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은 의미를 가진다.
화려한 네온 사인 아래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땅을 보고만 걸어야 한다는 것, 멋진 옷과 신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내색도 못해보고 감정을 속으로 삭히면서 짝사랑으로 남겨야만 한다는 것, 사람들 무리 속에서 눈치보는 무수리역할을 해야한다는 것,
못생겼으니 공부라도 잘하고 성격이라도 좋아야한다는 말을 들어야한다는 것, 사진을 찍을 때마다 식은 땀을 흘리며 걱정해야한다는 것.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이것들이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일 것이다.
거울을 보며, 사진을 보며 외모에 대한 저주를 퍼붓다가도, 이정도면 괜찮지, 하는 자기 위로로 또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못생긴 외모로도 살아지긴 하지만, 피해망상인지 열등감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을관계에서 늘 조금 뒤떨어진 을의 입장에 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해도 카페나 레스토랑 알바는 늘 연락주겠다는 말만 듣고 붙어본 적도 없고,
학창시절 남들 다하는 청춘사업인 연애에도 늘 멀찌감치 동떨어져서 공부만했더랬다.
취업할 때나 하다 못해 새롭게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 서면 괜스레 움츠려들곤했다.
하지만 마음이 고와야지 미인이지라는 말을 정작 나조차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나 스스로도 너무도 명백하게 깨닫고 있다. 아름다운 것에 눈길이 먼저가고, 숭고한 감탄마져 자아내게 되는 것은 인간의,
아니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그러하기에 내 외모가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완벽주의에 가까운 나의 성격에는 외모가 굉장한 스트레스로 와닿는다. 학벌, 직장정도는 어느정도 후천적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러나 ‘외모’라는 선천적인 요소로 내가 이러한 차별을 받고 살아야한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성형수술을 하기에는 집이 가난했었고, 번지르르한 옷을 입고, 머리모양을 바꾸고 운동을 해도 몸을 가꿔봐도
선천적인 체격이 원체 짜리몽땅해서 볼품없기는 똑같았다. 멋진 옷과 머리모양은 오히려 내 흉측한 외모와는 대비되어서 겉돌 뿐이었다. 사실 우아한 외모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못생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익숙해져 가끔 우울한 날 외에는 별 감흥이 없다.
차별도 제약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하는 이가 생겼을 때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상대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못생긴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기보다는 성가신 일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그냥 끙끙앓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감히 손을 잡고 포옹하고, 사귀는 일, 그런 것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다만 몰래 그 사람의 뒷모습을 쫒고, 그 사람 흔적을 따라가며 만족을 느꼈을 뿐이었다.
나의 사랑은 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좀체 벗어나려고 해봐도, 그 사람 쪽에서 나를 밀쳐내버리고, 내 외모로 면박을 주기 일쑤였기에 나는 마음을 숨기거나 접어야만 했다.
거리를 걷고 지하철을 타서 사람들의 생김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생겼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푸념아닌 푸념을 해본다.
참 어렵다.
그러나 그림자 속에 숨어 살면서, 음침해지긴 했어도, 밖으로 향하지 못한 사랑들을 가슴 속으로 끌어앉고서 함께 성숙해 나간 것 같다.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 혼자 마음 졸이고, 기뻐하고, 눈물 흘리던 나날들.
분명히 그 것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죽을 수 없다면 이 외모로 한 생을 살아가야 한다.
좀 더 정을 붙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