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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이다, 신앙인이라 하면
그래도 못된 사람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에 모태신앙이니 독실한 신앙인이니 하는 사람중에,
어찌 그리 자기 하나 밖에 모르는지,
마치 유아 수준에서 정신성장이 멈춘 듯,
그 나이, 그 배경에 저리 되는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느낌입니다.
누구라 말할 것도 없이, 때와 장소를 모르고 자신의 종교를 과시하는 일부 인사들,
자신의 공적 직분, 사회적 지위를 망각한 듯한 그들의 언행을 보면 저들이
과연 자신이외의 존재를 사랑할 능력이 있는가,
여태 단 한번이라도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준 이웃과, 사회와 , 이 나라와,
그 역사를 고마워 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모태신앙을 자랑한다는 저 자들이
왜 가슴이 없는 오만한 요괴의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지내게 되었나 궁금이 들었읍니다.
비단 저들 뿐 아니라 주위에 인격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진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어린 두 자녀를 한강에 내다 던져 죽인 어느 젊은 이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현장검증에서의 기자 질문에,
자녀를 살인한 죄는 회개하면 하나님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왜 같이 죽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기독교인은 자살해서는 안된다 대답하더군요.
기독교가 잘못된게 아니라,
그의 개인적 잘못된 신앙, 낮은 교육수준, 저급한 태생이 문제일까요?
최근 지면을 통해 또 한명의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일종의 신앙간증서 같은 책이었읍니다.
한 때 개신교인들간 선풍을 일으켰던 책이라 많이들 읽으셨겠지만,
한국과 미국 최고 대학중의 하나를 나와,
박사로 지금은 제삼국의 대학에 재직하면서
전도에 힘쓰고 있다는 그 젊은 분의 간증을 보니...,
하는 기도마다 하나님이 어찌 그리 응답을 잘 해 주시는지,
뭔가 안 풀릴 때는 어찌 그것 또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해 주시는지,
아무튼 하나님과 그렇게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저도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읍니다만,
그 책을 읽는 중에 하나님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정도였읍니다.
물론 저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아닌 우리 참 하나님이죠.)
기억나는 에피소드중에, 전도를 위해 보다 큰 차가 필요해
기도드렸더니 마침 서있는 차를 누가 들이 받아,
거기서 나온 보험금으로 새차를 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이 이야기야말로 잘못된 신앙의 생생한 현장기록이자,
왜 한국의 개신교가 유독 그리 많은 인격파탄자들을 만들어 내는지
하는 의문을 명료하게 풀어 준 에피소드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글 쓴 이는 차를 바꿔준 그의 '하나님'에 감사했는지 모르지만,
사고를 낸 그 사람은 다친 정도를 떠나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겠으며,
그 정신적 상처가 얼마나 오래 갔을 것이며,
그의 생활과 삶에 어마마한 자욱을 남기게 될지,,
또, 새차를 사게 해준 보험금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으며,
보험제도는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무엇으로 유지되며,
어떤 것들이 그런 훌륭한 인류의 제도를 위협하고 있는지...,
사고를 낸 사람은 영혼도 없는,
희생제물의 대상일 뿐인 그런 존재?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자신만이 하나님의 자녀인가요?
전도를 위해서 큰 차가 필요했으므로, 어떤 이의 영혼이 희생제물이 되는 것,
보험제도가 악용되는 것은 문제가 아니 되는 건가요?
하나님이 그런 존재입니까?
만약 차를 바꾸고자하는 어떤 사람의 바램을 들어 주기 위해
다른 운전자의 주의를 고의로 흐트려 놓아, -예컨대 거울이라든가, 야한 몸짓이라든가-
차량사고를 유도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보험사기공범으로 처벌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읍니까?
하나님은 흔적도 없는 완벽범죄가 언제든지 가능한 전지전능한 존재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가요?
하나님을 그런 보험사기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 신앙입니까?
신성모독이라는 표현을 아십니까?
이런 저질의 믿음을 책으로 써내었을 때,
그를 읽은 어린 영혼들은 어떤 '하나님'을 가슴에 새기게 될까요.
어린 마음들이 멋진 차가 가지고 싶을 때 어떤 기도를 하게 될까요.
잘못된 믿음, 그들만의 편리한 '하나님',
그 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성장을 가로막고
결국 인격파탄자의 길로 이끄는 가짜 하나님이지요..
그 글을 쓴 젊은 이도 모태신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모태신앙의 아우라에는 효도의 관념도 끼여있는 듯,
어쨌던 그의 학문과 총기가 모태신앙앞에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가짜 하나님의 위력을 보는 듯 했읍니다.
그러나, 모태든 아니든,
진짜 하나님이든 가짜 하나님이든,
남의 나라 신령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속이든 말든,
문제는 기복입니다.
기복신앙이 모태라는 것은 ,
나쁜 것의 뿌리가 깊었다는 것,
신성모독이 대물림되었다는 것,
그 이상의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기복신앙은 신성모독일 뿐 아니라 개인의 인간적 성숙을 가로막고 나아가
우리 사회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수십년째 발목 잡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더 큰 질문은
그러한 이기적, 반 사회적 기복신앙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 책의 저자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존재가
기독교 경전 '성경'에 묘사된 여호와의 모습과 다른가요?
그의 기도에 '응답'한 그 존재, 자신을 믿을 것을 스스로 요구하고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을 가리는 그 존재가 바로 예수 여호와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개신교가 그들의 신 여호와에다 가져다 붙인 '하나님'이란 이름,
본래 우리 민족이 수천년 가슴속에 간직한 최고존재의 이름이지요.
우리 선조들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우리에게 전해 준 본래의 그 '하나님'이
고작 자신을 믿는 자, 안 믿는 자를 가리는 그런 유치한 존재였던가요.
위의 에피소드에서 보듯이 자신을 믿는 사람에 복을 주기 위해,
그들이 자신을 더욱 더 찬양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그리도 손쉽게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과연 이 세상의 섭리를 주관하는 하나님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런 기독신 여호와의 존재가 '하나님'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악마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자신이 믿는 그 신앙의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