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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맨슨은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60년대에 아주 악명높은 살인마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창녀인 어머니를 두고, 학대받고 불우하고 타락한 환경속에서 자란 그는 일찍부터 범죄에 몸을 담고 교도소를 밥먹듯 드나다녔다.. 기타를 좋아하고 비틀즈를 광적으로 신봉하던 그는 당시 불어대던 60년대 히피문화 어우러진, 신비롭고 이상적인것을 찾던 젊은이들과,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 광신주의자 맨슨과 결합하면서 이른바 맨슨 패밀리를 만들게 된다.
manson family
불우한 환경속에서 자라고 배운것도 없고, 학대받고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한 인간이 어떻게 젊은 층 무리들을 사로잡으며 자신만의 종교적 패밀리를 결성한것인지는 상당부분 미스테리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당시의 자유의 열기가 극에 달했던 히피문화와 거의 방치되다 시피 퍼져있었던 LSD와 마리화나와 같은 약물들의 영향도 있었을것이다.. 여기에 맨슨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선지자적 일종의 카리스마도 한몫한것은 아닌가 싶다.. 비틀즈를 광신했던 그는 비틀즈의 노랫속에서 일종의 어떤 사인을 읽어내고 그것을 성경의 요한계시록과 맞추면서 자신만의 사이비 종교로서 발전해 나간듯하다..
이렇게 맨슨은 그들의 패밀리들과 일종의 종교적 사교 모임을 결성하게 되면서 이들은 결국 부랑아 꽃놀이꾼 히피들에서 잔혹한 살인마 집단으로 돌변하게 된다. 결국 유명 영화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찾아가 당시 임신한 상태였던 유명 영화배우였던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잔인하게 난자한다.. (처음에 이들은 샤론테이트가 목표가 아니었고 그집에 살던 전 주인인 테리 멜쳐였다고 한다.. 테리 멜쳐는 음반 제작사로서 이전에 맨슨 패밀리가 음반을 제작하려 하다 무산된 적이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빌미로 맨슨은 자신의 교리와 연관지어 자신들의 조직원에게 살인을 교사했다는것이다. 어찌돼었건,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만삭의 샤론 테이트를 비롯, 그의 동료들은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맨슨의 사주를받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4명의 인물
(좌측부터 찰리 텍스 왓슨, 린다 카사비앙, 수잔 앳킨스, 패트리샤 크레빈켈
2009년 수잔 앳킨스는 교도소에서 암으로 사망한다.)
나중에 맨슨이 샤론 테이트 살해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간 이후..
그의 단원중에 하나인 스퀴키 프롬(Squeaky Fromme)으로 불리던 Lynnete Fromme은 75년 당시 대통령이던 제랄드 포드 암살기도를 한다. 물론 목적은 맨슨을 가두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 맨슨패밀리의 광신적인 결속력이 소름끼치기만하다..
맨슨 패밀리에서 Squeaky Fromme으로 불리던 Lynnete Fromme..
2009년 8월 가석방이 허가되어 현재는 자유의 몸이 된 상태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맨슨과 그의 패밀리에 관해 알려진 사실인데, 맨슨에 대해 음모론적으로 보는 입장들에선 그가 단순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훈련되어지거나 혹은 약물 실험과 관련이있다고 본다.
그가 머물던 헤이트 애쉬버리 지역은 샌프란시스코 히피 문화의 중심지이자 마약의 중심지다. 이곳을 당시 한창 약물을 통한 무기나 심리실험을 실행하던 CIA의 일종의 약물 실험기지로 이용되던 곳이라 보던 이들이있었는데, 이들은 이곳을 "인간 모르모트 농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마약이라 부르는 lsd는 당시 미국에선 60년대까지만 해도 불법이 아니었다,나중에 심각성이 알려지게 되면서 정부가 관리를 하면서 단속이 시작되었는데, 거의 60년대는 이런 약물이 무방비로 풀릴때였고 가장 심하게 풀렸던곳이 바로 히피들의 중심지로 불리던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쉬버리였다..
맨슨은 가출옥 기간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가출옥 감독관에게 보고할 의무가있었는데, 그 감독관은 "국립정신건강학회"소속 헤이트 애쉬버리 무료의원에서 일하는 로저 스미스라는 사람이었다. 헤이트 애쉬버리 무료의원은 당시 lsd를 통한 정신병연구를 하던 곳중의 하나라고한다. 또한 프로세스(the process : church of final judgement)라는 종교집단과도 연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그가 거주하던 곳에서 불과 두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프로세스는 사이언 톨로지에서 떨어져 나온 분파로서, 종말론을 강조하는 일종의 이단 사교로서 "최후심판교회"라고 불리기도하는데 종말은 아마겟돈을 그리고 이후에 예수가 재림하여 세계가 천당이 된다는 내용을 가지고있다.. 사이언 톨로지 교회의 창시자 허버드나, 프로세스의 창시자 디 그림스톤 모두 CIA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마인드 컨트롤 관련한 연구를 하는 여러 학자들과 연관이 깊다고 한다.
찰스 맨슨이 자신들 지지자들 사이에서 재림예수로 불리워진것들이나, 그가 신격화되고 사이비 종교적 집단적 카리스마를 갖게 만든것이 이들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생각도 든다.. 이 프로세스라는 사교는 나중에,Son Of Sam으로 잘 알려진 연쇄살인범 데이빗 버코비츠 (David Berkowitz)와도 관련이있게된다.
이들 모두는 찰스 맨슨과 어떻게든 직간접적으로 영향권내에 있었고, 그들로 부터 적지않게 약물이나 실험대상으로서 일종에 타겟팅 되어진것이 아닌가 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수있다..
이유야 어떻든, 당시의 온갖 범행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던 별 볼일없는 사내가, 당시만해도 평화롭고 이상주의적인 히피들을 자신의 패밀리로 만들어 버리고, 그들에게 살인을 교사하면서 엽기적 범행을 지시하며 끝까지 그들로부터 선지자처럼 추대를 받는 강력한 리더가 되었다는것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은 컸으며.. 이 무렵에 벌어진 사건들은 당시의 반전운동과 자유와 저항을 기치로 내걸던 그 당시 청년문화와 저항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슴은 분명한 사실이었을것이다. 특히, 당시에 좌파와 우파 이런 정치적인 것과 거리가 먼 순수한 평화주의자이자 무한 이상주의자와도같았던 히피들에게 저들의 살해행각은 그들의 그런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대신에 잔혹하고 무자비한 악마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계기도 되었을것이라 추축해본다.
2012년 4월, 77살인 찰스 맨슨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사실상 마지막 가석방 기회도 놓쳤다고 한다.
맨슨의 과거와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