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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더이상 인생이 기대되지 않습니다.

뉴뉴 |2013.11.07 07:23
조회 372 |추천 3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20살. 곧 21살이 될 평범... 하고싶은 대한민국의 한 여자입니다.
인터넷에 제 얘기를 하는게 처음이라 좀 떨리고 긴장되지만 익명의 힘을 빌어서...이렇게 글을 써봐요. 저도 음슴체 많이 쓰고 하지만 진지한 얘기를 하는거라 이 글에서 음슴체를 쓰지는 않을게요ㅠㅠ




먼저 과거의 제 얘기를 시작해보자면...
저는 폭력적인 아빠때문에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를 당할뻔 했지만
이리저리 미뤄지다 낙태할 때를 놓쳐 태어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당시의 가족 구성원은 아빠+엄마+오빠(아빠가 이혼남이었어서 아빠쪽에 딸려있던 아들이라고 알고 있어요)+언니 거기에 저까지였어요.
무능한 아빠는 일을 안하고 있었고, 엄마는 미용실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아빠는 심심하면 가게에 찾아와 배고프니 밥을해라 등등의 억지를 부리며 깽판을 쳤고,
그로인해 미용실도 잘되다가 점점 손님이 떠나갔다고 해요.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오면 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었구요.
제가 기억나는 가장 어린시절의 기억도 이때쯤이예요.
엄마가 아빠에게 맞고있으면 오빠가 언니와 저를 방에 숨겨두고
휴지를 한뭉텅이 풀어서 이걸 하나하나 떼면서 세고있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언니와 제가 휴지를 세고 있으면 한참뒤쯤에나 팅팅 부어서 엄마와 오빠가 나타났고
그 휴지를 다 세어서 주면 엄마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오빠는 그 휴지를 가져다 엄마와 오빠 본인 얼굴을 닦고...
그런 세월을 견디다 견디다 못해 엄마는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혼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결혼생활을 포기한거겠죠.
나중에 들어보니 오빠가 엄마에게 더이상 참지말고 이혼하시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친정집에라도 숨어있으라고 했다네요.
오빠도 그 이후로 혼자 살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와 같이 살고 했던듯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네로 도망을 쳐 와서 이혼 준비를 하고 두분은 이혼을 했습니다.
중간에 아빠가 할머니네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기도 했지만요.


그 이후로 저는 엄마, 언니, 저 셋이 살게되었습니다.
맞벌이도 아니고 여자혼자의 외벌이라 늦게까지 일하는날이 허다했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은 없었습니다.
저와 언니는 엄마의 관리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저 굶다가
엄마가 돌아오면 같이 야식을 먹고 너무 늦게 안오시는 날에는 밥을 거르기도 자주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주인집에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둔걸 보고
노란 두부인줄 알고 먹었다가 혀 전체에 혓바늘이 돋기도 했어요 ㅋㅋ...


그때의 엄마는 저희가 티비를 보는걸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사실 밤까지 엄마를 기다리다 보면 할수있는게 많지도 않아서 티비를 봤을 뿐인데,
엄마는 돌아오시면 가장 먼저 티비 뒤에 손을 대보시고
뒤가 차가우면 저희에게 야식을 시켜준뒤 주무셨고 뜨거우면 저희를 때리셨습니다.
때린다고 해서 종아리 열대 손바닥 다섯대 이런게 아니라
행거 봉이나 나무옷걸이로 휘거나 부러질때까지 맞았습니다.
어느날은 뺨을 20대정도 때리셨는데 다른곳은 안아프니까 마냥 좋다고만 생각하다
다음날 학교를 가서야 알았습니다. 제 뺨에 손바닥모양의 피멍이 들어있단걸요.
속상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부끄럽기도 해서 넘어질때 손짚고 넘어졌는데
그위로 넘어져서 그런가보다고 대충 둘러대고 그날 엄마께 학교에서 있었던일을 말하니
깔깔 웃으시며 그래 너 쪽팔리라고 그렇게 때린거야. 라고 하신 날도 있었구요.


엄마는 아빠를 보고 폭력적으로 변한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분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언니는 그런 엄마를 보고 변했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날 집에와 말도 안되는 시비를 붙여가면서 저를 때렸습니다.
자기 분이 풀리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계속 때리고 자기가 지치면 그만뒀다 괜찮아지면 다시 와서
아까 니가 맞을때 표정이 띠꺼웠다는 등의 시비로 절 다시 때리곤 했구요.
제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할라 치면 이건 너와 나의 문젠데 왜 엄마를 부르냐고 또 때렸고,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하거나 화장실에 숨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때면
엄마는 엄마 일하기도 바쁘고 피곤한데
왜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며 저에게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엄마는 바깥활동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장녀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셨는데, 그때문인지 유독 언니에게 잘해주셨습니다.
제가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행동을 할라치면 무조건 저를 혼내고 때리고 밥을 안주기도 하셨고,
언니가 바다보고 싶다고 했단 이유로 둘이서 조개구이를 먹고 여행을 다녀오느라
제가 수학여행을 못갈뻔도 했구요.

저희 집은 월세계약이 끝날때마다 집을 줄여 이사를 가야해서 이사를 엄청 많이 다녔는데
언제나 비가오면 물이차는 반지하라 열살 전후 꼬맹이 둘이 밤새 엄마를 기다리며
냉장고가 젖지않게 물을 퍼내기도 할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열네살이 되고 사립 예중에 입학해 엠모 지갑을 들고다녔구요...ㅋㅋㅋ....
제가 옷이 없어서 초등학교에 옷 두벌을 번갈아 입고 다니다 가난하다고 왕따를 당할때
언니는 나모브랜드의 바람막이를 입고 다녔습니다.
전 중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브랜드 운동화를 단 한번도 신어본적이 없는데요.
아직도 브랜드를 사려면 손이 떨려 제게 운동화는 단 하나입니다.
쥐시장에서 산 물놀이 슬리퍼겸 운동화 하나, 일할때 받았던 검은 단화가 하나가 나머지 제신발의 전부구요.

물론 언니 신발은 신발장을 다 채울정도로 많았습니다.
너무 부러워 신발 하나 사달라고 말을 해도 엄마가 저에게 하는말은
항상 '돈 없다' 였기 때문에 말을 꺼내자마자 뚝 잘리기 일쑤였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항상 돈없다. 니가 엄마의 희망이니 공부 열심히 해라. 언니는 기대하지 않는다.
니가 나중에 엄마를 먹여살려라. 라는 말들만 하셨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했고 언니는 못했거든요...
고등학교 성적으로 비교해보자면 고1 모의 네번 평균이 저는 1등급 후반대 언니는 8등급 중반정도)
머리가 좀 크고 난뒤에는 투자가 있어야 보상도 받는거 아니냐고 용돈이라도 달라.
아니면 언니가 날 때리지못하게 해달라
(심지어 컴퓨터 사용시간을 언니가 4시 30분까지로 정해놓고
그 이후에는 언니가 없어도 컴퓨터를 하면 안됐습니다. 걸리면 맞고 맞고... 고등학생때까지.
후라이팬으로 도둑잡은 사람 얘기를 듣고온 언니가
나쁜사람은 이걸로 맞는거라며 저를 때려 후라이팬으로도 맞아보고
언니가 과녁놀이를 하겠다며 던져대는 칼과 가위를 피해 옆 신혼부부집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고 했는데 언니는 제멋대로라 엄마도 어쩔수 없다고
그래도 언니니까 맞아주라고 하시며 또 엄마를 힘들게 하지말라는 말만 되풀이하셨습니다.


중학교 시절은 삼년내내 가난한 애로 왕따에 엄마는 언니 뒷바라지와 입시에 모든걸 쏟아부으셨고 제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육학년때 부터 해오던 자살시도는 이때 극에 달해 자살시도도 많이 했습니다.
언니에게 맞다 도망쳐 4층이던 집 베란다로 뛰어내렸는데
쓰레기 봉투 더미 위로 떨어져서 살아남기도 하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러 갔는데 누군가 저보다 먼저 뛰어내려
운행이 잠깐 정지되었다고 해서 집에 온일도 있었구요.


가족도 학교도 너무 힘들어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도 그러라고 하셨다가 고등학교를 나와야 좋은 대학을 간다고
저 몰래 학교에 오셔서 지망학교까지 다 써놓고 가셨더라구요.
엄마가 너무 간절하게 말씀하셔서 일단 진학은 했습니다. 1학년만이라도 다녀보라구요.
다른 시로 고등학교를 다녀서 친구는 새로 생겼습니다.
그치만 저 스스로가 행동 하나하나에 아 내가 이래서 애가 싫어하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가식적으로 굴수밖에 없었고,
그런게 저를 더 지치게해서 결국은 안되겠다고 자퇴를 하고싶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자퇴하면 집에서 너 감시도 못하니까 널 못믿어서 안된다고 자퇴를 안시켜주시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점점 더 지쳐갔고, 그런 저를 엄마는 정신병원에 보냈습니다.
엄마기 때문에 함부로 할수 없는 말이자만, 사실 저희 엄마는 아주 이기적이시고,
본인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모든걸 본인의 뜻대로 하려고 하십니다.
병원에서 저를 상담해주시던 의사선생님에게 제가 화장실 다녀오는 틈을 타
쟤 학교가라고 말하고 강요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그당시 언니에게 맞았던것들에 대한 분노를 풀고싶어서
그런 얘기를 하고싶었는데 엄마는 그저 학교를 가기만을 원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일주일의 등교거부끝에 학교를 자퇴했고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8살이던 제가 구할수 있었던 일자리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취직을 해 일을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 같이 다니던 29살 분이 저를 매일같이 성희롱해 결국 퇴사했습니다.
제가 퇴사하려 할때 주임님이 정말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그사람 때문에 관둔 여직원이 벌써 열명도 넘어 사람이 없다고 하셔서
그럼 저분을 자르시라고, 전 더이상 못다닌다고하고 퇴사했습니다.
그속에서도 3개월을 버티면서 월급 90중에 70은 엄마가 가져가셨구요.
집엔 엄마이름의 홈쇼핑 택배가 넘쳤고 정수기 공과금 관리비는 제몫이 되었습니다. 
제가 참다못해 퇴사를 하고온날. 엄마는 니가 좀 더 버티면 우리가 편한데 왜그랬냐며
다른 일자리를 어서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정신적 데미지가 있었고 
엄마가 월급에서 50씩 저금해준다고 했으니 그걸로 당분간 쉬면서 생활하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다 필요한곳이 있어서 썼다고 이번에 언니 학자금대출 안받게 해주고 싶은데
니가 돈좀 벌어야지 않겠냐고
식당같은데서 오래 일하면 돈 많이버니까 좀만 더 고생하라시면서요...

결국 그건 거절했지만, 저는 또 엄마에게 휘둘려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수도권 4년제라
언니보단 잘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바짝해서 인서울 대학에 붙었는데,
엄마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엄마가 너 수시넣어둔곳 가라셔서
결국 제가 가고싶던 과도 아니고 가고싶던 학교도 아닌곳에서 한학기를 다녔습니다.
캠퍼스 생활도 공부도 하나도 재미도 없고 회의감만 가득했습니다.
집에선 언니와 서로 아는척도 안하고 무시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휴학을 하고 집에 있으니 자퇴하고 놀던 언니가 엄마가 집에 오시면
저에게서 냄새난다고 역겹다고 징징대서 전 방문도 못나가는 히키코모리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 7월 1일 법적 성인의 기준이 바뀌어 제가 성인이 되고,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더는 엄마가 제 직장으로 찾아와 본인의 허락없이 저를 고용한게 불법이라고 난동피울수도 없었고
원룸계약도 할수 있다고 해서 제 명의로 첫 휴대폰을 개통하고,
집을 나올 준비를 해 돈한푼없이 집을 나와 8월 말쯤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추석때 번호를 어떻게 안건지 연락이 와서 올거냐길래 당연히 안간다고 했더니
우리 딸 돈 열심히 버네~ 엄마 이번에 기대해도 되겠지~ㅎㅎ
라고 하길래 번호를 바꿔버렸는데도 또 연락이 오네요...
정말이지 지옥같습니다... 벗어날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이민이나 죽음을 선택해야만 벗어날수있다는 극단적인 생각만 듭니다.

사실 이렇게 힘든와중에도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가자니 저에게는 자취할 원룸 보증금도, 학원비도, 등록금도 없습니다.
지금은 아웃소싱에서 주는 기숙사에서 살고있구요.
여기서 벌고 가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1년은 벌어야 할텐데 
그러면 내년이 아니라 내후년 입시를 하게 될거고 나이는 많아지고...
부모님 잘 까지 아니어도 못만나지는 않아서
학자금 대출로라도 대학다니고 용돈받아서 맛있는거 먹으러다니고
저보다 늦게 같은 꿈을 꿔도 먼저 이뤄나가며 걱정없이 공부하는 애들이 정말 미치게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기댈사람도 없고 이 회사에서 짤려 기숙사를 비워야하는 날이 오기라도 한다면 갈곳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죽을 용기로 살아보라는데 전 죽을 용기도 없습니다.
그냥 벌써부터 생활비 걱정을 하고 이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합니다.
월세 보증금 모으면 나가야지 싶다가도 나가면 월세하고 생활비도 필요한데... 싶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것 같아서 끝없이 우울해지기만 합니다. 
제목 그대로 앞으로의 제 인생이 더이상 기대되지도 않고 그저 무의미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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