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기에 별것도 아닌 문제일수도 있지만, 저에겐 무거운 딜레마입니다ㅠㅠㅠ
결시친을 이용하시는 많은 지혜로운 분들이 보시길 바라며ㅠㅠㅠㅠ
완전체....요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닌, 단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말하더군요.
맞습니다. 이놈의 인생. 그야말로 완전체에요.
지금까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어느 정도 살 수는 있었지만, 이 상태로 냉혹한 사회에 나가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어디까지 무너질지……. 정말 장담할 수도 없고, 부모님의 걱정도 많이 큽니다.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에게 조차도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제 상처를 인지하고 있지 않다가, 상처를 정면으로 받아들인 때는 고1 때였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단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지 잘 아시죠?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는지 모릅니다. 지능 수준과 사회성과의 괴리 때문에, 글을 쓸 때는 다 아는 것처럼 잘 쓰지만, 3살 아기 같은 행동을 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보통 때는 붙임성 좋고 밝은 아이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지 않으면 금세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이 됩니다. 저조차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은 중매로 만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셨고, 결혼하자마자 부모가 될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첫아이인 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세상 빛을 보게 된 과정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엄마가 임신중독증에 걸렸고, 자연분만을 계획했지만 제가 쉽게 나오지 않자 9개월 만에 제왕절개 수술로 저를 낳았습니다. 태어난 후 전반적으로 이상이 있어 인큐베이터에 들어갔고, 심장에 구멍이 생겨 서울대병원에 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심장 천공은 완치되고, 정상적인 발육을 보이며 성장했습니다. 18개월에 혼자 글을 깨쳐 주변 사람들에게 “ㅇㅇ이 엄마는 천재를 낳았다.” “영재교육 시켜라” 라는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 생긴 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마음의 상처는, 저의 존재를 밑바닥까지 내리꽂히게 했습니다. 상처로 인해 제 삶은 완전히 어긋나버렸고, 저는 제가 가진 나쁘지 않은 머리도 잘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관계, 인간관계도 좋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좋아해온 책. 지금 생각해 보니 약간 활자중독 증세(여러 곳에서 찾아봐도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더라고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정 단어에 집착하며 그 단어를 보면 기분이 들뜨거나 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단어는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겠더군요. 뭔가가 꼭 막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단어가 나온 책의 특정 장면만 집요할 정도로(?) 골라 봤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 서점에 들어가, 주인이 싫어하든 말든 책을 찾아 읽고, 초등학생때는 남의 반 학급문고에 어떤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교실이 빈틈을 타 몰래 읽기도 하고, 문 닫힌 교실이 비었나 확인하기 위해 귀를 대고 있다, 그 반 담임선생님께 들켜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활자중독 때문에 저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어서인지, 사회성이 부족해 또래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조차 싫어하고 언제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 동네 사람들이랑 집 앞에 모여서 놀거나 이야기할 때 저 혼자 잔디밭으로 뛰어가거나, 남의 집 문을 마음대로 열고, 여자 아기들을 귀찮게 굴거나, 괴롭히는 등 사회성 부족 증상을 보였습니다. 유치원 때 까지는 분리불안증이 심해 유치원에 가서도 엄마만 찾으며 울고 수업 중 집에 가기 위해 무단이탈한 적도 있습니다. 엄마가 남동생을 낳기 위해 저를 이모 댁에 맡겼을 때도, 친한 친척언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만 찾으며 매일 울었을 정도입니다. 매일 엄마에게만 붙어 다니는 저를, 엄마가 친구를 어떻게든 만들어 주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자꾸 실패하고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해 그때부터 엄마와의 갈등이 커졌습니다. 거의 매일 밤마다 엄마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5살 꼬마에게 잔소리를 하며 답답함을 풀었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있었던 몇 명 친구 집이나, 친척집 등 지인의 집에 가서는 남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서 싫어하든 말든 아무 물건이나 만지며 떠들고 산만한 행동을 하거나 책을 보고도 제자리에 놓지 않기, 그 집 장난감을 달라고 떼쓰거나 어른들에게 예의 없이 굴거나 특히 명절에 친척집 갔을 때 친척오빠들이 싫다는데도 계속 장난치는 등 함부로 행동해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아이들과 사이가 조금만 가까워졌다 싶으면 마음대로 행동하거나, 특이행동이 드러나 아이들과 멀어진 적도 많습니다. 이 행동들이 (비록 방법은 잘못되었지만)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들이었지만 당연히 사람들은 저를 피하고, 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도 환영받지 못해 상처를 받아 제 세계에 더 깊이 갇히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어려서 길을 걷다가도 저만의 세계에 빠질 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다니거나, 남이 보든 말든 노래를 부르고 히죽히죽 웃었고, 갑자기 잘 가다가 멈추거나 전봇대를 끌어안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시선 처리가 부자연스러워지는 등 특이한 행동이 외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뛰어다니는 습관은 조금 남아있고, 중학교 때부터 mp3을 항상 귀에 꽂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걸었고 한때는 mp3 없이 밖에 나갈 때는 불안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친구가 생겨 많이 예전처럼 거의 매일 끼고 살지는 않지만, 엄마나 주변 사람들 말에 의하면 mp3을 꽂고 걸을 때, 음악에 빠져 저도 모르는 사이에 히죽거리거나 춤추듯 몸을 흔들거리며 걷는다고 합니다. 지금 사는 곳에는 5살 때 이사 왔습니다. 10년 넘게 기쁨보다 아픔을 더 많이 준 곳입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랫집에 사는 약아빠진 아이가 저의 약점을 눈치 채고, 같이 다니는 동네 아이들 패거리와 함께 저를 바보라고 부르며 놀린 것으로 시작해, 거의 고등학교 때까지 평생 겪지 않아도 좋을 놀림과 따돌림을 겪으며 마음을 많이 다쳤습니다. 어렸을 땐 이웃의 동생들에게도 함부로 이름을 불리며 무시당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제가 자기 장난감을 만지는 것도 싫어하고, 그 집에 놀러갔을 때도 함부로 대하는데도 저는 어떤 대항도 하지 못한 채로 바보같이 그냥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제가 밖에서 놀고 있을 때 한 아이가 베란다에 붙어 “ㅇㅇㅇ 바보~” 라고 놀리기도 하고, “얘 별명은 바보다.” 라고 속닥인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놀이터에서 놀다, 소변 실수를 한 것을 문제의 아랫집 아이에게 들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과 같이 가다가, 지나가던 당시 저의 반 아이들에게 “얘 오줌 쌌다~”라고 소문내고, 주변 아이들이 야유를 보내며 “더럽다”, “난 애기 때부터 오줌 가렸는데 넌 아직도 못 가리냐.” 고 장단을 맞추며 그 아이들 뿐 아니라 지나가는 아이들에게까지 저를 놀림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랫집 아이의 단짝친구가 제게 다가와 “너 오줌 쌌지?” 란 말로 시작해, 엉뚱한 질문을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묻자, 비웃으며, “나, 너 놀리는 거야.” 라고 놀렸습니다. 지나가다가도 저를 미워하는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하며 입을 가리고 웃었습니다. 말로 놀리지 않더라도, 그들의 비웃는 듯한 눈빛과 웃음은 정말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초등학생때는 학용품이 없어져도 많이 울었고,(친구가 없어 잃어버려도 빌려줄 사람이 없어 두려웠기 때문) 수업시간에 앞으로 나오거나, 늦게 들어왔을 때 문을 세게 열고 들어오기, 쓸데없이 복도를 배회하는 등 기본적 생활 수칙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엔 위생 관념도 상당히 약했습니다. 어려서 코가 자주 막히고, 감기로 보일 정도로 유난히 콧물이 많았던 것 때문에 남들이 보든 말든 심하게 코를 흘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딱지를 파고, 귀찮다는 이유로 며칠씩 씻지 않아 아이들이 더럽다고 피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제 머리의 비듬을 발견한 아이들은, “머리에 이 있는 것 아니냐.”,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이 있으면 학교 오면 안 된다, 애들이 옮는다.” 라고 하며, 머리에 있는 많은 비듬을 머릿니로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점차 학년 전체의 아이들에게까지 안 좋은 소문이 퍼졌고, 제가 모르는 아이들도 지나가다 “쟤 ㅇㅇㅇ이지?” 라고 하면서 안 좋은 시선으로 본 적도 있습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해도 저에 대한 나쁜 소문 때문에 친구를 만드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고, 친한 친구로부터 제게 잘 해주는 아이들 중에서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저와 짝이 되는 것조차 피하고, 중학교 1학년 때는 제 짝이 된 아이들을 ‘이달의 제물’ 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제 손이 닿는 것마다 썩었다고 말하며 거의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습니다. 절 따돌리려 작정한 다른 반 약은 아이들이 찾아와, 반 앞에 붙은 학급사진에서 저를 찾아내, 사진에 침을 묻힌 적도 있습니다. 저를 아는 남자아이들은 절 정신지체아나 장애인이라 부르고, 놀리기 좋아하는 한 남자아이는 아예 “너에게는 장애가 있어, 그건 바로 정신지체야”라며 노래를 부르면서 놀렸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를 만들고 싶어 가까운 데 앉은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했지만, 반에 저를 특히 싫어하는 ‘노는 아이들’ 몇 명이 다른 아이들에게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려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그런 저를 보고 “스토커 새끼” 라고 욕하기도 했습니다. 노는 아이들도 저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런 아이들과 비슷한 번호 대였던 1학년이나 3학년 때 이동 수업 시간에 번호순으로 모둠을 지어 앉았을 때, 선생님이 보지 않으시는 틈을 타 저를 괴롭혔습니다. 중 1 때는 그 아이들이 과학실에서 책상에 굴러다니는 부러진 분필을 찾아, 당시의 인기 방송 <스펀지>를 따라하며(ㅇㅇㅇ은 □다), “ㅇㅇㅇ은 못생겼다.”, “ㅇㅇㅇ은 장애인이다.” “빛나라 지식의 별! 별 다섯 개! 지식 개발금 획득!” 이라고 책상에 쓰며 비웃고 놀리거나, 입 안의 상피세포를 면봉으로 채취해, 현미경으로 보는 실험을 할 때는 제 두피에 면봉을 문지르고, 현미경으로 보더니, “너 비듬 진짜 많다. 머리 감아라.”(이 때만 해도 이틀에 한번 머리 감았음에도 불구하고)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시험을 잘 보지 못했을 때는 반 평균 떨어뜨린다고 욕하다, 시험을 잘 봤을 때면, 엄마와 몰래 연락해서 점수가 잘 나온 것이라고 수군대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되며 시기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뉴스에까지 보도되는, 장애인 친구 괴롭히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제가 어수룩하고 만만한 아이란 걸 알고, 그런 저를 짓씹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복도에서 장난을 가장해 저를 괴롭히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 볼 때까지 칸막이 위로 올라가 실실 웃으며 핸드폰으로 사진까지 찍기도 했습니다. 제가 수업 시간에 작은 실수를 해도, 체육시간에 공을 잘 다루지 못해도 ‘미친년’ 이라 속닥이고, “ㅇㅇㅇ 진짜 못한다.” 비웃고……. 정말 제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입에서 짓이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1 말에 갑자기 아이들이 제게 살갑게 대해주더군요. 교실에서 헤드뱅잉을 시키거나, 중2 때 복도에서 춤을 춰보라고 할 때도 아무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저 친구로 맞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을 뿐, 오히려 제게 잘 대해주는 아이들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저의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뭔가 아이들을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저는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방을 갔을 때 저를 춤추게 했습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저는 그냥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만 즐거워했습니다. 이 일이, 사실 저와 놀아주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유연성이 떨어지고 동작이 부자연스러워 춤을 잘 추지 못하는 것과,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라도 친절하게 대해주면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를 놀리고 자기네들끼리 뒷담화를 하는 따돌림의 또 다른 형태였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안 뒤, 정말 비참하더군요……. 저는 이 정도로 순진하고 어수룩한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중학교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고,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친구 관계도 좋아지지 않아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는 습관이 더 심해지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아 담임선생님과 마찰이 일어나 하루하루가 힘에 부쳤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제 고충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자꾸 제게 상처를 주게 되고, 글쓰기 능력마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성적은 더 떨어지고 인문계 고등학교는 제가 다닐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고로 편입시켜 달라고 매일 부모님과 싸우고, 2학년 때는 아예 자퇴하고 2년 꿇어 예고에 재입학하겠다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처럼 대놓고 따돌리는 아이들은 적은 편이었으나 제가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해 “아, 씹.”, “재수 없다.” 라며 수군거리거나, 수준별 수업 때문에 다른 반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을 때는 자는 습관 때문에 나쁜 소문이 더 퍼졌습니다. 다른 반 아이들 몇 명도, “쟤 뭐하는 애니?” 라고 나쁜 시선으로 보고, 한번은 제가 가장 수준 높은 A반에 들어갔을 때, 수업이 끝날 때 쯤 잠깐 존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이 완전히 끝난 후, 그 반 아이들이 몰려와 저를 보며, “얘 누군지 아느냐? 8반 장애인이다.”, “얘가 A반이면, 우리가 얘보다 못한 거냐?” 라고 수군거리더군요. 제가 얼마나 못났으면, 그렇게까지 보인 걸까요? ‘노는 아이들’ 수준은 아니나, 조금 약은 아이들은, 제가 수업시간에 벌칙 받을 때, 선생님이 안 보시는 틈을 타 손을 내리는 꼴도 보지 못해 그럴 때마다 고자질하거나,(친한 친구는 모른 척 넘어가는 것들이) 제가 벌을 받고 선생님 뒷담화를 할 때도, “장애인, 지가 잘못한게.” 라며(자기네들도 뒷담화 다 하면서)욕했습니다. 그 아이들 중 한명에게는 1년 동안 괴롭힘 당하기도 했습니다. 학원에서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식피식 웃는 저를, 가르칠 가치도 없는 아이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학습지를 하거나, 수학 과외를 받았을 때도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 “이렇게 해선 학원도 못 보낼 것 같다.” 란 반갑지 않은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어려서 다닌 피아노 학원에서는 제가 선생님들에게 악의를 갖고 행동한 적이 없었지만, 무시나 냉대를 받았습니다. 저를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를, 저와 함께 있을 때 몇 번 본적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장난하는 거야.”, “넌 바보 아니지? 그럼 된 거야.” 라며 관심 없다는 듯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우스운 상상을 하다 웃음보가 터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왜 웃는 거야, 왜!” 라며 맞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한 남자아이의 손을 연필에 찔리게 하는 사고가 있은 후,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다닌 영어 공부방 아이들은, 방과 후 놀이터에 저를 데려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등 괴롭혔습니다. 놀아주는 척 하며 제게 돈을 요구하고, 돈을 가져오지 않은 날에는 저를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한 아이가 절 따로 불러 15층 옥상에 데려가 죽이려고까지 협박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저보다 작은 체구였음에도 저는 그저 당하고만 있었고 정말 제가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영 강습을 받을 때, 가까운 아이들과 다녔던지라, 그 아이들과 친한 아이도 절 알게 되고, 셔틀을 기다리는 동안 저를 비웃으며 놀리거나, “너 학교에서 왕따당한다며?”라고 장난처럼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이모와 같이 간 적이 있었습니다. 수영장은 지하 2층이고, 카운터가 지하 1층이라 창으로 수영장을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모가 거기서 구경을 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 말씀 듣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멍하니 서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줄을 빼앗기는 것까지 보셨습니다.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쟨 왜 저렇게 해?” 라며 수군거리는 것까지 보시고, 이모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충격 받으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닌 학원인 영어학원에서는, 나름 재밌게 다니긴 했지만, 집중력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고, 더 이상 못 가르치겠다는 말도 몇 번 들었습니다.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저의 이상행동에 대해 수군거리고, 덩치가 크다며 외모적으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고1 말에 학원에서 말실수를 해버려, 그만 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끊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엄마에게까지 전해졌고, 여러 번 학원에서 쫓겨났던 것 때문에 지친 엄마는 결국 폭발했고, 회초리로 절 때리며, 전화도 걸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아닌 저보고 직접 학원에 전화를 걸어 끊으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하필 그날, 인터넷을 하다 우연히 소위 ‘엄친딸’ 이라 불리는 여자를 검색하게 되자, 제 모습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고, ‘나 같은 잉여도 없구나.’ 란 생각에 모멸감으로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녔던 동네 미술학원. 어려서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또 잘 그려서 당시 애니메이션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미술 전공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방식대로만 그림을 그려 실력이 늘지도 않았고, 선생님과 마찰이 생겼습니다. 저는 저대로 풍경화나 데생보다 만화를 더 그리고 싶었는데, 자꾸 “만화 같은 그림 그리지 말라”고 하는 선생님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미술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해 “더 이상 아이를 못 가르치겠다.” 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교육비를 더 드리겠다고 해도, “이런 아이는 돈 더 줘도 싫다.”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저의 상처 때문에 한때 가졌던 꿈까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 상처가 무섭습니다. 지금 가진 꿈도 무릎 꿇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태가 이렇다보니, 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아이들에겐, 저의 외모마저 트집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2 때, 같은 반 발레부 아이들에게 외모에 관해 놀림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보고 예쁜 척을 하지 말라며 “네가 뭐가 예쁘냐. 눈도 찢어지고 입술은 두터운 게…….”, “(기억은 안 나지만 외모에 대한 이야기인 듯)발레 선생님은 너 같은 애 싫어해.” 라고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보통 여자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제 모습을 조금 미화해서 그리는 것조차도 “예쁜 척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따돌리고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발레에 대해 동경을 갖고 있어서 추후에 신청하려 하자, 발레부 아이들은 제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기존반으로 올라가는데 너만 기초반이야.”, “발레복이랑 발레슈즈 다 사야해.”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제가 생일을 맞아, 반 아이들을 다 초대해서 놀 때도 그 아이들은 “ㅇㅇ아, 발레 선생님이 우리 왕비 같다고 하셨어. 넌 하녀고. 우린 공주 할 거니까 넌 하녀 해.”라고 놀아주는 척 하며 은근히 외모를 비하했습니다. 초3때 안경다리에 얼굴을 긁혀 상처가 났을 때,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그것을 발견하고, “한쪽만 상처 나면 심심하니까 다른 쪽 안경다리로 이쪽도 상처 내줄까?”, “얼굴 다치면 어떡해. 나중에 미스코리아 나갈 거잖아. 그렇지?” 등 다소 황당한 질문을 하셔서 대답하기 곤란해 예의상 반응이라도 보이려고 고개를 끄덕인 것 때문에, 그때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주제를 알아야지 무슨 미스코리아냐. 역겹다.”라고 수군거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과 제가 어떤 관계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눈치 없이 미스코리아 이야기를 꺼낸 선생님이 어린 마음에 그렇게 미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주변에 예뻐서 주목받는 아이들이 많아, 많은 아이들이 저의 외모를 예쁜 아이들과 비교하며 놀리고, 예쁜 아이 중 한 명이 절 따라다니며 제 딴에는 행동을 고쳐 준답시고 절 함부로 ‘장애인’, ‘(당시엔 까무잡잡해서)흑인’이라 하며 오히려 상처만 주고, 노트에 “ㅇㅇ아, 넌 정신병원 가봤니?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장점이 특별하지만 넌 단점이 특별해.”라고 쓴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앞머리를 내리거나 매직파마를 해도 “재수 없다”, “쟨 얼굴이 되니까 파마해도 예쁘지만 넌 얼굴이 딸려서 해도 안 된다.”, “넌 치마도 입지 마라.”며 꾸미는 것조차 눈엣가시처럼 보았습니다. 지금도 예쁜 옷과 신발, 액세서리 같은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막상 착용하려 하면 왠지 저에겐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예쁘게 꾸민 적이 별로 없습니다. 중1 때는 “(예쁜 아이들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못)생길 수 있냐”, “원시인 같이 생겼다.”, “넌 못생긴 장애인인데 어떻게 자신감이 넘칠 수 있냐.”, “(작은 눈을 보고) 눈 떠. 왜 눈 안 뜨고 다녀.”, 라는 말을 듣고, 앞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좁으니까 앞으로 좀 가라”, “내가 더 좁다. 너 가까이 있어 힘드니까 뒤로 가봐라.” 하면서 뚱뚱한 몸매를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방과 후 도서관 앞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외롭게 혼자 올라가, 성형수술에 관한 것을 몇 시간 동안 찾고, 집에 돌아가선 성형수술 이야기만 꺼내며 부모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었음에도, 엄마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상처가 더 컸던 저를 심하게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소위 말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먹는 것을 밝히면 정말 안 좋게 보이기 마련이죠. 제가 살이 쪘을 때, 자율배식대에서 고기만 마음껏 가져다 먹는 저를 보며 다른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먹을 것만 안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없어 혼자서 밥을(아니 맛있는 고기반찬만) 거의 ‘폭풍흡입’ 하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는지, “그만 처먹고 일어나라.”, “쟤 밥 혼자 먹어서 이상한 앤 줄 알았다.” 라는 등 안 좋은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었습니다. 동생까지 “이 꿀꿀아.” 라고 놀리기까지 했고, 엄마는 다른 집에 가서도 먹을 것을 밝히는 저를 보며, “배 나온 거 봐.” “네 배 나온 것만 봐도 짜증나.” “그렇게 먹으니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만 찌지.” 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초6 때는 여름휴가 전날에, 놀러가서 입을 옷을 힘들게 고르면서도, “왜 이렇게 촌스럽냐.”, “덩치가 크면 정신이라도 커야지”, “가슴만 커서 젖소부인이네.(참고로 저는 큰 가슴이 전혀 싫지 않습니다.)”라고 싫은 소리를 하며 상처를 줬습니다. 중1 때는 살 때문에 교복이 맞지 않아 엄마와 매일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교복이 조금이라도 조이면 살이 찐 것만 같아서 교복을 몸에 꼭 맞는 사이즈로 예쁘게 입어본 적이 없고, 거의 모든 옷을 언제나 헐렁하게 입고 다녔습니다. 살짝 만지기만 해도 심하게 간지럼을 탈 정도로 피부 감각이 유난히 예민한 편이어서, 조금이라도 까슬까슬해 촉감이 좋지 않거나, 타이트한 옷은 거의 입지 못해 멋을 내고 다니지도 못합니다 . 여자로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남자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여자 아이로 보이기는커녕 무시당하고 놀림 당했던 일입니다. 남자아이들은 저를 못생겼다고 “그렇게 얼꽝이어서 누가 너 같은 애를 좋아하냐, 병신.”이라며 놀리고, 급식 시간에 자율 배식대에서 퍼 온 고기들을 게걸스럽게 먹는 저를 보며 “돼지” 라고 놀리는 남자아이를 쫓아가 난투극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영어 수업 중에 캐릭터가 생일파티에서 폭식하는 장면이 나오자, 반 남자아이들이 “유은샘 닮았다.”라고 말하며 반 아이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고학년 때, 예뻐서 주목받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같은 반 친구 중에서도 남자아이들에게 고백 받는 여자 아이들이 늘어갔습니다. 수학여행에서 같은 반 친구가 인기 많은 남자아이에게 고백 받는 모습을 볼 때나, 사물함 위에 놓인 곰 인형이, 절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전 앞으로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다며 많이 속상해했고, 일기장에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적어,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걱정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이성 교제를 하는 아이들도 늘게 마련이죠. 가까운 아이들이 남자친구를 자랑하거나, 100일 기념일을 챙기는 모습을 볼 때,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는 것을 볼 때, 특히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날이면 전 죽을 때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상하게도 비참해지더군요. 절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절 걱정하는 엄마에게,(지금 이대로라면) 어떤 남자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상처받은 적도 있고, 중 3때 아이들이 “너 같은 애는 남자애들이 네 가슴 크기 보고 절대 흥분 안 해, 병신아!” 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오락 프로에서, 못생긴 여자가 남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모를 조롱당하는 장면을 볼 때면 그게 제 미래 모습일 거란 생각에 괜히 불편해지고 영어 학원에서 남자선생님이 좀 늘씬하고 예쁜 아이를 보며, “○○가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지?”,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서 인기 좋을 텐데.”라고 하며 칭찬하거나, 제가 아닌 다른 아이를 보고, 농담조로 “어이구, 넌 조그마해가지고~” 라고 한 것에도 제가 외모 때문에 차별받는 느낌이 들어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어려서 남동생이 예쁜 여자 아이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저는 예쁘지 않아 남자에게 선택받지 못할 생각이 들어 괴로워졌고, 동생이 사춘기가 되어 한창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때가 되어, TV에서 못생긴 여자를 보고 “예쁘지도 않은 저게 여자냐.”, “여자는 예뻐야 한다.” 라고 한 말로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제 상처로 인해, 엄마와 저는 평범한 모녀 관계로 지내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모녀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 되는 것도 감히 꿈꿀 수 없었습니다. 첫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키우기 힘든 아이란 걸 알자, 많이 불안하고 당황했을 엄마는, 제 상처에 대해 창피해했습니다. 어려서 놀이치료를 받으러 갈 때, “다른 사람들이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친척집 간다고 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조금만 보통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해도 불안해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라고 기다렸지만, 별로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체벌까지 하셨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상처를 많이 받아, 스트레스성 허리디스크로 몇 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떻게든 제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놀이터에서 친구 이름을 물어보고, 이사 와서는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국립중앙과학관이나 꿈돌이랜드도 함께 갔지만, 못난 저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짜증을 부리거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웃이 집에 놀러오는 것조차 싫어하고, 동생 돌잔치 때는 아빠의 대학 동창 식구들을 초대해서 며칠간 저희 집에서 잤을 때도, 제가 계속 짜증내고 떼쓰고, 벽에 걸린 동시를 읽어보란 손님들 말씀에 쑥스러운 마음을, “싫어! 싫어!” 라고 표현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엄마가 “엄마는 널 사랑했지만,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하실 정도로 많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 계산 능력이 조금 떨어졌던 것 때문에,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저를 보며 엄마는 많이 답답해하셨습니다. 사회성이 떨어지면 공부라도 잘해야 나중에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괜찮은 머리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쓰지 못하게 된 딸이 안쓰러워서 그랬던 걸까요? 문제를 잘 풀지 못할 때마다 엄마는 조급한 마음에 저를 혼내고, 그 아이들이 한 것과 똑같은 욕(바보, 미친년, 또라이, 미련 곰퉁아리 등)을 하고, 심하게 때리기까지 하다 결국 코피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뮤지컬을 보고 온 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아킬레스건이었던 시간 계산 문제를 풀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가출한다고 철없는 소리를 한 것 때문에 밤 12시에 집 앞에서 덜덜 떤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친구가 왔을 때 학습지를 풀다, 친구가 보는 앞에서 절 때린 적도 있습니다. 저는 채점하기 전부터 무서워 울거나 저녁이 되면 엄마의 화를 막아줄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고, 아빠가 일이 생겨 늦게 오시거나 상갓집이라도 가면 심하게 불안해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이 기뻐하다가도, 한번 쪽지시험을 잘 보지 못한 적이 있었을 땐, “선생님께서 공부 잘한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네.”라며 엄청난 실망감을 비쳐 서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놀 때 끼워 주지 않거나 바보라고 놀렸을 때도, 처음에는 감싸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직접 만나 절 왜 놀렸냐고 묻고 온 후에는, 오히려 엄마가 지적했던 이상행동 때문에 놀림을 받았단 걸 알게 되었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속상했던 엄마는 가해자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제게 화를 냈습니다. 학습지 선생님이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ㅇㅇ이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행동을 했다.”, “ㅇㅇㅇ는 이상하다.”, “ㅇㅇㅇ는 괴짜다.” 라고 귀띔까지 하고 온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자, 정말 따돌림을 당하고 가족에게 조차도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제 상처를 인지하고 있지 않다가, 상처를 정면으로 받아들인 때는 고1 때였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단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지 잘 아시죠?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는지 모릅니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만 당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엄마에게 괴롭힘 당한 사실을 말해봤자 더 불이익만 당한단 생각에 비밀만 생겨 엄마와 점점 대화가 줄었습니다. 제가 따돌림을 당한 것을 알았을 때, 절 감싸주기보단 나쁜 습관이나 이상한 행동을 지적하는데 바쁜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저를 놀린 아이들이 이해가 간다고 말씀하셨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고, 엄마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제가 너무 미웠습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엄마의 걱정은 더 커지고, 나이 먹으면 좋아지리라 기대했던 엄마의 소원도 무너뜨려가고 있었습니다.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했을 때도, 학원이나 학교에서 문제행동 때문에 전화가 왔을 때도,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언제나 사회성이나 문제행동에 대해 늘 지적하셨고, 엄마가 그것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불안은 특히 나이를 먹는 지점인 연말에 더 심해졌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에는, 이대로 행동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설명하고 아이들이 절 놀린 것은 당연하단 듯 심한 말까지 하며 불안감을 표출했습니다. 초6때, 영어 학습지를 할 때였습니다. 단어 숙제를 1주일째 매일 하기 귀찮아, 선생님이 방문하시는 날 학교에서 다 마무리 짓기로 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전날,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내일 학교에서 할 거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날그날 숙제를 하지 않은 것도 ‘죽을 죄’ 라고 여겨, 결국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선생님과 마찰이 있는 것을 걱정하던 엄마는 그날 결국 폭발했습니다. “네가 영어를 잘하냐? 공부를 잘하냐? 성격이 좋냐? 잘하는 게 뭐가 있느냐”, “오늘 학부모총회인데 왜 안 간 줄 아느냐? 다른 엄마들이, 저 사람은 왕따 유은샘 엄마라고 수군거리니까 창피해서 그랬다.”, “그래서 따로 선생님 만나러 갔더니, 선생님도 널 보고 정신연령이 6학년이 아니라고 하신다.(물론 선생님은 나쁜 뜻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닌 듯.)” 물론, 숙제를 미룬 것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하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엄마가 제 마음을 몰라준 것도 미웠지만 엄마가 저 때문에 창피해한다는 것과, 특히 저와 엄마에게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그 ‘다른 엄마’들이 오히려 엄마를 보고 수군거린다는 것이, 가해자가 더 당당한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아셨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이 상처를 다뤄야 더 상처받지 않을지에 대해선 잘 몰랐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보다 잘못된 행동과 그것을 고치려는 것에만 치중했고, 저는 저대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엄마와의 마찰이 더 심해지며 엄마에 대한 상처가 커졌습니다. 전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다는 걸 감추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고 엄마와 저의 신뢰에도 금이 갔을 정도입니다. 제가 조금 커서, 제 문제점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이렇게 힘들게 살도록 낳아놓고, 욕하고 개 패듯 패면 다냐.”, “난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럴 거면 날 왜 태어나게 했냐.”, “이렇게 반병신같이 살 바에야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고, 돈 많은 집 애완견이나 한밭수목원 나무로 태어날 것 그랬다. 그럼 사랑받고 나랏돈으로 관리받기라도 할 거 아니냐.”라고 엄마께 상처 주는 말까지 했습니다. 엄마에게 혼나고, 늦은 밤 A4용지 3~4매 분량의 편지를 써서 상처주고, 엄마를 원망하는 문자로도 상처를 줬습니다. 그래요. 피해자 코스프레도 아니고 이게 뭔가요...ㅠㅠㅠㅠ 물론 제 잘못도 있습니다. 어려서는 제 이상행동의 이유를 솔직히 말하게 되면, 뭔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생각에 그 이유를 말한 적이 전혀 없었고, 아이들이 따돌려도 엄마한테 혼나게 될까봐 무서워 나중에 선생님 등의 제3자를 통해 알게 했으니까요. 초등학생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많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했던 것도 원망스러웠고(특히 수학과 영어), 잘하는 건 칭찬해준 적은 별로 없고, 자꾸 약점만 보는 엄마가 너무 미웠습니다. 심지어, 엄마가 저를 사랑하고 걱정해서 꾸중하는 모습과, 저를 따돌리고 욕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함께 오버랩 될 정도였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기술이나 배워라” 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상처 때문에 평범한 딸들처럼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딸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 가족은 남들처럼 화목하게 지낼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사이는 좋지 못한 편입니다. 엄마한테 혼날 때마다 절 감싸주던 아빠도 언젠가부터 제게 화내고 짜증내는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제가 엄마한테 혼나고 하소연할 때도, “네가 그런 일 안 당하려면 잘해야지.”라고 답답해하십니다. 다른 평범한 누나들처럼, 동생을 챙겨준 적도 별로 없고 동생을 꽉 잡지도 못한 채로 오히려 제가 치여서 사는 편입니다. 어려선 저와 잘 놀았던, 중3 올라가는 동생도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점차 저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한 번도 누나 노릇을 해주지 못했고, 집안 분위기를 흐려놓은 저를 원망하는 눈치입니다. 저도 잘 알고, 머리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들처럼 제가 정말 싫어서 욕하고 때린 것이 아니라, 절 사랑하고 이런 제가 안타까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임도 잘 압니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자꾸 더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제가 못나서 그런 걸까요? 제가 잘못해놓고도 오히려 부모님만 원망하는 못된 딸이어서 그런 걸까요? 분명하게 말하지만, 절 무시하는 아이들에게서 들었던 욕들을, 남들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듣고 싶진 않습니다. 그건 2차 피해나 다름없으니까요. 작가라는 분명한 꿈이 있음에도, 상처에 발목 잡혀 제 능력을 맘껏 펼치지 못해, 꿈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아이 취급받는 싫었습니다. 제가 일전에 잘못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까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학교 그만두게 해줄 테니까 공부 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라.”, “너 같은 게 무슨 화려한 걸 꿈꿔. 꿈 깨.” 라며 섬뜩한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싫은 소리를 듣고, 사람 많은 기차 안에서 창피하게 울다 “울지 마. 넌 그 자체로 창피해. 아줌마들에게 너 보이는 것도 창피하고. 지금 우는 건 말할 것도 없어.” 라며 상처받는 말을 더 듣고 싶진 않았습니다. 저도 정말 가족, 특히 엄마와 잘 지내고 싶습니다. 한번은, 고1때 친가 친척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온 바로 다음날. 학교에서 자는 습관과, 눈치 없이 말실수한 일 때문에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고, 엄마한테 심하게 혼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속상했던 엄마는 제가 휴가지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까지 끄집어내며 “그래가지고는 무슨 남자친구를 사귀어. 그렇게 어수룩해선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지.” 라고 하며 제게 상처 주는 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절 놀리던 남자아이들이 생각나고 그런 남자들에게 죽을 때까지 이용만 당할 것을 상상하니 얼마나 끔찍하던지요……. 그 순간, 콘도 방에서 작은고모와 친척언니가 살갑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친척언니가 당시 임산부였음에도, 자신의 엄마가 휴가를 가니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들게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두 모녀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하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저와 엄마는 나중에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우울해졌습니다. 정말 평범한 모녀관계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친구 같은 엄마와 딸로 하루만 살아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셨나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거의 매일 무시당하는 폭언을 겪으며 살고 있다면……. 꿈이 있지만, 꿈을 꾸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것을 당당히 누리지 못한다면……. 정말 사회라는 것이 무섭고, 세상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지다시피 한 기분입니다.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태어나서 바보나 정신지체, 장애인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께서 아이들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저를 ‘마음이 약한 친구’라고 하신 뜻을 알았을 때, 어려서 그저 놀이방인 줄만 알았던 놀이치료실의 ‘치료실’ 이란 이름이 어떤 뜻인 줄 알았을 때,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정말 부모님께서 지적하시거나,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모멸감이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놀이치료, 약물치료, 최면치료……. 등등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소아정신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Y대 병원의 모 교수님께도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나아진 것도 없이, 많은 돈만 낭비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이유로 돈을 쓸 필요도 없었을 텐데, 제 상처가 저희 집 재정까지 먹어버린 것 같아 속상합니다. 저는 IQ가 130이고, 모 대학 병원 선생님께서도 몇 명중에 손꼽히는 머리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 말이 단지 자기자랑으로만 느껴지시나요? 네, 맞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조금 좋으면 좋았지, 결코 머리가 모자라지도 않고 꿇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머리 모자란 사람처럼 어수룩하게 행동하고 바보, 미친년, 반(半)병신처럼 살아야 하는 제가 저도 답답합니다. 예전에는 손목에 문구칼로 상처를 내거나, 손목을 그은 모양으로 빨간 펜으로 선을 그어 선생님을 경악케 한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반의 늘씬하고 긴 아이를 보고 갑자기 제 체형이 싫어져 가슴을 손톱으로 긁어, 지금도 흉터가 남을 정도로 상처를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것을 빼앗겼다는 박탈감이 심해,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엄친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자기 학대를 즐기는 것도 정말 질릴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서, 항상 ‘내가 이 상처가 없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낫게 살고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상처가 나으면 저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까 생각하며 낫고 싶은 마음만은 크지만, 이상하게도 부모님이 제 행동을 지적하면 왜 자존심부터 상하고 모멸감부터 느껴지는지, 왜 저를 괴롭힌 아이들이 생각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정말 평범한 사람들처럼 많은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이나 미니 홈피에 신나게 올려보고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 싶습니다. 상처의 흔적 하나 없이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사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저의 꿈은 작가입니다. 어려서 유난히 활자를 좋아해 책과 이야기를 가까이한 것과 저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 덕분에 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인 셈입니다. 초6때 담임선생님께서 열심히 일기를 쓰는 저를 보고, 그동안 글쓰기를 어려워해 잘 쓰지 못했던 저의 재능을 발견해 주셔서 가지게 된 소중한 제 꿈입니다. 그동안 귀찮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3번 이상 일기를 쓴 적이 없었고, 일기를 쓰지 않는 저 때문에 모둠 전체가 불이익을 받아 욕먹으면서도 쓰지 않았던 일기지만, 그때처럼 신나게 글 쓴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상처가 이 꿈마저 무릎 꿇게 하지 못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중2때 글쓰기부에서 선생님께 열심히 하는 아이라고 인정받고, 제가 쓴 글을 읽고, 후배들에게 박수를 받았을 때 그렇게 기쁠 수 없었습니다. 교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보고 저를 괴롭힌 아이들까지 제 소설을 재밌게 잘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중2때 수업시간의 <우리말 겨루기>게임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어휘력이 좋은 제가 언제나 게임의 에이스였고, 어느 팀에서나 저를 영입하고 싶어했습니다. 게임에 이겨 같은 팀의 아이들에게, 상품인 초코파이를 줄 수 있고 아이들이 절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무시당하고 따돌림 당했던 제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제 유일한 재능을 살리는 일, 글쓰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사회성이 떨어져 간단한 아르바이트조차 어려운 제가 일반 기업 등 평범한 직장에서 적응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문학 같은 예술계에서는 오히려 이런 특징과 상처의 경험이 도움이 되어 줄 거라 생각되어 선택한 길입니다. 실제로 저의 고충을 이해해주셨던 중고등학교시절 담임선생님들도, 멋진 작가가 되라고 응원해주셨고, 고2때 담임선생님은 저의 이런 특징이 나중에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작가란 직업은 제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꿈을 제대로 사랑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뚱뚱한 몸에 심하게 콤플렉스를 느껴 중1때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살을 뺄까 궁리하다, 반에 무용 전공하는 아이(절 괴롭혔던 아이 중 하나)가 있어 무용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용으로 몸매가 예뻐진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지더군요. 그때 초2 때 발레만 했어도 그렇게 뒤룩뒤룩 살찌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제가 따돌림 당해 발레부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날 괴롭히는 무용 전공하는 애는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데, 나는 왜 쓸데없이 책이나 좋아해(활자 중독이 생겨) 이 모양일까……. 여러 가지 안 좋은 생각이 들다 못해, 작가를 하게 되면 앉아서 글만 쓰게 되니까 더 살이 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려서 그렇게 좋아하는 책조차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그만두고, 작가란 꿈을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엄마도,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제가 자꾸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책도 읽지 않는데 무슨 작가냐.”, “작가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등, 제가 꿈을 말할 때마다 무시했습니다. 그럴수록 꿈을 무시하기만 하고,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고, 제 꿈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정말 미웠습니다. 상처에 발목을 잡혀 꿈까지 꿀 수 없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리고 미술을 할 때처럼, 다시 이 분야에서 쫓겨나고 환영받지 못하게 될까봐, 제 꿈을 잃게 될까봐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놓쳤을 때,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하고 과잉행동을 보였습니다. 제 상처는 저에게 있어 창살 없는 감옥이자 보이지 않는 족쇄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저의 세계를 견고하게 쌓아 더 고립되고,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명절이나 집안 행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일부러 활발한 척하며 속된 말로 ‘나대기도’ 하면서 오히려 더 무시당하는 악순환만 반복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저의 세상에 빠지고 싶어 이어폰을 끼고 다니지만, 오히려 이어폰 끼고 다닐 때, 춤추는 듯 걷는다든지 히죽거린다든지 더 이상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커가며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이 제게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버린 상처가 저를 공격하는 느낌이 듭니다. 저를 괴롭힌 아이들 중에서는 자기 분야에 탁월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무용을 전공해 대회에서 1위를 했거나, 예고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로 실력을 인정받은 아이, 특별반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 저를 괴롭힌 아이들이 저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 이유 없이 억울합니다. 저도 이런 상처가 없었다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좋은 위치에 설 수 있었을 텐데……. 정말 갈수록 자괴감만 커져 갑니다. 여러 번 방황을 하다, 고 2때 겨울방학에는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마음잡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도 능력에 비해 그것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저를 안타까워하셨고, 저도 제 능력을 써서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그것이 저에 대한 예의란 생각도 들어서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서울 소재의 모 유명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목표로 잡았고, 처음에는 열심히 하려 노력했지만, 어려서부터 절 ‘바보’라고 각인시킨 낙인 때문에 갈수록 의지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자기소개서라도 잘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 란 순진한 생각에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제가 상처받았던 일 등 저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히 표현했는데……. 성적은 좋지 않았어도 자기소개서에 썼던 것들은 다 진심이었는데……. 수업 중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과잉행동을 보이는 저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런 저를 혼내는 엄마도 모두 미울 정도였습니다. 논술 전형에도 지원했지만, 결국 답지의 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이런 대학은 수재들만 오는 것이다.”라고 했을 때, 너무 큰 꿈을 가졌던 제가 그 순간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보통사람들 다 누리는 평범한 생활조차 꿈같은 일인 제게, 너무 무리한 목표였을까요? 수재라……. 엄마가 그 말씀을 하셨던 순간, 제 IQ가 떠오르더군요. 어려서 학습지를 잘 풀지 못할 때, 아빠가 “IQ값도 못하냐.”고 답답한 듯 말씀하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서 봤던 책에서 지능지수에 따라, 백치부터 천재까지 지능을 급수로 매겨놓은 도표가 나왔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130부터 140까지는 ‘영재’ 혹은 ‘비상한 영재’라고까지 불리더군요. 왜 저는 이런 상처를 갖고 태어나, 제 타고난 능력도 활용하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좋지 못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아마 제게 정신적 문제가 없었다면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나름 잘 어울리고, 상처받는 일도 없이 제 능력을 맘껏 펼치며, 엄마가 말씀하신 ‘이런 대학에 올 수 있는 수재들’ 과 거의 비슷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도 답답해 여러 번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도서관에서 심리나 놀이치료에 관한 책도 찾아서 봤습니다. 모 두뇌클리닉에 온라인 상담을 해봐도, 인터넷 질문방에 저의 증상에 대해 질문해 봐도, 증상이 너무 다양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얽혀 있을 수 있어, 자가진단조차 어렵다고 하더군요. 보통, 이 정도로 상처가 심할 정도면 어렸을 때 심리적 충격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일을 겪은 적도 없습니다. 엄마가 임신 중독증에 걸렸던 것, 아기 때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것, 심장 천공이 생긴 것, 두세 살 무렵에 엄마가 유산을 경험한 정도? 부모님께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는지, 어려서 충격 받거나 크게 아팠던 적 있는지 여쭤 봐도 예전부터 그랬다고만 하시고 잘 알려주시진 않으십니다. 그런 일이 없었을 수도 있고, 있더라도 부모님께는 상처였을 테니까요. 저를 많이 걱정하는 친한 친구가, 제 행동이 상처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고 알려줬습니다. 저희 반에도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사람 심리에 대해 조금 잘 아는 편이라, 직접 물아보진 않았어도 그들의 습관이나 말투를 통해 대충이나마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아이들 중 한명도 저처럼 따돌림 당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좀 남자다운 아이, 유아적이지만 귀여운 아이, 활발하고 성격 좋은 아이로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쌓여 있기에, 이렇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요? 얼마나 많이 상처를 받았으면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이 힘들어하는 걸까요? 다행히, 고3때 첫 짝이 제게 마음을 열어준 것 덕분에, 지금은 친한 친구가 몇 명 있는 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 먹기, 저녁시간에 떡볶이 사 먹기, 친구 집에서 즐겁게 놀기 등 그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해 볼 수 있었다는 게, 이 평범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들 덕분에 외톨이로 마침표를 찍을 줄 알았던 제 초중고 시절의 끝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조차 받아들여주지 못한 제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게 가장 좋았습니다. 한 친구는,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속상한 마음을 잘 추스르지도 못해 무개념으로 보일 정도였던 절 보고도,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해줬고,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다고 털어놓자,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널 놀리는 아이들이 나쁜 거다.”, “자기만의 세계가 없으면, 오히려 나중에 더 외롭다. 차라리 너처럼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이 더 낫다.”, “나중에 작가 되어 책 내면, 친구들에게 다 자랑하고 싶다.” 라고 위로해줬습니다. 친구가 생기긴 했지만 아직 제가 상처에서 완전히 놓여난 것도 아니고, 아직도 저를 미워하고 뒤에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가면 제 친구들처럼 이해심 많은 아이들보다 저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사회가 냉정하니까요. 그러나, 그 친구들을 보면, 상처가 완전히 고쳐진 제 모습이 자꾸 보입니다. 그 친구들 외에도, 제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성격이 좋고, 인상도 좋다며 칭찬해 주신 한 이웃집 아주머니나, 중2 때 겨울방학에 지인들과 함께 스키장에 갔을 때, 붙임성이 좋다고 절 귀여워해 주신 아주머니들, 제가 똑똑하고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들을 보며 제 상처가 치유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매일 상상합니다. 지금 어떻게 사냐구요?? 살, 뺐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친구들에게 몸 좋다는 소리 많이 들을 정도구요. 그런데 자신감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학 2학년인데, 1학년 중간 때 과수석 한번 했을 정도고, 1학년 전체석차로도 3등입니다. 28명중에요.(정원이 적은 과입니다) 친구관계?? 위에서 열거한 것보단 나아졌다고는 할까요..... 그런데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은 것 같네요. 너무 아픕니다. 아직도 그 흔한 남친 한번 사귀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놓여나고 싶습니다. 상처를 곱씹으면서 가슴 아파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이나마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상처를 받고 남에게 또 다시 상처 주는 그런 삶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이 다가와서 그런가...월초부터 울하네요ㅠㅠㅠㅠㅠ 그냥 중2병 못 고친 슴한살의 철없는 하소연이라고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