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부러워하는 외동딸......... 겉은 행복해보여도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 불효자식같이 느껴지겠지만, 난 엄마가 싫다. 아니 증오한다.
뉴스에 나온 애들처럼 학대를 받지도 않았고, 밥을 굶어본적도 없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나에게 관심을 주면서 학교도 오곤 했다.
하지만 내가 3학년이 되면서 엄마는 회사를 다니셨고, 나도 혼자 힘으로 밥을 먹고 다녔다.
그러는 중 엄마 친구를 따라 혼자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나는 처음 간 그날부터 놀림을 받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가 밥에 코딱지를 비벼먹는 다는 둥, 마담이라고 커피나 타오라는 중..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무지 컸다. 그리고 날 놀리고 괴롭히던 아이와는 같은 학교였기때문에, 소문이 금방 퍼지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왕따가 되었다.
맨날 치고 박고 싸우고, 반성문을 쓰고, 나는 반성문에 그 애가 놀린 사실을 쓰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싸운 사실만 혼냈고, 반성문은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그리고 매일 상처투성이가 되서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싸우고 다닌다는 이유로 나를 혼내고 벌로 때리기 시작했다.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의 놀림은 계속 되었고, 점점 싸우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리고 엄마와의 다툼도 잦아졌고, 고학년이 되면서 온 사춘기와 동시에 엄마한테 맞을때마다 반항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처음으로 엄마를 때렸다. 하지만 내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고, 난 그냥 불효자식에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이였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근대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멍청했다. 놀림을 당하면서도 몇년동안 교회를 왜 나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교회에 가도 친구도 없었고, 애기들과 놀고, 또래 아이들은 날 쓰레기 취급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교회 차안에서 앞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맞기도 했다... 참으로 멍청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것 같다. 그런이유에도 꿋꿋이 다녔던 이유는 엄마때문이었던 것같다. 엄마는 내가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거에 칭찬을 꽤 많이 했는데, 아마 칭찬을 듣기 위해 교회도 꾸준히 나갔던 것 같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날 괴롭히던 아이와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 아이는 새로운 아이들에게 다시 소문을 냈다. 나의 성격을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중학교에 가서도 싸움은 계속 되었고, 종종 교무실로 불려가곤 했다. 그래도 정말 큰 사고는 치지 않아서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일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곧잘 하던 성적이 중학교 가면서 하락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넌 안된다는 둥, 이것도 못하냐는 둥, 학원을 다니면 머하냐는 둥,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냐는 둥 하며 구박을 했고, 나의 자신감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기말고사 때 처음으로 70점 아래로 맞아본 나는 충격에 빠졌고, 엄마의 잔소리가 두려워 겨울방학내내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엄마를 마주보기가 무서워 엄마가 오기전에 라면만 빨리 먹고 들어가 잠을 잤다. 그리고 얻은건, 20키로정도 불어난 몸뚱이었다.
더욱더 자신감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또 다시 뚱뚱한 나를 보고 놀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는 것도 싫었고, 매일 싸우기만 해서 친구도 없었다. 누가 조금만 모라고 해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적이 좋을리는 장연히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는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가는 것에 대해 또 다시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중학교 내내 엄마와 매일 치고박고 싸운 기억밖에는 없다. 난 단지 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고등학교로 가면서 나를 주동하며 놀리던 아이들과는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절대 어느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공부만 하겠노라고... 근대 조용히 사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은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것(?)을 중요시 했다.. 항상 밥은 모듬을 만들어 같이 먹어야 했다. 그게 더 지옥같았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교무실에 불렀고, 나는 입학한지 일주일만에 문제아가 되었다.
내가 그나마 낮은학교여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영어성적 때문이었다.
(실업계를 비하하는게 아니라, 엄마의 생각대로 쓰기 위해. 우리엄마는 실업계를 무조건 공부 못하는 애들만 가는데라고 생각... ) 공부가 싫었지만, 영어는 좋았다. 나는 어렸을때 영어학원을 다녔었디때문에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웟고, 흥미가 대단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었었다. 그거 하나는 좋았다. 영어시간마나 발표를 해서 맞추면 과자를 주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발표를 하다보니, 선생님은 날 막았다. 날 시키지 않았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나는 금새 의기소침하고, 몰래 공부했다. 더이상 어느 수업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잠만 잤다.
어느날 나와 같은 반이었던 나와 같은 중학교에 나온 애가 반아이들에게 나의 중학교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냥 싸우고 다녔던 애라고.. 아이들은 날 멀리했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고등학교 3년을 지냈다. 수업시간에 잠만 자고, 멍때리고, 낙서하고...... 당연히 내신 성적은 낮게 나왔고, 엄마의 잔소리는 계속 되었다. 엄마는 학교만 가면 무조건 공부를 하는지 알았던 것이다. 근대 점수가 형편없으니,, 꼴찌도 여러번 하고.. 하지만 3년 내내 성적표를 보여준 적이 없어서 엄마는 모른다.
그래도 영어공부는 계속해서인지 수능 영어 점수가 높게 나왔다. 수능 영어 점수로 경기도지역에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꺼라고 생각했었나보다.. 아빠는 남들은 수능 못보면 뛰어내려 죽는다는데 넌 죽지도 않냐며 말을 했고, 엄마는 쏟아부은 돈이 얼만대 그거밖에 못하냐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매일 전교 10등안에 들던 친척동생과 비교했다. 그리고 나는 또 엄마와 싸웠고, 그때마다 엄마를 때렸다. 불효자식 같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것만 같았다. 초등학교때 이미 내 목을 졸라봤고, 베개에 얼굴을 박아 숨이 막히기도 여러번, 동맥을 끊어볼까 생각도 여러번.....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신에 잔소리 하는 엄마를 때리면서 화를 풀었나보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던 영어만 공부하니 흥미가 붙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친구도 생겼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물론 전액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도 못마땅했다. 왜 전액을 못받느냐는 둥, 그런 똥통학교 갔으면서 공부도 못한다는 둥..... 방학동안 알바도 꾸준히 했다. 음식점보다 쉬운 공장 알바를 선택하며 다녔다. 엄마는 그것도 불만이었다. 그런 똥통학교 다니니 과외도 못하니 하면서 무시했다. 그리고 또 남들과 비교했다. 누구는 어디 들어간다는 둥, 누구는 서울 좋은대 다니면서 과외로 몇백씩 번다는 둥...... 지옥이다. 십년넘게 무시 당했는데도 화가났다. 매일 자기전에 울었다. 학기중에 알바를 하다가 장학금을 조금이라도 못하면 엄마는 또 날 무시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비록 1등은 못했지만 3등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학점도 4점이 넘었다. 하지만 엄마는 1등도 못했다고 무시했다.
그리고 바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바로 취직했고, 연봉도 남들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능력은 알지도 못한채 대기업만 운운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 무시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렇게 회사를 1년 다니고, 엄마의 요구대로 월급의 대부분을 적금에 쏟아부었고, 일년만에 1500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그 돈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엄마가 먼저 가라고 했다. 대학교 때 정신차려 공부했으니, 공부를 더하라 했고, 나도 원했다. 그리고 모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 다닐때... 역시나 엄마는 나를 무시했다. 겨우 핫바리 대학원 갔으면서 뭐가 힘드냐는 둥.. 근대 정말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거기다 집안 살림까지 맡아야 했다. 내 일생은 회사갔다와서 집 반찬 해놓고 이것저것.. 그리고 11시부터 새벽까지 공부, 그리고 다시 아침일찍 회사..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꾹꾹 참았다.
하지만 엄마는 남들도 다 대학원 다니면서 회사 다닌다고 오히려 더 뭐라고 했다. 정말 죽이고 싶었다.. 정말 뉴스에 나오는 패륜 자식이 되는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20살이 넘어서 나도 철이 들었는지 더 이상 엄마를 때리진 않았다. 대신에 욕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벌써 회사 3년을 다녔다. 총 4500정도 모았는데, 학비를 빼고 전부다 집 빚 갚는데 썼다. 3년동안 거의 20만원으로 생활했다. 물론 순수 내 용돈이었지만, 남들처러 꾸미고 그러지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불만 없이 살았다. 알뜰하고 검소하게..
하지만 엄마는 그것도 아니꼬와했고, 매일 집에만 들어오면 남들과 비교하기 바쁘다.
누구는 어디 학교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갔다더라. 누구는 지가 알아서 어학연수 갔다와서 취직 잘했다더라. 누구는 고액과외 해서 몇백 번다더라.......
1년동안 운동을 해서 10키로를 뺏지만, 아직도 살이 많이 남았다. 엄마에게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눈에 보이나보다. 꾸준히 헬스를 다니고 있은에도, 오늘 아침에도 운동하고 그럼 뭐하냐고, 맨날 먹어서 살 더 찌는데, 그냥 나만 보면 살 언제 뺄래. 넌 언제 좋은데 취직할래, 넌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이제 포기하고 산다. 죽지못해 산다. 다행히도 공부하는것이 즐거워서 그냥 그걸로 푼다.
가끔씩 백수놀이 하는 친구들이 부럽다. 난 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엄마한테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들려오는 대답은 그거해서 뭐할껀대, 돈 많이 버냐 이거다. 엄마한테는 돈이 인생에 전부이다. 아빠하고도 매일 돈돈 거리면서 싸운다. 돈이 싫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인생을 개같이 살았나보다.. 더이상 멀 어떻게 열심히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회사가 힘들어도, 가끔씩 공부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나에게는 친구도, 가족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인형이 답없는 말동무고, 내 자신이 내 진정한 친구일뿐이다.
왕따로 인해, 성적으로 인해 죽는 학생률이 우리나라가 세계 1위라고 한다. 만약 그들 옆에 그들의 속마음과 진정성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이 죽음을 택했을까?
가끔씩 나도 초등학교 시절, 옆에서 용기를 북돋고 무조건 내편이 되주던 엄마가 있었으면, 나도 밝고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