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년 12월 초에 입대해 입대 1주년을 앞둔 22살 물상병입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고, 극복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갔네요. 어느새 55%에 접어든
군대의 시계가 박차를 가해가는게 느껴져서 참 이상한 기분이에요.
입대를 하고부터 매일매일 적어간 일기와 다이어리도 어느덧 5권.
입대를 앞두고 혼자 괜히 감상에 젖어서 여행을 떠난 기억도 선명하고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던 논산의 혹한에 동상으로 고생했던 기억도 나요.
그리고 각개전투가 끝나고 돌아오던 길에 봤던 논산 톨게이트 위의 별무리도...
모든 일들이 기억 속에 갈무리 되어 지나간 시간이 되었네요.
상병이 될때즈음이면 빠져서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모두 본인들이
하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군생활이 꺾였다는 자신감, 윗 사람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안도감과 편안함. 어쩌면 그 와중에서 드러나는 것이 진짜 사람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어요.
주말만 되면 생활관에서 온종일 자느라 바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요.
하지만 인생을 계획하고, 목표를 정비하는 그런 시간으로 사용한다면 군대에 있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스마트폰과 많은 유흥거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군대의 시간은 비록 느릴지언정 좀 더 내실 있고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갈 시간이 되어줄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사회성이 좋아진다던가, 인내심이 늘어난다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어요.
만에 하나, 지금의 제가 다시 이등병이 되어서 군생활을 한다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어느정도는 그렇겠지만, 가혹행위와 부조리가 공공연하게 존재했던 그 시절의 공기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글쎄요. 그런 시절을 버텨온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하네요.
어쩌면 좋아진건 제 마음가짐이 아니라 부대의 환경은 아니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계급이 올라가고 후임이 늘어가는만큼, 처음의 마음을 잃고 나태해지는 것은 시간문제거든요.
그래도 윗사람들을 대하는 것만큼은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네요.
이등병, 일병때는 참 힘들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날의 일기장들마다 뭘로 털렸다는
이야기들이 가득한걸 보면... 늘 목표가 '하루라도 털리지 않기'였었지요. 돌아보면 우습기까지
한 일들로 왜 그렇게 정색을 하며 쌍자음을 남발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폐쇄된 집단 안에서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지켜봐왔던 시간인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저는 여름 즈음에 수술을 받아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여느 장기입실 환자들이
그렇듯 복귀 이후 사람들의 냉대와 비난 속에서 많은 고생을 했었던게 기억에 남네요.
이전까지만 해도 친했던 사람들이 못본척, 공기취급하며 지나가고, 말도 안되는 것으로
트집을 잡아 욕을 하고... 돌아보면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혼자 토하고 그런 적도 많고.
그런데, 그렇게 쉽게 돌아서는 사람들인 만큼, 꾸준한 노력을 하며 작업이나 행사에
솔선수범해서 앞장서니 서서히 이미지가 바뀌어 가더니,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 수 있게 되더라구요.
열심히 한다는거, 그렇게 어려운거 아니더라구요. 군대에서는. 애초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안시키거든요. 가끔 특이한 작업들이 있긴 한데, 대부분 단순하고 반복노동이라 지겹게 느껴질 뿐이지.
그 외엔 시키는 일만 깔끔하게 잘 해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편해지려고 안이한 마음을 먹는 순간 밑도 끝도 없이 나태해지더라구요.
그러면 그 나태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고.
다만 부조리나 가혹행위에 대한 부분은 지금도 참 미묘하다고 생각해요.
전 중대에서 피해자가 과반수를 넘고, 수위도 심각한 큰 가혹행위/성군기 위반 사건이 있었는데도,
모두들 그 선임과 동기들을 두려워해서, 쉬쉬하면서 눈치만을 보다가 결국 누군가 찌른적이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부대를 위해서라도 그게 정말로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잘 모르겠어요.
내부고발자가 뒤집어쓰게 되는 이미지와 그 뒤의 피해를 감당하면서까지도 했어야 했던 것인지.
잘못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을 참고 묵인하는 것이 옳은걸까요?
내가 상병, 병장이 되면 그대로 할 수 있다고. 그때까지만 참는거라고 하면서...
다른 부대에서는 사소한 욕설만으로도 찔러서 영창이나 징계를 먹이는 일도 다반사라고 하는데
그게 앞으로의 군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런지. 솔직히 저도 기어오르는 맞후임 한명때문에
마음 졸이며 군생활 하고 있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군생활을 해나가다가 중대의 절반정도가 후임이 되었을때 슬슬 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네요. 경례를 하기보다 받는 것이 익숙해지고, 근무에도 사수로 들어가게 되고...
신고를 할때도 대표병으로 신고를 하는 일이 점차 늘어가게 되고. 물론 일병 말정도 갔을땐 위아래에서
계속 이래저래 치이고, 밑에선 말을 안듣고 하니 스트레스가 많긴 했지만... 무사히 상병을 달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이등병에서 일병이 될땐 몰랐는데, 일병에서 상병이 될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구요.
어느샌가 털리던 입장에서, 누군가를 털어갈 입장이 된다는 것. 뭔가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단지 짬이라는 것 만으로 그렇게 밑바닥에서 위까지 체험해보게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요.
하지만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바깥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고,자신이 털렸을때
힘들어했던 기억들을 생각한다면 말을 할때 한번 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솔직히 후임들에겐 잘 해준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일,이병 후임들과 휴가를 나와서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형동생 하며 밥도 먹고 그랬던걸 보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힘들었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힘듬을 덜 겪거나, 혹은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임의 존재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후임들도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게 아니잖아요. 자신도 못하면서 언성을
높이고, 본인도 안하는 일들을 후임에게 시키는 그런 선임이 되고싶진 않거든요.
다만 남한테 싫은 소리나 명령을 좀처럼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게 고민이긴 해요. 시키기보다는
직접 혼자 하려고 하니까 힘들기도 하고, 정작 후임들이 쉬는것도 서로 좀 그렇잖아요.
어쨌건 이제 군생활을 시작하시거나, 많이 남으신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뭐가 되었건 자기계발을
위한 목표나 계획들을 세워서 천천히, 꾸준히 실행해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느리고 더딜지언정
언젠가 부쩍 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그런 뿌듯함을 하나하나 느껴가다보면 시간은 빨라지더라구요.
특히 입대할때 열에 아홉은 몸을 만들어 나오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렇지만 운동이야말로 변화해가는 몸도 확인해갈 수 있고, 성취감도 커서 군대에서 꼭 한번
해보라고 권장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네요. 전 입대 전 운동을 꾸준히 했었지만... 부대 행사가 많아서
눈치를 보다 일병 말쯤에 시작했었어요. (입대 전 60kg -> 입대후 70kg -> 상병 60kg로 돌아오더군요)
HIM같은 잡지를 보는 것도 생각보다 좋은 낙이고, 군생활에 이런저런 소소한 낙을 찾아가다 보면
그 짧은 개인정비 시간이 정말 귀하고 중요한 시간들이 되어가는걸 느끼실거에요.
상병부터 뭘 할 수 있다는 말도 있긴 한데... 글쎄요, 요즘 군대에서 그렇게 쌍팔년도 군대처럼 터치를 많이 하진 않는 것 같은데 정작 문제는 피곤하고 귀찮아져서 그냥 쉬게 된다는거겠죠. 특히 운동같은경우, 부사수땐 피곤해서 일어나는게 늦어진다거나 하면 정말 일이 커지는 수가 있으니까. 스스로 잘 눈치봐가며 꾸준히 하는게 포인트.
글을 적다보니 무척 길어졌네요. 내일 모레면 휴가 복귀인데, 지금껏 써온 일기장들을
읽어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적어간 글이었어요.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 그토록 힘들고 막연하기
짝이 없었던 하루하루들이었는데 어느샌가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상병이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네요. 저는 변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조금씩 생기게 되고, 밑 사람들을
챙겨준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때가 많네요.
저는 글에서 보이듯 이런저런 잡생각도 많고, 우울증도 심한 편이었는데 군대에 있으면서
생각들이 차차 갈무리 되고, 많이 성숙해진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거기에 의문이나 반감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를 점차 그곳에서 벗어나고, 고립되게 만들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수양하는 기분마저 들더라구요. 그런 변화 탓인지, 이등병, 일병때의 일기 3권은
무척이나 힘들고 우울해했던 시간들이 많았는데, 상병으로 접어들면서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보고
진로나 적성. 목표를 위해 노력하며 느끼는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가더군요.
모두가 말하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군대에서의 21개월은 정말 쓰기 나름인 것 같아요.
이제 9개월 남은 군생활이 어떤 모습으로 제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일병같은 마음으로
나태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라를 지키느라 고생하시는 모든 전우분들에게 심심한 격려를 보내며, 저도 내일 모레면
다시 초소 근무를 서고 있겠네요. 하하. 날씨 부쩍 추워졌는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래요.
올 겨울 혹한기가 좀 걱정이긴 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죠. 군대에서 느낀것중 하나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 아직 한참 먼 일들로 고민하는게 제일 바보같은 일이라는 것!
여담이지만 PX에서 파는 14000원짜리 기모 내의가 정말 따뜻하고 괜찮더라구요.
소매도 없고 핏도 깔끔한게 무지 티처럼 입고다녀도 될 기세네요. (물론 진짜 그러진 않겠지만)
한두벌 더 사서 전역하고도 입어볼까 생각중이에요ㅋㅋㅋ 의외로 내복계열은 잘 안사입던데
춥다 싶으면 한번 사입어보시는것도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