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술사는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어두운 색의,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하는 카드였다.
카렌이 가만히 카드로 손을 가져가자,점술사는 황급히 카드를 집어 다시 섞었다.
"왜요,끝난 거 아니었어요?"
"음,아냐.내가 실수했네.한 번만 다시 하세나"
점술사는 재차 카드를 섞어댔고 카렌은 의아한 듯 점술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천천히 카드가 펼쳐지고, 점술사는 첫 장을 뒤집었다.
"그렇지,역시.그래그래,맞아.내가 실수한 거였네.미안하네"
과장된 점술사의 말투에 카렌이 넌지시 물었다.
"벌써 다섯 번째라구요.앞의 네 번은 다 같은 카드였구요.
네 번이나 실수를 해요?유명하시다기에 찾아왔더니..."
점술사는 카드를 내려놓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뭐,안 좋은 건가요?그냥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카렌은 그렇게 물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떤 사람들은 말일세"
점술사는 천천히 카드를 모아 가지런히 정리했다.
"...운명을 믿나?"
* * *
"카렌"
"..."
"이봐요,카렌"
"아,네"
뮬이었다.카렌은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반갑게 미소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불러도 못 듣고?"
"생각은요,아녜요"
뮬은 가만히 카렌의 손을 잡았다.
"안색이 안 좋아요.어디 아파요?"
"아뇨,아무데도"
"걱정돼요,카렌. 지난 번 점을 보고 온 이후로는 계속 그렇게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은 거,알아요?"
"아..그랬나요?미안해요"
뮬은 엉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카렌.나한테 미안한 일 아녜요.왜 그렇게 말해요?"
"아뇨,아녜요.아니...모르겠어요"
"무슨 일 있는거죠?점술가가 뭐라 말했는지 내게 말해줘요,카렌"
카렌은 순간 흠칫 놀라 그의 손을 꼭 쥐고 말았다.
"카렌,말 해요"
뮬이 당황하여 묻자 카렌은 애써 웃었다.
"아무 것도.그냥...뮬과 곧 결혼할 텐데,모아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게 좀 걱정이예요.별거 아녜요"
뮬은 애처로운 듯 카렌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카렌...그건 걱정 말라고 했잖아요...제발"
카렌은 마음깊이 뮬이 고마웠다.카렌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고마워요,뮬...그것 봐요,별 거 아니라니까..."
"그래요,카렌.나중에 봐요"
뮬이 나가고,카렌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 * *
"운명이라...반은 믿는 편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어 슬픈 사랑에만 빠지도록 되어 있다네...
자네가...그런 사람이구만..."
"..."
카렌은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점술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실제로 만나보긴 처음이라네.미안허이"
"하지만...전 곧 결혼을 하게 되는걸요.벌써 10년이나 만나왔고...
단 한 번도,한 번도 불행한 적도 없었는걸요?"
카렌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고,점술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 앉았다.
"그냥,내가 사이비 점쟁이라고 생각하게나.내 괜한 말을 했네"
"...아뇨,한 가지만 더요.그는 정말 좋은 사람인걸요..."
점술사는 돌아 앉은 채로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슬픈 결말로만 끝나게...되어 있지..."
* * *
그 후에도 카렌은 침울해 있었고,가끔씩 뮬이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뭔가 골똘히 고민하다가는 가만히 눈물을 닦는
그녀를 보는 뮬 또한 지쳐갈 뿐이었다.
"카렌"
"...뮬.언제 왔어요?"
"조금 전에요.또 울고 있었군요"
"미안해요,뮬...나 걱정하지 말아요"
"..."
뮬은 더 이상 카렌에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녀는 거의 탈진 상태였고,무척 핼쓱해져 있었다.마치 병자처럼.
결혼식을 겨우 한 달 남짓 앞둔 날이었지만,뮬은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모습이 신부의 모습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 * *
카렌이 점술사에게 다녀온 지 약 두 달,
그날도 다름없이 카렌은 창 밖을 내다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고,뮬은 기운없는
얼굴로 카렌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카렌,할 말이 있어요"
"...뮬이군요.무슨 일 있어요...?"
"카렌"
뮬은 미간을 지푸렸다.
"날 보고 얘기해요.그렇게 고개를 돌린 침울한 카렌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카렌은 뮬의 태도에 약간 놀란 듯 몸을 돌려 뮬을 향해 앉았다.
뮬은 얼굴을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렌,기분이 좋지 않다는 거 알아요.하지만 오늘은...말해야겠어요"
"말해...봐요"
"카렌,날 사랑하긴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뮬에게선 술냄새가 풍겼다.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뮬,술 마셨어요?"
"네!마셨어요.술을 마셨다구요.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지쳤다구요,카렌..."
뮬은 눈물을 흘리며 카렌의 무릎에 쓰러졌다.
카렌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카렌...우린 일주일 후면 결혼해야 한다구요...
하지만,부모님께선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그런 말씀까지 하고 계시다는거
알아요?당신 모습을 좀 봐요,카렌...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신부의 모습이 아니라구요..."
"미안해요,뮬...미안해요..."
뮬은 벌떡 일어났다.
"카렌,난 더이상 당신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당신은 이미 내게 차갑게 굳어버렸다구요.날 찾지 말아요,카렌.미안해요"
뮬은 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카렌이 뒤늦게 일어나 그를 쫓아 나갔지만
이미 뮬은 멀리 떠난 뒤였다.카렌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오열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점술사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십 년의 사랑,그리고 두 달이 남은 결혼식...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슬픈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
* * *
카렌은 그 후로 매일을 눈물로 지냈다.식사도 하지 않았고,일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봐줄 수 없이 야위어 버린 카렌을
그 누구도 동정조차 하지 않았다.
"카렌..."
"아...지나..."
"카렌,이제 기운 내야지...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거니...?"
"...흑...지나..."
카렌은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지나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카렌은 지나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했고,
지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함께 슬퍼했다.
"카렌,이런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아...네 몸만 상할 뿐이지.
그렇게도 불안하다면..."
지나는 옛부터 전설로 내려오던 절벽의 마왕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 사람의 한 가지씩을 가져간다는 마왕의 전설이었다.
카렌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그 절벽이...어디인 지...아니?"
* * *
카렌은 며칠을 굶은 사람같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 절벽을 올랐다.
다치고 떨어졌지만,그녀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절벽을 올랐다.
그렇게 또 이틀인가 절벽을 오른 그녀는 드디어 절벽에 있는 동굴을 찾아내었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없는건가...?"
카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누구세요?"
"...내 집에 들어온 그대...누군가...?"
동굴 안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음성이 천천히 카렌의 주위에 퍼졌다.
"전...마왕을 찾아요..."
'마왕을 찾아요...'
'찾아요...'
'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카렌의 목소리만이 동굴 안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혹시 마왕을 아나요?"
"...마왕..."
어둠속의 목소리는 그저 '마왕'을 되뇌일 뿐이었다.
카렌은 답답한 나머지 소리치기 시작했다.
"마왕을 찾는다구요!마왕은 어디 있죠?당신이 마왕인가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울려대는 카렌 자신의 목소리에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귀를 틀어막은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난...마왕을 찾는단 말야...마왕을 만나서...소원을 빌어야만...
...내 운명을...바꿀 수 있어...바꿔야만 한다구..."
"...무얼 줄 수 있지...?"
너무나도 매혹적인 목소리.
아까 들었던 그 음성인가를 잠깐 생각하던 카렌은 아까와는 들리는 거리가
틀리다는 걸 알아채곤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왕!"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준다면...무얼 줄 수 있지...?"
순간 카렌은 얼굴이 굳었다.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마왕이 소원의 댓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리라고는,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며칠 밤낮을 절벽을 오르면서도 그저 동굴에 다다르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무...얼...?"
"...난 당신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다...그럼 당신은...?"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희미하나마 마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전설로만 들어왔던 마왕의 얼굴.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그의 얼굴은
생각만큼 험악하거나 나이든 모습이 아니었다.
열 대여섯살의 미소년같은 얼굴.하얀 얼굴과 밝은 갈색의 곱슬머리.
마왕이 둘러쓴 검은 망토 사이로도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난...생각해 보지 않았어요.그리고...드릴 것도 없어요..."
마왕은 가만히 몸을 숙여 카렌의 앞에 앉았다.
카렌은 순간 놀랐지만 침착하게 마왕의 눈을 보았다.
빨간 눈동자.마치 가짜 유리알을 끼워 놓은 듯한 그 이상한 눈동자는 마왕의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왕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카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줄 수 있나...?"
그러면서 마왕은 카렌의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카렌은 가만히 눈을 감았고 마왕은 그녀의 눈에 양 손가락을 대고는 잠깐동안
눈의 온기를 느꼈다.
"...난...볼 수 없다..."
"...?"
"...난...너를...세상을...내 모습을...볼 수 없다..."
그랬다.마왕은 아름다운 얼굴과 매혹적인 목소리...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앞을 볼 수 없었다.
카렌은 잠시 갈등했다.평생을 슬픈 사랑의 운명으로 살 것인가,아니면
장님으로 살아갈 것인가...그러나 그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렌은 누군가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정도의 장애는 문제되지 않을거라
결론을 내리고는 마왕에게 말했다.
"내,내 눈을 드릴께요"
"...눈...?"
"내 눈을 가져가시면...볼 수 있잖아요..."
"...너의...따뜻한...눈..."
마왕은 카렌의 말을 듣고는 더욱 그녀의 눈이 탐나는 듯 다시 그녀의 눈에
손을 갖다대었다.
"...너의 눈은...무슨 색인가...?"
"에메랄드 그린..."
"...아름다운...색이군..."
마왕은 몸을 일으켰다.그리곤 몸을 돌린 채 카렌에게 말했다.
"...너의...소원을 들어주겠다...소원이 뭔가...?"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카렌은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내 운명을,내 운명을 바꿔주세요.슬픈 사랑만 하는 건 싫어요.
나도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제발..."
카렌은 다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마왕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카렌의 무릎 앞에 던졌다.
"...마셔라..."
"...이게...뭐죠...?"
마왕이 던진 것은 조그만 병이었다.카렌이 병마개를 열자 알 수 없는
하얀 가루가 날렸다.
"...그걸 마시면...네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마왕은 사라졌다.그게 끝이었다.카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카렌은 병을 닫고 품 속 깊이 집어넣은 후 급히 동굴을 나와 마을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카렌은 마왕의 행동에 대해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카렌은 그에게 아무것도 준 것이 없었고 카렌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약을 얻었다.카렌이 아무리 눈을 깜박거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 일은 잠시 잊기로 하고 카렌은 침대로 가 앉았다.
그리고는 품 속에 숨겨둔 병을 꺼내었다.
'이것만 마시면...난...'
카렌은 천천히 병마개를 열었다.아까와 같이 하얀 가루가 반짝거리며
주위에 흩날렸다.그녀는 마른 입술에 병을 갖다대었다.
'난...이제...행복한...'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단숨에 병을 비웠다.하지만 입 안에는
아무런 이물감도,넘어가는 것도 없었다.카렌은 병 안의 약을 확인하려
눈을 떴지만,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카렌은 당황하여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금새 부딪히고,넘어졌다.
갑작스런 일에 놀란 카렌은 천천히 기어서 침대로 돌아갔다.
"눈이 안보여...앞이...안 보여...으...으아악...!"
* * *
마왕에게 다녀온 지 한 달여,카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지나가 많이 도와준 덕도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 노력한 덕이었다.
"카렌,아직 많이 불편하지...?곧 익숙해 질꺼야"
"아냐...난 마왕에게 눈을 주고 운명을 바꾼거야.난 이제 행복해질꺼야..."
카렌은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갔다.눈이 보이지 않아도 집 앞 뜰에
물을 주고,꽃과 새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갔지만
어쩐지 그녀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지나...이상해.난 이리도 행복한데...너무 허전해.뭔지 모르게..."
"그럴 수밖에.너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야 할 때가 온거야.
알겠니,카렌?"
지나가 웃으며 대답했다.카렌 역시 웃었지만 뭔가 심난한 마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무얼...줄...수...있지...?"
"...무얼..."
"...무얼..."
"헉!"
카렌은 벌떡 일어났다.그녀의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카렌,괜찮아?나쁜 꿈을 꾼 거야?"
"아니,아냐...나쁜 꿈은 아닌데...이상해..."
"무슨 꿈인데?"
"마왕이...마왕을 봤어..."
그 날부터 그녀는 매일 꿈 속에서 마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매일 마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렌은
어둠 속에서 단 한 번 보았던 마왕의 얼굴을 상상해야만 했다.
"지나"
"응..?"
"나...절벽에 좀 가봐야겠어"
"절벽엔 무슨 일로?안 돼,카렌."
지나가 말렸다.
"...마왕을...만나야겠어"
* * *
지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렌은 길을 나섰다.보이지 않는 눈으로
절벽을 오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그녀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절벽을 올랐다.
카렌이 절벽 위 동굴에 도착한 건 이틀 뒤였다.역시 동굴 안은 어두웠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카렌에겐 상관없었다.
"...아무도...없어요...?"
"...누군가...?"
"마왕...!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그녀의 볼에 한 줄기 바람이 스쳐가는가 싶더니 그의 목소리가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일로...?"
"마왕,당신에게 부탁할 소원이 있어요.들어줘요"
"...무얼...줄...수...있지...?"
꿈속에서 그렇게도 들어왔던 그 말.카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당신이 원하는 게 있다면...드릴께요"
"...소원이...뭔가...?"
"당신을...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 주세요"
"...나를...?"
"...당신을 만난 이후로 전 잠도 못 이룰 정도로 당신이 그리워요.
당신은 매일 내 꿈에 나타나 목소리만 들릴 뿐,당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부탁이예요,당신을 보게 해 주세요"
마왕은 잠시 생각하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왜 보고 싶지...?"
카렌은 의외의 질문에 당황했다.한참 동안의 적막이 흐르고,
겨우 카렌이 입을 열었다.
"나...당신을...사랑하는...것 같아요..."
"...쿡..."
마왕은 소리죽여 웃었다.
"...난...죽지 않아..."
"...무슨 말이죠...?"
"...난...너의 뜨거운...심장을...갖고 싶다..."
카렌은 또 갈등해야만 했다.하지만 그 역시 오래 걸리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한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떠라..."
카렌은 그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처음엔 칠흑같은 어둠이었지만 곧 익숙해져
그의 하얀 얼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왕!당신의 얼굴이 보여요!당신의 얼굴이...헉!"
카렌은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점점 흐려져 가는 눈으로 마왕의 하얀 손이
자신의 심장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 * *
"헉,헉..."
절벽 위 동굴에 다다른 남자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마른 몸에 퀭한
눈을 가진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마왕!당신에게 소원을 빌러 왔소!"
그가 소리치자 어둠 속에서 핏기어린 얼굴과 에메랄드 그린의 눈을 가진
마왕이 조용히 나타났다.그리고,하얀 손을 그에게 내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얼...줄...수...있지...?"
자우림 3집, [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