어주었던 그 손
.
.
.
.
.
[준식아! 사랑하는 내 남친!]
준식은 도서관 앞 긴 계단 끝에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있고,
하진은 그런 준식을 보면서 계단을 올라가며 준식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준식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하진을 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다시 떨군다.
[에구....울 준식이 기운 없어요?]
하진은 준식 옆으로 다가가 앉아서 고개를 숙인 준식의 머리를 쓰담듬어 준다.
[젠장...또 떨어졌어...벌써 세 번째야.....]
[힘내....인재를 못 알아보는 회사들이 문제지....니 문제가 아니야....]
하진은 풀 죽은 준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위로한다.
[야...그러는 너는 한방에 붙었잖아...아....쪽 팔려...]
[나 때랑 같나?....지금은 워낙 회사 들어가기가 힘들어 졌잖아...더 좋은데 갈 거야! 그리고 내가 있잖아! 엉? 준식아~ 힘내~ 화이팅팅팅!]
준식은 풀이 죽은 듯 하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단에서 불쑥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가려 한다.
하진은 가지 말라는 듯이 준식의 손을 잡고는,
[가자! 자기야! 기운 내서 또 도전 해야지! 오늘 맛있는 거 먹자!]
준식을 잡아준다.
.
.
.
.
지금도 역시,
그 옛날, 그 연인이 준식의 손을 잡고 있다.
이번에는 자신을 도와달라며,
예전에 늘 먼저 내밀어 주었던 그 손으로 말이다.
'그 때의 그 손으로 지금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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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후회
준식은 검은색 비닐로 돌돌 말은 죽은 만수의 시체와 함께 마당에 넘어져 있다.
아마 살해 현장을 다 치우고 시체를 옮기는 중인 것 같다.
하진은 시체에는 손을 못 대고 무서운 듯 몇 걸음 뒤에서 보고 있다가,
준식이 넘어지자 다가와서 일어날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준식은 하진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낑낑 대며 시체를 질질 끌면서 대문 밖으로 나간다.
하진은 먼저 대문으로 나와 길가에 서 있는 차의 트렁크를 연다.
이어서 준식이 낑낑대며 시체를 끌고 나와 트렁크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쉰다
하진의 차는
검은색 구형 소나타 모델.
[헉…헉….이게 들어가려나….]
준식이 있는 힘껏 시체를 들어올릴 때,
하진은 시체의 다리부분을 들어 도와준다.
구겨지듯 들어가는 시체.
하지만, 다리 부분이 이내 빠져 나온다.
트렁크 문을 닫아보지만, 닫히지 않고 다시 열려버린다.
준식은 시체의 다리부분을 구겨 넣고,
다시 트렁크 문을 닫아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닫히긴 했지만, 뭔가 완전히 닫힌 것 같지 않다.
뭔가 미심쩍인 준식이지만
[뭐…. 열리진 않겠지….일단 가자….]
하며 하진을 안심 시킨다.
그리고 준식과 하진, 둘 다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 쪽으로 이동한다.
[하진아 니가 운전해야지…? 나 술 마셨어….]
[나….운전 할 줄 모르는데?…]
[ 그래..?......아…술 많이 마셨는데…]
준식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
손목을 걷어 시계를 본다.
3시 20분, 1월 1일
준식은 '에라 모르겠다' 체념하 듯,
[키 줘 봐…]
하진에게서 자동차 키를 건네 받는다.
.
.
한편,
준식과 하진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구형 SUV 차량의 내부.
이동민 형사와 그의 동료 추소현 형사가
어둠 속에 앉아 창 밖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창 밖에는 준식이 하진에게서 자동차 키를 넘겨 받고,
운전석 쪽으로 건너가서 차에 타는 모습이 보인다.
동민은 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 하며,
[좀 이상한데….]
[그러게….여자도 한 명 있는 것 같은데..? 형! 저거 오만수 맞아?]
[몰라….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맞겠지…오늘 뜬다는 정보가 확실한데… 지금 트렁크에 뭐 왕창 실었잖아……]
동민은 휴대폰을 들어 자신이 속해있는 마약수사반 조현수 반장에게 전화를 한다.
신호가 몇 번 울리고 현수가 전화를 받는다.
[형님. 오만수… 드디어 움직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한 명 있습니다.…]
.
.
[여자?]
조현수 팀장을 비롯한 마약수사반 팀원 4명이 다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현수는 휴대폰을 들고 이동민 형사와 통화 중 이다.
현수는 옆에 앉아 있는 김진철 형사를 툭 치고는,
[이봐! 헹가래파에 여자가 있었나?]
물어본다.
[글쎄요…여자는…..]
[야…됐고….일단 눈치채지 못하게 미행해… GPS는 달았지?]
현수는 다시 한번 옆 자리 진철을 툭 치고
[오만수 GPS 신호 잡혀?]
물어본다.
진철의 모니터에 ‘오만수’라고 적힌 아이콘이 반짝인다.
[네! 잘 잡힙니다.]
현수는 진철의 모니터를 보면서 통화를 계속한다.
[그래. 그래. 신호 잡힌다..동민아…이거 3년 공 들인 거다…오만수 눈치 까면 성기.. 되는 거야…]
[네! 형님. 걱정마십시요.]
수화기로 들리는 동민의 힘찬 목소리.
[그래! 힘내라!]
현수는 전화를 끊고는 박수를 두 번 정도 치고 주위를 주목 시킨다.
마약수사반 팀원들이 일제히 현수를 쳐다본다.
[디데이다. 정보대로 오만수 드디어 오늘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알지? 오만수가 운반하는 히로뽕이 자그마치 50키로야! 50키로! 이거 파다가 날아간 우리 팀원이 두 명이고! 이번엔 실수 없이 헹가래파 윗선까지 싹 털어서 새해 복 많이 받자!]
마약수사반 팀원들이 일제히 '네!' 하고 대답한다.
.
.
한편, 차에 탄 준식과 하진.
준식은 차에 키를 꼽고 돌린다.
끌끌끌끌…….부릉.
추운 날씨에 겨우 시동이 걸리는 오래된 자동차. 조금 불안하다.
하진은 걱정스러운 듯 준식에게 말을 건다.
[이젠….어떡하지?..]
[어떡하긴….일단 사람 없는 데로 가서..]
준식은 추운 듯 손을 비비면서, 잠시 멈칫하고,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묻어버리거나….태워버리거나…]
하진은 불안한 얼굴로 준식을 쳐다보며,
[그…럼..일단 의왕 쪽으로 가자…]
[의왕?]
[거기 외할머니 집이 있어….]
[어쩌려고…..]
[작년에 돌아가셔서…지금은 빈집이야….]
[그래…..]
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기어를 따닥 넣고 차를 출발시킨다.
그렇게 준식과 하진이 탄 차가 골목에서 대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조금 시간차를 두고 이동민과 추소현 형사가 탄 구형 SUV가 뒤따른다.
.
.
-의왕 방향 고속국도로 진입하는 도로 근방
두 명의 경찰이 도로를 막고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반짝이는 경광등을 들고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 김태우, 방한복을 입었지만, 추워 보인다.
태우는 경광등을 계속 흔들며
옆에 서 있는 동료 이성재 에게 말을 건다.
[아…썅!…존..나 춥네…..이게 뭔 개 같은 경우냐…새해 첫 날부터…]
이 때, 차 한대가 성재 앞에 멈춰 서고 차 윈도우가 열린다.
성재는 운전자에게 짧게 경례를 하고,
[잠시 음주 확인하겠습니다.]
측정기를 들이민다.
[네…감사합니다.]
단속을 마친 차량이 지나간다.
차량이 지나가자 성재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그러게나 말이다…씨....발….이게 뭔 짓이냐…지난 달까지 광역수사대에서 날아 댕기던 우리가…]
[그니깐 내가 무리하게 파고 들지 말자고 했지… 씨...발…..거물을 잘못 건드렸어..]
[새꺄….거물 무서우면 그게 광역 형사냐? 우린 문제 없어….우릴 좌천시킨 이 잣 같은 나라가 문제지…]
[잣... 같은 나라, 잣... 같은 현실이다…씨...발….그래도 형사 할 때가 재미있었는데?…그치?….]
[아…말 같지도 않은 말 그만하고….나 오줌이랑 담배 한 대 빨고 오자…]
성재는 음주 측정기를 태우에게 휙 던지고는 가드레일을 넘어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태우는 계속 경광등을 흔든다.
.
.
도로 위,
오래된 구형 소나타가 달리고 있다.
준식과 하진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
잠시 후,
하진은 두려운 듯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감정이 복받친 듯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준식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하진을 힐끔 한 번 쳐다보고,
긴 한숨.
차 안에 하진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린다.
잠시 정적.
[후회하고 있구나….]
하진은 준식의 갑자스런 물음에 살짝 그를 올려다보고 대답이 없다.
[나도 지금 이게 뭔가 싶다…. 지하철에서 널 우연히 마주치고 지갑을 줍고, 널 찾아 갔는데…휴….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어….]
다시, 정적.
하진은 감정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갑자기 미…미안해….]
하진으로선, 준식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미안할 거 없어…]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준식.
[실은 나 저 사람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 결혼 하고…저 사람한테 매일 맞으면서도 그냥 받아들이며 살았어.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한번도 단 한번도 누구한테 도움을 청한 적도 없었어…]
[근데…왜….]
[오늘 결혼하고 처음으로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났는데….]
.
.
.
몇 시간 전 하진은 송년모음을 나가서 오랜만에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났다.
하진의 친구들은 분위기 좋은 BAR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다들 즐거운 듯 웃고 있었지만,
하진은 그런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뭔가,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근데…..근데…다들 너무 행복해 보였어…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문제가 있어도 애써 숨기며 사는 줄 알았는데… 다들 너무....]
하진은 다시 흐느낀다.
준식은 그런 하진의 어깨를 살짝 감싼다.
하진은 살짝 놀라며, 준식의 손을 조용히 뿌리친다.
[집으로 가는 게 너무 무서웠어…아니…그 집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게 더 무서웠어…도망치면 그 사람이 날 죽였을 거야…]
.
.
.
조금 전,
하진의 집.
집 현관으로 하진이 들어서고,
거실에 있던 하진의 남편 만수가 다짜고짜 욕을 하며 하진에게 들고 있던 리모컨을 집어 던진다.
[이... 년이 지금이 몇 시 인데…이 썅...년… 너 오늘 한번 죽어봐라..…]
그리고 일어나서 부엌 쪽으로 다가가 하진을 때릴 무언가를 찾는다.
그런 만수를 두려운 듯 쳐다보는 하진.
그런 만수의 뒷모습..
오랜 전 신우 아파트에서 하진의 뺨을 때리고 돌아서던
준식의 뒷모습과 흡사하다.
하진은 뭔가에 홀린 듯 현관에 진열되어 있는 묵직한 트로피를 들고,
만수의 뒤로 조용히 다가간다.
그리고,
꺄악!
소리를 지르며, 트로피를 든 손을 번쩍 든다.
분노에 찬 하진의 표정이 무섭다.
[돌리고 싶었어… 내 인생…가능하면…]
준식은 말을 마친 하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진도 고개를 돌려 준식을 빤히 쳐다보며,
[너를 처음 봤던 그때…그 벤치…바로 그때로…]
슬픈 표정으로 말을 한다.
준식, 동정하듯, 미안한 듯, 하지만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듯…
하진을 계속 물끄러미 바라본다.
빠앙!
[앞에!]
잠시 하진에게 넋이 나간 준식,
정면을 보자, 창문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강하게 들어온다.
준식은 급하게 핸들을 돌리고,
중앙선을 넘었던 차는 반대편 다가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
.
[형! 저 새끼 왜 저래! …눈치 챈 거 아니야?]
조용히 하진과 준식을 쫓고 있는 동민과 소현.
전방에 준식과 하진이 탄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건너편에 오는 트럭과 부딪힐 뻔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복귀하고 있다.
빠아아앙!
긴 경적을 울리며 동민과 소현의 차를 지나가는 트럭.
[좀 만 더 거리를 두자…]
동민은 속도를 늦추고, 전방의 차와 조금 멀어진다.
.
.
놀란 듯 잠시 숨을 돌리는 준식과 하진.
준식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하진을 힐끔 바라본다.
[괜찮아?….]
[어…괜찮아…]
준식은 잠시 말없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하진아…이건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지금이라도 경찰서에 가자… 니가 했던 얘기 가서 사실대로 말하면 참작해줄 거야…내가!….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하진은 단호하게.
[아니….말했지….? 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더 망가질 것도 없고….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너는 이제 가도 괜찮아.…충분히 도와줬어…]
다시,
준식과 하진은 아무 말이 없다.
하진의 심한 떨림도 멈췄다.
이때,
창문 밖 조금 멀리 반짝반짝 경찰 경광등이 보인다.
[아…젠...장...경찰이다…]
[뭐? 경찰?….]
[뭐지? 음주단속인가?….큰일이다.… 술 많이 마셨는데…이대로 멈추면 끝이야…]
[어떡해….]
불안해 하는 하진.
그런 하진을 준식은 다시 한번 힐끔 바라보며,
[이하진!….다시 한번 물을게… 너 후회 없지?]
하진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준식은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그럼 나도 후회 안 한다!]
그리고
엑셀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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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추격
[형! 아 씨...발! 저기 단속!]
소현이 옆에 운전을 하고 있는 동민에게 소리를 친다.
창문 밖으로 멀리 경찰 경광등이 보이고, 앞서 가던 하진의 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고 있다.
[잣 됐다…만수 저 새끼…그냥 뚫을 건 가보다…]
[젠..장…계속 쫓아가면 미행하는 거 뽀록 나잖아…]
[씨...발….]
순간,동민의 인상이 구겨진다.
.
.
과천 고속 국도 위,
음주단속을 하는 태우와 성재,
빠르게 다가오는 하진의 차를 발견한다.
[뭐….뭐야….!....저 새끼...!..]
잠시 후, 태우의 경광등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빠르게 통과하는 구형 소나타 차량.
태우와 성재가 뒤로 넘어진다.
[뭐야…저 새끼….지금….]
태우의 시야에서 빠르게 멀어지는 소나타 차량.
성재는 자리에서 잽싸게 일어나, 경찰차에 올라타고 사이렌을 켠다.
[야 태우! 빨리 타! 씨...발! 저 새끼 잡자!]
태우도 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타고,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며 앞 서 간 소나타의 뒤를 빠르게 쫓는다.
시끄럽게 반복되는 사이렌.
운전대를 잡은 성재는 뭔가 즐거운 표정.
속력을 내자,
앞 서 그들을 지나쳐 도망갔던 준식과 하진이 탄 구형 소나타 뒷모습이 잡힌다.
[이 새꺄…넌 잘못 걸렸어….어딜 토껴…태우! 번호 보이냐?]
[아직! 더 붙어봐…]
성재가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밞자.
경찰차가 구형 소나타 뒤를 바짝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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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적힌 차량의 번호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태우는 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
뭔가 이상하다.
라는 표정.
여전히 구형 소나타가 힘겨워 하며 간신히 경찰차를 앞서 가고 있고,
경찰차는 1차선으로 차선을 바꿔 그 옆으로 붙는다.
그리고 경찰차 외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태우의 목소리.
[칠일삼사…소나타…칠일삼사…소나타… 옆으로 차 세우세요!]
.
.
구형 소나타 안,
준식은 화가 난 듯 연신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밞았다가 떼면서,
[아…이 차 존..나 안 나가네…]
하진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런 준식을 바라본다.
[어떡해….어떡해 좀 해봐…일단 세워야 되는 거 아냐?…잡히겠어....]
[미쳤어?….세우면 둘 다 죽는 거야!…]
[그럼…어떻게 하려고….]
준식은 대답 없이 혼자 중얼중얼 욕을 하며,
힐끔힐끔 옆으로 따라붙은 경찰차를 본다.
[어떡하긴….여기까지 온 거 무조건 따돌려야지…꽉 잡아!]
준식은 핸들을 옆으로 따라붙은 경찰차 쪽으로 확 돌리고,
구형 소나타가 1차선에 있는 경찰차의 측면을 들이받는다.
쿵!
충격을 받은 경찰차가 잠시 중앙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잽싸게 돌아온다.
그리고 소나타 트렁크 도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열릴 듯 말 듯 흔들거린다.
[어쭈…이 새끼 완전 미친 새끼네…]
흔들거리는 경찰차 내부에서 성재가 흥분한 듯 소리친다.
태우는 갑작스런 충격에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아…이 개..새끼..조져버려!]
[오케이!]
성재는 즐거운 듯 희미하게 웃으며 핸들을 하진의 차 쪽으로 돌리고,
경찰차가 구형 소나타 쪽으로 붙는다.
끌끌끌…
두 차가 서로 측면을 맞대고 힘겨루기 하 듯 도로 위를 달린다.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두 차가 또 강하게 붙는다.
쿵! 쿵!
부딪힐 때 마다 불꽃이 튀고,
구형 소나타의 트렁크는 계속해서 열릴 듯 말 듯 흔들거린다.
.
.
.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반 사무실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 머리를 감싸 쥔다.
[이 씨...발…만수 뒤로 경찰 붙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팀원 최진철 형사에게,
[철! 오늘 과천에서 의왕방향 고속국도 단속 근무자 연락처랑 무전기 주파수 알아봐! 당장!]
[네!]
.
.
.
심하게 흔들리는 구형 소나타 차 안.
일그러진 준식의 표정.
준식은 때마침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잠시 핸들을 풀었다가 다시 있는 힘껏 핸들을 경찰차 쪽으로 돌리자,
구형 소나타가 잠시 경찰차로부터 떨어졌다가, 다시 경찰차에 강하게 충돌한다.
쿵!
충격에 중앙선 바깥으로 밀려나는 경찰차.
반대편에서 트럭 한 대가 상향등을 정신 없이 껐다 키면서 빠르게 다가온다.
경찰차가 다시 못 돌아오게 1차선을 가로막는 구형 소나타.
그리고 흔들흔들 덜컹거리는 구형 소나타의 트렁크 도어.
.
.
[야! 씨이발! 앞에!]
경찰차 안, 태우와 성재의 시야 정면으로 상향등을 키며 다가오는 트럭.
빠앙~
트럭의 크락션 소리가 도로 위에 길게 울려 퍼진다.
[아....젠...장...]
성재는 눈을 질끗 감고, 핸들을 돌린다.
경찰차가 아슬아슬 하게 트럭의 왼쪽 편으로 비켜간다.
끼이익익..
도로위에 타이어 갈리는 소리.
경찰차를 겨우 비낀 트럭.
살얼음으로 미끄러워진 도로 위에서 휙 돌며 멈춘다.
가까스로 다시 1차선으로 돌아오는 경찰차.
우웅~
경찰차가 묵직한 배기음을 내며 구형 소나타 뒤로 다시 바짝 다가선다.
.
.
.
[반장님! 단속 근무자…연락처…인데요....근데…]
진철은 전화를 끊자마자, 마약수사반 조현수 팀장에게 빠르게 다가간다.
현수는 진철이 건넨 쪽지를 빠르게 낚아채서 바로 확인하고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놀란다.
[뭐야…..성재….태우??….]
진철이 건넨 쪽지에는
음주단속 근무자 이성재/김태우
라고 적혀있다.
.
.
.
한편 도로 위,
성재와 태우가 탄 경찰차가 하진의 차 후미를 아슬아슬 하게 쫓고 있다.
[이성재! 다시 그냥 받아버려!]
[오케바리!]
여전히 신나보이는 성재와 태우.
우웅~
다시 한번 묵직한 배기음을 내며 구형 소나타 후미를 강하게 들이박는다.
쿵!
이번엔 좀 강한 충돌이다.
구형 소나타 트렁크 도어가 거의 열리기 직전이다.
그 때, 경찰차 내부 무전 스피커에서 지직지직 신호가 잡히더니,
[이성재! 김태우! 이 미친 새끼들아! 당장 차 세워!]
광분한 마약수사반 조현수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재와 태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현수형?]
놀란듯하면서도
성재는 여전히 구형 소나타를 추격하는데 이내 집중한다.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이받는다.
그리고,
앞에 있던 소나타의 트렁크가 갑자기 확 열리면서,
안에서 만수의 시체가 튕겨져 나온다.
쿵! 쿵 !
시체는 그대로 경찰차 앞 유리에 강하게 부딪히고 유리에는 쩍쩍 금이 간다.
뜻밖에 충격을 받은 경찰차가 심하게 흔들리다가 중심을 잃고 갓길 도랑에
쿵!
쳐 박힌다.
연기.
그래도 돌아가는 경광등과 사이렌.
.
.
[으....]
벨트를 맨 체 터진 에어백 사이로 처박혀 있는 성재와 태우.
성재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상체를 일으킨다.
[……아…..씨...발….뭐야….피 나잖아...]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마의 피를 슥 닦는다.
곧이어 옆에 있던 태우도 정신을 차린다.
[아..씨..….어떻게 된 거야…]
[태우야….봤냐?…..트렁크에서 뭐가 튀어 나왔어….]
성재는 벨트를 풀고, 쪼그라든 에어백을 손으로 이리저리 치우고 차 문을 열고 비틀비틀 나간다.
갓길 도랑에 처박힌 경찰차는 본넷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고,
현란한 경광등이 돌아가고, 사이렌 소리가 지직직 끊기면서 들린다.
성재는 어리둥절한 듯 주위를 살펴본다.
태우도 위태위태 차에서 빠져 나와 성재 옆으로 다가와서,
[야….아까 무전 현수형 맞지?…]
물어본다.
[그러게….미쳐 날뛰는 게 딱 현수형인데..으….]
성재는 이마 상처가 아픈 듯 손으로 상처부위를 막고,
계속 주위를 살피다가, 허리에 차고 있던, 손전등을 꺼내 한 곳을 비춘다.
성재가 비춘 지점에 뭔가 검은색 물체가 떨어져 있다.
[저건가?…그 차에서 떨어진 게…]
성재와 태우, 천천히 그 물체 쪽으로 향한다.
지이이잉~
그 때 태우의 휴대폰이 호주머니 안에서 울린다..
태우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야…이성재! 현수형한테 이제 전화 온다….무슨 일이야….대체….]
[뭐야…갑자기 무전을 때리지 않나……..드디어 헹가래 털었나?….]
성재는 상관없다는 듯 앞을 계속 걸어가며 대답한다.
[아! 맞아…..헹가래….]
태우는 뭔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잠깐 멈추고,
이내 휴대폰 울림이 멈춘다.
성재는 어느새 떨어진 물체 앞에 선다.
그리고 발로 툭툭 검은 비닐에 둘러싸인 물체를 차본다.
[뭐야....이거...]
눈이 커지며 뒤에 따라온 태우를 바라본다.
[뭐? 왜…..?]
[이거….]
성재는 아픈 것도 잊고 털썩 주저 앉아, 너덜너덜 해진 검은 비닐을 쫙 뜯는다.
눈 앞에,
눈알이 치켜 올라간 뭉개진 만수의 시체가 펼쳐진다.
[아! 씨...발! 놀래라!]
태우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성재는 손전등으로 시체를 이리저리 비춰본다.
그리고 태우,
다시 조금 다가와 불빛에 비춰지는 시체의 얼굴을 보다가,
드디어 뭔가 생각 난듯.
[야….야….이…이…거 …만수 아니냐?…]
[뭐? 만수? 오만수?]
[그래 오만수야….]
태우는 자신의 미간을 툭툭 치고는,
[저 눈썹 사이 점…기억 안나?]
성재는 시체 머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미간을 살펴본다.
큰 점이 하나 있다.
[진…..짜….오만수…인가?..헹가래….오만수? 비슷하긴 한데….사체가 너무 훼손 되어서…..]
태우도 성재 옆으로 쪼그리고 앉아,
[야….나 기억났어….방금 전 소나타 칠일삼사….]
[뭐가?....칠일삼사??..]
성재가 손전등으로 태우의 얼굴을 비춘다, 빛에 비친 태우의 얼굴이 다소 우스꽝스럽다.
[병...신아! 기억 안나?….그 소나타….칠일삼사….우리가 광역 마약수사반에서 그렇게 쫓았던…..]
[쫓았던….?]
[헹가래파 오.만.수 차잖아…..]
지이이잉~
그 때,
다시 울려대는 태우의 핸드폰.
액정에 '현수형님' 이라고 뜬다.
[태우야 ….전화 받아…일급이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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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다른 생각
덜덜덜...
만신창이 된 구형 소나타.
그 안에 준식과 하진,
서로 말이 없다.
창문 밖으로는 헤드라이트 불빛 한 쪽이 나간 듯 외부가 어둡다.
[여기….여기…휴게소 좀 들리자….화장실 좀…]
전방에 휴게소 표지판이 어렴풋이 보이자,
하진이 침묵을 깨고 말을 한다.
[그래.…대충 따돌린 것 같으니깐….아무래도…다시 계획을 세워야 될 것 같아…]
히터가 고장 나서 그런지 준식이 말할 때, 입김이 서려서 나온다.
[시체도 떨어뜨리고, 차 넘버도 알고 있으니…이대로 가다간….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준식은 막막한 듯 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고,
하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준식을 본다.
[그럼 어떻게 하지?….자수 하라고?…]
[……글쎄…..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
준식은 핸들을 휴게소 방향으로 돌리고,
구형 소나타가 트렁크 문이 열린 채 덜덜 거리며,
'의왕 휴게소' 안으로 들어간다.
휴게소 주차장 안에는 띄엄띄엄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한산하다.
2014년 새해 첫 날 새벽의 휴게소는 분위기가 스산하다.
.
.
어두컴컴한 고급 스포츠카 안.
조수석에 헹가래파 중간보스 '용재'와 운전석에 그의 부하 '노랑발'이 앉아있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의왕휴게소 진입로에는,
헤드라이트 한 쪽이 나간 준식과 하진이 탄 구형 소나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노랑발, 다소 흥분한 듯, 용재를 보며
[용재 행님….만수형 들어오는 것 같은데요…근데 차가 왜 저래…아놔…차 좀 바꾸라니깐…]
[만수 자식….그래도 시간은 대충 맞췄구만….따라 들어오는 놈은 없지?]
[네...없습니다…]
[좋아…계획대로…여기서 물건 반으로 나눠 담자…]
용재는 비장한 표정으로 데쉬보드 위 검은색 가죽장갑을 집어 손에 끼운다.
.
.
한편,
준식은 차를 주차장 구석진 곳에 세우고 시동을 끈다.
그리고 손이 차가운 듯, 손을 비빈다.
하진은 그런 준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준식아…이제 넌 빠져…]
단호하게 말한다.
[뭐?]
[생각해 보니깐 내가 정신이 좀 나갔나 봐…]
[뭔 소리야… 이제 와서….]
어이없는 준식이지만,
하진은 개의치 않고 천천히 자신의 뜻을 계속 전한다.
[아니….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황당한 준식.
[기회?]
[내 인생이니깐, 이건 내 책임이야…이젠 넌 빠져…괜히 너도 인생 망치지 말고…기회 줄 때 빠져….]
[기회라니….참….]
준식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듯, 말없이 하진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남편을 묵직한 트로피 모서리로 쳐서 죽인 여자.
헝클어진 머리에 허름한 옷.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버린 눈과 다 지워진 화장.
그런데도,
하진은
여전히
아름답다.
준식은 불쑥 하진에게로 상체를 기울여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하진은 당황스러운 듯 움찔하다가, 준식의 키스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내 준식을 밀쳐낸다.
[뭐 하자는 거야…]
[잘 들어…너를 찾아간 순간, 이미 나도 니 인생 안으로 들어간 거야…절대 못 빠져…날 믿어….그리고 지금 기회는 니가 주는 게 아니고 내가 주는 거야….]
하진은 말없이 물끄러미 준식을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로 들릴듯 말듯.
[아니….난 분명 기회를 준거야…]
[뭐?]
하진, 다시한번 나지막하게 들릴듯 말듯.
[넌…이미 나를 한번 버렸잖아….]
하진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준식, 고개를 갸우뚱.
[준식아...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그래…]
하진이 문을 열고 내리자,
순간, 차 안으로 찬 공기가 밀려 들어오고,
준식은 옷을 여미며 앞으로 걸어가는 하진의 뒷모습을
그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
.
과천 고속국도 위, 만수의 시체가 떨어진 곳.
여전히 성재와 태우의 경찰차는 갓길에 처박혀 있고,
경광등을 킨 다른 경찰차가 한 대와 이동민 형사의 구형 SUV가 길가에 서있다.
사고 및 시체 때문에 도로가 통제되는 상황.
몇 대의 일반차량들이 현장을 피해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만수의 시체 앞에 성재와 태우 그리고 동민과 소현이 서있다.
근처 다른 경찰들은 어디론가 계속 무전 연락을 하고 있고, 왠지 분주한 느낌이다.
동민은 만수의 시체 앞에서 계속해서 마약수사반 조현수 팀장과 통화 중이다.
[네…형님…오만수 맞습니다……네…..성재랑 태우도 같이 있습니다…네…네….알겠습니다….]
동민은 '휴...' 한 숨을 지으며 휴대폰을 끊는다.
성재는 기다렸다듯이,
[현수형…뭐래?]
물어본다.
동민은 인상을 구기며,
[니들 죽여버린대….]
대답한다.
[아~ 씨...벨……우리가 알았냐?….우린 우리 할 일 한 건데….그 형 아직 성격 못 고쳤구만!]
옆에 있던 소현, 담배에 불을 당기고 만수의 사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동민을 올려다 본다.
[그러면 아까 실은 게 뽕이 아니고 만수 였던거야? 이 자식을 왜 죽인 거지? 이제 와서….]
동민도 쪼그리고 앉아 사체를 살펴본다.
[이거 머리를 뭐로 후려쳤는데….]
성재와 태우도 동민 곁에 앉고, 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계획…아는 놈 중 하나가 만수를 죽이고….물건 들고 튄 거네…양아치 새끼들…]
지이이잉...
이 때, 동민의 휴대폰이 울린다.
[예! 형님!]
.
.
분주한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반,
팀원들이 빠른 속도로 옷을 입고 장비들을 챙기고 있다.
조현수 반장은 점퍼를 입으며, 전화를 하고 있다.
[야! 동민아! 거기 현장 관할에 맡기고, 빨리 의왕 휴게소로 이동해! 오만수 차 거기에서 멈췄어! 물건 옮겨 담으면 끝장 나니깐! 빨리 이동해서 상황 보고해! 우리도 지금 나간다!]
현수는 바로 휴대폰을 끊고,
팀원들에게 ‘빨리! 빨리!’ 소리를 지르며 지시를 한다.
마약수사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오만수'라고 적힌 아이콘이
지도 위 의왕 휴게소에서 반짝 반짝이고 있다.
.
.
의왕 휴게소 주차장.
준식은 차에서 나와 코트를 여미고, 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당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기를 내뿜는다.
하늘이 약간 무거운 느낌.
[눈이 오려나…별이 안보이네…]
준식은 담배를 물고, 손목을 걷어 시간을 본다.
4시 34분, 1월 1일.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
.
[아…만수…저 새끼…왜 이렇게 신호를 안 줘? 뭐 있나?….불안하게 왜 저래…]
용재와 노랑발, 창문 밖 조금 멀리 보이는 준식을 유심히 바라본다.
하지만, 어둡고 꽤 멀어서 잘 구분이 가질 않는다.
[아…씨….형님...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우리 못 찾는 거 아닙니까?]
용재는 시간을 한 번 보고,
[씨....발….이러다가 늦겠다.….노랑발 네가 한번 나가서 상황 좀 보고와..….]
[네…행님….]
노랑발이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나간다.
.
.
준식은 여전히 담배를 피며 휴게소 건물을 쪽을 바라본다.
초조한 듯 다리를 떨고 있다.
멀리 왼쪽 측면에서는 노랑발이 다가오고 있다.
준식은 하진인 줄 알고 노랑발이 다가오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린다.
잠시 후,
휴게소 건물 쪽에서 하진인 듯한 사람이 조그맣게 걸어오는 듯 하다.
준식은 살짝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려 그쪽으로 걸어간다.
[???]
근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준식.
멀리 하진이 뛰어 오고 있고,
그 뒤에 누군가가
하진을 쫓는 듯 하다.
실루엣이 점점 다가오자, 형체가 들어난다.
급하게 뛰어오는 하진과 바로 그 뒤에...
근무복을 입은 경찰들 이다.
그리고 옆에는 어느새 준식 근처까지 다가온 노랑발,
[뭐야…..만수 형 아니잖아!….당신 뭐야!]
노랑발, 준식에게 빠르게 다가간다.
준식은 옆에서 다가오는 노랑발을 한번 보고 앞에서 뛰어오는 경찰을 본다.
그리고 바닥에 담배를 던지고
[이런 젠장…!]
몸을 돌려 뛰어가서 서둘러 차에 탄다.
끌끌끌끌끌...
준식은 당황한 듯 덜덜 거리며, 차 키를 꼽고, 돌리지만
도무지 시동이 안 걸린다.
[아…씨...발….제발!]
옆 유리 밖으로 노랑발이 다가와 창문을 꽝 치며
[씨...발! 당신 뭐냐고!]
앞 유리 밖으로는 하진과 그녀를 쫓는 경찰 두 명이 벌써 차 쪽으로 다 와간다.
[아….씨...발….짭새….]
노랑발 뛰어오는 경찰을 확인하고 놀란 듯이 급하게 몸을 돌려 사라진다.
하진이 겨우 차 쪽으로 다 왔을 때쯤,
부웅~
하고 겨우 시동이 걸린다.
[빨리! 빨리!]
준식은 뛰어오는 하진에게 다급하게 손짓한다.
그런데,
하진,
조수석 문을 열고,
타지는 않는다.
준식은 다시 다급하게,
[뭐해! 빨리 타!]
어느새 경찰 두 명이 하진 옆으로 다가온다.
준식은 문을 열고 그냥 서있는 하진을 황당한 듯 바라본다.
[뭐…뭐 하는 거야…….이하진....]
경찰중 한 명이 고개를 숙여 열려있는 조수석 문 안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하진은
손을들어
준식을
지목한다.
[이 사람 이예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을 죽이고, 저를 납치했어요! 이 차 안에 마약이 있다구요!…]
준식,
황당한 듯,
[뭔 소리야…..마약이라니….미쳤어? 같이 죽자는 거야….?]
순간,
준식의 뇌리로 방금 전 하진이 차 안에서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
.
[거기 잠시 내려 주시죠.]
경찰이 준식에게 경고하 듯 말한다.
준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경찰이 허리춤에서 테이져 건을 꺼내 겨누면서,
[내리라고요!]
최종 경고 한다.
[아…이 씨...발….]
준식, 미동도 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는다.
경찰중 다른 한명이 차 앞쪽으로 돌아, 운전석 쪽으로 다가온다.
[아…이 씨...발….]
준식, 나지막하게 다시 한번 욕을 내뱉고,
경찰이 운전석 문 쪽으로 다가와서, 문을 열려고 하자,
발로 문을
퍽!
차서 문을 활짝 열어 제낀다.
갑자기 열린 문에 맞고 경찰이 쓰러진다.
준식은 빠르게 차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이런.....개...같은..,,,,,이게...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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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너와 나의 시간
차 안에서 뛰쳐나온 준식,
빠른 속도로 휴게소 건물 쪽을 향해 도망간다.
경찰들 빠르게 준식을 뒤쫓는다.
그리고 도망가던 노랑발, 힐끔힐끔 준식의 상황을 쳐다본다.
.
.
차 안에 앉아 있던 헹가래파 중간보스 용재.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한 듯 표정이 불안하다.
창 밖으로 노랑발이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고,
멀리 달려가는 준식과 그를 쫓는 사람들이 보인다.
노랑발이 빠르게 달려와 용재의 차 문을 열고 탄다.
[용재 형님!...잣 됐습니다..정보가 샌 거 같습니다..]
[뭔 소리야! 정보가 새다니!]
[짭…짭새요…그….그리고 만수형도 없습니다….]
[뭐…? 만…만수가 없어?! 그럼 저기 뛰어가는 놈 누구야…?]
[몰라요…처음 보는 새끼예요… 짭새한테 쫓기고 있어요..]
[아….뭐 어떻게 되는 거야….씨...발….물건은?...]
[일단 피하시는 게…]
용재가 노랑발의 뒷통수를 갈긴다.
[미쳤어..새꺄?...이번 물건 못 넘기면….너..나 다 죽는 거야…어떻게든 찾아야지…!]
.
.
준식은 전력으로 달리면서,
휴게소 곳곳에 있는 가판들을 뒤따라오는 경찰들을 향해 넘어뜨린다.
[비켜! 비켜!]
경찰들은 가판에 살짝 걸려서 주춤하다가 다시 준식을 쫓는다.
몇 몇의 일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사린다.
전력으로 도망가는 준식의 모습.
뭔가 슬퍼 보인다.
준식의 뇌리로 방금 전 하진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이 사람 이예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을 죽이고, 저를 납치했어요! 이 차 안에 마약이 있다구요!…]
'뭐야….이하진...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대체…'
차 안에서 작은 소리로 말하는 하진.
[….넌…이미 나를 한번 버렸잖아…. 돌리고 싶었어… 내 인생…가능하면…]
나지막하게 읇조리던 하진의 말이 떠오른다.
준식은 도망가면서 뭔가 깨달은 듯,
오래 전, 신우 아파트 앞에서 하진의 뺨을 내리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넌…..그 때부터 시간이 멈췄구나….'
미친 듯이 달려가는 준식과 그런 그를 쫓는 경찰 둘.
휴게소가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근데…..어쩌지?...나도….나도…..'
무료한 일상 생활들.
생기 없는 표정.
회사 에서나,
친구들 만날때 나,
항상 노트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거나,
그런 자신의 모습들이 준식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 어쩌지?...나도…..그때에서 시간이 멈춰버렸는데……'
준식은
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방향을 틀어 미친듯이 속력을 내어 달려간다.
호루라기를 불며 그 뒤를 쫓는 경찰들..
준식은 시동의 걸린 채 문이 열려있는 소나타 쪽으로 미친 듯이 뛰어와 올라타고 문을 닫는다.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른다.
근데,
조수석에 누군가 타고 있다.
[뭐야?...]
조수석에 앉아 상체를 숙이고 뭔가를 찾고 있는 남자.
행가레파 용재 이다.
용재도 준식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너...뭐야…!]
노랑발도 뒷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준식을 확인한다.
[뭐야….이 새끼….형님....아까 그 새끼!.....]
이 때, 창문 밖으로 경찰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준식은 서둘러 문을 잠근다.
경찰들이 차 앞 유리로 다가와
[문 열어!.....]
쿵쿵쿵
소리친다.
용재는 인상을 구기며,
[아….짭새…..씨...발…]
노랑발이 뒤에서 준식의 머리채를 잡으며 흔든다.
[야! 너 뭐야! 씨...발.. 짭새냐? 우리 만수형 어쨌어!]
차, 안 밖으로 소란스럽다.
준식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지만,
[아…..씨...발……뭐야…대체…]
개의치 않고, 기어를 넣고 차를
웅~
출발시킨다.
창문에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출발하는 차로 인해 나가 떨어진다.
.
.
구형 소나타가 휴게소 출구로 질주하듯 달려나간다.
그때,
갑자기 SUV 한 대가 소나타를 막아서듯이 불쑥 끼어들고,
두 차가
쿵!
충돌한다.
갑작스런 충돌에 준식과 용재일당이 앞으로 쏠리며 충격을 받는다.
[으…….]
창 밖으로는 끼어든 SUV에서 동민과 소현 그리고 성재와 태우가 목을 잡고 천천히 내린다.
[여어~ 용재야~ 끝났다….좋은 말 할 때 내려라~]
마약수사반 이동민 형사가 소나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한다.
소나타 조수석에 앉은 용재는 다가오는 동민을 보고 사색이 되어 놀란다.
[이….동….동…민이……]
뒷자리에 있던 노랑발도 동민을 보고 사색이 된다.
용재는 광분한 얼굴로 준식의 멱살을 잡는다.
[뭐여! 너 짭새냐? 이런 개새….]
[혀…형님…..성…태….콤비도 있습니다…..]
용재는 준식을 흔드는 것을 멈추고 창 밖에 성재와 태우를 발견한다.
[씨..이발….저 자식들은….언제 다시 복귀한 거야…]
[야….내려라 내려….끝났어….]
태우가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동민은 옆에서 휴대폰을 들어 조현수 반장에게 전화를 건다.
[형님!.....현장에서 도주하려던 헹가래파 일당 거의 잡았습니다…….네…….3명 입니다…용재랑…..노랑발……그리고…..]
동민, 운전석쪽 준식을 유심히 살펴보며,
[…..한 놈은 못 보던 놈입니다…네….네…...네???]
놀란다.
노랑발과 용재 불안한 표정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준식은 핸들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용재는 주먹으로 창문을 꽝! 치고는
[아….진짜…..잣 됐네…만수 이 씹...새끼….혼자 토낀거여?.....]
흥분하고,
노랑발은 뒷자리에서 앞에 준식의 머리채를 잡으며
[야…이 개...새꺄….너 누구야? 너도 짭새 보고 도망가던데…..우리 만수형…어쨌어?...]
흥분한다.
용재가 옆자리에서 다시 준식의 목을 잡고 흔든다.
[야! 좋은 말 할 때 사실대로 불어라! 만수랑 물건 빼돌리려고 짠 거냐?]
준식은 뒤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옆에서는 목을 잡힌 채 괴로운 표정이다.
이내,
준식은 표정이 구겨지며 큰 소리로
[아이! 씨..이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역시 흥분한다.
용재일당은 갑자기 큰 소리에 준식을 흔드는 것을 멈추고 놀란다.
준식, 비장한 표정으로 기어를 후진에 놓고, 엑셀을 밞는다.
따라라라라라라...
구형 소나타가 오랜 된 자동차에서 후진할 때 나오는 촌스러운 후진 멜로디를 내며 뒤로 빠진다.
동민을 비롯한 형사 일행들.
[어?..어?]
하며 뜻밖에 상황에 당황한다.
끼익~!
차가 뒤로 쭉 빠졌다가 멈춘다.
[뭐여….뭐 하는 거여?]
용재가 당황한다.
준식은 말없이 다시 따닥 기어를 다시 바꾸고, 엑셀을 힘껏 밞는다.
우웅~
그리고 완전 만신창이가 된 구형 소나타가 출구 쪽으로 질주를 한다.
동민을 비롯한 일행이 달려오는 소나타를 가까스로 피한다.
출구 쪽으로 멀어지는 소나타.
동민은 재빨리 일어나서
[이런 양아치 새끼들!]
서둘러 SUV에 올라타고,
나머지 일행들도 재빨리 차에 오른다.
곧이어 사이렌을 울리며 앞서 간 구형 소나타를 쫓아간다.
.
.
구형 소나타가 휴게소를 빠져 나온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톨게이트를 향해 질주하고 좁은 입구를 빠른 속도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잠시 후,
형사들의 SUV도 빠르게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격전.
SUV가 너덜너덜한 구형 소나타를 금새 따라잡아,
바로 뒤에서 상향등을 연신 깜박인다.
도로 위로 길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나타안의 노랑발은 다시 뒤에서 준식의 머리채를 잡으며,
[야이~ 씨...벨련아~ 차 안 세워? 뒤에 저 놈들이 누군지 알아? 우리한텐 저승사자야! 죄 없는 우리까지 끌고 가지마.. 새꺄! 엉?!]
[아…아…놔...놓으라고!..]
노랑발이 머리채를 흔들 때마다 차량이 휘청휘청.
[노랑발! 냅둬! 이 새끼 잡히기 전에 물건 어디다가 빼돌렸는지 알아내야지!]
이때, 용재 쪽 창문으로 동민의 SUV가 빠르게 다가오고,
운전석 창문이 내려간다.
SUV 안에 동민, 운전을 하면서 문을 내려보라고 용재에게 손짓한다.
용재가 순순히 순순히 창문을 내리고
[에고 형님! 곧 세울게요! 지금 설득 중! 설득 중!]
[용재~ 야이 씹..새끼야~ 빨리 안 세워! 그 운전하는 새끼 누구야!]
[형님! 진짜! 모르는 새끼예요! 우리는 아~무 상관없어요!]
[이런…개..새끼!]
동민은 소나타 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SUV가 소나타의 측면을 들이 박는다.
쿵! 쿵!
뒷좌석에 노랑발, 충격에 넘어지며, 시트에 처박힌다.
그리고 처박힌 시트에서 뭔가를 감지한 듯
[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SUV.
동민이 다시 소리친다.
[마지막 이다! 옆에 그 새끼 누구야!]
용재는 아픈 듯 머리를 붙잡고,
[지인짜 몰라요!]
[야이 새끼야! 옆에 그 새끼가 오만수 죽였어! 그래도 몰라!]
용재, 놀란 듯이 준식을 돌아본다.
[뭐? 만수를 죽여? 야! 노랑발!]
노랑발은 대답이 없다.
용재, 뒷좌석을 돌아본다.
[노랑발! 이 새끼가……마…만수를…]
노랑발은 뒷좌석 시트 커버링을 허겁지겁 칼로 찢으며,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들고 용재의 눈 앞에서 흔든다.
[형님……여기 물건…찾았습니다..…]
용재의 눈이 커진다.
그리고 바깥에는 동민의 SUV가 소나타를 앞지르고 차선을 바꿔 앞에 선다.
그리고 갑자기 속력을 줄인다.
준식, SUV의 갑작스런 급정거에 인상을 구기며 놀라며,
[아…씨..발…]
급 브레이크를 밞는다.
끼이이익...
준식과 용재일당이 한꺼번에 앞으로 쏠린다.
특히 노랑발은 앞 좌석까지 튕겨져 나온다.
쿵!
SUV와 소나타가 부딪히고 1차로 위에 멈춘다.
잠시 후, SUV 내에서 동민 일행이 내린다.
[아이….새끼들…오늘 다 죽었어….감히 경찰을 들이박아?...보험도 못 드는 이 형사들을!...]
[야…야…….걱정 마라… 이 교통경찰님이 상황 다 봤다..잘 처리 해줄게… 흐흐흐..]
성재가 소현을 다독인다.
어슬렁어슬렁 소나타로 향하는 4명의 경찰.
마치 깡패 같다.
.
.
충격을 받아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는 준식과 용재일당.
사실 그렇게 세게 부딪히진 않았지만, 다들 벨트를 안 매고 있어 앞으로 쏠려 있다.
노랑발은 뒷좌석에서 용재가 앉은 앞쪽까지 굴러왔다.
이내,
노랑발, 정신을 차리며,
[으…..씨..발……어떻게 된 거야….]
몸을 일으키려고 손을 짚는데,
뭔가,
'미끌’
하며 손이 미끄러진다.
[뭐야…..]
노랑발은 미끌거리는 자신의 손을 쳐다본다.
피 같은 액체가 잔뜩 묻어있다.
이어 여전히 누운체로 용재를 올려다 본다.
[우악! 요…용…용…재 형님…]
올려다 본 용재의 가슴팍에 노랑발이 좀 전까지 들고 있던 칼이 꽂혀있다.
가슴에서 용재의 피가 줄줄 샌다.
[으으으으….용…용…재 형님!….용재 형님!]
이때, 밖에서 들리는 동민 일행의 목소리.
[야! 야! 문 열어! 새끼들아!]
준식은 핸들에 얼굴을 박은 채 정신을 잃었다.
'결국 너와 나의 시간은....'
.
.
.
준식과 하진,
무채색의 배경 속에 나란히 마주보며 서있다.
그리고
준식이 하진의 뺨을 세차게 내리친다.
그리고 정지화면처럼 그 상태로 멈추고,
준식과 하진의 색도 무채색으로 변한다.
'멈춰버렸어….그때 그 순간...'
멈춘 무채색의 준식과 하진 뒤로,
서로가 헤어지고 살아온 모습들이 빠르게 표현되며 잔상처럼 남는다.
그렇게 수 많은 잔상들이 돌고 돌아,
결국,
두 사람,
다시,
마주 선다.
[이 사람 이예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을 죽이고, 저를 납치했어요!]
하진은 몸을 돌려 준식에게서 멀어지고,
그녀에게는 색이 돌아온다.
그리고 수 많은 잔상과 함께 사라진다.
준식은 홀로 여전히 무채색으로 수 많은 자신의 잔상들과 함께 그 자리에 멈춰있다.
[돌리고 싶었어… 내 인생…가능하면…]
하진의 여운이 남는 한마디...
.
.
.
준식 핸들에 기댄 채 번쩍 눈을 뜬다.
'나는! 나는! 하진아! 나의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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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결백
퍽!
용재가 앉아있는 쪽의 차 유리가 깨지고,
성재가 깨진 유리 사이로 손을 넣어 차 문을 연다.
[아….이 양아치 새끼들….꼭 맞아야…나오지…….]
성재, 문을 열자, 가슴에 칼이 꽂힌 용재를 발견한다.
[어?….요…용재….야..이 새끼! 왜 이래! 야! 빨리 119!]
동민, 소현, 태우도 다가와 다친 용재를 확인한다.
[이..이 새끼 왜이래! 119! 119! 야! 이 새끼 왜이래!]
노랑발이 용재의 무릎팍에서 몸을 일으킨다.
[…..으…..용재형님…….]
동민은 용재의 상처부위를 손으로 막으며 몸을 일으키는 노랑발을 다그친다.
[이 새끼 왜 이러냐고!…]
노랑발, 눈물을 흘리며 어쩔줄 몰라 하다가, 계속 다그치는 형사들을 보며 겁에 질려,
[저…….저 새끼가 찌…찔렀어요….]
하고 준식을 지목한다.
준식은 그제서야 거의 죽어가는 용재를 발견한다.
[나….난….아니야…..]
동민은 얼이 빠진 준식을 보고 분노에 찬 얼굴로 옆에 있는 소현을 다그친다.
[소현! 여기 이 새끼 빨리 체포해! 태우! 119! 어서!]
[오케이..]
소현은 차 앞쪽을 돌아 반대편 준식의 쪽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개..새끼….약 땜에 사람을 둘이나 죽여? 목숨이 장난이냐!]
소현은 분노에 차서 중얼대며 준식의 쪽으로 이동하고,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소나타 운전석 쪽 창문을 부순다.
퍽! 퍽!
차유리가 부셔지고, 소현은 손을 넣어 문을 열면서,
[나와! 이 씨...발놈아!]
이 때,
문이 확 열리면서,
준식, 차에서 튀어나온다.
[어? 어? 이 개새….]
소현은 열린 차문에 가로막혀 준식을 잡으려다 놓친다. 총을 쏘려 하지만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어렵다.
준식은 차선 반대편으로 빠르게 내달린다.
[형! 저 새끼 튄다! 잡아!]
성재와 태우, 일제히 달아나는 준식을 쫓는다.
소현도 구석에서 빠져 나와 같이 쫓는다.
[씨...발~! 난 아니라고!]
준식, 도망가며 억울한 듯 소리친다.
성재, 준식을 거의 잡으려 할 때,
준식은 중앙분리대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이….미친새끼….가..]
준식이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에 착지하는 순간,
몸 전체에 강한 빛이 비춰진다.
빠아아앙~
준식에게 강하게 돌진하는 트레일러.
[야! 트럭~!]
성재가 반대편에서 큰 소리로 준식에게 소리친다.
트레일러가 준식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준식은 그 자리에서 그냥 하늘을 보고 빠르게 누워버린다.
[으…..]
슝슝슝...
준식이 누운 사이로 통과하는 화물차. 아찔하다.
성재 주위로 태우가 헉헉 뛰어온다.
반대편에는 기다란 화물차가 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아….저 새끼…..분리대를 넘었어….깔렸나 봐…..]
[뭐??…..]
[썅….새해부터 도대체 시체를 몇 번 보는 거야…재수없게….]
[씨..발….또 뒤진 거야?….]
소현도 뒤늦게 뛰어온다.
[헉….헉….뭐야….놓쳤어?….]
그 때, 반대편 차선에서 준식이 스윽 일어난다.
태우는 일어나는 준식을 보고,
[야..…서..성재야….저 새끼 살아있다….]
[이 새끼….!]
성재가 차선을 횡단하는 준식을 보면서 다짜고짜 중앙분리대를 넘으려고 한다.
중앙분리대로 몸이 반쯤 나갔을 쯤,
[새꺄! 조심해!]
태우가 중앙분리대 위에 있는 성재를 잡아 뒤로 확 뺀다.
성재의 눈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긴 트레일러.
죽을 뻔 했다.
성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태우는 앉아있는 성재를 보며,
[성재…괜찮냐….차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어….너무 위험해….일단 빠지자….]
[빠지는 건 교통경찰 형들이나 빠지쇼….]
소현은 품에서 총을 꺼내, 준식을 향해 겨눈다.
태우, 소현의 뒤통수를 살짝 치며
[뭘 빠져 애송이 새꺄….총은 쏴봤냐?]
소현의 총을 낚아채서 준식을 향해 겨눈다.
[잘 봐라….왕년에 광역 스나이퍼라 불리던…..]
태우가 겨눈 총이 준식의 오른쪽 다리로 완벽하게 조준이 된다.
[내가 바로 김태우다…]
탕!
단발의 총알이 발사되지만
준식은 때마침 다가오는 차를 피하느라 태우의 조준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총알이 ‘픽’ 오른쪽 어깨를 스친다.
준식은 아픈 듯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다가오는 차들을 아슬아슬 피해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소현은 태우에게서 총을 다시 뺏으면서,
[아….형…뭐야…놓쳤잖아….]
[추! 총소리 뭐야! 죽였어??]
동민이 총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뛰어온다.
[아…씨….놓쳤어…중앙분리대 넘어서 토꼈어…]
[아…맞히긴 맞혔는데…그새 녹슬었나?....]
태우가 쑥스러운듯 나지막하게 아쉬워 한다.
동민은 앉아서 넋을 잃은 성재를 발견하고,
[근데…이 새낀 왜이래?...]
[저승 구경하고 왔댄다…]
동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어나….일단 빠지자…여기 너무 위험해…]
[뭔 소리야? 도망간 새끼 잡아야지…만수 죽이고…용재 담근 놈인데….]
소현이 흥분한다.
[어차피 멀리 못 가….노랑발 족치면 다 나와…]
[노랑발? 용재는?]
[죽었어…..]
[뭐 죽어?? 아….씨..발 망했네…..!]
소현, 자신의 머리를 박박 긁으며 아쉬워 한다.
[일단 여기 통제하고 빠지자…꼬였지만….노랑발 족쳐서….윗선 털면 되….]
동민이 소현을 다독이고,
태우는 성재를 일으킨다.
.
.
한편, 구형 소나타 안,
앞 좌석에 용재가 칼이 박힌 채 죽어있고,
노랑발은 뒷좌석에서 허겁지겁 마약이 담긴 봉지를 챙긴다.
[혀..형님….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노랑발, 차 문을 열고 빠르게 빠져나간다.
.
.
4명의 깡패 같던 경찰이 터덜터덜 차로 돌아오고 있고,
순간,
노랑발이 구형 소나타에서 후다닥 빠져 나온다.
[뭐야! 노랑발! 튄다!]
성재는 도망가는 노랑발을 보고 반사적으로 뛰쳐나간다.
그때, 차선에서 노랑발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
[성재야!!!!!]
성재가 빠르게 달려가 노랑발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순간, 그들에게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전신을 감싼다.
빠아앙~
SUV 차량이 그대로 성재와 노랑발을 부딪히고 지나가고, 길에서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쾅 들이박는다.
성재와 노랑발, 길바닥에서 몇 바퀴를 구르며 그대로 길 위에 뻗는다.
[으아아아아….이…이…성재!!!]
태우가 갑작스런 상황에 실성한 듯, 쓰러져 있는 성재 곁으로 달려간다.
[성재야!!! 아…씨...발!!! 119!!!]
동민과 소현도 성재와 노랑발 곁으로 달려간다.
[아….안돼…..성재야…..노랑발…..]
태우가 나가떨어진 성재를 감싸안고, 그의 뺨을 살짝 친다.
[얌마! 안돼! 이성재! 정신 차려!]
성재가 피를 흘리며 희미하게 눈을 뜬다.
[으……..씨….발….태우야….나….진..짜….저..저승 구경 간다……]
눈을 감는다.
[이성재!!! 이 새끼야!!! 안돼!!!]
아수라장이 된 의왕 고속국도.
태우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멀리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앰뷸런스와 경찰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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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식은 다친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힘겹게 수풀 속을 헤치며 달아나고 있다.
얼굴이 만신창이 되어있다.
'경찰서…경찰서로 가자…..가서 결백을 밝히자…나….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준식은 드문드문 불빛이 있는 새벽의 도심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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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팀장을 비롯한 마약수사반 팀원들이 탄 봉고차 안.
경찰 사이렌이 시끄럽다.
현수는 앞자리 조수석에서 휴대폰을 들고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있다.
[뭐! 뭐라 하는 거야? 차근차근 말해봐!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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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엠뷸런스 안,
동민은 누워있는 노랑발 옆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다.
구급대원 2명이 노랑발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앰뷸런스 사이렌이 시끄럽다.
[형님! 용재도 죽었구요….노랑발도 지금 위험합니다…..그리고 도와주던 성재도 위험한 상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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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는 왜…..동민아…니들 뭐한 거야….대체….]
현수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한다.
[성재….가족한테는 연락했냐?....]
그때, 마약수사반 팀원 최진철 형사가 뒷좌석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며,
[반장님!]
현수가 수화기를 막고 돌아본다.
[뭐야?..]
[신고자요! 신고자! 만수 죽인 새끼 신고자가 있다고 연락 왔습니다!]
[뭐? 신고자?]
[네! 지금 의왕 경찰서에 있답니다!]
현수는 다시 휴대폰에 대고,
[동민아…..일단 노랑발….무조건 살려….헹가래에 남은 유일한 연결고리야…도망간 놈은 우리가 잡는다……그리고 성재! 죽지 말고 기다리라 그래….형이 그 놈 잡아준다고!]
끊는다.
[야! 의왕서로 차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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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 경찰서 정문 근처,
준식이 횡단보도에 서서 건너편 의왕경찰서를 바라본다.
준식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져 있고, 피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 온 몸은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힘겹게 경찰서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야….신원이 확실하니깐….결백을 주장하면….믿어줄 거야….가자….가자….'
경찰서를 향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준식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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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수사반 봉고차가 빠르게 들어와 의왕 경찰서 현관 앞에서 멈춘다.
현수를 비롯한 팀원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 경찰서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새해 첫 날,
다소 한산한 의왕 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몇 명의 취객들이 행패를 부렸는지 조사를 받고 있고,
당직인 듯한 형사 1, 2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그리고
하진,
그들 근처에 앉아 있다.
잠시 후,
현수와 마약수사반 팀원들이 경찰서 직원 전용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반 입니다. 신고자! 신고자 어디 있습니까?]
의왕 경찰서 형사가 현수에게 다가선다.
[안녕하십니까? 의왕서….김관호 입니다..]
[조현수요…신고자 어디 있습니까?]
[저기…저 여자분….]
의왕 경찰서 형사가 앉아있는 하진을 가리킨다.
현수가 의왕서 형사를 무시하듯 지나쳐 빠르게 하진에게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마약수사반 조현수 반장입니다. 오만수 살인사건 신고자 되시죠?]
[네….]
하진이 현수를 돌아본다.
현수는 근처 의자를 끌어다가 하진 곁에 앉으며,
[성함이…?]
[이하진….]
[그래요…이하진씨….죽은 오만수씨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아내입니다….]
[유감입니다….]
현수가 살짝 놀란다.
[네…..]
[만수의 아내 분 되시고.….그럼 살해용의자는 누군지 아시나요?]
하진, 잠시 대답을 안하다가, 천천히,
[예전에 사귀던 사람 입니다.]
하진의 대답에 현수가 살짝 희미하게 웃는다.
[예전 애인?….그럼 자알 아시겠네요…치정 살인인가요?]
[아니요….저하고는 관계 없어요….그 사람이 제 남편을 죽인 이유는 따로 있어요…]
현수, 옳거니 하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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