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이상하기도 했지, 비가 그렇게 내리는데도 고집을 굽힐수가 없더라고.
우리반에는 부잣집 살기로 유명한 여자애가 있었어. 성격도 밝고 착해서 남한테 쓴소리 한 번을 제대로 못했지. 흔한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교복치마를 입었어. 공부까지 잘했으니 그야말로 모범생이었지. 피부도 애기처럼 하얗고.
다만 반에 한두명씩 있는 성질 나쁜 녀석들이 그애를 못마땅해 했어. 왜냐면 유독 그런 애들한테는 차갑게 굴었거든. 특히 하얗게 화장을 하는걸 싫어했어. 혐오스러운 눈빛은,아주가끔 보게되는 거였지만 꽤나 의외일 정도였어. 그러다가 고지식하다는 뒷담을 듣는걸 여러번 봤지.
난 그애의 절친한 친구..는 아니였어. 친해지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생기질 않았어. 그애주변엔 항상 사람이많았거든.
뭐, 어쨌든 그러다가 그애의 생일이된거야. 직접 짝꿍이된적은 없지만 대각선 앞뒤자리로 자주 대화하고 있었고. 그런데 나는 정작 그애 생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던거지. 그애는 나의17번째 날에 예쁜꽃다발을 줬는데말이야. 난 친해지고싶은 욕구와 미안함과 뭐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왜 그시절엔 아무생각없이 내뱉기도하잖아. 고작 고등학교 이학년이었는걸.
"너희집,비었어?"
그 애의 생일 다음날이었어. 나는 이미 가방속에 선물을 숨겨놓고있었지. 평소 좋아한다는 쿠키를 준비해놨어. 대답이없길래,나는 한번 더 물어봤어.
"지현아, 오늘 너희집 괜찮니?"
"아니.별로. 뭔가 많거든."
순간, 섬뜩했어. 그렇게 무뚝뚝하게 말할 애가아닌데 뒤도안돌아보고 낮게깔린 목소리를 내뱉었어. 마치 양아치애들한테 하듯이 말이야. 나는 내가생일을 잊어버렸기때문에 화가난줄 알았어.
"왜그래? 다른날이라도 괜찮으면 같이 놀자고. 시험도끝났는데."
"...그럼, 주말에."
그렇게주말이왔을때, 비가내렸어. 나는 약속한대로 학교앞에서 그애를기다렸어. 그애는 검은색 우산을쓰고왔어. 나랑같은우산.! 그런사소한것에도 기분이좋았지. 그애가 내손을꼭잡았어. 나때문에 수고해주는구나. 그애의집에 가는길은 꽤복잡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했지.
"우리집은 말야. 사실부잣집아니야."
"응?"
"오히려 아주 음침해. 그래서 오늘이좋았어."
"비오는날이?"
"세가지만명심해. 첫째는 우리엄마와눈을 마주치지마. 둘째는, 교복을좀 단정히입어. 셋째는 집안에 이상한물건에 절대손대지마. 알았지?"
"음.알았어."
뭔가 이상한걸느꼈지만, 난개의치않았어. 그애를믿었으니까. 뭣보다 따뜻한손과, 따뜻한눈빛. 난 그런것들이 너무좋았어.
으리으리한 집이었지. 현대식으로깔끔하게지어진.
"오래되긴했지만. 들어와."
"우와,끝내준다."
"뭘.뭐좀마실래?엄마는 2층에있지만 지금바쁘니까인사할필요없어.아, 게임기도있어."
그애는 뭔가바쁘게 나에게 소개해줬어. 보드게임, 컴퓨터게임, 책자와 앨범. 정말즐거웠지만,어딘가모르게 그애는불안해보였어. 창백한얼굴이 유독, 억지로웃는듯한느낌이들었거든. 텅비고 커다란집에서,나는어쩌면 그애가 집을무서워하고있다는걸 느꼈어.
"걱정마. 내가있잖아.오늘은 재미있게놀자! 내가네 선물도가져왔어."
"고마워,굳이 챙겨주지않아도되는데."
작고볼품없었지만 그애는 정말로기뻐하는것같았어.다행이야.
"난말야, 사실 집이무서워."
그때 그애가처음으로, 속내를털어놨어. 나는 그이야기에 집중했어.
"사람들은 커다랗다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엄마와나 단둘이지내기에도비좁아. 이곳엔 너무많은것들이있어."
"무슨소리야?"
"엄마는..이미 늦어버렸어."
그애의눈에 눈물이고였어.
"나한테는 너같은 친구가아주많아. 엄마는 그애들을싫어해. 너를 해칠지도몰라. 그런데도 놀러오라고한건, 어차피 너에게 시간이얼마 안남았기때문이야."
나는 무슨소리냐고 묻고싶었어.그런데 갑자기 말문이막혔지...어디서 이상한소리가들려왔어.옆방? 아니,그보다위?
"엄마가..너를눈치챘어. 눈을마주치지마."
끼익, 이상한소리가다가오는걸느꼈어. 나는 너무무서워서그애의손을꼭잡았어. 끼익,끼익. 끼익..
무서워.대체이공포감은뭐야? 마치 집이 악마의소굴이된것마냥. 뒤틀려보이기시작했어. 이상한소리도멈추질않아.
끼익,끼익,끼익.
문이 열렸을때, 나는 너무놀라 바닥에 엎드렸어. 소리는소름끼쳤고 점점다가왔어.나는여전히 아무말도내뱉을수 없었어. 슬쩍눈을떴을때, 그애의 가지런히 놓인 다리와, 그옆으로 발 한쌍이 보였어.언제온건지. 아마도 그애의엄마인것같아.
"...끅..극.."
이상한소리였어. 아줌마의발은 창백하고 상처투성이였고나는고개를 들지않았어. 그러다가, 나는 실수하고말았어. 인사를 해야한다는생각이들었지. 그애는 어쩐지아까부터 말이없어.
"지현..이..어머니..?"
"끄으으으으어어어어어억-끼아아아아아아아아"
검게뚫린두눈이, 무너진 입술이 비틀리며 나에게다가왔어. 나는 그애에게 고개를돌렸어. 그애가나를 구해줄거라고생각했거든.
"엄마. 이언니야. 17년전에 죽었다는."
뭐?무슨소리야? 무슨말을하는거야?
"또식구가늘었네."
그 미소가, 내눈에보인 그애의 마지막 모습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