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그곳

보라보라 |2013.12.01 02:05
조회 381 |추천 3


 저벅 저벅 저벅. 숲길을 걷는 소리만이 요란하다. 숲은 벌써 고요에 쌓인지 오래다. 나뭇잎사이로 보이는 햇살은 붉다 못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지? 아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나? 과연 해가 지기 전에 그곳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시간이 지날 수록 일행들은 말이 없어져갔다. 마침내 나무사이로 보이던 햇살 마저 사라지고 어둠에 휩싸인다. 누군가가 손전등을 켠다.
나는 한숨을 내쉰다. 한숨은 일행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침내, 누군가가 참고 참아왔던 말을 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아냐, 그럴리가 없어. 여기 지도에 적힌 대로 왔단 말이야."

우리들 중 맨 앞에 선 남자가 말한다. 남자의 목소리는 자못 완고했지만, 말끝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이 뭔데? 우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거야."
"그 조금만 조금만이 대체 언제부터 하던 소리인데? 우린 길을 잃었다고!'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그와 비례해서 남자의 목소리가 작아져갔다. 다들 침묵을 지켰지만, 여자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걸어서이기도 했지만, 자꾸만 식은 땀이 배어나와서 이기도 했다. 왠지 모르지만 무척이나 두렵다. 왜지? 왜? 길을 잃어서인가? 아니면 게속 한 장소를 뱅뱅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가? 그도 아니면, 아까부터 자꾸 들던 기시감 때문인가?

"그게, 그게...."
"이제 어떡할 거냐고! 여기서 계속 있을 거야?"
"여기 산짐승이 산다는 소문이 있어. 특히, 며칠 전에 곰에 물려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누군가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 말에 다들 웅성거린다.
"어이,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여긴 산이라서 통신도 안 잡혀. 우린 완전히 미아신세라고."
"이러다가 여기서 우리 모두 곰한테 잡아먹히거나, 실종되는 거 아냐?"
"어이, 리더.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너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어서 말해. 말하라고!"
이상하다, 이상황. 낯설지가  않다. 어째서지? 너무나 익숙하다. 꿀먹은 벙어리가 된 리더. 사실 저 리더도 이번 산행이 초행이다. 베테랑인 것처럼 허세를 떤 것은, 손에 들린 지도 한 장 때문이다. 하지만 저 지도는 애초에 잘못된 지도였다. 왜냐하면 그 지도를 그린 사람은....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이 지도가 틀릴 리가 없어. 뭔가 이상해. 좀더, 좀더 가보자."
리더는 이제 애원을 하고 있었다. 일행은 싸늘한 눈초리로 리더를 바라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인다. 
"어, 저 불빛 좀 봐!"
누군가 불빛을 발견하고 소리쳤다.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짝이는 불빛. 불길하다.
"혹시 반딧불같은 거 아냐?"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무슨 소리야. 저건 분명히 전깃불이라고. 인공적인 등불이야."

이때즈음, 리더는 구원받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외치겠지.
"저기로 가면 내려가는 길을 알 수 있을 거야. 자, 가보자."

"안 돼!"

나는 소리쳤다.
"가면 안돼!"

막 달려가려던 일행들이 제자리에 멈춰서서 나를 쳐다본다.
"왜?"
"몰라. 하여튼 가면 안 돼."

일행은 피식 웃었다. 언듯 영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어떤 남자가 창가에 서서 음습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히죽 웃어보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그럼 너 혼자 여기서 남든가."

돌아오는 것은 의아한 목소리와 차가운 대답이었다. 
"잠깐만. 다들 내 말을 들어봐. 저기에는 뭔가 있어. 이렇게 외딴 산속에 집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아? 게다가 지도 말이야. 리더가 틀린 게 아닐 거야. 그 지도, 함정이 있다고."
"함정이라니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이번에는 리더마저 탐탁찮은 목소리다.
"그 지도 어디에서 구입했어? 그곳이 어디야?"
"저 아래 산장에서."
"그 산장...주인이 혹시 오십대 남자 아니었어? 깡마른 체구에 신경질적인 얼굴을 했지?"
"맞는데..."

그래, 맞아. 그럴 거야. 내가 본 영상속 남자가 그랬으니까.
"가면 안돼."

아우우우! 가까운 곳에서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났다. 일행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난 갈 거야. 저 미친 녀석하고 함께 있든지 말든지 해."

여자가 걸음을 옮겼다.
"기다려!"
리더가 서둘러 여자를 쫓아 달려갔다. 다들 움찔거리더니 하나 둘씩,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면...안...돼."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린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어두운 산속에 혼자 남겨지긴 싫었다. 나는 일행을 따라 걸었다.그래,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거야. 이상한 영상을 본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떨다니. 일단 저 불빛이 있는 곳까지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불빛을 향해 걸어갈 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불빛 끝에는 왠지 저택 한 채가 서 있을 것 같았다. 근사하게 정원까지 꾸며진 그런 고급스러운 저택. 영상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영상속의 남자는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식사를 권한다. 모두 오랫동안 걸어 허기진 터라,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 테지. 그리고 모두 하나둘씩 쓰러질 것이다. 나만 제외하고.
'어째서 당신은 멀쩡하지?''나는 알아. 당신이 누구인지.''호오, 내가 누구인지 안단 말인가?''그 산장지기와 한 패인 거지?'
남자는 한껏 비웃음이 담긴 얼굴로 나를 쏘아본다.
'네가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넌 이번에도 아무도 구하지 못해.''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이번에도 노력할 거야.'
나는 숨겨두었던 칼을 꺼낸다. 남자는 비웃으면서 권총을 꺼낸다.
타앙!
나는 고개를 들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이 환상처럼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었다. 리더는 벌써 저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마른 체구에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앞서 지도를 샀던 산장, 그곳에서 지도를 팔던 남자와 비슷한 얼굴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 둘은 형제니까. 처음부터 그들은 공을 들여 이 함정을 팠던 것이다.리더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냥 우연의 결과이겠거니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야.'
그 순간,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씨익 웃었다.
'얼마든지 노력해봐. 결국 실패할테니.'
남자의 웃음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문이 열리고, 일행은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삐그덕, 쿵. 등뒤에서 문이 닫혔다. 그 순간,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탕! 그가 총을 쐈을 때, 나는 칼을 휘둘렀다. 우리의 피는 한데 섞여 흘렀다.

그래, 그랬던 것이다. 매 해, 저주처럼 반복되는 일들. 그도, 나도, 일행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고리 안에 갖혀버린 것이다. 산을 떠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이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주머니속의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정말로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걸음을 옮겼다.


======================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추천수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