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0대 초중반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만해도 일제의 잔재가 아주 많이 남았다.
길거리에서 선배에게 거수 경례를 하지 않으면 즉석에서 뺨따귀를 맞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교실에 들어와서 단체기합을 주기도 했다.
내가 대학입시 시험을 치룰 때는 답안지라는 개념이 없었다. 나는 문과(지금의 인문계) 지원생이었는데 영어, 수학, 국어, 일반사회(선택), 물리(선택) 5과목을 보았다. 영, 수, 국은 거의 주관식이거나 단답형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문제에 repeat의 명사형을 쓰시오. 최근에 인상깊었던 날의 일기를 영어로 쓰시오. 국어 문제 중에는 오리무중을 한자로 쓰시오. 수학은 9문제가 주관식 1문제는 객관식 10문항이었다. 인반사회와 물리는 모두 객관식이었는데 문항수가 아주 많았다. 나는 수학에서 100점 만점에 35점을 받았다. 그런데도 합격한 걸보면 당시 과목낙제라는 것이 없었던 거 같다.
얼마전에 내 첫번째 제자 서너명(1972년에 고3)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들의 금년 나이는 55, 5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