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행정부와 새누리당, 더 정확하게는 서남수 교육부장관과 박승춘 보훈처장, 그리고 뉴라이트교과서포럼에 의해 조직된 한국현대사학회가 찬양·칭송·미화하기 위해 왜곡·날조·은폐시키려 하는 18년 장기집권 박정희 독재권력의 어두운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김재홍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의 최신 저서《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저자의 직접적 경험과 치밀한 취재를 통해 친일파의 후예, 군사정변 세력이 조작한 잘못된 신화와 삐뚤어진 우상을 깨고 우리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다!
◆ 유신정권의 최후를 지켜본 두 여인
박정희의 최후를 맨 정신으로 가장 확실하게 보았던 증인은 10·26사건 당일 밤 궁정동 주연행사에 참석한 두 여인이었다. 재판부는 이 두 여인을 증인으로 불러 당시 상황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1979년 12월 17일 보통군법회의 8회 공판.
이날 오후 5시경 두 여인은 증인서약 등 절차를 마친 뒤 한양대학에 재학 중인 패션모델 신재순, 그리고 가수 심수봉 순으로 증인신문을 받았다. 신재순이 먼저 증인석에 앉고 심수봉은 대기실로 안내됐다.
검찰관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증인 신재순 “그렇습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검찰관 “대통령 각하께서 삽교천 행사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다는데….”
증인 “그렇습니다.”
검찰관 “TV 뉴스가 끝날 때쯤 김재규 피고가 두 번째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 김계원 비서실장은 어떻게 하고 있었나요? 초조해하는 표정은 없었나요?”
증인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당황하고 초조한 표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검찰관 “잠시 후 김재규 피고가 나갔다가 얼마 후 들어와 총소리가 났어요? 아니면 조금 있다가 났습니까? 그리고 ‘피, 피’ 하며 경호원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10·26사건 당일 밤 박정희 대통령의 양 옆에 앉았던 두 여인이 증인으로 출두하는 날 합수부는 이들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크게 신경을 썼다. 이들이 역사의 현장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사건 뒤의 여자’로 비쳐져 세간의 눈길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 여인의 프라이버시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돼야겠지만 너무나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보다 그것이 우선시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 여인은 일류가수로 대중문화의 스타여서 일반인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합수부는 언런보도에서 두 여인의 사진을 뒷모습만 게재하도록 제한했으며 이름도 가명을 쓰게 했다. 시중에는 이미 손금자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가수가 누군지 알리는 정확한 ‘유비통신’이 나돌았다. “모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이며 모델 노릇도 한다는 정혜선 양”의 신원도 언론보도만 막는다고 해서 감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2월 17일 오후 4시 15분경, 두 여인은 감색 제미니 승용차를 타고 보통군법회의 8회 공판이 열린 군사법정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날 재판부와 검찰관, 변호인 그리고 보도진 4명과 기관원 등으로 방청이 제한된 별관의 소법정에서 수 시간에 걸쳐 각각 따로 증인신문에 답변했다.
증인 “처음 총소리가 난 후 화장실로 피신했는데 조금 있다가 또 총소리가 났습니다.”
검찰관 “그때 대통령 각하께서는 어떻게 하고 계셨습니까?”
증인 “쓰러져 있었는데 식탁 옆으로 몸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검찰관 “총소리가 난 후 불이 나갔나요?”
증인 “불이 꺼진 뒤 손양과 둘이서 각하를 부축했습니다. 그때 차지철 경호실장은 ‘경호원, 경호원’ 하고 소리치며 화장실에서 나와 문갑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때 변호인단이 유도신문을 하지 말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증인의 답변이 합수부의 수사기록대로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관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증인 “식탁에 엎드린 각하를 부축했는데 그때 김재규 부장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각하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 나도 이제 죽었구나 하고 겁이 나서 화장실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잠시 후 조금 조용해지는 것 같아 나와 보니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각하를 업고 나갔습니다.”
검찰관 “차 실장을 본 일이 있습니까?”
증인 “방에서 빠져나가려는데 차 실장이 문가에 쓰러진 채 살아있어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부축하면서 일어나라고 했더니 ‘나는 못 일어날 것 같애’ 하기에 그냥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옆 사람이 안내해줘 어느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데 신음소리도 났고 조금 후 총소리가 계속해서 일곱 발 정도 났습니다. 그 방에 전화가 몇 번 왔는데 무조건 모른다고 했어요.”
(이어 변호인 신문이 시작됐다. 김재규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된 안동일, 신호양, 이병용 변호사 등이 물었다.)
변호인 “검찰관이 신문할 때처럼 ‘네, 네’ 하지 말고 아는 대로 대답해 주세요. 궁정동에 도착해서 바로 방에 들어갔습니까?”
증인 “6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도착해서 잠깐 대기했습니다.”
변호인 “방에 들어갔을 때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나요?”
증인 “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들어가 인사하고 앉았습니다.”
변호인 “대화 중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까?”
증인 “없습니다.”
변호인 “대화 중 차 실장과 김재규 부장 사이에 언성이 높았습니까?”
증인 “그런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변호인 “합동수사본부에 몇 번이나 갔지요?”
증인 “한 번 갔습니다.”
(이때 검찰관이 ‘본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은 삼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검찰신문의 신빙력에 관한 질문’이라고 응수했다.)
변호인 “그날 김계원 실장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것은 높은 어른 앞이라 그런 것인가요, 아니면 무슨 꾸지람이나 죄책암이 있어서였나요?”
증인 “뭔가 초조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
변호인 “증인은 관상학을 공부한 일이 없지요? 그 날 김 실장을 처음 보았고 조명도 흐렸지요?”
증인 “조명은 말하기 곤란합니다.”
변호인 “조명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명에 대한 질문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내가 밝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시중의 룸살롱처럼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권력자 그리고 술과 여자가 함께 있었다. 이어 가수 심수봉이 증인석에 앉았다.)
검찰관 “그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대통령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던가요?”
증인 심수봉 “조금 높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검찰관 “만찬장에 들어간 뒤 대통령 각하께서 총에 맞을 때까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보세요.”
증인 “처음 들어가니 각하께서 차 실장에게 ‘TV에서 삽교천 행사를 방영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차 실장은 ‘시간이 되면 제가 켜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시계를 봤습니다. 이때 저도 시계를 보았는데 7시 10분 전쯤이었어요. 삽교천에 대한 말씀이 계속됐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들어와 김 부장의 귀에 대고 ‘과장님이 뵙자는데요’ 하자 바로 나갔습니다. 그 후에 나갔던 김 부장이 언제 들어왔는지 곧 총소리가 났어요.”
검찰관 “그때 상호 간에 주고받은 얘기가 없었습니까?”
증인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는 고함소리만 들었습니다.”
검찰관 “김재규 피고인이 두 번째 들어올 때 눈이 마주쳤다고 했는데….”
증인 “총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굉장히 당황했어요. 설마 했으나 각하 머리에 총을 갖다 대는 걸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남효주 사무관이 부속실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두 여인의 진술은 비화보다는 사건당일의 현장목격담이 주였다. 그러나 ‘관립 비밀요정’의 풍속도를 전해준 증언이었다.
▶ 김재홍 著,『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株)책으로보는세상 編, 2012년 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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