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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머니

나요 |2013.11.07 23:50
조회 5,987 |추천 25

[출처] 웃대 - 못된야옹 님

 

복원글은 시간에 관계없이 랜덤으로 올리겠습니다^_^

 

 


알 수없는 아련한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 난 도둑고양이들이나 무리지어 서식할 것 같은 지저분한 뒷골목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있다시피 나뒹굴고 있었다.

“여긴….”

몸을 뒤 덮고 있는 쓰레기 들을 하나하나 밀어내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에 묻어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떼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는 나. 용케도 이런 곳에서 잠들어 있었다.

도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쩌면 인간들이 밀집해 있는 도심이기에 가능한 더러운 뒷골목. 그러나 내겐 이상하게도 이곳에 온 기억이 없었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난…누구지?”

기억이라는 녀석은 아무래도 통째로 자취를 감춘 모양이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이질적인 느낌에 난 알 수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알 수없는 힘에 이끌리듯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빠져나오자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도심의 풍경이 나를 마주했다. 포장마차에 마주보고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 24시 편의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희멀건 간판불. 뜨거운 두 눈을 빛내며 쌩쌩 달리는 차들과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도심의 저녁풍경이었다. 웃음소리의 근원지는 24시 편의점 앞 파라솔이었다. 그곳엔 십대로 보이는 교복차림의 아이들이 두어명 앉아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아이스 커피 잔이 들려있었다. 한 여름 편의점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천냥짜리 그것 말이다. 그제서야 식도가 타들어가듯 심한 갈증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그러나 지갑은 고사하고 핸드폰조차 잡히지 않았다. 내 나이 이제 열 넷.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길 상황은 절대적으로 만들 수 조차 없는 나이였다. 즉 술에 취해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 주머니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 이건 무슨 눈뜨고 코 베이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정신 나간 놈한테 당한건지는 모르겠으나 된통 제대로 걸린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기억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편의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물 한 잔은 얻어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때마침 20대 여성 하나가 새치기 하듯 내 앞을 스쳐지나가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감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지는 나. 그러나 그것보다 목이 마른 게 더 중요했기에 문이 닫히기 전에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딸랑이는 방울 소리를 한차례 흘려들으며 난 카운터로 걸어갔다.

“저, 죄송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런데 물 한잔만 먹을 수 있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다 되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싫으면 싫다고 말이라도 하면 될 껄 종업원은 아예 나를 없는 사람마냥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되물었다.

“저 죄송한데 물 한잔만 주시면 안 되나요?”
“…….”

종업원은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때 앞서 들어갔던 여성이 캔 맥주 두 어개를 카운터로 가지고 오며 듣기 거북한 콧소리로 흥얼거렸다. 제법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얼뫄예요옹?”
“17만 원입니다.”

종업원은 여성이 만취상태라는 걸 빌미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른다. 내 말은 싸그리 무시해놓고 저 여성에게 말문을 여는 녀석의 대한 불쾌함 보다 터무늬없는 가격을 부르는 게 더 신경 쓰일 정도였다. 뭐 어쩌랴 어차피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을.

계산을 마친 여성이 몸을 돌리자 종업원은 잘가라는 한마디를 끝으로 잠잠해졌다. 역시나 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내 여성은 휘청거리며 문을 활짝 열어놓고 가게를 벗어났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닫지도 않고 말이다. 종업원의 무심한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난 괜스레 내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빠르게 가게 밖으로 뛰쳐나오다시피 몸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자 아까 보았던 십대 학생들의 시선은 내게 향해 있었다. 끽해야 나보다 한 두 살 더 먹었으려나 싶은 녀석들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내 떨리는 음성이 웃긴 모양인지 녀석들은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런데 나 역시 내가 웃겼다. 이런 와중에도 두 눈은 녀석들이 들고 있는 아이스커피에 꽂혀 있으니 말이다.

“못 보던 애네?”
“그러게.”

녀석들은 그렇게 지들끼리 주고받더니 내게 물었다.

“너 기억이 하나도 없지? 네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치?”
“그, 그걸 어떻게… 그럼 당신들이 나를…”
“어이어이, 아니거든요?!”

내 상태를 꿰뚫어 보는 녀석들. 난 나를 쓰레기 더미에 수건짝처럼 버려두고 내 소지품을 앗아간 장본인이 그들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녀석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날 이렇게 만든 장본인 들은 커녕 날 겁박할 의도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기억을 잃은 걸 어떻게 아는 거죠?”
“네가 차고 있는 그 시계. 우리도 너와 같은 입장이거든. 물론 너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였지만.”
“네?”

난 그제 서야 내 왼팔에 차여있는 못 보던 전자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그들 역시 모두 나와 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무심코 시계를 들여다보자 그곳엔 48이라는 숫자와 함께 ‘이동환’이라는 이름 하나가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생소했다. 그렇게 현재 시간조차 표기되지 않는 시계가 고장이 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녀석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고장이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거기 적혀있는 이름이 아마 자기 이름일꺼야. 우린 그렇게 믿기로 했지. 그리고 그 숫자는 잘은 모르겠지만 날짜 같더군. 하루가 지날 때 마다 하나씩 깍이더라고. 봐봐.”

녀석들은 내게 팔을 삐쭉 내밀었고 덕분에 그들의 시계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김전유:21-
-강석환:18-

그들의 시계는 나와는 다른 숫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신기한 눈으로 한참동안 그렇게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강석환이라는 녀석이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지.”

석환이 나름 의미심장하게 목소리를 내리깔자 옆에 있던 김전유의 표정이 씁쓸하게 바뀐다. 그리고 이내 들려온 석환의 말은 나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넌 이미 죽었다는 거야.”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선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알 수없는 누군가의 차가운 한마디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렇게 죽어버리기엔 억울하잖아? 킥킥.]







***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실로 참담한 것이었다. 내가 죽은 것이었다니. 그제 서야 편의점 종업원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보이지도 않는 귀신 나부랭이가 말을 걸었으니 당연한 것이었겠지.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있는 내게 석환은 재차 입을 열었다.

“너도 저승사자의 한마디는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죽어버리기엔 억울하잖아? 라는 말 말이야.”

내가 뚱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김전유가 거들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저증사자인지 뭔지는 확실하지 않아. 다만 우리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
“…….”
“참, 우리 소개를 안했네. 이름은 시계를 봐서 알 꺼고 전유랑 나는 17살로 동갑이야. 우리도 만난지는 얼마 안됐어. 이곳에서 만든 내 첫 번째 인맥인 셈이지.”
“인맥은 무슨.”

김전유가 쌀쌀맞게 말을 내뱉자 석환은 별거 아니라는 듯 씨익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혀 기억 안나. 다만 저승사자인지 뭔지 하는 게 우리에게 기회를 준건 맞는 것 같아. 넌 나이가 어떻게 되냐?”
“빨리도 묻는다. 그나저나 생긴거와 다르게 우리보다 나이 많은 거 아니냐?”
“14살이요.”

말을 자르듯 내가 끼어들자 석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한번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건 김전유한테 하는 말인듯 했다.

“것봐. 어릴 것 같았다니까.”
“찍은 주제에… 그나저나 나이 하나만큼은 기억이 유지되는 건 이로써 기정사실화 된 거네.”
“그렇지….”
“저,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난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물었다.

“어쩌긴? 살아남아야지. 아 48일이면 오늘이 처음이니 모를만도 하네…”
“내가 말할게.”

왠지 순식간에 풀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석환을 뒤로하고 김전유가 앞으로 한발 나서며 말했다.

“먹을 것 같은 건 저쪽 포장마차 뒷편의 작은 노점상이 있어. 거기 가서 시계를 보여주면 음료수나 빵 따위를 줘. 죽은 주제에 목마르고 배고프다는 게 어이없지만 어쩌겠어?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아 죽었는데 살고 봐야한다는 말은 모순인가. 아무튼 그걸로 시계에 남은 날 동안 버티는 거지. 뭐, 날짜가 다 깍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설사 또 죽기야 하겠어? 만약 죽는 거라면 저승사자놈이 이런 기회를 줄 리도 없고 말이지. 다만…”

김전유 역시 갑자기 표정이 어둡게 변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김전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석환을 스윽 훑어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정이 되면 검은 그림자가 습격해온다는 게 문제지.”
“검은 그림자?”
“우린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야말로 악귀나 다름없는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나는 꼴을 못 보겠는 모양인지 자정만 되면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우리 같은 혼들을 잡아먹더라고. 놈들의 눈에 띄면 그걸로 끝. 무슨 말인지 말 안 해도 이해가지? 더 이상은 묻지 마라. 얼마 전 너 같은 애 하나가 놈에게 당하는 꼴을 목격했거든. 정말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네.”

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둘의 표정이 어두워 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꼴 당하기 싫으면 자정이 되기 전에 네가 처음 깨어난 곳에서 쥐 죽은 듯 숨어있으라고. 날이 밝을 때까지 말이야. 왠일인지 처음 깨어난 장소에는 그놈들이 얼씬도 안하더라고.”
“그럼 자정인 건 어떻게 확인 하…”

‘휘리릭!’

난 말끝을 흐렸다. 아니 도저히 더 이상 말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탁. 데구르르.’

내 앞엔 김전유라는 아니, 김전유였었던 목이 잘린 시체만이 서있을 뿐이었다. 떨어진 그의 목은 데구르르 굴러가 석환의 발 앞에서 멈췄다. 석환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악!!”
“흐아아아악!!”

‘아드득 아드득!’

덩달아 나도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유의 몸뚱아리를 거칠게 물어뜯으며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는 놈들의 모습은 악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살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검은 도포로 온몸을 휘감은 놈의 모습은 그 어떤 공포영화의 그것보다 섬뜩했다. 바람에 머리칼이 나풀거릴 때마다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눈동자와 피로 물든 찢어진 입은 이세상의 것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었다.

‘처음 깨어났던 곳으로 가면 살수있어!’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멤 돈다. 난 젖 먹던 힘을 다해 처음 정신을 차렸던 뒷골목의 쓰레기더미가 있는 곳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김전유의 시체를 전부 뜯어 먹고 나면 분명 놈들은 나나 석환을 노릴게 자명했음이었다.

뒤도 안돌아보고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난 가까스로 뒷골목에 도착할 수 있었고 냄새나는 쓰레기더미가 침대라도 되는 양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게 석환의 생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살았다는 안도감만이 전신을 휘감을 뿐이었다.







*****







이윽고 날이 밝았다. 시계에는 48이라는 숫자대신 47이라는 숫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석환과 전유의 말 대로였다. 나름대로 내게 이것저것 설명해주며 신경써주던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스레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앞이 캄캄했다.

‘난…어쩔 수 없었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되 뇌이며 난 애써 자위했다. 그럼에도 자기가 어떻게 죽은 줄도 모르고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바닥을 나뒹굴던 전유의 머리가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석환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을 때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있던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제발 도망쳤길 바라지만 아무래도 가능성은 희박했다.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단은 녀석들에게 들었던 노점상에 가보기로 했다. 어제부터 꼬박 하루 동안 물 한 모금조차 먹지 못해 목구멍이 말라붙다 못해 쓰라린 감각마저 느껴졌다. 날이 밝았으니 검은 그림자의 대한 걱정은 접어둬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모르는 일이었기에 난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골목을 빠져나오자 역시나 평범한 거리의 풍경이 나를 마주했다. 서둘러 녀석들이 말해준 노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연스럽게 어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편의점 앞을 지나쳤고 그곳에서 난 바닥에 붉은 핏자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한 보지 않으려 일부러 시선을 반대편으로 향한 채 난 녀석들이 말한 노점상을 찾았다. 말이 노점상이지 그야말로 캠핑장의 텐트 같은 그 모습에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심 한복판에 펼쳐져 있는 텐트라는 게 어떤 의미로 그런 내게 확신을 안겨주는 기분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 누구하나도 텐트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걸로 보아 보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텐트 앞에 선 어떻게 사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며 서있었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여행자냐?”

여행자?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영문 모를 소리에 멀뚱멀뚱 서있는데 다시한번 고함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말이야 너! 살게 있으면 거기로 시계나 들이밀어.”

시계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난 내게 하는 말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난 닫혀 있는 텐트 가장자리에 살짝 열려있는 틈으로 시계를 찬 팔을 살며시 들이 밀었고 내 손에 물병이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놀랄 것 없어. 네가 필요한 건 시계를 들이미는 순간 자동으로 네 손에 들어가니까. 아. 물론 전부 가능한 건 아니야. 간단한 먹을 것 정도만 가능한 거 명심하라고.”

난 이 신기한 광경에 놀랄 틈도 없이 손에 들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500미리로 보이는 물병을 전부 비우자 물병은 거짓말처럼 손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번엔 손을 넣고 빵과 우유를 떠올렸고 그것들은 이전처럼 내손에 들려있었다. 저만치 구석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어치우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내 앞엔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하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푸근한 인상은 내 마음의 평온까지 가져다주는 듯 했다.

“누구…?”
“누구긴, 너와 다를 것 없는 처지의 사람이지.”

여성의 왼쪽 팔에는 나와 같은 시계가 차여있었는데 ‘차지연’이라는 이름과 47이라는 숫자가 각인되어있었다.

“숫자가 같네요….”
“응? 아. 그러네? 후후”

나와 숫자가 같다는 건 같은 날 죽었다는 말인가? 빵을 씹다말고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있는 내게 여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은 숫자인 것도 인연인데 괜찮으면 아줌마랑 같이 지내지 않을래?”
“네?”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하니까.”
“…….”

중년 여성도 어느 정도 정보는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었다. 또 다시 어제 같은 불상사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무엇보다 죄책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내 대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지 내 시계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줌마는 차지연이라고 한단다. 동환 군이지? 앞으로 잘 부탁해.”
“저, 저는 아직…”
“앞으론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부드럽고 한 없이 따뜻한 아줌마의 눈빛이 이상하게 낮 설지가 않다.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난 처음 보는 아줌마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아줌마 역시 생전의 기억은 전무했다. 다만 몸에 베인 연륜이 남아서 인지 역시 나 혼자 다니는 것보다 의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뒷골목 내 은신처에서 아줌마와 함께 지내면서 난 이곳에서는 날이 빨리 저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의 흐름이 내가 살았을 때의 4배정도 빠른 것이었다. 그게 이 세상이 전부 통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나와 같은 혼들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전에 석환과 전유를 만났을 때 갑작스럽게 자정이 되어 그림자가 나타난 것도 시간이 빨리 흐르기 때문에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줌마의 성격 패턴 등이 나와 매우 닮아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말하는 방식. 싫어하는 색깔 등등 이것저것 시간도 떼울겸 나누는 대화에서 많은 것을 알아 낸 것이었다. 그만큼 난 아줌마와 가까워 졌고 그 모습은 마치 모자지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시계에는 1이라는 숫자가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어떻게 되려나요…”
“왜? 두렵니?”
“아줌마는 어떤데요?”
“솔직히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거야. 죽음이란 건 인간에게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아줌마가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란다.”
“그럼 뭐가 두려운데요?”
“그건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진 않구나.”

지연 아줌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생전의 일이 기억나신걸까? 아니면 이곳에 온 뒤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신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그렇게 여느때와 다를 것 없이 한손에 빵과 우유를 들고 아줌마와 나란히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 돌연 아줌마는 내 손을 낚아채고 파라솔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숨을 죽이는 게 아닌가.

“아줌마, 왜…”
“동환아! 지금부터 아줌마가 하는 얘기 잘 들으렴!”

아줌마는 내 손을 꼬옥 붙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편의점 안에 검은 그림자가 있는 걸 눈치 챈 건 그때였다.

“아줌마가 먼저 나가서 놈의 시선을 끌거야. 그 틈을 타서 넌 재빨리 뒷골목 은신처로 가서 몸을 숨기렴! 절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알았지?”
“그럼 아줌마는 어떡하구요!!”
“아줌마 걱정은 하지 말고 먼저 가있어! 금방 뒤따라 갈테니까! 그리고 아줌마가 늦어도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고 쓰레기 더미 안에 숨어있어. 알았지!?
“싫어요! 아줌마 혼자 두고 가는 짓 따위 할 수 없다구요!!”

내가 울먹거리며 소리치자 아줌마는 내 뺨을 세게 후려갈겼다.

‘짝!!’

“왜, 왜….”
“아까 아줌마가 말했던 거 기억하니? 아줌마가 제일 두려운 것이 뭔지 말이야.”
“소중한 사람을….”
“그래! 그럼 어리광 부리지 말고 아줌마가 시키는 대로 해! 아줌만 너만은…동환이 너만은… 꼭 지켜내고 싶구나….”
“아, 아줌마….”

내 볼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욱신거리는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알았으면 아줌마 말대로 해!”
“흐윽….”

‘딸랑딸랑’

순간 들려온 편의점 문에 달려있는 종소리를 신호삼아 아줌마는 자리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어서 도망쳐!!”
“흐아앙!!”

난 울며 겨자 먹기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아줌마 말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골목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오로지 아줌마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품은 채 그렇게 무작정 달릴 뿐이었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동환을 바라보며 지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꼭…반드시, 살아남으렴. 동환아.”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콰직!! 오도득! 오도득!!’







***







뒷골목에 도착하기 무섭게 쓰레기 더미 속으로 몸을 집어넣는다. 떨리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그만큼 내 가슴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발 무사하셔야 할 텐데 제발!’

그런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는 결국 돌아오지 않으셨다. 시간이 흘러 시계 속 숫자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점차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의식이 희미해지는 그 순간 까지도 아주머니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귓속에 정체모를 놈의 한마디만이 흘러들어올 뿐이었다.

[죽음을 넘나드는 모성애라… 아무튼 축하한다.]







*****







“지난 28일 실종되었던 차모씨와 아들 이모군이 한달여만에 서울 동작구의 아파트단지 뒷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 말에 따르면 발견 당시 차모씨는 아들 이모군을 감싸 안은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시신은 전혀 부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차모씨의 품에 감싸여 있던 이모군은 미약하지만 숨이 붙어있었다고 하는데요, 하늘이 도운 걸까요? 그야말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은 차모씨 모자가 발견된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구의 시신을 더 발견 했는데, 부검 결과 그 들 역시 실종 되었던 김모군과 강모군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사용된 흉기가 모두 동일한 것으로 미루어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유일한 생존자인 이모군이 깨어나는 대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유일한 생존자인 이모군은 현재 서울 못된 병원으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







한밤중에 불청객은 그렇게 들이닥쳤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것을 알고 노린 것인지 우연히 우리가 타깃이 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놈은 단순 강도가 아닌 모양이었고 나와 엄마는 놈에게서 벗어날 힘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히죽거리는 놈은 돈 따위를 털러 들어온 게 아니었다. 놈의 목적은 오로지 힘없는 생명을 유린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처참하게 난자당해 쓰러지는 엄마. 그리고 석상처럼 아무런 저항한번 하지 못하고 이어 놈의 피묻은 칼날에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나. 정말이지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미약하지만 엄마나 나는 숨이 붙어있었고 놈은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보는 걸 즐기는 듯 했다. 나를 바라보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엄마. 엄마는 분명 입을 뻥긋 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지? 대체 뭐라고 하시는 걸까.

이윽고 놈의 칼날이 한번더 엄마를 향했고, 더 이상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나였다. 몸속을 꿰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고통을 느끼며 난 그 섬뜩한 고통 속에서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죽어가면서 내게 입을 뻥긋 거리던 그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못 지켜줘서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엄마는 바보였다.




당신의 탓이 아닌데도,


당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뿐인….





정말 엄마는 바보였다…











-完-







추천수25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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