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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영향력

참의부 |2013.11.03 13:30
조회 84 |추천 0

합리성에 기반한 논리적인 대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국가 권력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는 한 편, 정권 측에서는 그 사건에 대한 수사 자체를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면서도 “겨우 댓글 가지고 선거 결과가 바뀌었겠냐”고 반론을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선거 결과에 대한 영향력과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영향력이 있건 없건 공권력은 선거에 개입하면 안되는 거다.

 

정보기관은 그저 “정보의 검색”을 하고 그걸 분석해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임무지, 직접 개입해서 정보를 만들어내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 개입한 내용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라면 이미 그 상황에서 권력의 정치개입이 되는 것이며 처벌되어야 하고 재발을 막아야 하는 범죄행위가 구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것은 두번 말하면 입만 아픈 내용이니까 더 떠들 생각도 없고.

 

실제로 궁금한 점은 과연 댓글이나 트윗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

 

일단 아주 쉬운 결론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댓글달고 트윗하고 리트윗 하는 짓은 분명히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

 

기본적으로 그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면, 도대체 그걸 왜 했는가? 분명히 어떤 결과를 바라고 사람들을 투입해서 작업을 한 것인데, 그게 영향이 전혀 없다고 얘기한다면, 스스로 아무 의미없는 뻘짓을 막 했다고 고백하는 것 밖에 더 되는가.

 

영향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지 말자. 개인이 트윗을 한 개 날려도 영향이 있고, 기관이 수십명을 투입해 수십만개의 트윗을 날려도 영향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댓글이나 트윗 몇 개 가지고 사람이 설득이 될까? 절대 불가능하다. 저쪽 편에 투표할 사람이 댓글 몇개 보고 트윗 몇개 본다고 투표를 안하게 되거나 후보자에 대한 선택을 바꾸겠어? 절대 안 바꾼다.

 

그럼 영향 없는 거 아닌가?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작업”들은 결코 설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설득은 댓글 따위로는 불가능한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분명히 영향이 있다. 사람들의 감성에 영향을 주고 논리적 판단이 아닌 심리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가 있다.

 

초창기 인터넷은 거의 야당 지지자들과 진보쪽의 놀이터였다. 거의 모든 글과 댓글들은 진보적인 의견이었으며, 수꼴스러운 의견은 어디 차마 올리기가 민망한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만 해도 인터넷 사용자가 지극히 제한된 전문가들이거나 젊은 계층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 상황이 일반적인 사회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기 때문에 정권에서도 별로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꽤나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기껏해야 한국논단 같은 것들이 등장하면서 딴지일보에서 “한국농담”이라고 조롱하면서 패러디의 소재로 쓰기나 했고, 그 외에 북진통일을 주장하거나, 광주를 빨갱이들의 폭동이라 주장하거나 하는 글들은 찾아 보려고 해도 찾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포털들이 득세를 하고 사용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거의 대부분 야권이나 진보쪽의 주장을 담은 글들이 주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다가 하나 둘 씩 정권(이라기 보다는 기득권세력 정도)의 이해를 반영한 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 일반에서 주류를 차지하던 의견에 진보적인 의견이 반기를 들며 돌출하는 양상이 정반대로 인터넷 공간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주류 의견이었던 진보적 주제들에 대해, 수꼴적 의견들이 반기를 들며 돌출하는 양상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양적인 가늠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쪽이 더 머리수가 많은 걸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의견이 어떤 쪽일까? 쉽게 말해서 주류가 어느 쪽인지 가늠을 하게 된 것이다.

 

2002년 전 까지는 이 비중이 쉽게 구분이 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야권 진보 계열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노무현의 당선은 사실 그 힘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 때 당시 인터넷을 지켜보던 수많은 중간자들은 인터넷을 휩쓰는 노사모의 열풍을 보고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뭔가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감성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는 노무현의 당선.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마 많은 선거 운동 전문가들이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선거운동 기법의 탄생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정권의 성격도 바뀌고 또 그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끼리 논쟁도 벌어지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야권 지지자”의 입장이 되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게 되고, 이런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대로 인해 발생한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대신 소심하고 조용한 관전자들에게는 어느 쪽이 주류인지 알아보기 힘든 시점이 되어 버렸다. 이 때 바로 (비록 설득까지는 아니지만) 주류에 묻어가기를 좋아하는 중간계층의 사람들의 정서, 그 약하고 흔들리는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영향을 주는 방법을 누구나 안다.

 

메신저를 이용해 서로 교신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포털 게시판 상위권에 노출시키는 전략은 야당 성향의 지지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다. 이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수법은 똑같이 일베 사용자들이 반정부적인 메시지를 “민주화”시켜 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산업화” 하기 위해 사용한다. 링크를 퍼다놓고 화력지원을 부탁하는 것이다.

 

댓글은 아무 내용이 없다. 그저 욕설과 비방일 뿐이다. 권력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침착하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 그저 야권 후보들을 공격하는 루머성 댓글을 달 뿐이다. 대신 그것을 수없이 많은 계정을 통해 퍼트린다.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기 위해서다.

 

군인도 별로 없으면서 산위에 횃불만 잔뜩 켜둠으로써 군세를 과장하는 기법은 이순신장군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돈을 준다면, 나는 나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 인터넷 상의 계정(보통 사람들은 계정 하나에 사람 하나라고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을 수천개 수만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앞서 얘기한 메신저로 상호 교신하며 몰려가서 추천질을 하는 그런 행위는 그나마 도덕적이다. 실제 개인들이 움직이는 거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상의 계정을 통해 숫자를 늘려가는 방식은 슬슬 비도덕적이 된다. 실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소심한 관전자들을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주류인가?

 

확인할 방법도 없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반정부적인 내용의 글들을 읽고 분노하다가도, 수천 수만의 댓글이 달라 붙어 본글을 비방하게 되면 다시 흔들린다.

 

인터넷에서 보고 감동받은 얘기들을 실제 술자리에서 말하기도 꺼려진다. 누구나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면 용기를 내어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댓글을 보니 대부분이 반대를 할 뿐 더러, 거짓말이라고 반론까지 막 하는데, 내가 얘길 꺼내면 욕먹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이런 작전 세력들이 움직이고, 작업이 횡행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인터넷은 소통의 공간이라는 기능을 잃어 버리게 된다. 단지 공포와 분노와 지저분한 말싸움에 의한 씁쓸한 뒷맛만 주는 공간이 될 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혐오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인터넷에서의 작업은 분명히 영향력이 있다.

 

지지자들에게는 용기를 준다. 중간자에게는 혐오와 무관심을 유발한다. 상대편 지지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준다. 이 반응은 정치적인 편을 가를 필요가 없이 양쪽 모두에게 동일하게 발생한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여권 쪽에서는 이 작업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고, 야권 쪽에서는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투입한 것 뿐이다.

 

그러면 아무도 득을 보지 못한 것 아니냐고? 그 동안 야권은 “기능을 잃어버린 언론”이 해줬어야 할 일을 상당부분 인터넷에 의존해왔다. 쉽게 말하면 인터넷은 야권의 무기였던 것이다. 이것을 무력화 시킨 것만으로도 여권은 엄청난 이익을 본 것이다.

 

이 상황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선거 전에 이미 관련된 모든 전문가들은 다 알던 내용이다. 그렇기에 국정원을 필두로 보훈처, 국방부, 행정부, 거의 모든 국가 기관들이 이 작업에 직간접으로 투입된 것이다. 해야 하는데, 돈주고 사서 시키면 선거법에 걸리니까 그냥 비밀리에 공공조직을 투입한 것이다. 투입하기 좋은 조직은 평소에도 비밀리에 활동하던 조직들.. 정보기관과 군사기관인 것이다. 너무 뻔헌 그림 아닌가.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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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되었다는 얘기냐고 박근혜 대통령이 격앙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서 댓글질을 해도 당신을 당선시킬 수는 없다.

 

대신 문재인이 당선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든 댓글질과 작업의 내용을 보시라. 박근혜 칭찬보다는 문재인 욕이 대부분이다. 하기사 칭찬할 거리가 있어야 칭찬을 하지.

 

원래 인터넷이 생산적인 의사소통보다 비판적인 의견이 난무하는 곳(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이니 만큼 칭찬 보다는 헐뜯기가 더 잘 먹힌다. 그리고 당신들은 선거기간 내내 문재인을 빨갱이라고 몰아 부쳤다. 문재인을 선택해야 되지 않을까 하며 고민하던 유권자들을 위협해서 멈추게 만들었다.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게 아니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한 것 뿐이다. 만약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 였다면, 역시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욕을 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분노 대신 공포, 희망 대신 불쾌감을 얻었고 그 결과로 박근혜가 당선된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합하여 박근혜를 당선시켰다.

 

이 상황에서 도대체 이 거대한 악행을 박근혜 정권은 어떻게 수습할 예정인지 알 수가 없다.

 

수습 못한다에 한표 걸겠다.

 

☞ 인터넷 패러디 풍자 신문『딴지일보』정치부장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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