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밖에는 눈이 오네요. 쌓일 것 같아요. 길이 미끄러워 질테니 다들 조심하세요.
제목 그대로 저보다 15살이 많은 아내와 사별한 남자와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제 주변에는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어 자주 찾는 이 곳에 글을 올려서
잘 모르는 분들께라도 격려 받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32세이고 여기저기에 글을 써서 먹고 사는 프리랜서입니다.
일이 아닌 글을 쓰는 것이 오랜만이라 설레기까지 하네요.
직업상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예민한 편이지만 한글에 글을 쓸 때 처럼 빨간 줄이 없어
간혹, 맞지 않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있더라도 양해바랍니다.
그럼 이해 해주시리라 믿고 편한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해 볼게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열일곱 살 때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어릴 때 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항상 학기 중에 전학을 하게 되어
항상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고등학교 입학시기와 맞게 이사를 하게 되어 모두가 새로운 시작이라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서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어렵더군요.
서울은 처음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4번, 중학교 2번씩 참 많이도 전학을 다녔는데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등 범위를 넓게
이사를 다니다 보니 제 말투가 그 땐 참 이상했어요.
표준말을 쓰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딱 어디 사투리라고 할 수 없는...
그렇다보니 서울 친구들은 제가 외국 생활을 하고 왔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탈북자라는 소문도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말을 안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저는 늘 혼자였지요.
항상 전학을 다니다보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사치였고
언제 떠날지 모르니 정들까봐 겁도 많이 났어요.
물론 성적도 좋지 않으니 부모님도 제게 성적으로 압박하지는 않으셨고,
자주 전학 다니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셔서 늘 저에게 잘해주셨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보니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빠지게 되었고,
저는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조정래작가님의 책에 빠져있었어요.
그 때의 저는 또래보다 키가 커서 항상 뒷자리에 앉았는데 앞자리 친구 뒤에 숨어
'한강'을 읽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수업에도, 친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입학하고 2주 정도 지났을 때, 국어선생님이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무슨 책을 읽느냐 물으시기에 한강을 읽는다고 했더니,
이해를 하면서 읽느냐 물으셨고 이 시대의 책들을 몇 권 읽어와서 이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정래작가의 다른 책도 읽은 것이 있느냐 물으시기에 그 전에 읽었던 책 몇 권을 이야기했고,
공부는 하기 싫다고 하니, 그럼 본인 수업시간에는 편하게 책을 읽어도 좋다.
하지만 선생님이 직접 골라 주는 책만 읽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좋다고 했고 그 후로 1년 내내 선생님이 주시는 책만 읽었습니다.
네, 그 선생님이 저와 결혼 할 사람입니다.
당시 저는 17세였고, 남편은 지금 제 나이였네요.
저는 선생님이 주시는 책을 한 권도 빼 놓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책을 읽은 후 어땠냐고 물으셨고, 독후감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읽은 책에 대한 대화로 짧게는 10분, 길게는 2~3시간씩 방과후 저에게 시간을 내어주셨습니다.
첫 사랑 이었을까요?
저는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빨리 갖고 싶어 무서운 속도로 책을 읽어갔고
그 해, 겨울 방학 때까지 100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방학 동안에도 선생님은 제게 책을 추천해주셨고,
집으로도 초대해주셔서 사모님과 따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대화도 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희 집에도 초대하시고 선물도 보내시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겨울 방학,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열병을 앓았습니다.
어린 마음인데도 연모하는 마음이 엄청났던 것 같아요.
선생님 집에 초대받아 다녀온 후로,
너무 예쁜 사모님과 아이를 본 후로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께 전학을 보내주던지 아니면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힘들게 자리를 잡은 곳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고
저희 부모님은 사춘기를 앓는 저를 가엽게 여기셔서
저희 반 수업에 들어오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제가 심한 사춘기를 앓고 있으니 이해해주시고
수업시간에 절대 다른 짓은 못 하게 할 테니, 책을 읽는 것을 한 학기만 참아주십사,
밤새 손편지를 써서 돌리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로 저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책만 읽었고,
선생님을 향한 마음도 꾸준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뻐해주시던 선생님과의 작별을 하고
당연하게 문창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꾸준히 선생님과 연락을 했고,
자주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본인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계셨는데 대학에 가면 정말 멋진 남자들 많다고
선생님은 기억도 안 날 거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대학에 가니 더 선생님이 그리워지고
제 또래의 남자들이 얼마나 철이 없고 어리석은지 깨닫기만 했어요.
그러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 사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게 된 경위는 밝히지 않을게요.
이제 겨우 일곱살인 딸아이와 선생님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꼭 제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이렇게 된 것만 같아 죄책감에도 시달렸구요.
장례식장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제 손을 잡고 있는 아이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은 극도로 예민해지셨고 금방 여름방학이 되어서 거의 매일 술로 지내셨어요.
저는 거의 매일 선생님 집을 찾아가 아이와 놀아주고, 집안일을 했습니다.
물론 그 때 선생님 부인이 돌아가셨으니 내가 이제 선생님을 차지하겠다.
이런 막장드라마 같은 마음은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선생님을 돕고 싶고,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안쓰럽고 괜히 미안하고 서러웠거든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요 ^^;;
그 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네요.
눈길조심하세요. 내일 이어서 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