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꿈을 가지고 막바지 공부에 한창인 대학교 졸업반 정연(가명) 씨.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 세 살밖에 안된 딸과 8개월째인 뱃속아이가 있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지만 교칙 때문에 학교 어린이집도 이용할 수 없고, 휴학도 할 수 없었다.
< 학업과 육아, 그리고 다시 찾아온 임신 >
“엄마, 가면 싫어….”
딸아이가 칭얼거렸다. 아직 3살 밖에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학교를 가려니 정연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 학교 가서 공부하고 빨리 올게. 우리 아기도 선생님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친구들하고 잘 놀고 있어. 착하지?”
“깜깜할 때까지 안 오잖아.”
아이가 오늘따라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정연은 숨이 가빠왔다. 임신 8개월이었다. 배가 뭉치기 시작했다.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라 지각하면 안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으며 안아들었다.
“어머니, 제가 잘 달래볼게요. 어서 가세요.”
돌아서면서도 정연의 마음은 무거웠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아이가 떼를 쓸까봐 억지로 걸음을 떼었다. 정연은 대학교 졸업반이다. 학교에 어린이집이 있지만 교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 그곳에 맡겨 놓을 수만 있다면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조금이 나마 줄일 수 있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 짬짬이 들여다 볼 수도 있다. 혹시 나 해서 사정을 해봤지만 교칙에 어긋난다는 말만 돌아왔다. 수업을 마치 고 아무리 서둘러 돌아와도 어린이집에 딸 아이 혼자 남아있기 일쑤였다. 둘째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남편은 정연에게 휴학을 하라고 했다. 첫째 애를 임신했을 때 2년 간 휴학을 해서 더 이상 휴학은 할 수 없었다.
“왜? 군대 가는 건 별도 휴학으로 인정되는데, 여자는 안 그래?”
남편에겐 금시초문인 듯 했다.
“그럼 대학생은 임신도 하지 말라는 거 아냐?!”
남편이 정연보다 더 흥분했다. 미안해서 괜히 그러는 줄은 알고 있지만, 정연은 미안해하지 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이었다.
< 포기할 수 없는 간호사의 꿈 >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졸업반이었고 정연은 신입생이었다. 남편은 취업을 하자마자 곧장 프러포즈를 했다. 정연은 남편을 놓치기 싫었다. 결혼 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올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현실이 이렇게 버거울 줄 알았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몰랐다. “당신, 학교를 그만 두는 걸 고려해 봐야할 것 같아”.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연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건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정연의 꿈은 간호사였다. 어릴 적 폐렴을 앓았던 정연은 한동안 병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겁에 질려있던 정연에게 유일한 기댈 곳이 되어 준 사람은 간호사 언니였다. 정연은 자신도 환자에게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간호대를 여기서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의 시기를 모두 거친 후, 뒤늦게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정연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결심을 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최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돌아와 집안일과 육아를 맡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곧 몸에 무리가 왔다. 배가 단단히 뭉치기 시작하더니 한밤에 하혈이 시작됐다. 다행히 남편이 곁에 있어서 병원에 빨리 갈 수 있었다. 다행히 유산만은 막았다.
<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녀에게 일어난 두 번째 기적 >
그날 이후 남편은 학교를 그만둘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힘드니 당장이라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그때도 정연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과연 임신과 출산, 육아가 모두 끝난 다음에 다시 꿈을 좇을 수 있을까? 첫째는 휴학을 하고 2년 동안은 기를 수 있었지만 둘째는 어떡할까? 입주 도우미를 들여야 할까? 남편의 월급으로 등록금 대기도 빠듯한데 도우미 월급을 감당할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정연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 남편도, 아이도, 대학도 모두 정연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연은 두려웠다. 어릴 적 그 병실에 다시 갇힌 것만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민신문고에 고충을 털어놨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국가는 정연의 고충에 귀를 기울일까? 대학은 학칙을 바꿔줄까? 오늘따라 버스가 늦었다. 정연은 필기 노트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 뉴스 들었어?”
서둘러 학교로 가는 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뭐?”
“당신이 국민신문고에 접수한 내용이 뉴스에 나왔어.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성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휴학을 할 때 별도 휴학을 인정해 주도록 권고한다는데? 대학 내의 어린이집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대. 자세한 건 당신 학교에 알아봐.”
남편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후 정연이 다니는 대학에서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학칙을 개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연은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할 때, 정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연에게 일어난 두 번째 기적이었다.
< 사례 자세히 보기 >
국가적으로 출산 장려와 육아부담 해소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임신을 했거나 자녀가 있는 대학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인 지원책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권익위는 임신・출산・육아를 위한 별도의 휴학제도가 없고 육아 대학·대학원생을 위한 보육서비스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임신・출산・육아 휴학제도 도입과 대학내 직장보육시설 이용자격 부여, 부족한 대학 어린이집 확충 방안 검토 등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전국 47개 국・공립 대학교에 권고하고 교육부, 보건복지부 및 180여개 사립대학교 등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그 결과 전국 47개 국·공립 대학이 임신・출산・육아를 위한 별도의 휴학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학칙을 개정했으며, 권고대상기관이 아닌 사립대도 학칙을 개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각 대학에서는 교내 어린이집 이용자격을 대학원생은 물론 학부생까지 확대해 시설을 증축하거나 새로운 직장보육시설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