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밀가루가 체에 걸려 내려오듯,그렇게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향해 발을 디딛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눈은 예쁘고 아름다우며 눈에도 보기 좋다.하지만 나는 눈이 싫었다.단순히,아니면 이유없이가 아니라 자꾸만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때가 생각났다.
중학교 졸업식은 생각보다 먹먹하고 무언가 막중한 책임을 묻는 듯 하기도 했다.초등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들과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지고 수능도 이제 3년에서 2년으로 좁혀지고...또 그 밖에 너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제 중학교 졸업이네,우리 경수?오랜만에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갈까?"
초등학교 졸업식 때 자장면을 먹으러 갔던거에 비하면 사뭇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장소였다.부모님과 꽃다발을 들고 온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누나가 나에게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주고 하하호호 웃었다.하지만 난 그 속에서 겨우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
'오늘은 별로,주말에 가서 먹어요.편하게.'
모두들 가 버리고 나 혼자 남은 운동장.
나는 운동장의 한 가운데에 서서 하얗게 펼쳐진 운동장을 둘러보았다.그러다가 나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듯 운동장을 덮은 하얀 눈을 한 주먹 쥐어보았다.
나는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려 이리저리 주물러보았다.잘 안되자 아예 장갑까지 벗어던지곤 다시 동글동글하게 만들었다.
손이 다 퉁퉁 얼어버릴 때까지 만든 그것은 다름아닌 눈사람이었다.삐뚤빼뚤 정성스레 만드려 노력은 했으나 왠지 못난이 인형이 되버린 것 같았다.그래도 아랑곳 않고 자랑스럽게 작은 눈사람을 바라보며 그 앞에 슥슥 글씨를 써내려갔다.
'김종인 못난이'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려다가 후다닥 운동장에서 벗어났다.김종인,나의 첫사랑.안녕.
나는 새장에 갇힌 새를 홀가분하게 풀어주듯,아주 유쾌하게 홀로 그와의 이별을 맞이했다.
-
다음 날,뜻하지 않게도 학교를 가로질러 가야 나오는 대학교에 찾아가봐야 했다.누나가 깜빡하고 중요한 레포트를 놓고왔다고 급하게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었다.기분이 나빴으나 심부름 값을 준다고 하니 그냥 지는 셈 치고 가주기로 했다.
학교를 가로질러 가다가 문득 내 눈사람의 안위가 궁금해져 운동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내 눈사람 옆엔,조금 작은 크기의 눈사람이 있었다.그리고 둘다 작은 머플러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그리고 그 작은 크기의 눈사람 앞에는 작은 글씨가 써져있었다.
'도경수 멍청이'
-
나니..?나 정신없이 뭘 쓴거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