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abascan indian 축제가 열렸습니다.
"athabascan fiddle festival "
아시아로부터 35,000년 (원류를 따지자면) 전에,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다가
베링연안을 거쳐, 알래스카로 약 12,000년전 이주를 해 왔습니다.
빙하기를 거쳐 , 알래스카 남부와 중부, 서부에 분포되어 핵가족으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 알래스카에 오래된 유물들은 모두 인디언 들의
유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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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인들은 알래스카 북쪽과 동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인디언들은 그래도 조금은 따듯한 곳으로 이동을 해와 30~ 100개의
핵가족을 이루며 살았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은, 알래스카 인디언 들만의 축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원주민들의 밴드가 이렇게 많을줄 몰랐습니다.
수십개의 밴드들이 경연을 펼치는데, 새벽 1시까지 벌어 집니다.
1시간에 한팀씩 출연한다고 해도 , 정말 많은 밴드들이 있는데,
특징은, 모두 년령이 제법 된다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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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 그 축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페어뱅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교회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나흘간 새벽 한시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1983년 알래스카 페어뱅스에서 시작을 해서 , 가장 중요한 원주민 축제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는데, 알래스카와 캐나다에서 많이, 참가를 합니다.
1840년대에 스코틀랜드,아일래드, 프랑스, 캐나다 등지에서 전통적인 음악들이, 허디슨 베이라는
회사의 상인을 통해 , 알래스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처음에는, 백인을 통해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미국의 컨트리 음악과는 그 색갈을 달리하면서,
140년 전통의, 인디언만의 전통 음악을 발굴하고, 강렬 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들만의 멜로디 스타일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번, 행사 책자를 들고 , 밴드들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는 인디언 주민들 입니다.
이번 행사의 주최측 운영위원 입니다.
athabascan 바이올린의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빌 스티븐스 입니다.
빌 스티븐스의 많은 연주곡들과 전통적인 음악들이, 미래 세대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상태 입니다.
또한 , 학교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프로그램을 실시 하고 있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고 나오신 주민들.
이들은, 도보로 사냥을 하기 때문에, 신발의 중요성을 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 유연한 자작나무 껍질과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다니는데, 지금도, 자신이 직접
신발을 지어 신는이들이 있으며, 아이를 낳으면, 선물로 자신이 만든 신발을 선물 하기도 합니다.
음향담당을 하시는분인데, 체격이 아주 좋으시네요.
입장료 받으시는 분인데, 제 신분을 밣히니, 마음대로 촬영을 하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 주시더군요.
점심 시간이라, 막 식사를 하려고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저는 입장료 받는줄 몰랐답니다. 허락을 맡은후 벽을 보니, 입장료 안내 간판이 보이더군요.
헐....
스코틀랜드의 음악과 춤을 통합해서 ,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춤을 즐길수 있도록 , 강렬한 비트와,
빠르면서도 고전적인, 인디언의 전통을 바탕으로한 연주를 선 보입니다.
왈츠도 접목을 하여, 애서바스칸 인디언 (아타바스칸으로 발음도 함) 특유의 전통 음악으로
이제는 자리를 잡아 , 주민 모두가 스스로 연주를 하며, 즐기는 축제의 한마당 입니다.
이들이, 1800년대부터 바이올린을 즐기기 시작 했다니, 열려있는 사고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네 1800년대 하고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합니다.
athabascan 들은, 11개의 서로 다른 언어와 방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소통을 하다가, 미국이 알래스카를 인수하고 부터는, 영어를
강제적으로 교육을 시키면서, 영어가 공통어가 되었으며, 인디언 어들은 지금은, 거의 사라져
젊은 세대에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향담당 털보 아저씨.
페어뱅스에 이벤트들이 많기때문에, 음향 회사들이 몇군데 있습니다.
결혼식에도 음향 회사들이,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음색과 직접 작곡한 연주곡을 가지고 나와 ,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인지라,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이 자못 비장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같이 어울려 즐기는 축제의 장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경직되고 그러진 않습니다.
각 부족의 장 되시는분들입니다. 여기서는 대의원이라고 칭을 하더군요.
보통 추장과 그 부인들이 대회 심사를 맡아 합니다.
이들 인디언에게는, 세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실용주의" 입니다.
여름에 물고기를 잡을때는, 다같이 부족이 공동체 생활을 할수 있는 캠프를 만들어, 공동으로 물고기를 잡고,
겨울 사냥철에도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 단체로 사냥을 나가는 실용성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이러므로써, 각 부족간 돈독한 우의와 신뢰를 쌓아갈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이 드신분들도, 셀폰으로 문자와 이너넷을 즐기는 문화수준 입니다.
그 두번째로는 바로, 혈연 관계 입니다.
인디언들은,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의 혈연 관계를 중요시 했고, 가까운 친족과는 결혼을 금지해
근친상간을 미연에 방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키모인들은 같은 부족간 결혼이 많아, 근친혼이 주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는 근처
부족과의 거리도 멀거니와 ,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로 인해, 그 교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등장한 밴드가 서로 음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 개인의 선택" 입니다.
여러 부족들이 있는곳을 자신이 직접 택해서, 그 부족에 가서 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특히, 먼 친척일지라도 혈연관계가 있는 부족이라면, 그 당사자를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각 부족과의 다툼도 한결 사라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로인해, 타부족을 경원시 하거나 , 적대시 하질 않으니 , 전쟁이란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점은, 우리네도 배울만 하지 않을까요?
이층에는, 이렇게 뷔페식으로 식단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비스켓과 콘, 치킨등을 담아서 가지고 오네요.
차례대로, 이층에서 식사를 챙겨서 대회장으로 가지고 와서 , 편안하게 식사를 하면서,
밴드들의 경연을 즐깁니다.
밖에는, 눈이 ♡♡ 내리네요.
다운타운이 아담하기만 합니다.평일 인데도, 차량 통행이 별로 없답니다.
여긴 매점 입니다.
이들에게도 당연히, 다툼이란게 있었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대응을 했습니다. 부족민이 살해를 당하면, 그 부족은 원수를 갚아야할
책임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예외로, 주민 한명이 살해를 당하면, 그 몸값을 요구해서 절충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격은 모두 1불로 통일...
여기 교회 식당이 제법 크네요. 미국 교회는, 주일에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걸로 아는데,
여기 교회 식당은, 전용 식당이라고 할만큼 아주 큽니다.
대회기념 티셔츠도 판매를 합니다.
제가 그동안 궁금 했던게 , 에스키모와 인디언간의 전쟁 이었습니다.
그런데 , 에스키모 인들은 모여 살아도 몇명 되지 않습니다.
북극에서 살면서, 남쪽으로는 잘 내려오지 않았지만, 중간 지점에서는 가끔 다툼이 있었습니다.
대대적으로 동원될 주민이 없기 때문에 , 매복을 해서 습격을 하여, 여자와 물건을 강탈하는
일은 아주 간혹, 생기기도 했답니다.
저는 이점이 아주 다행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만약, 잦은 충돌이 있었다면, 지금 현재까지도 그 감정들이, 대대손손 내려올까 걱정이 되었답니다.
모자는 10불.
인디언들은 마치, 유목민과도 같은 생활을 했었습니다.
철마다 이동을 하면서 , 순록떼를 따라 다니기도 했고, 연어철이면 다시 강가로 이동을 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택을 짓는 방식도 상당히 독특 했습니다.
에스키모 인들은 , 고래뼈를 이용하거나, 돔식으로 집을 짓기도 했지만, 인디언들은
천막이나, 움집을 위주로 집을 짓는 방식이 발달이 됐습니다.
동전지갑과 쇼핑백도 파네요.
한동네 살면서, 에스키모와 인디언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갖췄답니다.
또한, 인디언은 글자가 있지만, 에스키모는 문자가 없답니다.
그래서, 에스키모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사라지게 되고,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들도 많이 유실되게 됩니다.
이 부분이, 제일 애석하게 생각이 됩니다.
머그컵과 열쇠고리. 누가 살까요?
매년 , 경연대회 공연 씨디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하나 사실래요?
저 리버보트는 아주 유명합니다. 실제 운행하던 그 보트가 지금은, 공원에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래디오에서도 중계 방송을 하네요.
많이 들어 주세요 ^^*
저는, 밴드들이 한곡만 연주해서 기량을 겨루는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약 30분 정도 다양하게 연주를
하더군요. 그러면 주민들은 거기에 맞춰 춤도 추고, 같이 어울려 즐긴답니다.
올해가 31회째니, 제법 역사가 되었네요.
바이올린을 켜시다가, 직접 저렇게 노래도 부르는데, 아주 잘 부르시더군요.
가수 맞답니다..ㅎㅎㅎ
모자를 멋드러지게 쓰시고 , 한창 감상에 열중 이시네요.
멋쟁이 할아버지.
제가 이른 시간에 와서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듯 합니다.
다들 점심 챙겨 드시고, 느긋하게 오실 모양 입니다.
이렇게, 단체로 음률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합니다.
부르스가 대세인가요?
1등 트로피 입니다.
간단한 트로피지만, 명예가 더 중요하니, 나름 유익 할것 같습니다.
아주 열창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그 정정함을 뽐내십니다.
음악을 하면, 젊어진답니다.
이분이 최고로 높으신 추장님 이십니다.
아주 근엄하시죠?
여기도 팬클럽이 있나 봅니다.
연주하는 내내 저렇게 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계시더군요.
" 오빠~ 꺄~악..." 은 아니군요. ㅎㅎㅎ
표주박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바이칼 호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섬이 약 20여개가 있습니다.
호수라기 보다는 정말 바다 같은 곳인데,세개의 부족이
살고 있는데, 그중 부리아트 족이라고 있습니다.
그 부족은, 호수의 불란암석을,
신성시 하고, 추앙을 하면 살았습니다. 그 부족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주를 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지금의 백두산을 불암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신라 무덤으로 알려진 천마총에서, 천마도가 발견이 됐는데,
그 천마총을 바로 자작나무 껍질에 그렸습니다.
추운지방에서만 자생하는 자작나무에 천마도를 그려 , 무덤에 안장을 했다는건,
상당히 의미가 깊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때, 발견된 금관(보물로 지정)의 장식들이
꼭 자작나무 잎들 같습니다.
지금도 바이칼 호수 근처에는 솟대가 있고, 서낭당에 여러색갈의 끈을 묶어
놓은 그런 형태의 샤머니즘의 원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지금 , 먼 조상들의 근처에 와 있는건 아닐까요?
잠시나마, 저의 뿌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합니다.
바로, 오늘의 온도랍니다.
정말 추워요~....
영하 38도....
영하 50도가 얼른 지나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