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부자와 영생과 신천지
본문 : 마태복음 19:16-30(마가복음 10:17-31, 누가복음 18:18-30)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지혜와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영생’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면서 영생을 얻고자 했습니다.
“너희가 성경(=구약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5:39-40)
마태복음 19장 16절부터 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법’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이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안식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절)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들은 살인, 간음, 도적질 및 거짓증거 금지, 부모 공경, 네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18-19절)
그러자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으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20절)이라고 예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절)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큰 부자였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합니다(22절)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세상에 속한 이치와 상식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이 저자(著者)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졌으므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혼돈이나 혼란이 없고 명백하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반적으로 21절의 말씀을 “네가 율법의 계명들을 잘 지켰다고 하니, 온전하려면 여기에 네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그 재산이 하늘에 쌓일 것이니, 그리고 나를 좇으라!”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려면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뜻은 다릅니다.
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이 말씀은 ‘네가 장성한 자가 되려면’ 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장성한 나무가 되어야 들어가는 곳입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헬라어 ‘텔레이오스(tevleio")’인데, ‘끝까지 이른’(brought its end), ‘완전한’(perfect), ‘장성한’(full grown), ‘어른’(adult), ‘성숙한’(mature)라는 의미입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예수님께서 보실 때 관원이자 거부(巨富)인 청년이 모든 계명을 다 행했다고 하는 것을 보실 때 여전히 그는 율법이 무엇인 줄 알지 못하는 ‘젖먹이’ 같았을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법이며(롬3:20),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주시고 그 결론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입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10-12)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런데도 부자청년은 자신이 마치 의롭고 천국에서 1등으로 구원 얻을 줄 착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부자청년이 마태복음 5~6장의 산상수훈을 들었다면 그의 입은 다물어졌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육체의 예법이었지만, 예수님의 자유의 율법은 심령까지 지켜야 하는 예법이었습니다.
(히 9:9-10) (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히 10:8-11)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요 3:3-5) (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외모, 육체)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처럼 외모지상주의가 아니십니다.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23-27) (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4)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25)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26)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7)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우리는 외식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심령에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마19:21절)
이것의 의미는 참으로 잘 새겨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상식, 혹은 세상적인 지식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1) 가서
먼저 ‘가서’라는 말은 헬, ‘휘파고(uJpavgw)’인데, 이는 ‘휘포’(아래 under)라는 말과 ‘아고’(가다 go, 인도하다 lead, 데려오다 bring)의 합성어입니다.
즉 ‘휘파고’는 ‘떠나다’(depart), ‘아래로 데려오다’(bring under), '아래로 인도하다‘(to lead under)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의 진정한 의미는 ’네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라‘ 혹은 ’너를 아래로 인도하라‘, 즉 ’네가 아래로 내려가서 겸손해져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과 복종’입니다(빌2:5-8).
(빌 2:5-8)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겸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면, 교만하고 불순종할 때 우리는 사단의 밥이 되고 맙니다.
2) 네 소유를 팔아
“네 소유를 팔아”라는 말씀은 ‘네가 가진 것을 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육적인 세상 재물’이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중에 자기 재물을 팔아서 그 돈으로 예수님을 섬겼다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다만 버려두고, 좇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도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으며(마4:20), 야고보와 요한도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마4:22) 마태라 하는 세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좇았습니다(마9:9). ‘버렸다’는 헬라어 아피에미(ajfivhmi)인데, 그 의미는 포기하고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존에 자기에게 있는 자신의 사상과 자고함 등등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마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실 때 돈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가 햇빛과 비와 공기를 돈 주고 사지 않고 은혜로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도 결코 이 세상에 속한 돈으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12제자를 전도하러 보내시면서도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10:8-10) 고 하시면서 거저(for nothing) 공짜로 복음을 전하셨으며, 돈 주머니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숙자와 같은 삶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누이실(lay His head) 곳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육적으로 부자는 아니셨습니다. 그렇지만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를 알아볼 만큼 믿음을 가진 자를 찾아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모든 이론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破)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10:4-5)는 것입니다.
(렘 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破壞)하며 파멸(破滅)하며 넘어뜨리며 건설(建設)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도 있듯이, 먼저 나에게 있는 세상적인 것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새 것을 건설하거나 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거두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이런 능력자께서 하찮은 재물로 영생을 거래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네 소유를 다 팔라는 것은 육적인 재물이 아니라, '영적인 재물' 즉 율법과 계명을 온전히 행했다고 생각하는 그 교만과 아집을 다 팔아 버리라는 것입니다.
(계 3:17-18)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3) 가난한 자들을 주라
“가난한 자들을 주라”는 ‘네 자신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즉 네 마음과 몸과 영혼을 가난한 자인 예수님과 및 그와 함께 한 자들 즉 천국에 자신을 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님과 12제자로 이루어진 이 땅에 임한 '천국에 속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으로도 가난하셔서 육체를 십자가에서 달리신 후에도 자기 묘실도 없으셔서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는 예수의 제자가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마27:57-60).
(마 27:57-60) (57)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58)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59)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60)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심령이 가난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마 13:31-32) (31)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하나님)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예수님) 같으니(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예수님)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시고, 가장 작은 겨자씨같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신 씨이셨기에 놀라운 소성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겸손하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3.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에서 ‘하늘에 보화가 있다’는 뜻은
육적인 돈이 쌓여 있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인 처소가 예비’된다는 뜻입니다.
‘보화’는 헬,“데사우로스(qhsaurov")”로서 '보물'(treasure), 혹은 '보물이 있는 장소'(place in which good and precious things are collected and laid up)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12 제자들에게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하신 것처럼 하늘에 보좌 즉 처소를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보좌는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즉 보좌는 바로 예수님을 따라서 순교 즉 목베임을 당한 자들이 첫째부활에 참여시에 땅에 있던 짐승과 우상의 표를 받지 않고 경배하지 않은 자들에게 임할 때, 바로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신천지의 12지파장과 144000명의 사람들이 보좌가 되어 신령한 몸을 입고 임하시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4.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1)
즉 온전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면
1)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가서,
2) 모든 소유 즉 가진 모든 영적인 비진리와 인간의 사상 및 생각을 팔아버리고
3) 네 자신을 가난한 자 즉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그들에게 속하라!
4) 그리고 와서 예수를 좇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ABP(The Apostolic Bible polyglot 다번역 사도 성경 2003년간행) 헬라어 원문 마가복음에서는 “그리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taking up the cross, 아라스 톤 스타우론 άρας(taking up) τον(the) σταυρόν(cross)!)’ 나를 좇으라”(막10:21)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 개역한글 성경에는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씀이 빠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야말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가서,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십자가를 질 때, 하늘 보좌에 오르는 영광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빌 2:5-11)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바로 이러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따라갈 때 세상이 새롭게 되어 신천지가 이루어지고 영육합일의 영광이 나타날 때 열 두 보좌 즉 열 두 지파장의 육체에 임하여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 19:28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새 하늘 새 땅 신천지 세계가 이루어질 때) 인자(=예수님)가 자기 영광의 보좌(=이긴자 이만희 약속의 목자)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12 제자) 열 두 보좌(=12 지파장)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그 영광의 보좌는 계 2-3장의 이기는 그 즉 사단을 이기는 이긴 자, 이스라엘인 이만희 약속의 목자요 대언의 사자를 가리킵니다.
(계 3:21) 이기는 그(=이긴자, 영적 새 이스라엘, 이만희 약속의 목자)에게는 내(=예수님)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청년은 실제로 거부(巨富)였던 모양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듣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을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재산과 기존의 사고방식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해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1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심령이 부자인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데(요3:1-5), ‘물’(=말씀)은 높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자복하고, 자신이 가진 것이 없음을 시인하는 자, 진정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수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자만이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재물을 많이 갖고 있든, 적게 갖고 있든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가 그렇지 않은가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1) 바늘귀
예수님은 다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늘귀’란 '바늘의 눈'(the eye of a needle)이라는 뜻입니다. 즉 바늘의 구멍을 말합니다.
사실 ‘바늘’이란 심령 골수를 꿰뜷어 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찌르고 각성시킵니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전12:1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즉 채찍, 못, 바늘, 검은 모두가 영적으로 보면 동일하게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심령을 찌르고 파고드는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늘의 눈’이란 ‘하나님의 눈’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을 통과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늘구멍처럼 좁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고 하셨습니다.
2) 약대
‘약대’(a camel)는 낙타로서, 사막의 상인(카라반 caravane 대상(隊商))들이 낙타를 이용하여 먼 여행길에 짐을 날랐습니다.
그러나 약대는 짐을 실지 않아도 외모만 보아도 등에 두 개의 혹처럼 생긴 등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자기의 생각과 땅의 사상에 부자인 자를 말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생각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로 오는 것과 예수님의 멍에 즉 십자가를 지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그 피로 씻겨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벧후 1:1) (1)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the righteousness of 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예수님)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6.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조차 심히 놀라며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생에 이르는 것은 사람의 지식과 재물, 혹은 어떤 소유를 가지고서도 살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라고 하신 것처럼 참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만이 유일한 영생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아는 것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육체가 거듭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가능합니다.
물은 ‘말씀’이요,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온전히 가르침 받고 깨달아야만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며,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하면, 지금까지 마귀에게 6천 년간 세뇌 받은 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의심하고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할 바를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실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증시켜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7. 예수님을 따른 결과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영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세상이 새롭게 된 후에 있게 될 일입니다.
즉 새 하늘 새 땅 신천지가 이루어질 때, 즉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그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21:4-5)고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면 그때는 사망이 없어지고 영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12제자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으신 것처럼 이긴 자에게 함께 하시고,
이긴 자는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긴 자는 예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보좌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때에 예수님의 12제자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부활이라”(계20:4-5)라고 하신 것처럼,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보좌’는 임금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는 자의 '육체'를 보좌 삼고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보좌'이셨던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첫째 부활로 먼저 영생에 참여하는 자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고,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목베임 받은 순교한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15:2) 살아서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부활로 인하여 왕(=임금) 같은 '144,000명의 제사장들'이 구성되며,
이들로 말미암아 셀 수 없는 '흰무리'가 몰려오는 역사가 세계만방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혹자는 여기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천년동안 왕노릇을 한다고 하니, 순교자의 영혼들과 사단에게 경배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동일한 대상을 중복해서 다르게 표현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그야말로 글자로 읽는 우맹이요 소경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실제로 있을 일을 기록한 사건이기 때문에 글로 사건을 이해하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요, 나타난 실상을 보고서 이를 이해해야 온전한 이해가 될 것입니다.
1)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은 계 6:9에 나오는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계 6:9-11)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10)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멸망자)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冤)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11)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배도자)도 자기(=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한 순교자)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은 실제로 육신의 피를 흘리며 순교하여 잠자고 있는 자, 육체가 죽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계 18:19-21) (19)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바벨론 성, 멸망자)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20)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증거를 인하여 목베임 받은 순교자)를 신원(伸冤 원수를 갚아주심)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21)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은 계 13, 14, 15장에 나오는 실제로 육체의 죽음을 당하지 않았으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함으로 살아서 정절을 지킨 자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 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사명을 정지시킴) 하더라
(계 14:1-5) (1)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시온산, 진리의 성읍, 신천지)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3)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4)이 사람들은 여자(=바벨론 음녀 혹은 거짓 목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5)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5:1-5) (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2)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3)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4)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5)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 열리며
즉 이들은 땅에서 살아서 바벨론의 거짓 교리를 벗어나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에 소속되어 순교한 영들과 하나가 될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이름을 위하여” 즉 '예수님의 말씀'을 위하여 집(=교회), 형제나 자매(=교회 안에서 형제나 자매), 부모(=아버지는 마귀, 어머니는 마귀에게 속한 목자, 혹은 교회 안에서 목자와 전도자)나 자식(=자기가 전도한 사람, 혹은 교인 성도들)이나 전토(=사람의 마음)를 버린 자 즉 모든 소유를 팔아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친척이나 가족들이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미쳤다'고 매도하면서 예수를 찾으러 왔을 때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막3:31-35)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진정한 영적인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진정한 형제요, 자매이며,
집 또한 영적인 집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배도의 장막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구원의 장막이 진정한 우리 집이 되는 것입니다.
8.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영적 교만자와 영적 겸손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것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many) 자기 생각에는 영생을 받기에 먼저 즉 1등(first)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는 나중 즉 꼴등(last)이 될 것이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the last) 하나님 앞에서는 1등(first)으로 영생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many)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I never knew you)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시니라.
(눅18:9-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드리지만 '마음이 부자(자칭 영적 부자) 즉 교만'하면, 세리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자복하고 불쌍히 여김을 간구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보다 결코 앞 설 수 없습니다.
(계3:1-5)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예수님께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기는 자' 즉 그 옷 즉 행실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합당한 자이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입니다.
(계3:17-2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먼저 된 자, 자기를 높이는 자, 교만한 자, 자칭 부자).’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나중, 영적 빈곤 상태)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먼 소경이요, 옷을 벗은 벌거벗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불로 단련한 금' 즉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실상 계시의 말씀'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 즉 예수의 피로 씻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행실의 옷을 사서 입어 벗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 즉 등을 밝혀주는 '증거의 말씀'을 발라 눈이 밝혀져야 합니다.
이럴 때 보좌에 함께 앉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겸손과 순종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영적 부자가 되어 우리 모두 다 '천국,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영생의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