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르는 선생님의 이야기
여자
|2014.02.23 23:40
조회 331 |추천 2
군을 제대하고 인생을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으로 선택하였지요. 복학(2학년 2학기)하자 마자 전공이 프랑스어인 내가 행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3학년 1학기에 1차 합격, 4학년 1학기 2차 불합격으로 끝을 냈지요. 딱 졸업할 때까지만 하려고 했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진 졸업해도 해라, 사시를.. 하셨지만 미련없이 접었습니다. 원인은 남이 한 단권화을 따라간데 있었습니다. 내가 응용력이 있어서 기본만 이해했음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었는데.. 그냥 선배가 시키는대로 하다보니.. 물론 포기할 때 5급 공무원 급여가 낮은 것도 고려했었습니다.
취직을 맘먹고 가능한 모든 입사시험은 빼지않고 보았습니다. 기자, 대기업, 공기업 매주 시험이 없는 때가 없었지요.
무역협회, 처음 3차까지 합격한 직장입니다. 모르는 직장이었지요. 근데 한국통신 3급필기와 면접일이 겹쳤지요. 그래서 관세사에 합격한 친구에게 물어봤지요. 난 행정법 보면 한국통신은 자신있게 붙는다, 어디를 갈까. 그랬더니 서울대는 서울근무고 타대는 한국통신가면 항상 지방근무니 돈많이 주는 데를 가라 하더군요. 참 협회, 봉급 많더군요. 42만원, 삼성간 친구들 28만원 받을 때, 월급으론 문화방송과 같았지요. 다른 건 몰라도 봉급으론 동기중에 지지않더군요.
그렇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있었지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갔는데 20명 일행중에 유일하게 두번째 방문자는 볼펜 만드는 중소기업 과장이더군요. 지방대 출신이고 10살이나 어린데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안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영업을 했더군요. 참 방심하고 살았구나, 이 친구들이 실력있고, 경험이 많더군요. 싹 생각을 바꿨습니다. 난 해외출장도 못가는 3류 직장에, 본인 실력도 없다고. 영어회화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2년 먼저 행시 합격한 친구를 만났지요. 갠 친구가 준 프레스토 끌고, 술은 호프만 마시고, 연봉은 2천5백.. 못살겠다 그렇더군요. 내가 부럽다고. 나도 인정했지요. 행시? 잘 떨어졌다고..
회사에서 쫓겨난 후엔 고졸에 소파공장 생산직으로 인생을 시작한 친구, 사업한다고 떠들다 말아먹고 중국집하는 친구을 보았지요. 나보다 돈을 훨씬 벌었더군요. 아파트 말고, 소파공장 차려 월 2천만원씩 2억이상을, 중국집 2년만에 3억을 모았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인생을 시작하던 인생에 기회는 한번씩 있더군요. 대학졸업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는게 능사가 아니더군요. 인생관 싹 바꾸었습니다. 고졸이던, 대졸이던 다 한번씩 기회가 있다고.. 다시는 우쭐대지 말자고. 요즘? 시장 낚시집도 자식에게 장사 물려주고, 시골에 몇억대 집짓고, 돈 몇억씩 모았더군요. 천막집도 마찬가지고..
물론 돈이 다는 아니지요. 사관학교 동기중에 별단 친구도, 대기업에서 임원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게 명예지 그만둘때가 임박했으니 껍데기지요. 낚시집, 천막집이 직업으로 어떨지 몰라도 자식 생계까지 해결되면 평생 먹은 내 사업에 가업이 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겐 한번도 공부해라, 시험 잘 봤냐 한적이 없습니다.
사는게 돈도, 명예도 아니더군요. 살다보니. 우연이든 자신이 선택했던 직업에서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