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제 !!!!!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인데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관한 좋은 내용이 있어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말 할때 우당 이회영 집안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전 재산 600억(당시 40만원)을 순전히 독립운동하는데만 바쳐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천한 집안입니다
그러나 이 일가의 현실은 중국땅에서 비참하게 객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습니다
통일 신라 고려 조선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집안이며
영의정을 9명이나 배출하였으며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인 이항복의 후손입니다
천년동안이나 양반이였던 집안이였다고 합니다
일본이 조선 양반들에게 타협하는 대신 주는 귀속 지위와 수십억원의 돈을 거절한 집안입니다
이때 대부분의 양반들은 일제히 타협했다고 합니다
급하게 처분했어도 600 ~ 800억 (현재가치)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6형제가 모두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식솔 60명이 이동하였으며 신분 해방된 노비들 일부도 주인들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염가처분이여서 600 ~ 800억이지 실제 가치는 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수천명의 독립군을 배출하였으며
이밖에도 헤이그밀사 파견지원 고종황제 중국망명계획 등의 독립활동을 하였습니다
단군이래 가장 덕망있는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의 최후는 실로 비참했습니다
첫째(이건영)
이건영의 둘째아들(이규면)은 신흥학교 졸업 뒤
머나먼 중국땅 상해에서 독립운동하다가 병사하였고
이건영의 셋째아들(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한 뒤 귀국 후
국군 공군대위로 복무중 한국전쟁때 실종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보탠 둘째(이석영)은
중국 빈민가를 떠돌다 80의 나이에 굶어 죽었다고합니다
이석영의 장남 (이규준)은 김원봉의 의열 단원으로
이해명과 함께 밀정 김달하와 박용만을 암살하고
한국에서 독립운동하다 20대의 나이에 병사하였습니다
셋째(이철영)는
신흥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병사로 사망하였고
모든 계획의 중심에 섰던 넷째(이회영)은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독립활동을 하다 걸려 모진 고문끝에 숨졌습니다
이회영의 둘째아들(이규학)은 사촌 이규중과 함께 밀정 암살에 가담하였습니다
이회영의 셋째아들(이규창)은 친일파 암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 된 뒤 13년의 징역을 살고 광복 뒤에 석방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해방을 맛본 다섯째(이시영)는
독립 후 김구선생님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대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전횡에 반대하여
결국 국민방우군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
이해할수 없는 1인 천하 독재만행에 항거하여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습니다
막내(이호영)는
만주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33년에 일가족이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호영의 아들 이규황과 이규준도 함께 실종(몰살당한걸로 추정함)되었습니다
이회영선생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임시정부를 만들면
또 그 안에서 분열된다 하여 임시정부 참여에 불참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이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며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