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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 *

irish15 |2013.11.27 22:22
조회 261 |추천 0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의 친척은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

 

명심보감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 앞 계단을 오르려다 계단 곳곳에 떨어져 있는 붉은 단풍잎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예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대문 바깥에서 배추 상자를 든 택배직원이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아무 응답이 없자 이내 나를 바라보고는 “여기 000씨네 집이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생소한 이름이라 잠시 머뭇거린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택배직원은 나의 반응에 곧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들곤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게 이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엌에서 소지품 정리를 하고 있자니 밖에서 택배직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000씨!!.. 000씨!!”

그제서야 옆집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000씨 맞으세요?”

“예. 맞아요!”

“전화를 안 받으시길래..”

“아!.. 전화기를 방 안에 두고 부엌에서 일 좀 하느라고.. 김장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택배직원은 짜증이 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까 옆집 아저씨가 000씨 집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그러자 옆집 아주머니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그런데 오래 계셨어요?”

“아까 왔었죠!”

택배직원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얘기를 부엌에서 듣고 있던 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택배직원이 돌아간 후 나는 곧 옆집 문을 두드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옆집 아주머니께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주머니, 오해하지 마세요. 아까 택배직원이 저에게 물었을 때, 아주머니 이름을 잘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린 건데 아마 그 모습을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에요. 택배 직원이 지레 짐작하곤 오히려 아주머니께 화를 낸 건 옳지 못한 경우라고 생각해요.”

“아, 예.. 제 이름을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아저씨 이름을 잘 모르는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해를 풀고서도 나는 오전 내내 씁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옆집에 아주머니가 이사를 온지는 벌써 몇 개월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아주머니의 이름을 모른다. 서로 통성명을 한 기억이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도 별로 없다.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우편함에 있는 우편물로도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 나의 둔감함과 무관심이 오늘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각박하기만 한 도시생활로 인해 가까운 이웃과 살가운 대화를 나누지는 못할지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가벼운 안부 정도는 주고받는 관계여야 하지 않을까.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라는 말도 있는데, 물리적인 가까움이 심리적인 가까움으로 자리잡지 못한 나의 이웃에게 미안스러움을 느끼며 나를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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