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웃대 - 와이구야 님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글 올리는 붕어빵이라고합니다.
이쁘게 봐주세요^.^
아직 새벽이 더 가까운 이른 시간, 명문 사립 고교 학생들은 줄지어 등교를 한다. 차가 없는 교사 지석은 그 사이에 끼어 출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어! 그래 안녕!”
간밤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느라 늦게 잠든 그였지만, 반갑게 아이들 인사를 받아 주었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프로그램에서 다룬 조선족의 칼부림과 장기매매 등 자극적인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프로그램은 지석이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 중 하나였다. 그때 큰 짐을 옆에 두고 길가에 앉아 있던 노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이보게 젊은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나.”
“네? 무슨 일이죠?”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는데... 우리 집까지만 들어주면 안 되겠나? 조금만 가면 되는데.”
“아... 그러세요?”
지석은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출근 시간은 여유가 있는 편이였으나, 요즘 노인을 이용해 인신매매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던 터라 망설였다. 평소 의심이 많은 그 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등교 시간이라 학생들의 시선이 있었다. 명색이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인데, 노인의 부탁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이였다. 지석은 두려움이란 자신의 본성보다 교사로써의 이미지를 위해 이성을 택했다.
“네, 들어 드릴게요. 어르신 어디까지 가면 되나요?”
“고맙네, 날 따라오면 된다네.”
노인은 구부정한 몸으로 길을 나섰고, 꽤나 무거운 짐을 손에 든 지석이 그 뒤를 따랐다. 조금만 가면 된다던 노인의 말과는 다르게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힘이 든다. 점점 짜증이 나는 그였지만, 상대는 노인이다. 그 명칭만으로도 공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석은 이성을 유지한다.
“다 왔네, 고생 했어 젊은이.”
3층 높이에 주택에서 멈춘 노인이 말했다. 주변에 인적이 드물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이었다. 지석은 숨이 차올랐다. 시계를 확인하니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어르신,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잠시만 멈추게. 도와줬으니 보답을 해야지. 내가 가진 돈은 없고... 이거라도 받아 주게나.”
노인은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칼을 꺼내었다. 지석은 흠칫했다. 역시 인신매매인가? 재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검정색 스타렉스가 눈에 띄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과 TV에서 보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금방이라도 덩치 큰 남자들이 자신을 덮칠 거란 상상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뭐, 뭐야! 왜 이러세요. 저한테!”
당황한 지석을 보고 노인은 껄껄 웃기 시작했다.
“칼을 꺼내니 당황했나 보구만? 그럼 이렇게 주면 되겠나?”
노인은 칼집을 씌어 지석에게 건네었다. 어리둥절한 채로 칼을 받아 들었다. 노인은 칼로 위협을 하지도 않았고, 덩치 큰 남자들이 나타나 지석을 납치하지도 않았다.
“정말 이걸 보답으로 준다고요?”
“줄만한 게 그것뿐이니 별수가 있나.”
십 센티 가량에 작은 칼은 부엌칼도 아니었고, 딱히 어디다 쓸 곳은 없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딱히 쓸 곳이 없어요. 선생이 이런 칼을 들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정말 감사하지만 사양 하겠습니다 어르신.”
“허허허, 쓸 곳이 없다라... 사실 이건 보통 칼이 아니라네.”
노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보통 칼이 아니라니, 누가 봐도 평범하게 생긴 칼이었다.
“자네, 지금 내 머리위에 있는 가느다란 끈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노인의 머리위에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늘로 길게 뻗어있는 끈이 실로 놀라웠다. 기이한
현상에 멍해진다.
“이...게... 뭔가요?...”
“자네가 그 칼을 쥔 순간부터 끈을 볼 수가 있다네. 바로 이성의 끈이라고 하지. 자네는 짐을 들고 나를 따라오는 동안 무슨 느낌을 받았나? 두려움? 짜증스러움? 그런 것들을 본성이라 하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쉽게 본성을 보이지 못해. 인간의 도리, 선과 악의 구분, 법의 굴레, 그리고 자신의 체면. 이러한 것들이 본성을 억누르고, 사람들은 당연하듯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본성을 억누르고 이성을 유지한다. 그것이 우리가 짐승과는 다르다는 이유가 되지. 하지만 간혹 이성이 끊길 때가 있어. 너무 화가 난다거나, 절망에 빠지거나, 충격을 받을 때 그렇게 되지. 반대로 너무 기쁘고, 웃겨서 끊길 때도 있어. 이성이 끊기면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어기게 되고, 법을 무시할 수도 있어. 예를 들면 어려운 장소에서 웃음이 터지거나, 화가 나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사람을 살해하게 되거나... 그렇게 된다네. 이런 것들은 타인의 자극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지. 허나 이 칼만 있다면, 언제든 자네가 원할 때 사람들의 이성을 끊을 수가 있다네. 본성만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 재미있지 않겠나? 허허허.”
노인은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었다. 이성을 자유자제로 끊을 수가 있다니, 말이 되는가? 어디 삼류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가 황당했다. 하지만 머리위에 끈은 확실히 이상하다.
“어르신 그게 말이 되나요? 사실 조금 황당하네요...”
“역시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믿기 어려운가? 그럼 한 번 실험을 해보지. 저기 강아지를 산책중인 꼬마가 보이는가?”
한 남자아이가 불만이 한 가득인 얼굴로 강아지를 산책 중이었다.
“저 아이는 옆 건물에 사는 꼬만데, 언제나 강아지 산책으로 지 어미와 부딪치곤 하지. 오늘도 표정을 보니 억지로 나온 것이 분명하군. 과연 저 아이의 본성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이성의 끈은 칼을 가진 자가 원하면 손으로 들어온다네. 저 아이의 끈을 손에 쥐게나.”
정말로 끈을 원하자 하늘로 서있던 것이 스르륵 내려와 지석의 손에 툭 떨어졌다.
“이...걸... 끊으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끊게나!”
툭, 칼로 이성의 끈을 끊자, 아이의 표정이 붉어졌다. 퍽! 갑자기 강아지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이 강아지! 너 때문에 만화도 못보고 나왔잖아!”
퍽퍽퍽!
“깨갱깽깨...”
아이는 목줄을 붙잡은 채로 수십 차례 강아지를 걷어찼다. 강아지의 흰 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황한 지석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르신 저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허허허,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아이가 목줄을 놓자 피투성이가 된 강아지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도망쳤다. 아이는 그 뒤를 쫓아 뛰더니 사라졌다. 지석은 아이와 강아지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이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성의 끈은 금방 다시 붙을 것이야. 일시적일 뿐이지. 아이는 강아지를 미워했네. 어미가 시켜서 억지로 산책을 나가야 하니 불만이 많았겠지. 언제나 강아지를 발로 차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야. 하지만 아이도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지. 어리지만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어미의 말은 아이에게 법과도 같기 때문에 벌을 받기 싫어서 이성을 유지했어. 허나 이성이 끊기는 순간 아이의 본성은 표출되며 무시무시한 악마로 변했던 것이야. 흥미롭지 않은가?”
아이가 강아지를 발로 차던 모습이 지석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상상할수록 짜릿하게 소름이 돋았다.
“어르신의 말씀, 이제 이해는 하겠어요... 하지만 왜 이 칼을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허허허, 난 수십 년간 그 칼을 사용했지.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이젠 질렸어. 다른 노인들과 화투를 치는
게 더 재미있을 나이가 되어 버렸지. 그 칼을 원하는 자에게 꼭 주고 싶었네. 나이가 먹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생겼어. 분명 젊은이라면 그 칼을 유용하게 사용할 거라 생각하네.”
내가 이 칼을 유용하게 쓴다고? 지석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노인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건물로 들어갔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 이곳으로 오게.”
출근 후, 지석은 주머니 속 칼을 만지고 있었다. 칼집이 씌어져 있지만 누군가에게 들킬까 겁이 난다. 마땅
히 사용할 곳도 없이 시간만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끝마친 지석은 복도에서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을 보니 자신의 반 아이들이 몇 있었다. 문제아로 지목되
던 아이들과 평소 소심한 성격에 따돌림을 당하던 은수가 있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방관하던 아이었다. 문
제아들 중 우두머리인 철호가 말했다.
“신발새끼야! 돈 갖고 오라고 몇 번을 말했냐? 진짜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은수야! 응? 내 친구 은수
야! 말 좀 해보라고! 신발!”
“미안... 내일 꼭 가져올게...”
“개소리 하고 있네, 신발. 은수야 잘 들어 응? 나 오늘 돈이 필요하다고요, 오늘! 네가 오늘 들고 온다고
쳐 말했잖아요? 응? 근데 왜 안 들고 왔냐고 신발놈아! 확 죽여 버릴라!”
명문고라는 이름 속에도 그늘 진 곳은 생기기 마련이다. 중학생 시절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더라도, 기대감
에 비싼 학비를 내며 억지로 이런 곳에 아이를 넣으면 자신의 수준에 회의감을 느끼며 비뚤어지기 시작한
다. 그런 면에서 피해자가 된 아이들은 폭력적인 면에선 언제나 가해자가 되곤 한다.
“너 때문에 여친이랑 데이트 못하게 생겼잖아 신발! 나 차이면 네가 책임질래? 확 쳐 죽이고 소년원이나
갔다 올까? 진짜!”
철호는 말끝마다 죽인다는 험악한 말을 했고, 지석은 그가 정말 할 수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주머니 속 칼을 만지작거린다. 흥분이 되고, 심장이 벌렁 거렸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난 교
사인데? 지석은 이성을 붙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머릿속 악마가 속삭인다.
“아무도 네가 그랬단 걸 모르는데 뭐 어때?”
그래, 아무도 몰라. 들킬 이유가 없잖아. 지석은 슬며시 칼을 꺼내었고, 철호의 이성의 끈이 손에 들어왔
다.
툭,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 철호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은수의 복부에 발차기를 했다. 욱! 하며 배를 잡고
쓰러진 그에게 수차례 발길질을 하던 철호를 다른 아이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철호야 그만해. 애 잡겠다! 잡겠어!”
“놔! 강아지들아!”
철호는 말리는 아이들을 주먹으로 쳤다. 당황한 녀석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바닥에서 주먹만 한 돌을 주
워들었다.
“신발놈아 그러게 돈 들고 오라했지!”
철호는 돌은 쥔 채 은수에게 달려들었다. 겁먹은 은수가 벌벌 떨었다. 눈을 질끔 감는다. 지켜보던 아이들
이 상태에 심각함을 느끼고 다 같이 달려들어 철호의 팔을 저지했다.
“철호야! 왜 그래! 정말 죽일 작정이야?”
“그래! 신발! 죽일 거다! 그러니까 놔! 신발 놔라고!”
소란스러워지자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학생주임 선생님을 데려왔다. 하지만 철호의 흥분은 가라앉지가 않았
고, 결국 경찰이 오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이 새끼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사고만 치지?”
교무실에서 학생주임이 문제아들을 훈육했다. 철호는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은수는 교무실에서 안정을 찾
고 있었다. 담임인 지석도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며 혼이 났다. 무릎을 꿇은 채 계속해서 학생주임의 잔소리를 듣고 있던 한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저 새끼가 거짓말해서 그렇게 된 거에요! 야, 은수! 너 때문에 철호 경찰서 갔잖아 신발놈아! 너 나중에 뒤질 줄 알아라!”
“이놈이 어디서 선생님들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학생주임은 녀석의 뺨을 때렸고, 은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당하고만 살아갈 거
야? 지석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못 보게 조심히 칼을 꺼낸다. 은수의 이성의 끈이 손에 들어왔다. 은수
야 너도 할 수 있어! 너의 무시무시한 본성을 녀석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희열이 온몸을 감돌았다.
툭, 끈을 끊었다. 고개를 든 은수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창문으로 뛰어 갔다. 선생님들이 채 말리기도 전
에 창문을 열어 곧바로 몸을 던졌다.
“여기 3층이라고!”
“꺄아아악!”
당황한 교사들이 창문으로 달려들었고, 몇 여교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쿵! 하며 추락한 은수의 머리에선 뇌
수가 흘러나왔고, 피가 사방으로 튀어 처참한 꼴이 됐다. 지석 또한 당혹스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에 어리둥절했다. 은수는 항상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신을 향한 기대, 자식 된 도리
로 차마 그러지 못하고 본성을 숨겼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그는 곧
바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지석의 눈엔 TV에서 보던 장면이 모자이크가 벗겨진 상태로 펼쳐졌고, 입가에 미
소가 번졌다.
그날 저녁 은수의 장례식이 치러졌고, 지석은 담임이란 명목으로 피곤하고 귀찮은 본성을 숨긴 채 자리를
지켰다. 식장은 울음소리로 가득 차고, 지석도 심란한 표정을 유지했다.
다음날 학교에선 전날에 사고로 분위기가 침울했다. 문제아들도 오늘은 조용히 있다. 조례가 끝난 후 지석
의 폰에 문자 한통이 왔다.
[오늘 저녁 같이 먹자. 병원으로 와.]
성호였다. 항상 이렇게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역시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는 없는 녀석이다. 지석은 알겠다고 답장을 한다.
성호는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근사한 산부인과를 차렸다. 지하주차장으로 오라는 그의 말이
의아했지만 일단 가보았다. 기다리던 성호가 손을 흔들고 그 옆엔 새로 뽑은 벤츠가 있다. 녀석은 항상 이
런 식이다. 어릴 때부터 자랑하는 걸 좋아했고, 잘난 집안 덕에 고등학생이 명품가방을 메고 다녔다. 지석
은 어떻게든 성호를 이겨보려 했지만, 높은 가격에 과외 덕분인지 항상 2인자에 머물렀다. 돈도 많고 공부
도 잘한 성호의 꿈은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그가 그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가 참 웃겼다.
“여자 성기 실컷 보면서 돈도 많이 벌수 있잖아?”
녀석은 변태, 사이코이며 아이들은 그를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와 명예 때문에 언제나 아이들이
따랐고, 지석 역시 그러했다.
주차장에서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란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지석
이 말했다.
“네가 저번에 밥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살게.”
성호가 비웃으며 말한다.
“야! 선생짓 하면서 얼마나 번다고 그래? 내가 살테니 장가가려면 쥐꼬리만 한 월급 잘 모으기나 해. 그
리고 네가 사봤자 삼겹살 아니야? 스테이크 정도는 썰어줘야지 디너에!”
녀석은 언제나 상대방을 무시했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억지로 미소를 머금는다.
그 순간 출입문으로 글래머러스하고 멋진 여성이 들어왔다. 지석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성호
가 크크 웃었다.
“신발, 저년 얼마 전부터 애 때려고 오는 년인데 졸라 예쁘지 않냐? 검사하려고 다리를 쩍 벌리는데 나도
바지 벗고 삽입할 뻔 했지 뭐야 키키키. 오늘이 수술 날인데 수면마취하고 누워있는 모습 상상하니 벌써부
터 흥분 된다 흐흐. 나 들어간다! 조금만 기다려!”
성호가 후다닥 달려간다. 그는 아주 고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이성을 붙잡
고 살았다. 십 분여 기다리던 지석은 고민했다. 녀석의 끈을 끊으면 왠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하
지만 좋든 싫든 오랜 친구인데 이래도 되는 것일까? 또다시 악마가 속삭인다.
“널 무시하던 녀석이야.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어!”
결심한 지석이 칼을 꺼내었다.
툭, 끈을 끊자 성호는 흥분된 표정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아까 본 미모의 여성이 수술준비로 다리를 벌
린 채 누워있다.
“간호사! 수면마취는? 수면마취는 했나?”
“네, 했어요. 근데... 선생님 더우세요? 땀을 왜 그렇게 흘리세요?”
“닥치고 다 나가있어!”
성호는 가운을 벗어던지고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간호사들이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수술실이 소란스러워
지자 기다리던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지석은 음탕한 미소를 짓는다.
성호는 잠든 여자에게 달려들어 젖을 주물렀다. 발기한 성기를 삽입하려할 때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저지했
다.
“선생님 미쳤어요? 그만하세요, 제발!”
“이거 놔! 신발! 지금 안하면 미치겠다고!”
신고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고, 의사의 추행은 일단락되었다. 양팔을 붙잡힌 채, 끌려가던 녀석이 허무한 표
정으로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성호와의 저녁 약속은 물 건너가고, 지석은 근처 카페 2층에 앉아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칼을 소유
한 후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니 짜릿했다. 이성이 끊긴 인간의 본성은 참으로 더럽고, 웃기고, 잔인했다. 그
걸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통방통했다.
창밖엔 많은 사람들이 거닐었다. 눈에 띄는 한 여성이 보인다. 짧은 치마에 매끈한 다리가 섹시했다. 그 뒤
론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따라왔는데 한눈에 봐도 수상한 향기가 물씬 났다. 지석은 그를 주목했
다. 녀석은 여자가 멈추면 자신도 멈추어 딴청을 부렸고, 그녀가 걸으면 조심스럽고 천천히 뒤를 밟았다.
무슨 생각이지? 납치라도 할 속셈인가? 범죄의 냄새가 나자 지석의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곧바로 칼을 꺼내
어든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내 앞에서 보여 봐. 툭, 끈을 끊는다.
.......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의 끈을 끊었음에도 변화가 없다. 이상하다. 계
속 녀석을 주시했다. 순간 그가 멈춰서더니 지석을 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여자가 멀어짐에도 계속
지석을 보고만 있었다.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시선을 외면했다. 다시 힐끔 보니, 녀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한숨을 후 내쉬었다.
칼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카페를 나온 지석은 또다시 예상 못한 결과에 어리둥절했
다.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집으로 가기위해 지하철로 향한다. 궁금한 것은 내일 노인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거리는 금요일 밤이라 사람이 많이 붐볐다. 취기가 오른 밤공기는 기분 좋고 화기애애하다. 하지
만 그 속으로 냉기가 비집고 들어와 지석의 몸을 훑었다. 어깻죽지부터 발끝까지 섬뜩함이 훅 끼쳤다. 뒤
를 돌아보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심장이 다듬이질하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재촉 했다.
지하철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입장했다. 순간 옆으로 검은 물체가 희미하게 보인 듯 했지만 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아까부터 드는 묘한 한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2호선에 몸을 싣고 목적지를 향
해 간다. 자리가 없어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만 보느라 고요했고, 덜컹이는 잡음만이 울
려 퍼진다. 차가운 시선이 옥죄어 오는 듯 했지만 기분 탓일 뿐이라고 자기위로를 했다. XX역에 내린 지석
은 계속 된 좋지 않은 기운에 발걸음을 빨리한다. 3번 출구로 나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땅거미 진 길목은
가로등 불빛만이 어렴풋이 밝혀주었다. 항상 이 골목을 지나칠 때엔 폰으로 웹툰을 보며 걷는다.
뚜벅뚜벅,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야. 지석은 자기위로를 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하지만 발소리는 계속 자신의 뒤를 밟았고, 점
점 의심이 강해진다. 오른쪽으로 돌아 잠시 멈추었다. 따라오는 발소리도 멈춘다. 뒤를 보니 가로등 불빛
에 사람 그림자가 비췄다. 녀석은 지석의 행동을 기다리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지석은 확신했다. 날 미행
하고 있다. 위험하다!
지석은 곧바로 달렸다. 다다다닥! 뒤를 밟던 녀석도 뛰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가면 집에 도착할 것이다.
자주 가던 슈퍼를 지나치고 계속 달린다. 이윽고 건물이 보인다. 발소리는 계속 쫓아온다. 안심할 수가 없
었다. 건물 입구에 출입문은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열 수 있었고, 도착한 지석은 그것을 누르기 위해 섰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금방이라도 녀석이 덮칠 것만 같았다. 매일 누르던 번호였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려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이 방망이질 한다. 식은땀이 흘러 번호를 누르는 손이 미끄러진다. 발소리는 점점 커
져왔다.
삐! 젠장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다. 발소리는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다시 누르긴 이미 늦었다.
“으헉!”
검은 물체가 불쑥 나타나자, 놀란 지석은 뒤로 자빠졌다. 몸이 떨리고 동공이 커진다. 흐릿한 시야로 들어
온 그것은 다행히 옆 건물 아가씨였다.
“뭐야? 아저씨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놀래?”
“하아...하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가벼운 조깅차림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앞으로 뛰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석은 한동안 주저앉
아 있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온 지석은 자신의 방에 불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
인다. 후, 연기를 내뱉자 어느 정도 안심을 되찾는다. 다행히 녀석은 따돌린듯하다. 두 모금, 세 모금. 담
배는 타들어갔고, 재를 털기 위해 밑을 확인한다. 순간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쓴 그의 시선
은 지석을 향해 있었다. 소름이 온몸에 끼치며 손이 떨려 담배를 떨어뜨린다. 두려움이 극에 치닫는다. 모
자를 눌러쓴 녀석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치아를 보이며 씨익 웃고 있었다. 녀석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녀석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삼층이었구나? 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
다. 지석은 창문을 쾅 닫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젠장! 저 녀석이었나? 어떻게 하지? 집이 노출되어 버렸
어! 혼란의 쓰나미가 일어 정신이 혼미하다. 지석은 그날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지석은 휴일인 다음날 정오에 집을 나섰다.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녀석은 없는 듯하다. 지하철을 타
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경찰들도 보인다.
“아이고 어쩐 일이고 이게!”
“XX빌라 사는 처자라는데 무서워서 살겠나!”
웅성임 속엔 두려움이 가득 차있었다. XX빌라 처자라니, 순간 어젯밤 조깅 중이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 아
가씨가 그 건물에 사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심장이 방
망이질 한다. 사고현장 바닥엔 붉은 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설마... 녀석의 짓인가?... 두려움은 더욱 증
폭되어 갔다.
지석은 그날에 기억을 떠올리며 오르막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노인의 집이 보였다. 그는 마치 지석
이 찾아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옥상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허허허, 자네 왔는가? 여기로 올라오게나.”
허름한 건물 옥상엔 옥탑방이 있었고, 노인은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 말했다. 왜 이런 곳에서 지내시냐고 물
으니 높은 곳이 좋아 그런다며 껄껄 웃었다.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지석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끈을 끊어도 아무 변화가 없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자가 풍기
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고, 게다가 자신의 집까지 쫓아왔다고. 그러자 노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성의 끈을 끊어도 변화가 없는 부류가 딱 하나있네. 그자들은 자신의 본성을 감출 생각이 없어서, 인간
의 도리와 법을 무시하지. 그러니 이성의 끈을 끊어도 그들에겐 무의미한 것이야. 본능에 충실하고, 살인
을 즐기며,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 그들을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 칭한다네.”
사이코패스... 지석의 머릿속에 먹구름이 끼었다. 난 그런 녀석에게 집을 노출 시킨 것인가? 역시 그놈은
날 헤치려 따라 온 것인가? 온갖 살기어린 상상들이 지석의 몸을 베었다. 냉장고 속에 들어간 것처럼 한기
를 느낀다.
“그,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흠... 분명 녀석은 젊은이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야. 자신을 의심하는 자를 살려두지 않는 녀석들이거
든. 뭐 뻔한 답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인데, 과연 경찰들이 그 정도 일을 해결해줄까?”
“그럼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요?”
“일단 최대한 조심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마지막 보루가 있긴 헌데...”
노인의 조언을 들은 지석은 파출소로 가서 말해 보았지만, 녀석이 자신에게 해를 가한 것은 아니었고, 이성
의 끈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었기에 경찰들은 별일 아닌 듯 여겼다. 안 그래도 거기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순찰을 강화 한다며 다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그럼 난 집
에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에 화가 났지만 이성을 유지했다.
며칠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순조롭게 학교를 다녔고, 집 근처엔 순찰이 잦았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
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은 줄었다. 웃음을 되찾고 일상생활을 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오전부터 먹구름이 심상치 않더니 비가 내렸다. 퇴근한 지석은 우산을 펼쳤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는 그의
몸을 적셨다, 찝찝한 기운이 그날에 기억을 되돌린다. 달갑지 않은 비였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어두운 골목
을 걷는다. 비가 오니 더욱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일주일전 살인현장이 보인다. 심장도 서늘한 비를 맞
은 듯 떨린다. 발걸음을 빨리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순찰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집이 보이자 두려움
을 뒤로했다. 순간 번쩍이는 무언가가 눈앞을 지나갔다. 그것은 지석의 볼을 스쳤고, 뚝뚝 피가 떨어졌다.
커진 동공 속으로 칼을 쥔 녀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우비를 입은 녀석은 하얀 치
아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심장이 요동친다.
지석은 곧바로 뒤를 돌아 달렸다. 녀석도 차박차박 비가 내린 길을 밟으며 쫓아왔다. 비가 많이 오는 탓인
지 거리에 사람이 전혀 안 보인다. 아무 건물로 들어갈까? 하지만 녀석은 바로 뒤에 있었고 힘든 도박이었
다. 무작정 앞으로 뛰어가던 지석은 낯선 거리까지 왔다. 숨이 차오른다. 좁은 골목길로 빠졌다. 따돌려야
했다. 의류수거함이 눈에 띈다. 그 뒤로 숨어들었다.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았다. 녀석의 발소리가 지나쳤
다. 참았던 한숨을 후 내쉬었다. 시간이 흐른 후, 조심히 나오려고 하자 어느새 되돌아온 녀석이 칼을 휘둘
렀다. 가까스로 피한 지석은 녀석을 밀치고 다시 달렸다. 그는 또 쫓아온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느낄 쯤 눈앞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억장이 무
너져 내린다. 쫓아온 녀석이 또다시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하아....하아.... 신발.... 끝인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노인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크크...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지석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 벽에 부딪쳤다, 녀석은 혀를 내밀어 칼을 핥았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빠져
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는 걸까? 지석은 어이없는 현실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 노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지막 보루가 있긴 헌데...”
“그게 뭔가요? 어르신!”
노인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하며 망설이더니, 이내 조심히 입을 때었다.
“바로 자네의 끈을 스스로 끊는 것이지.”
나의 끈을? 나더러 괴물이라도 되란 말인가? 지석은 황당했다.
“지금 자네는 자신을 해하려 하는 자를 막을 용기가 있는가? 녀석을 죽이려 덤비지 않는다면 결코 그를 이
길 수 없다네. 허나 지금에 자네가 그럴 수 있을까? 다만 이해는 한다네. 자네는 교사라고 하지 않았나? 부
모가 참 기뻐했겠지. 주변 사람들이 동경에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야. 그렇지 않은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항상 인간의 도리를 지키면 성실하게 살아온 자네에겐 힘든 선택이란 것은 아네. 하지만 상황
이 상황인 만큼, 자네가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살고 싶으면 끊어! 그 방법이 최후의 보루라네!”
“하지만... 저따위가 이성의 끈을 끊는다고 해서, 그런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요?....”
“허허허,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하질 않았나? 자네는 무시무시한 본성을 숨기고 있어. 그 본성을 내보
이는 순간, 상황은 역전될 것이라 확신하네.”
지석은 자신의 이성의 끈을 손에 쥐었다. 칼을 꺼내고 망설였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찌 되든 남
은 방법은 이것뿐이다. 녀석이 다가 온다. 지체할 여유는 없었다.
툭, 끈을 끊었다. 머릿속 먹구름이 걷히며, 경직된 근육이 풀린다. 맥박이 안정되고 두려움이 사라졌다. 다
른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섭도록 침착하고 눈빛이 차가웠다. 지켜보던 노인이 크
게 웃는다.
“크하하! 드디어 끊었구만! 젊은이 올바른 선택이야! 암, 그렇고말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허
나 젊은이,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보통 사람의 이성은 타인의 자극으로 인해 끊어지는 일시적인 거라고.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네. 타인의 자극 때문이 아닌,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
게 되는 것이야! 이런 부류가 한 가지 있다고 하질 않았던가? 그래, 사이코패스! 자네는 그 길을 택한 것이
지! 크하하! 이제 자네에게 그 칼은 이성을 끊는 것이 아닌 인간의 목숨을 끊는 칼이 되었다네! 휘둘러! 죽
이지 않으면 자네가 죽어!”
매섭도록 침착해진 지석의 모습에 녀석이 당황했다. 서로가 손에 흉기를 쥐고 있다. 승부는 한 순간이었
다.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힌다. 꽤나 가까워지자 녀석이 칼을 휘둘렀다. 끈을 끊기 전엔 잘 보이지도 않던
것이 침착해지자 느리게 보인다. 고개를 젖혀 쉽게 피한 뒤, 녀석의 팔에 칼을 찔렀다. 윽, 하며 녀석이 팔
을 부여잡는다. 망설임 없는 지석의 칼부림이 녀석의 몸 구석구석을 베었다. 그는 흥분됨을 느꼈다, 녀석
의 몸을 그을수록 짜릿한 느낌이 몸을 감쌌다. 희열이 차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살인마들의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재밌다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녀석은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칼을 놓지 않고 숨을 몰아쉰다. 온몸은 피로 칠갑이 되었다. 지석은 여유롭
게 다가간다. 녀석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지석이 더 빨리 녀석의 목을 찌른다.
“크허어억...”
낮은 신음과 함께 붉은 피가 꿀럭꿀럭 흘러 나왔다. 바닥에 쓰러지며 부들부들 떨었다. 녀석의 피는 빗물
과 섞여 퍼져나갔다. 눈이 뒤집히며 숨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멈춘다. 지석은 넘치는 쾌락에 오르가즘마
저 느꼈다. 칼에 묻은 피를 핥았다. 참 달다. 찝찝했던 비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한동안 녀석의 시체를 보
며 서있었다.
노인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순간을 위해, 이 맛을 위해, 일을 벌였다.
“젊은이, 새로 태어난 것을 축하하네! 앞으로 피비린내는 마약처럼 느껴지고, 인간의 속살은 식욕을 자극
할걸세! 자네가 교사가 되려고 쌓은 지식과 명석한 두뇌는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자네가 할 일은 여기서 끝
이 아니야! 이제 겨우 시작한 것이지! 천사가 되려는 자들은 많으나, 그러면 세상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자네처럼 악마가 되려는 자도 필요한 것이야!”
노인은 검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비상했다. 이내 먹구름 사이로 몸을 감춘다.
그 이후 지석은 역사에 남을 연쇄살인마로 기록을 남기게 된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