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최대의 졸렬왕 고려 25대왕 충렬왕
고려 충렬왕 시기, 고려는 ''카다안의 침입'' 이라는 일대 사건을 맞게 된다. 이는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 대항한 나얀등이 패배하면서, 그 일파였던 카다안 등이 활로를 찾기 위해 대뜸 고려로 쳐들어왔던, 즉 원나라의 반란군 잔당이 고려로 쳐들어왔던 상황이었다.그런데 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충렬왕이 보여준 태도는 국내 역사를 통틀어 봐도 보기 힘든 희대의 졸렬한 모습을 보인다. 먼저 충렬왕은 카다얀이 처들어 오니 피신하라는 신하들의 말에 "백성은 곧 나라의 근본인데 과인이이 어찌 먼저 피난하여 민심을 혼란시키겠는가? 적이 비록 이긴 기세를 타고 여기까지 쳐들어올지라도 과인은은 삼군의 후군(後軍)이 되어 사직(社稷)을 보전할 것이다.” 라며 친정까지 생각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12월. 합단의 군사 수만 명이 화주(和州)와 등주(登州 : 지금의 강원도 안변)를 함락시킨 후, 사람을 죽여 양식으로 삼고 부녀자들을 잡아 윤간한 다음 포를 떴다. 조정에서는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보내 수비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패전소식때문일까 그렇게 패기 넘치는 일갈을 한 충렬왕은 사실 계속 원나라에 구원병을 독촉했는데 여기까지는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나 강화도로 좀 도망가도 되느냐" 고 허락을 구하고, 왕실의 주요 살림을 강화도로 옮기며 도주할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쳤다.
물론 국왕의 몽진은 경우에 따라 패망할 수 있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선택이 되기도 하나, 본인이 내 뱉은 말도 있어 무안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좀 쑥스러운 정도였을테지만 그의 졸렬함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충렬왕의 요청 등에 원나라 역시 도와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원나라에서 온 평장사는 자신들이 도와주러 오겠으니, 그 대신 충렬왕은 수도에 머물며 원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을 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이는 지원군을 보내는 입장에서는 요청할만한 조건이었으며, 고려 왕 입장에서도 지원군이 왔는데 체면상수도에서 위엄을 보여줄 만도 했다. 그러나 충렬왕은 심지어 원나라의 요청조차 무시하고(!) 그대로 강화도로 도주했다……
이렇게 강화도서 전전긍긍하던 충렬왕은 마침내 원나라 구원병이 나타나자 강화도를 나와 원나라 군대를 맞이했다. 비록 왕이 몽진 중이라고 해도 지원병이 왔으니 이렇게 맞이하는것은 할만한 행동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충렬왕의 태도가 너무 속보이는 짓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원병이 왔는데 찡찡하게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나, 충렬왕은 천하무적 원나라 병사들이 자신들 도우러 오자 심하게 안심을 했는지 바로 놀자판을 벌이려고 했다. 이 당시 적의 군세는 이미 한반도 안에서 횡행하고 백성들이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던 양상이었는데, 이 모습을 본 원나라의 장수인 세도칸은 "지금 군량도 부족한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 하고 일갈했다. 상황을 보자면 지원군을 맞이하는 군주가 놀자판을 벌이는 지원군에게 해야 할 일갈 같은데, 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 꾸지람을 먹는 것이다.
"기축일. 왕이 선원사(禪源寺)로 돌아오자 나이만다이가 사람을 보내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했다. “어제는 외람되게도 왕림해서 저희들을 위로해 주셨으니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마는, 다만 적을 어떻게 막을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리셨으니 저는 실로 당혹스럽습니다. 이웃집에 불이 나도 쫓아가 구원하는 것이 마땅한 법인데 하물며 자기 집의 일인데 어찌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습니까?” 고려사 충렬왕조
문제는 그 위로연이 원군의 사기를 올려 적을 무찌르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작전의논도 없이 그저 먹고 마시자는 파티성격의 잔치였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원의 장수인 나이만다이는 다음날 사람을 보내 일단 어제 충렬왕이 연 잔치에 대해서는 감사 인사를 하며 체면을 세워주었지만, "왜 놀기만 하다 들어가고 적을 막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안하셨는지?" 하고 너무나 당연한 부분을 따져물었다. 그러나 충렬왕은 여전히 자신은 늙고 몸이 안좋다고만 말했다. 짜증이 난 나이만다이 막사로 돌아와 화를 냈다고 한다.
나이만다이는 이러한 충렬왕의 태도에 대해 "이웃집에 불이 나도 큰 일로 여기고 도와주는게 사람다운 짓인데, 하물며 자기 집안에서 소란이 펼쳐지는데 어쩌자고 앉아서 구경만 하는가." 하고 의문을 표시했다. 고려 왕이 외적을 무찌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남의 일에 끼어든 원나라 장수들이 심드렁하게 구경만 하는게 일반적인 상황일텐데 오히려 전혀 반대가 된 것이다.고려군 + 원나라 연합군은 충렬왕의 저런 태도와는 별개로 성실하게 작전에 나서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갑작스러운 기동을 통하여 카다안군을 크게 당혹시켰으며, 곧바로 교전을 벌여 ''연기전투''를 벌였고 여기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승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황 자체는 아직 안심할 단계는 못 되었다. 카다안의 군대는 후방에서 계속해서 오고 있었으며, 카다안 자신도 군대를 재편해서 다시 고려군과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장의 상황이 급박한 상황에서 충렬왕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보통 숨을 죽이며 승전을 기다라다가,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것이 일반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충렬왕은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건 내 알바 아니라는 듯 공주와 함께 새 궁궐에 놀러가 잔치를 열며 즐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결국 전쟁은 고려&원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패잔병은 압록강 이북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궤멸당했다. 그러자 충렬왕은 기다렸다는 듯 갑옷을 입으며 말하길... "이제 과인이 직접 적을 토벌할 것이다!" 고 나라 방방곡곡에 널리 선포했다. 여태까지 원나라 장수들이 그렇게 친정을 권해도 몸이 아프다, 나는 너무 늙었다, 혹은 아예 귀머거리 신공을 발휘하며 회피하더니 막상 모든 전투가 다 끝나자 이제와서 "과인이 적을 토벌하러 나설 것이다." 고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조임금도 형식상으로 전장에 한번 나서지 못한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던 점에 비하면 인조급 이상의 졸렬의 극치를 달린것이다... 뒷이야기 충렬왕이 자랑스레 친정을 선포하며 개경으로 요란하게 돌아오자, 적을 무지르고 돌아온 세도칸도 제국대장공주를 만나기 위해 개경에 왔다. 세도칸은 고려와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원나라 장수였지만 군령을 추상같이 집행하여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했고, 충렬왕이 술을 마시며 새 궁궐에서 놀고 있을때 밤낮으로 기동하여 카다안의 대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고려사 편찬자들마저 카다안의 침공을 막아낸 것은 오직 세도칸의 힘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세도칸이 돌아가려 하자, 충렬왕은 뭐 그리 급하냐는듯 세도칸을 초대해서 술잔치를 벌이려 했다. 하지만 세도칸은 "일을 마쳤으니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쿨가이스러운 대답과 함께 바로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나이만다이도 하루만 머문 후 다음날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