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추가글?? )3년의 왕따, 6년의 왕따+은따...이젠 모두 지나간 과거의 일이지요.

외톨이는옛... |2014.03.15 10:54
조회 65,124 |추천 511

두둥~ 제 글이 베스트에 떠서 놀랐네요.

추천수도 많아서 놀랐고요. 많은 분들이 나의 이야기 들어줘서 마음이 가볍기도 합니다.

아주 대단한 삶은 산것도 아닌데 정말.. 무척 쑥쓰럽네요..  ^^;;

 

리플 다 읽어봤어요. 저처럼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 보이니 마음이 먹먹하더군요.

 

추가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뭔가 나의 답답함을 벗어버리고자 여러가지 해봤어요.

사회생활에서 돈만 모으는것에만 그치는게 아니라 다니던 직장 과감히 퇴사하고 20대 후반에 배낭여행 모임의 사람들과 두달간 배낭여행 다녔어요. 그리고 모임도 여러개 가입했어요. 00년생 모임, 영화보는 모임, 포켓폴 모임 등등...사람들을 자꾸 접촉했어요.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면 안되요. (전 조용하게 활동한 회원이었어요. ^^ ㅎ)

사람들과 접촉하고 용기내고 조금이라도 말도 걸어보고 하세요.

안으로 움추리지 말고 밖으로 더! 더! 나오세요. 이유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거에요.

책을 보세요. 전 긍정의 생각을 많이 주는 책을 많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봤어요. 생각보다 동기부여가 정말 많이 된답니다. 새로운 계획이나 가슴속에 뭔가 꽉찬 느낌도 주거든요.

 

어떤분이 돈을 어떻게 모았냐고 하셨는데 (지운건지..지금은 그 댓글이 안보이네요..)

선저축 후지출이란말 들어보셨을거에요. 너무나 당연한 공식인데 안지켜지기도 하지요.

20대초부터 용돈기입장인지 출납장 같은 공책 사서 하루지출, 한달지출, 년지출 이렇게 계산하며 지난달을 이만큼 썼으니 이번달은 이렇게 줄이자라며 융통성있게 지출했어요.

어디 모임 갈 때 쓸 브랜드 가방 괜찮은거 하나만 사고 거의 보세였어요. 옷은 그냥 어디가서 욕만 안들을정도로만 적당히 꾸미고 다녔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이직을 자주 하면 안된답니다. 저는 보통 한번 재직하면 4,5년을 다녔어요. 제가 하던 일은 정신적으로 힘든일이였어요. 노동 그런건 아닌데 그래서 이직률이 높은 곳이기도 하지만... 9년의 시간을 통해서 배운(?)건지;; 인내와 끈기로 버티었네요.

 

신랑은 제 인생의 소나무 같은 존재에요.

결혼 몇년동안 한~결 같아요~ 변함없이 항상 그 마음 그대로 대해줘서 좋아요.

신랑이 제가 심성이 착해서 좋았데요. 착하다는 소리를 예전에는 싫어했어요. 착해서 사람들이 이용하고 저한테 상처주고 그런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정도 살고보니 착한게 잘못된게 아니라 세상에 너무 이기적이고 사람 속이고 못된 사람들이 있다보니까 착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인거죠.

 

올해 예비엄마가 될 예정이라 착하기만 하지는 말자라는게 저의 생각이에요. 얄밉지 않을 정도로 여우도 되어보자라는게 저의 마음속 생각이에요. (곰과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큰 힘과 용기를 주신 댓글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판에다 글을 올리긴 처음이네요.

 

나의 넋두리를 쏟아내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결시친에 올릴 카테고리가 아닌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 하네요;

 

제목처럼 전 학창시절 9년동안 외로웠답니다.

 

처음 왕따의 시작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국민학교라고 하던 시절이니 아마 제 연령을 대충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저희 집 문은 허리를 반쯤 숙여서 들어가는 곳이며 창문은 틈새가 깨진 유리로 바람이 슝하고 들어오고 한겨울에는 방에서도 입김이 서리고 위에서 쥐가 다니는게 들리고 비오는 날은 물이 세서 여기저기 바가지를 놓았답니다.

특이 호우 집중하는 여름에는 천정이 무너질것 같이 가라 앉아서 무섭기도 했어요.

등교할 때 누가 볼까봐 문틈사이로 애들 지나가는거 보고 조용하다 싶으면 나왔지요..남동생도 저처럼 눈치보고 나갔네요..

엄마는 우리 남매가 주눅들고 기죽고 다니는게 어릴적 그런 집에 살아서 니들 그렇게 만든것 같다고 후회 한다고 입버릇 처럼 옛날에 말씀하곤 하셨지요.

 

우리집 골목길은 학생들이 다 지나가는 길이였는데 학기초에 누가 집에서 나온 저를 봤었지요.

'꼬진문 애'라고해서 놀린게 시작이었고 제 얼굴에 뭐가 있는데 그것과 함께 놀림이 되었어요.

참 별명도 많았어요. 혹시 누가 알아볼까봐 모두 쓰진 못하겠고 x벌레, x박x, 꼬진 문 등등 있었는데 x벌레 이게 제일 상처였네요 ㅎㅎ

집에 들어오고나서 등을 보면 시퍼런 멍자국이 항상 있었어요.

남학생들이 실내화를 제 등짝에 던지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책상에 엎드려 울어도 여전히 와서 때리고...집에 갈때까지도 뒤에서 따라오며 뭐 던지고 그래서 뛰어서 집에 오곤 했네요.

학년이 바뀌어도 전학년 아이들이 같은반이 되는 경우도 있다보니 제 등짝은 성한날이 없었어요. 항상 시퍼런 멍을 함께 안고 집에 왔지요.

엄마가 나중에 알고서 애들 초대해서 맛있는거 해주셨지만 그때 뿐이었죠... 아마 정말 많이 속상하셨을거에요.

 

전 소풍가는게 제일 싫었네요. 관광 버스에 앉을려고 하면 애들이 저리가라고 해버려서 빈자리 앉지도 못하고 팔걸이에 앉아서 반쯤 서서 가기도 했네요.

전 초등학교 추억이 전혀 없네요. 생각나는것도 없고,,, 실은 지금도 초등학교 졸업 앨범은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아요.

 

중학교 가면 왕따가 사라질줄 알았는데 역시나..동네 아이들이다보니 같은 중학교로 배정받으면서 왕따였던 절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여전히 외톨이였네요.

친구 만들고 싶어서 말도 걸어보고 그랬지만 절 보는 시선을 회피하던게 생각나네요.

중학교 때 소풍 혼자 다니는게 너무 창피해서 선생님한테 안간다고 했다가 억지로 가서 반장이랑 부반장이랑 같이 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날라리 애들이 와서 제 물건 가져가서 돌려주지도 않고..어떤 날은 학교에 팬시 용품이 없어지자.. 도둑으로 몰아가고 애들한테 손가락질 받던 기억도 있네요.

날라리한테 학교 후문으로 불려서 이유도 모르겠는데 맞는 날도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신체폭력+언어폭력이 많았네요. 제가 얼굴에 뭐가 좀 있어서 그걸로 00년 놀리기도 했지요.

(고3 때 수술해서 지금은 작은 흉터만 있지요.)

 

이렇다 보니 고교 입학 후에는....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말도 소심하게 걸어보고 만나면 인사하고 참 소심하지만 그 때 내가 할수있는건 저게 전부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거절당할까봐 날 이상하게 볼까봐 말도 못시키겠고 주눅들고 기죽고 눈을 제대로 쳐다보질 못했어요.

수학여행가서 화장실에서 씻을 때 밖에서 애들이 불 끄고 장난쳐서 놀랐더니 소리지르지 마라고 따귀 맞고 저리 가서 자라며 혼자 애들과 떨여저서 벽에 붙어서자고...

단체 사진 찍는데 좀 가까이 가고 싶은데..제가 옆으로 오는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참 여러 일이 있었네요.

고3 때 자살 생각을 많이 하던 때이기도 해요..

자살을 처음 생각한건 초등학교 때부터였지만 나 죽으면 부모님이 슬퍼할까봐..편지 쓰다가 버리고 그랬었네요..

 

학창시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두 쓰기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최대한 간략히 써봤네요..

 

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어요. 피해의식이 있었는지...내가 돈 많이 모아서 나 왕따했던 애들 복수할거라고 생각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죽일까라는 생각도 했어요.(대충 계획까지 세웠거든요;;;;) 

잘사는거 보여줄거야. 그래서 니들 코 납작하게 해줄꺼야...이를 갈던게 생각나네요.

 

착하고 순진했던 제가 할 수 있는건 저축 열심히 하는것 밖에는 없다는걸 알았던걸까요.

20대초부터 전 용돈기입장을 썼어요. 지출 꼼꼼히 쓰고 돈을 열심히 모았지요. 참 야무지게도 돈을 벌고 모았어요.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붙임성 없고 사회성도 없고 순진하니까 돈이라도 많이 모으자 이런생각으로 열심히 모았던것 같아요.

 

그러다가 열심히 직장 다니다가 전문대학은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야간대학 다니고 낮에 돈을 벌었어요. 등록금은 스스로 해결 했답니다.

어느새 복수니 그런 원망은 조금씩 저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었네요.

대학들어간게 23살때쯤인데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신감도 생겨서 얼굴도 밝게 다니고 사람들에게 자꾸 말시키고 하다보니 친구들이 생겼어요.

친구가 이런거구나 하며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참 행복했지요. 같이 분식집가서 떡볶이 먹는게 행복해서 많이 흥분했던 기억도 있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씩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멀어지는 느낌도 들었어요. 왜냐면 내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사람들이 날 떠날까봐.

말수도 적어지고 자꾸 조심해지고 소심해지고.. 따돌림을 겪은 사람은 알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를 놓치기 싫고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봐 항상 의식하게 되고

너무 피곤하게 지냈어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미리 만들기도 하고 연습도 했었어요.

 

20대중반에 무슨 검사를 했는데...사회성, 주의력.. 뭐뭐...검사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모두 기준치 이하로 나와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그것 때문이였는지 전 30대 초반까지는 피해의식이 대단했어요. 내가 이렇게 된건 모두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저축을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외롭고 사람들을 자꾸 의식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하고..

말도 버벅거리고... 제가 말이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의 순진한 모습을 이용해서 수치스러움을 남기고 가버린 남자도 있었고 마음의 문을 닫았네요..그러고보니 초등학교때 3학년때쯤인가 근처 살던 사촌 오빠들에게 오랜시간동안 성추행 당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정말 오래되어서 이렇게 글쓰니까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남자를 사귀는게 두렵기도 했어요.

남자가 다 그거하려고 사람 만나는것 같기도 하고...정말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겨도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네요.

 

그저 통장에 돈이 모아지는 것만 보며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며 스스로 위로를 했었어요.

친구가 별로 없으니.. 돈을 쓰지 않으니까 모아지게 되더군요. ^^;;;;;

통장을 저처럼 많이 본 사람도 없었을거에요 ㅎ

 

30대 초반에.. 

지금의 우리 신랑을 만났어요. 어떤 모임에서 만났는데 성실하고 왠지 정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인것 같았어요.

두달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용기를 내서 먼저 연락했어요. 신랑과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어요.

속이 깊고 사람을 배려하고 자기 가족 잘 챙기는 모습 보면서 이 사람이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지요. 신랑은 저와 달리 학창시절 추억도 많고 친구 관계가 원만해서 그게 참 멋있어 보였어요.

저는 신랑한테 학창시절 자주 묻곤 했어요. 신랑도 저에게 물으면 난 별로 없어. 기억이 안나라고 하며 넘어가버리곤 했네요.

 

사실 학창시절은 제가 어떻게 할수 없는거지만 성인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였는데 경제적인 준비를 잘했다는 생각이 결혼하면서 크게 들었어요.

성인 이후 열심히 모아놓은돈이 신혼집 마련에 크게 보탬이 되었어요. 신랑의 돈과  제가 수년 동안 모은 9천만원 중 8천만원을 더해서 

서울 아파트 전세 마련에 보탰고 1천만원은 혼수, 가구 등에 썼어요.

엄마가 400만원 보태주신거 외에는 모두 제 돈으로 했어요. 참! 그사이 자수성가한 저희 집도 경제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졌어요.

시댁과 친정이 자수성가해서 모두 얼마나 열심히 사시는지 몰라요. 양가 부모님들 여유로워졌어도 여전히 직장생활 다 하고 계시네요..

신랑과 제가 배울점이라고 종종 이야기를 해요.

 

결혼 후 신랑이랑 저도 정말 검소하게 살았어요. 다른건 몰라도 저축은 자신있었어요. 20대의 제가 배운 교훈이지이요..

가족들 살뜰히 모두 다 챙겨드리는 것 잊지 않으며 우리 부부에게는 쓰는거 아끼며 열심히 모았지요.

대형마트도 안가고 시장 주로 이용하고 외식대신 만들어서 먹고...차가 있었지만 정말 먼거리 다닐 경우만 이용하며 거의 걸어다녔어요.

결혼하실 분들 배우자와 본인의 경제관념이 너무 다르면 힘들답니다. 비슷해야 잘 합심이 되어요.

신랑이랑 저랑 경제관념이 비슷해서 돈 가지고 싸운일이 없어요..

그 이후..

대출 2천만원 받고 이름 좀 있다는 서울에 25평대 아파트 장만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얼마전 2천만원 모두 상환 했고요.

 

신랑을 만나기 전에는 피해의식이 많았지만..어느새 신랑을 만나고나서 피해의식도 많이 사라지고...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많아졌어요.

생기지 않던 아이도 생겨서 지금 14주를 달리고 있네요. 신랑이 임신도 했으니 이젠 좀 쉬라고 해서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집에서 쉬고 있네요.

 

몇주전.. 뜻하지 않게 신랑이 실직 상태가 되어서 다른 회사를 들어갔는데 급여가 전보다 훨씬 작네요. (사연이 깁니다;;)

신랑은 이렇게 된다고 급여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고 알바까지 뛰어야겠다고 합니다. 저보고 걱정말라고 아기 생각만 하라네요.

급여 부분 듣고 많이 놀라긴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고 내가 열심히 살림하고 씀씀이 줄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잘 합심하면 되는거니까요 ^^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 만나는게 아직도 어색하고 말주변이 없고 사람들을 많이 의식해서 피곤하지만..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이젠 과거의 일은 조금도 남김없이 훌훌 털며 저멀리 먼지처럼 날려보내려고 합니다.

 

야무지게 살았던 20대처럼 다시 그때처럼 돈만 야무지게 모으는것에만 그치지 말고 30대는 다른것도 야무지게 살아 보렵니다.

 

추천수511
반대수4
베플감사합니다|2014.03.15 18:13
자살하지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아니 사회생활도 많이 힘드셨을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자살하지않으시고 복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친구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는거같습니다 그래도 좋은남편분만나서 다행입니다 아마도 자살하지않아서 살아있어 하늘에서 복을 준 거 같습니다 앞으로 평생 남편분과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베플찹쌀떡|2014.03.15 18:54
평생동안 안 좋을 일들을 어린 시절에 모두 겪었으니, 남은 평생 행복할 일만 남았네. 행복하소서.
베플ㅇㅇ|2014.03.15 17:10
힘내요. 가장 큰복수는 내가 행복하게 사는게 복수예요. 정말 안좋은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고있었다면, 그복수는 완전 패배였을테지만, 지금 행복한가정에서 좋은남자만나고 예쁜아이까지 생겼으니 이게 바로 진정한 복수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아마, 어릴적 그렇게 행동했던 나쁜친구들도, 살면서 자기행동에 부끄럽고 창피한거 알게될거예요. 계속 좋은마음으로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베플눈의꽃|2014.03.15 11:35
맘이 울컥하네요 ㅡ연령대가 저랑비슷하실듯해요 저도학창시절 왕따경험이있던지라 ㅡ환경도그렇고 비슷한점이많아서인지 님글에 맘이가네요 피해의식에서벗어나고싶은데 그게참안되는거같아요 잊은듯하다가도 어느틈에불쑥불쑥튀어나오거든요 지금의상황은 많이좋아지신거같아 보기즣으네요 전아직도 그때나지금이나 우울한환경에서크게 못벗어난거같아요ㅠㅠ님이부럽네요
베플27|2014.03.16 04:10
제발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ㅠㅠㅠ 집이 가난하다고 왕따시키는 애시키들 진짜.. 어리다고 봐주기엔 그동안 글쓴이에게 너무 잔인함... 그애들도 과거가 떳떳치못하고 창피할거예요.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