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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출신의 탈북이야기(3)

엑윽 |2014.01.01 20:26
조회 2,345 |추천 2

자꾸 주작 드립치는데 난 최대한 안전한 선에서 이미 인증을 했고 그래도 못 믿는 게이들은 그냥 나가 죽어라.

 

소설이라고?.. 북한학과 출신이면 얼마든지 쓸수있다고?..

 

웃기지마라. 내가 쓴 모든글은 내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사실이기에 저렇게 쓸수있는거다.

 

만약에 니들 게이중에 어떤 병신이 3-4일 인터넷 조카 두져서 내글 비스므리 하게라도 쓰면  손에 장을지진다.

 

그리고 마지막 3탄은 탈출과정을 아주 자세히 쓸 생각이므로 이글을 보고도 주작이라고 믿는 새키들은 걍 답없는거다.

 

글고 내 말투가 니들이랑 똑 같다고 뭐라 그러는데,  나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지 6년이 넘었다.

 

친구들도 내가  화내면서 나도 모르고 사투리 안쓰면 북한출신인거 모른다.

 

지방서 살던 게이들  서울서 서울말 하다가  조카 빡치면 사투리로 욕한적 없노? 없네? 없습네까?

 

 

 

3탄 쓴다.

 

사실 난 대한민국이 부러웠다.

 

왜냐고?

 

답이야 뻔하지 않냐?

 

난 정말로 정말로  니들이 부러웠다..

 

자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병신들 봐라.  이북에서는 자살 생각도 못한다.

 

왜냐고? 먹고살기 바빠서 오늘 끼니를 에으면 내일은 뭘 먹지? 오늘 애들 죽을 먹였는데 내일은 죽이라도 먹일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죽음은  내일이 아닌거다.

 

죽고싶어하는 병신들  죽도록 바쁘게 살아봐라.


니들이 집에오면 기절하듯 잠들고 아침에 천근만근 눈을뜨면서도 조카게 아파도 일하러 기어나가면서 생각해봐라.

 

니가 그때도 죽을 생각을 한다면? 그냥 죽어라.

 

꽃제비들이  시장바닥에서 흘린음식찌거기나 사탕한일 훔쳐먹고 죽도록 맞아도 죽을생각을 안한다.

 

왜? 그애들도 희망이 있거든.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엄마 아부지 형제들 만나지 않을까?

 

우리 아빠 어디서 돈 벌어서 나 찿으로 다니지 않을까?

 

내가  북한있을적에 꽃제비 한명을 만나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녀석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오지..

 

그녀석의 집은 평북도 구성의 어느 마을이란다.

 

평북도에는 2경제군수공장이 많이 모여있는 산악지대고  대부분 공장들이 터널에 있을만큼  군수물품만 생산하는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주는 배급만 가지고 살았는데

 

갑자기  식량사정이 어려워져 배급을 못주자 대량 아사와 꽃제비가 발생했지..

 

왜냐고? 이들은 주는것만 먹고 살던 사람들이라  장사해서 먹고사는 법을 배을틈도 없이 미공급에 적응을 못했거든.

 

그래서 이녀석의 가족들은 온갖 가장집물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단다.

 

선물로 받은 TV며 선풍기 이불장등등 닥치는데로 팔아서 먹고살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온거지..

 

결국 그들 가족은 살던 집을 옆집에 팔고 헤어지기로했단다.

 

그집값이 얼마였는지 알아?

 

그들 4가족이 먹을수있는 강냉이밥 4덩이였다.

 

결국 그거 한덩이씩 들고 아빠가 말했대.

 

(어디가든 죽지만 말고 살아있어 다오. 내년 이맘때 다시 집앞에서 만나자.)

 

이 녀석 맞아 터지고  굶어가면서  지동생 챙기면서 1년을 버텼다.

 

그때 14살이었던 녀석의 키가 7살난 애보다 작아보이더라.

 

1년후 집앞에 갔는데 일주일을 굶으면서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않더래..

 

그 녀석 아빠나 엄만 어찌 되었을까?

 

암도 모르지..

 

결국 그녀석은 다시 동생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어.

 

당시 평남도 지역은 그래도 괜찮은 곳이였고 인심또한 그의 고향보단 후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동생을 장티부스로 잃고  혼자 남았단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을 묻어줬는데 눈물 한방울 안나오더란다.

 

그냥 덤덤하더래..

 

어른들이 동생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막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놓는데도  동생이 불쌍하지 않더란다.

 

결국 이녀석은  그렇게 동생을 잃게되고 떠돌아 다녔지.

 

근데 내가 만났을때 그녀석은 배가 임산부 배 같았어.

 

이유를 물었더니 간  복수가 왔대..

 

쉰 음식을 먹고 아프고 또 먹고 아프고 그러다 나니 무쇤들 성하겠나.

 

어찌 알았냐고 물었더니 역전앞 돌팔이 의사가 알려주더래.

 

곧 죽을거라고 아주 남의 일처럼 이야기 하는거야..

 

그때 정말 충격받았다.

 

그 14살난 애가 죽음을 그리 덤덤히 받아들일수 있다니...

 

이런 죽음이 시험성적에 비관하고  자기 외모나 왕따에 비관해서 죽을일과 비교할수 있을까?

 

물론 그들의 아픔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사실 너희들은 너무 약해 빠졌어.

 

니들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라는 시를 읽어본적이 있냐?

 

그거 보고 니들이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냥 불쌍함? 아니면 끔찍함?

 

눈물 흘린 녀석들도 있겠지..

 

난 그시를 보고  통곡을 했단다.

 

왜냐면 난 그들처럼 그런 모습으로 살진 않았지만  최소한 그 마음을 알수있거든.

 

내가 보고 느꼈던 내 나라였으니까.

 

니들 말대로 가끔 내 이야기가 거짓말 같을수도 있을꺼야..

 

내 하나원 동기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없었으니까..

 

그들이 내 과거를 물어볼땐 난 아무말도 못한단다.

 

그냥 그들에겐 끼울수도 없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나는 내이야기를 최소한 솔직하게 사실대로 이곳에 썼고 지금도 그러고있다.

 

의심하고 헐뜯기전에 그들이 사는 모습을 생각해봐라.

 

그리고  나중에 통일되면 북한사람들 모두가 일베인이다.

 

그들은 나처럼 극우가 될수밖엔 없거든.

 

말이 많이 딴곳으로 샛는데  글 쓸게..

 

남한이  부럽고 또 부러운 천국같은 곳이었지만  난 사실 갈수가 없었어.

 

니들 말대로 그대로 떠나면 난  아버지를 버린 불효자인거야.

 

그리고  그리 떠나면 아버진 날 얼마나 원망할까..

 

형제처럼 붙어다닌 친구들도 있었고  꽤 좋아했던 애인도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선 여자친구란 말은 그냥 이성 친구 란 말이다.

 

애인은 말그대로 애인이다.

 

난 지금도 여자친구란 말은 적응이 안된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난 차마 그곳을 떠날수가 없었지..

 

그러나 그렇다고 매일 자식보고싶다고 우는 엄마는 어쩌겠노..

 

참  몇개월을 고민하고 고민했지..

 

내동생은 매일 엄마한테 가고싶다고 난리치고 난  이러지도 저로지도 못하고...

 

참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난 내동생을 엄마한테 보내기로 하고 그렇게 연락을 했다.

 

언제쯤 들어갈것이라고..

 

엄마는 그동안 브로커 를 만나고 탈북루트를 알아보고 하셨지..

 

그러나 끝나 이야기는 아부지한테 할수가 없었다.

 

내동생은 우리아빠가 엄청나게 예뻐했고 자랑스워 했기에 난 그냥 말을 꺼낼수가 없었지.

 

사실 난 집안에서 못난이었다.

 

동생은 학교에서 엄청 유명할 만큼 공부를 잘했거든..

 

지금도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수학시간 출석체크를 하던 수학선생님이  이러더라.

 

(니동생은 참 잘하는데 넌 오빠가 왜 그러니?:)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참고로 북한은 중학교 과정이 없고 소학교 와 중학교 과정만 있다.

 

나 다닐전은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이렇게 되있었는데

 

그후 바껴서 소학교 4년제에 중학교 6년제로 바뀌었다.

 

아부지 마음을 알고싶어서 넌지시 물어봤지.

 

(아부지 엄마가 오라 그러면 어떡할래요?)

 

아버진 단호하시더라..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우리 아빤 8형제의 맏아들이다.

 

장남이지...

 

우리아부지 마저 오게되면  아부지 집안은 망해버리는거 아니겠노..

 

결국 포기하고  이렇게 결심했지..

 

동생을 데려다 주고  난 다시 돌아오자..

 

만약에 그이후 동생을 찿으며 날 달구면  모른다고 뻗대자 라고 말이지..(달군다는 말은 괴롭힌다는 북한의 비속어다.)

 

그래서 떠날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데 역시 문제는 여행증명서 였어.

 

나 혼자선 괜찮았는데 여자 동생을 데리고 갈수 있을지가 걱정이더라고..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자나..

 

내동생은 혼자서라도 간다고 날 협박하고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안아플 동생을 위험하게 떠나보낼순 없고 말이지..

 

 

결국 나는 주체 10몇년  3월밤 대망의 탈북열차에 오른다.

 

주체년호는 김일성이 죽은후 만들었지..

 

마치 중국의 무슨 제후 같지 않노?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계산하는 북한의 달력이야 ㅋㅋ

 

그때 떠날땐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다.

 

그냥 동생을 데리고 친척집 여행간다고 둘러댔지..

 

단 한 친구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몰랐었다.

 

나도 돌아올 생각 이었기에 가슴아픈 이별은 아니었지만

 

난 지금도 다행스러운게 역전앞 광장에서 악수라도 나눌수있었던데에 감사하고 안도하지..

 

참 힘이되주던 녀석들었지만 그래도 목숨보단 중하지 않았는지 난 동생을 탈북시킨다는 말을 할수가없었어.

 

결국 3월의 찬바람 부는 어느밤 나는 청진행 열차에 동생과 몸을 싣는다.

 

그렇게 어찌어찌 가다보니 정거리 라고 불리우는 역전앞이더라고..

 

여긴 평양 들어오기전의 역전인데 참 악명높은 노동단련대가 있는 곳이야.

 

가끔 급한 사정때문에 여행증없이 평양에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잡히면 모두 여기 보내져서 3-6개월 강제노동하다가  풀려나지..

 

하는일은 농사와 사금채취였지.

 

그곳을 지냈는데 결국 올것이 온거야.

 

승무안전원의 증명서 검열이 시작됬고 결국 우린 단속됬지..

 

그러나 난 태연했어.. 왜냐면 찔러줄 돈이 있었거든..

 

북한돈으로 5000원을 찔러줬는데 이새키가 조카 고민하는거야..

 

그렇게 청진을 향해 달려가고있는데  함흥근처에 도착하자 그 승무안전원이 이러더라고..

 

니들은 함흥역에서 내려야 겠다고..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내동생이 문제인거야.

 

물론 우리가 국경지역 가는건 숨겼지만  이미 그런일은 비밀이 아닌지라  근심하는거지.

 

막약 탈북과정에서 체포되어 행동경로를 추적하다보면 자기가 잡힐거거든..

 

특히나 여자들의 탈북이 많던 시점이라 그랬었고 또 그런이유로 옷벗은 새키들이 꽤있던 시절이거든.

 

그놈 그러더라..

 

내가 평생먹을돈을 받은것도 아니고 이돈으로 내가 옷벗으면 어쩔거냐고..

 

만약 남자혼자 가는길이면 괜찮았겠지만 니 여동생 땜에 안되겠다는거야.

 

양심은 있는 녀석인지 받은돈의 절반은 돌려주더라..

 

함흥역에서 내려서 벌금500원을 내고 풀려났다..

 

늦은 밤이었는데 함흥이란 도시는 참 살벌한 기운이 감돌더라.

 

쳐다보는 눈빛들도 예사롭지않고 말이야.

 

불안에 떨면서 나는 역전 대합실에서 하루밤을 지새우고

 

시내로 나갔지.

 

어찌어찌 물어보니 시내를 벗어나서 조금가면 청진가는 화물차를 잡을수있는 곳이 있다는거야..

 

그래서 한 15KM정도는 걸었나봐..

 

정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더라고.

 

결국 거기서 차를 잡아타고 우리는 2틀후 청진에 도착해..

 

지금도 기억 나는것이 마천령이란 산을 넘어가는데 앞에서 가던 화물차가 미끄러져서 그 수백M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을 생중계로 봤다.

 

마천령이란 산은 정말로 높고 길도 험해서 한해에도 수십대의 자동차가 굴러떨어지는 죽음의 산이지.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연거퍼 담배를 3개 피우더니 다시 운전하더라..

 

정말 그때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난  울면서 기도했을꺼야.. 살려달라고.

 

결국 간난신고 끝에 청진에 도착했어.

 

고향에 온것처럼 한숨이 다 나오더라고..

 

다시 온성까지 들어갔는데  그 과정은 생략할께..

 

비슷비슷하니까. 상황이 위험하니까 여자인 내동생이 더 머리회전이 빠르더라고 ㅋㅋ

 

힘든길도  험한길도 한번도 불평안부리고 잘따라오더라.

 

온성에 들어가서 브로커를 만났고 결국 난 동생을 떠나보내..

 

울었다.. 정말로 겁나 울었다.

 

몇일후 만났지만 그땐 언제만날지 알수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거든.

 

보내고 눈이 팅팅부을정도로 울고나서 난 자꾸 마음이 무너지는거야.

 

아무생각도 안들고 이제 아부지얼굴은 어찌보고 내동생 보고싶으면 난 어쩌지 하고말이야.

 

결국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청진으로 다시나와..

 

암표로 집가는 차표를 사고나서 시간이 조금 있길래 아까 위에서 언급한 친구녀석한테 전화를 걸었어.

 

그녀석은 내동생이 탈북하는걸 알았거든.

 

그녀석이 전화를 받더니 정색해서 말하는거야.

 

지금  난리가 났다고..

 

내친구들 모두 잡혀가서  몇일씩 조사를 받았고

 

결국 연락오면 무조건 알리라는 위협도 받았다더라.

 

그리고 청진보위부에 수사요청까지 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하더라고.

 

결국 내동생을 못데리고 가면 난 죽은목숨인거야.

 

동생의 알리바이를 증명할수가 없자나.

 

간이 콩알만 해지고 난 자의반 타의반으로 북한을 떠날수 밖에 없었지..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우리 아버지는  친구들과  여러 간부들의 보증으로 화를 면했다고 해.

 

한국온후  돈을 조금 보내드렸었거든.

 

전화통화는 못했지만 편지와 사진을 한장 받았지.

 

결국 난 그날로 청진을 떠나  무산을 향해 들어갔어.

 

어머니가 여러 브로커를 통해 연락을 했었는데 그중 한명이 무산에 있었거든.

 

한번간곳으로 두번가는게 위험할꺼 같아서  결국 그길을 택했어.

 

브로커의 집에서 하루밤을 묵었고 다음날 아침 난 탈북준비를 마쳤어.

 

두만강으로 조선족 브로커가 나온대더라고.

 

엄마랑은 연락이 됬지..

 

결국 난 무산 읍에서  이미 약속한 장소로 나가기로했지.

 

그곳은 읍에서 떨어진 시골이었는데  건너편은 중국의 화룡이었지.

 

그런데 탈북과정은 그리 쉽지가 않아.

 

특히나 지리도 모르고 태어난곳도 다르고 인맥도 없는 사람들이 마구 간다는건 거이 불가능에 가깝고

 

총에 맞을 확율이 많이 높은거야.

 

그래서 브로커가 필요한건데 이 브로커는 국경수비대와 중국에 모두 연줄이 있는거야.

 

조직화 되있지.

 

결국 시골의 안전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하고  난 떠날 준비를 해.

 

아침에 준비한 내모습을 브로커가 보더니 입을 다시더라고.

 

십리도 못가서 잡힐 상태라는거야.

 

사실 시내서 온건지라 시골에선 보기힘든 좋은 옷과 신발에 얼굴이 하얀

 

샛님같은 모습이었거든.

 

결국 내 모든 옷을 그집 아들에게 공양하고 꿰지고 찢어지고 발가락이 나오는 군용훈련화.(지하족)을 신고 괭이를 메고

 

국경초소 3곳을 통과하는 모험을해.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결국 깨달은건 옷이날개다. 라는 속담이었어.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착한 안전가옥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도 걸려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육안에 또렷히 분주소가 보이고  분주히 들락거리는 안전원들도 보였지..

 

분주소는 한국의 파출소와 같은 의미이다.

 

미치겠더라고.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나는 변소에 숨어들었다.

 

니들은 지금 모두 양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겠지만 북한의 시골은  수세식이라고도 말못한 그런

 

최악의 화장실이다.

 

내가 앉아있으면 아버지가 3일전 뭘먹었는지도 육안으로 확인가능하지.

 

냄새가 죽이더라.

 

근데 사실은 난 행운안거야.

 

나도 이유를 몰랐지만  북한의 시골집들의 화장실은 모두 문을 잠그러더라고..

 

이유는 이웃들이 똥을 훔쳐가는거야..

 

북한은 비료가 부족해서 어쩔수 없이 사람과 짐승의 분뇨로 농사를 짓지.

 

근데 산을 벗겨서 자기 개인 텃밭은 만든 사람들이 소출을 더내려면 많은 똥이 필요한거야.

 

그러니깐 가족의 똥을 보호하는 웃지못할 일이 생기는거지.

 

만약 문이 잠겼더라면 난 노짱보다 먼저 운지했을거다.

 

4시간여를 화장실에서 기다리고야 결국 난 안전가옥의 주인을 만나게 되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참으로 징하게 쳐다보더라고.ㅋㅋ

 

사실 뒤로 가면 문이하나더있는데 거기만 봤어도 똥냄새를 뒤집어쓰면서 숨을일은 없었던거야.

 

이른 저녁을 얻어먹고 있는데  개털외투를 입은 국경수비대원을 문을 벌컥열고 들어오는거야..

 

와 조카 놀랐다.

 

뭐 나중에 알고보니 나를 안내하기위한 수비대원이었더라고.

 

이새키가 이러더라.

 

뒤탈이 없게 확실히 하자고..

 

다시 올때도 자기를 통해 오라는거야.

 

막넘어오다가 잡혀서 자기 이름 불면 같이 운지하는거니까  만약 잡히면 그냥 걍 넘어갔다고 그러래.

 

알았다 그랬지.

 

한시간 쯤 후에 약속장소에서 그녀석을 다시 만났고  그녀석을 따라 100M쯤 올라가니 건너가라 그러더라고..

 

난 사실 두만강이 조카 넓은줄 알았는데 물은 허리까지 정도 오고 폭은 되게 짧은 개울물 같은거야..

 

물은 차가웠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 겁나게 빨리 도망갔다.

 

그순간엔 정말 아무생각 안나더라고..

 

마중 나와있는 조선족이 건네주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둘러보니 벗어던지 북한옷이 여기저기 많더라.ㅋ

 

나같은 탈북자가 많다는 이야기지,

 

조선족의 그지같은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중국도로를 보면서 생각했지.

 

이젠 정말 난 돌아올수없는 강을 넘은거야..

 

말그대로 말그대로 돌아올수 없는 강인거지..

 

강줄기따라 보이는 이북은 참으로 처참했어.

 

간간히 등잔불 밝힌 집들이 보이고 야윈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지..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조국을 난 그렇게 넘어온거야.

 

누구의 바래움도 못받고 도망자로 야윈 개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덜렁거리는 중국산 오토바이의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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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를 찿은대신 아버지를 버렸다.

 

결국 나는 평생 불효자인거야..

 

눈물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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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길어서 단번에 못쓰겠다.

 

미안하다.

추천수2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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