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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뒤 에

작두 |2013.11.15 10:48
조회 4,206 |추천 18




가끔씩 자의로든 타의로든 뒤를 돌아볼 때면 녀석이 끔찍한 몰골을 한 채 멀뚱히 서있다.

녀석은 내 뒤에 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벌써 수년째, 익숙할 때도 됐지만 뒤를 돌아볼

때마다 놀란다. 그렇다고 녀석이 내게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한 적은 없다. 그저 내 뒤에 서서

겁을 줄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로 뒤를 돌아볼 때마다 녀석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미칠 지경이다. 예전에는 못 느꼈지만 요즘은

온몸으로 절실히 느낀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가까워지는 녀석을. 저 멀리 점으로

보이던 녀석은 어느새, 언제든지 내 목을 노릴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두렵다. 뒤를 돌아보는 게 두렵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녀석이 나를 어떻게 할 것만 같다.















비극, 거창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첫 번째 비극도 그랬다.

나의 첫 비극은 할머니 댁에서 키우던 개의 죽음이다. 할머니 댁에 놀러갈 때마다 반갑다고

뛰쳐나와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떨던 개.


“할부지, 개 어디 갔어요?”


“개? 죽어삤다.”


할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렸던 나에게 똥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은 그만큼

큰 비극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 날 배가고파서 쓰러질 때까지 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그 날 점심메뉴로 할머니가 해준 보신탕을 맛있게 먹었으니까.

두 번째 비극 역시 사소한 장난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장난의 대가는 그 어떤 것보다도

끔찍하고 참혹했다. 친구의 죽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해 했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고, 언제 친해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한 친구로 우리는 단짝이었다.

초등학교도 같은 곳을 다녔고, 중학교도 같은 곳을 갔다. 우리는 늘 그렇게 붙어 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등굣길, 나의 사소한 장난이 불러온 비극 때문에 우리는 끝났다.


“헤, 이거 뭐야? 누구주려고 선물을 가져온 거냐?”


난 친구 녀석이 가지고 있던 선물상자를 들고 냅다 뛰었다.


“야, 너!!!”


뒤를 보자 녀석이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게 보였다.


“누구 줄 건데?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쫓아와?”


나는 그저 친구를 골려주려고 선물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 도망쳤고,

친구는 선물을 찾기 위해 내 뒤를 쫓아왔다.


“끼이이익- 쾅!!!”


굉음에 놀라 뒤를 돌아봤을 때, 내 뒤를 바짝 쫓아오던 친구는 없었다. 뒤에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트럭이 있을 뿐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세 번째 비극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비극의 충격이 오래가지 않은 반면에 세 번째 비극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자꾸 내 뒤에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

내 죽은 친구의 모습을 한 녀석.

내가 녀석의 몰골을 처음 인식했을 때는 너무 놀라서 거품을 물었던 걸로 기억한다.

트럭에 치였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녀석은 내 뒤에 서있었다.

뭉개져서 알아보기 힘든 얼굴, 제멋대로 놀고 있는 팔다리.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녀석은 차츰차츰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과의 거리가 더욱 빠르게 좁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뒤를 안보고 살수는 없었다. 정신병원에 수없이 가봤지만

모두 특정사고에 의한 스트레스라고 개소리만 지껄일 뿐이었다. 약물치료도 상담도 소용없었다.















오늘은 술김에 용기를 내어 뒤에 있는 녀석을 똑바로 보며 소리 질렀다.



“친구끼리 이럴 수 있어? 그래, 나 때문에 네가 죽은 거 알아, 죽을 만큼 미안해, 그래서 내가 죽어줬으면 좋겠어? 혼자 죽어서 심심해? 그렇게 나를 데려가고 싶어?”



뒤를 돌아봄으로써 녀석이 더욱 가까워졌을 것이다. 이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정도? 무섭다.

사실 내 뒤에 있는 녀석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친구가 죽어서 변해버린 마음이다.

나도 친구도 서로를 이렇게 증오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으니까.


‘내가 어디를 가든지 너는 나의 뒤를 노리겠지’


비틀거리며 걸었다. 길이 구불구불 구부러지며 내게 다가왔다.


“빠~~~~~~앙”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옆을 보자 환한 불빛을 내뿜으며 트럭이 다가왔다.


‘네가 원하던 게 이거였냐?’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트럭이 내 뒤를 스쳐지나갔다. 간담이 서늘했다.

나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뒤를 봤다. 그리고는 흐느끼며 울었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녀석은 뒤에서 두 팔을 쭉 뻗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녀석이 죽은 그 날, 그날도 녀석은 내 뒤에 있었다.



뒤에.


-출처 웃긴대학 패랭이꽃님
추천수18
반대수0
베플|2013.11.15 12:39
죽은 날도 이렇게 뒤에 있었단 것은.. 죽은 날도 오늘 처럼 주인공을 밀고 친구가 대신 죽었단 거 같은데.. 그 죄책감을 주인공은 갖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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