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경량전신주 사업 접나…수급방안 마련 못해
기사입력 2014-04-16 14:39 최종수정 2014-04-16 15:20
JTW에 승소했지만 대·중소기업 상생 외면한 한전 ‘멍에’ 벗어야
독보적 FRP전신주 기술 사장되면 국가적 손실 책임 회피 어려워
▶ 조환익 사장(오른쪽 두번째)3월 수도권 지역 대규모 공사현장 2곳을 방문해 안전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한전)
[경제투데이 김지성 기자] 한국전력(사장 조환익)이 지난 2007년부터 추진해 온 친환경 경량전신주 보급사업이 1년여의 시범사업을 끝으로 6년 넘게 멈춰서 있다.
친환경 경량신주를 개발·보급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업체인 JTW와의 소송은 최근 일단락 됐지만 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FRP)전신주의 수급방안이 여전히 도출되지 못한 까닭이다.
FRP전신주는 기존 콘크리트 전신주가 수명이 30년에 불과해 폐기물로 처리하는데만 연간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되고, 2000kg이 넘는 무게로 설치 때 인력과 비용이 드는 등의 단점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전신주이다.
FRP전신주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고 수명도 80년에 달해 경제성이 높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 운반·설치가 용이한데다 100% 부도체라 감전사고의 우려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유사한 친환경 전신주를 생산하는 업체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세익스피어사와 캐나다의 RSI 두 곳뿐이다. 국내에서는 JTW사에서만 독자 기술을 갖고 있다.
16일 한전에 따르면 한전-JTW 간 손해배상 소송이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한전의 승소로 끝났다.
한전 관계자는 “심리불속행 결정이 나왔다”면서 “이런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원고측 주장이 타당하지 않거나 법이 정한 상고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은 JTW의 김조권 대표가 한전이 자사가 개발한 친환경 경량전신주를 신개발기자재로 지정해 놓고도 수의계약이 아닌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2011년 7월 제기해 시작됐다.
◆10년 넘게 한전 믿고 기술개발 ‘발등 찍어’…부적절한 업체 선정 ‘왜’
당시 1심과 2012년 진행된 항소심의 내용을 보면 김 대표는 오랫동안 연구해 온 FRP전신주 기술을 한전에 제안했다. 이어 한전은 2007년 12월 전신주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FRP전신주 30기를 시범사용하고, 2010년 7월 그 효과를 인정해 ‘FRP전신주 본격사용’을 지시하는 공문을 산하 사업소에 내려 보냈다.
문제는 한전이 FRP 전신주를 본격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이를 공개경쟁입찰에 붙이면서 불거졌다.
김 대표는 10여년 동안 한전을 믿고 기술개발과 투자를 해왔는데, 갑자기 ‘신개발 기술에 따른 수의 계약’이 아닌 공개경쟁입찰로 진행하면서 최저가를 써낸 다른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김 대표가 개발한 FRP전신주는 관련 특허 3개를 취득했고, 2010년 한전 자체 보고서에도 “FRP전신주 생산업체는 JTW가 유일하다”고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한전의 결정이었다.
한전은 이에 대해 “FRP전신주는 신개발기자재이기는 하지만 ‘기자재공급자 관리지침’에 따른 일반품목이어서 공개경쟁입찰로 진행한 것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시범 설치된 JTW의 FRP전신주(왼쪽). 에쿠우스 차량이 정면 충돌했지만 전신주의 충격흡수로 운전자는 경미한 부상에 그쳤고, 전신주도 넘어지지 않아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한전의 본격 사용 결정 공문(오른쪽) 한전은 FRP전신주를 신개발 기자재로 채택하고 본격 사용을 결정하고 각 사업소에 본격 사용 지시 공문을 보냈다.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FRP전신주가 일반품목으로 지정된 시점이 입찰을 불과 한 달 앞둔 2010년 10월29일로 급작스러워 의혹이 제기됐다. ‘가격 후려치기’ 등 한전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이즈음 나왔다.
실제로 2012년 국정감사 당시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갑작스럽게 일반품목으로 지정해 싼 값에 중소기업 기술을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한전도 인정한 것처럼 FRP전신주가 신개발 기자재이기 때문에 이미 상용화돼 일반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콘크리트 전신주, 강관 전신주와는 달리 취급돼야 한다”며 “개발자의 신뢰보호 원칙이 훼손된 사례”라고 말했다.
◆입찰 한 달 전 일반품목 지정, 한전의 ‘후려치기?’
더군다나 공개경쟁입찰에서 납품업체로 선정된 화신FRP산업은 2011년부터 1년간 1000개의 전신주를 생산·납품하기로 한전과 계약했지만 한전품질검사소에서 불량제품으로 판정받아 설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전이 서둘러 FRP전신주를 일반품목 지정하고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한 결과, 준비가 되지 않은 업체가 선정돼 FRP전신주 보급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FRP전신주로) 전체 전신주를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콘크리트 전신주를 쓸 수 없는 골목길 등에서 대체용으로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FRP전신주 보급사업이 전면적인 것이 아니어서 제동이 걸린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JWT측은 한전이 경량전신주로 교체하는 사업자체는 진행할 것이라고 봤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한전은 1년에 5000주로 1년 계약에 가격 인상은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친환경 경량전신주로 교체해야 하는 한전으로서는 JTW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여의 소송으로 한전과 JTW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 친환경 경량전신주 보급사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 대표는 “긍정적으로 풀릴 가능성은 있지만, 느낌인데 제가 직접 한전에 가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들어오는 것을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한전의 당시(2010년) 배전본부장이 (JTW의) 지분을 30% 내놓으면 풀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었다”면서 “그때 제가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정대로 하고 일이 잘 진행되면 감사표시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일반품목으로 정해서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전의 친환경 경량전신주 보급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상 한전과 김 대표 간의 협의를 통해 보급이 이뤄지면 된다. 한전만 믿고 10년 이상 기술개발을 해 온 JTW와의 협력은 대·중소기업 상생의 측면에서도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한전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경량 FRP전신주 기술을 시장에서 사장시키게 되면 국가적인 손실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어서 타협점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이명규 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011년 국감에서 “어렵게 개발된 좋은 기술이고 한전 이외에는 사용처가 없는 상황이라 외국으로 (기술이) 넘어가면 국가적 손실”이라고 한 지적이 현재도 유효하다는 의미다.
김지성 기자 lazyh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