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적 군대본질의 종교
인간세상에는 여러 가지 선서가 있지만, 군대의 선서와 종교의 선서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서로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어 행복한 가정의 삶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결혼의 선서는 무지한 짓이며, 선서를 통한 사명감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정의 삶을 불행한 가정의 삶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니, 그러한 삶은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쫓듯 추구하는 불행한 가정의 삶을 이루게 된다.
군인은 군대의 선서로 군법에 적용을 받으며, 종교인은 종교의 선서로 종교적 교리에 적용을 받는다. 이러한 군법과 종교적 교리에 의한 군대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은, 근본적인 면에서는 같으나 표면적인 면에서는 다르다. 근본적인 면에서 같다는 것은, 군대의 본질은 나라를 지켜 국민으로 하여금 안정된 삶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종교의 본질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영혼을 지켜 밝은 영혼을 이룰 수 있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표면적인 면에서 다르다는 것은, 군대의 본질은 현재의 삶을 지키는 것이며, 종교의 본질은 존재의 삶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이 한 단계 넘어가면, 군대의 본질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침략자를 죽여야 하는 즉, 살생을 해야 하는 것이며, 종교의 본질은 인간의 영혼이 밝게 형성되도록 악을 멀리하고 선을 쌓는 선적자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의 선서는 군대의 선서와 같은 충성에 맹세하는 선서가 아니다. 군대의 선서는 절대적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에 준하여 이루어지지만, 종교의 선서는 신의 뜻에 따라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영혼을 밝게 하겠다는 스스로의 맹세에 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군대는 충성이다. 군대의 지시에 따라 충성을 다하여 적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 군대이지만, 종교는 정성이다. 종교의 가르침에 정성을 다하여 자아의 영적발달을 이루고 또한 상대의 영혼을 밝게 하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가 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 군대와 같은 짓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교적 교리가 군대법과 같으면 어떻게 될 것이며, 종교의 행동지침이 군대의 행동지침과 같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군인으로서 개인의 이성은 더 이상 개체적 존재를 주장하지 못하며, 군인으로서의 직분과 명령에 따라 때에 따라서는 살생을 해야 되는 강제적 의무를 가진다. 또한 군대라는 특수성에 따른 군인으로서 인간적인 양심은 뒤로 물러나고, 그리하여 전쟁에서는 다른 생명체도 죽일 수 있으며, 때로는 부모형제도 살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와같이, 군대의 선서로 변질된 종교의 선서는 곧 그 집단에 대한 충성과 명령에 따른 복종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개인의 주체적 영혼은 말살되고 노예적 영혼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집단에 선서를 통한 맹세를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전적으로 집단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니, 개인의 양심은 뒤로 물러나고 군대와 같은 직분과 명령에 따라 강제적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종교가 군대와 같은 성격을 가진 종교가 되어 집단에서 살생을 하라고 지시하면 살생을 해야 하고, 부모형제도 마귀라고 하면 부모형제도 마귀로 취급하여 살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군대의 살생은 필요악인지라 그것에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 침략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이 전쟁의 본질이며, 그 본질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군대다. 하지만 종교의 살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필요악이 될 수 없다. 인간세상에서 어떠한 살생보다도 종교의 살생은 하늘과 땅과 인간세상 어디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짓이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하느님의 세계를 짓밟는 짓인지라, 인간은 그리고 인간세상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며, 결코 용서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종교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충분한 대화를 이루도록 하여 전쟁을 막아 생명체를 다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앞장서서 살생적 전쟁을 한다면 인간세상은 무엇으로 평화를 찾을 것이며, 인간의 영혼은 어디에서 자유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군대는 침략자를 살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살생은 군대라는 집단의식에서 개인으로서의 군인은 살생에 대한 선악을 따지지 않으며, 오히려 침략자를 죽인데 대한 상을 내린다. 개인의 살생적 책임을 군대라는 집단에 위임하여 개인에게 살생에 대한 책임보다 상을 내리는 것이며, 군대는 이것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에 정당함을 두어 그러한 살생적 책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군대의 특성을 종교가 답습을 하게 되면, 종교 또한 군대와 같은 짓을 한다. 개인의 선악을 종교라는 집단에 책임을 떠넘기고, 종교집단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지킨다는 명목아래 책임을 회피하는 살생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아니며, 또한 필요악적 종교도 아니니, 그 어떠한 경우도 정당화될 수 없다.
종교적 살생은 영적차별에 의한 살생이기에 그 어떤 살생보다 더 잔인한 살생을 저지르며 더 죄책감을 갖지 않으니,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처절하게 망가트린다. 종교가 종교일 때 신성한 장소이며, 종교가 종교의 본질을 벗어나면 더 이상 신성함은 없으니, 스스로 신성함을 상실한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종교적 비극은 그 어떤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인간의 역사가 되풀이 되도록 하기 때문이니, 그러한 종교는 나라를 침략하는 국적(國敵)이 아니라, 인류를 침략하는 인류의 적(敵)인지라, 적 중에서도 영혼을 말살하는 사악한 적인 것이며, 현재의 삶과 존재의 삶을 모두 그리고 가장 불행하게 하는 적인즉, 인간세상은 그 무엇으로도 그러한 종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러한 종교의 종교인은 타인의 영혼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양, 인간위에 군림하려 하며 다른 인간들의 영혼에 영적손상을 입히게 된다. 종교가 군대를 모방하여 군대적 성격을 띠면 군대와 같은 똑같은 짓을 하게 되는 것은, 종교에 충성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비극적인 짓들을 양심을 져버리고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 원한이나, 침략을 저지르거나, 남을 공격한 죄를 지은 죄는, 죄가 되거나 아닌 것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고, 오로지 신의 명령에 따른다는 종교집단에서 내리는 지시에 따라, 책임감도, 양심의 가책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악행을 저지른다. 그 명령한 신은 어떠한 신이며 그러한 지시를 내린 인간은 어떠한 인간인가? 그러한 그 신이 진정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존엄한 하느님이란 말인가? 또한 인간의 영혼을 밝게 하여 다 같은 하느님의 자손으로서 하느님의 세계로 가야하는 할 영적존재를 위하여 봉사하는 존재들인가? 신을 빙자하여 인간을 살생하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트리는 종교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집단이며, 또한 인간의 영혼을 빙자하여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거나, 인간의 영혼의 빛을 어둡게 하는 인간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다.
그러한 집단이나 인간은 인간세상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인류는 명심하여야 한다. 군인의 과잉 충성은 군대의 본질을 벗어나며 나라를 지키기 전에 국익을 해치게 되고, 군인이 군인의 본분을 벗어나면 나라를 지키기 전에 자국인을 해치게 된다. 종교가 군대 흉내를 내다보면 반드시 이러한 폐단이 발생하니, 이러한 종교적 폐단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하는 종교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인간의 영혼을 밝게 이루도록 길을 제시하고 안내를 해야 하는 종교가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켜 영적자아를 말살하게 되며, 인간세상을 하느님의 세계와 함께 하도록 해야 하는 종교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적대시하게 만든다. 인간세상에서 끊임없이 하늘에 욕을 하는 이유가 바로 종교에 발생적 근원이 있으며, 인간이 하늘에 욕을 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책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침략자가 살생을 하여 이기는 것은 자국이 패전(敗戰)한 것이며, 인간의 영혼이 종교에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은 종교가 폐종(廢宗)된 것이다.
군대의 단결성은 적을 이기는 위한 것이며, 종교의 단결성은 상대의 영혼을 밝게 하기위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종교의 단결성이 인간을 적으로 삼아 이기려 하는가? 어떻게 감히 하느님의 세상에서 종교가 군대가 하는 짓을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영혼을 밝게 하여 인간세상에 하느님의 밝음이 내리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종교가 하느님을 적으로 간주하도록 만들며, 하느님의 자손인 인간을 종교가 감히 살생을 한단 말인가?
종교가 인간을 죽이는 것은 하느님을 죽이는 것과 같으며, 자기 부모를 죽이는 짓은 인륜지 최고의 패악이다. 그런데 자연을 다스려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죽이는 짓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전쟁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없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전쟁을 원하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이며, 그러한 종교는 무엇을 위한 종교이며,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인간세상에 이러한 종교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종교의 신앙인은 다른 인간들에 비하여 더 짙은 어두운 영혼의 빛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정상적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영적장애와 함께 가정과 사회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평상시 인간의 본성에 따른 행위에 대한 책임과 양심을 갖추고 있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는 완전히 돌변하여 종교적 영혼의 살인마가 되는 것이다. 이런 종교가 존재하는 인간사회는 가장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회가 될 것이며, 가장 하느님의 빛을 접할 수 없는 인간세상이 될 것인즉, 종교가 종교의 본질에 따른 사명을 다할 때 인간세상은 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며, 인간세상과 하느님의 세계가 함께 하게 될 것임을 알라.
폭력 본질의 종교국가
국가 안에 정치와 종교가 있다. 국가란 가정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인즉, 정치는 국가 밑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여야 하고, 종교는 국가 밑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여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국가 위에 올라서면 가정을 지배하려는 지배적인 정치국가가 되고, 종교가 국가 위에 올라서면 가정에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종교국가가 된다. 정치적 사상은 경쟁적 정신에 의하여 강압적이기 때문이며, 종교적 믿음은 쇄뇌적 정신에 의하여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지배적 정치는 투쟁적인 이념의 정신구조에 의하여 사회를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게 하며, 폭력적 종교는 비합리적인 이념의 정신구조에 의하여 사회를 혼란과 미망에 빠트린다. 특히, 폭력적 종교의 하수인인 종교지도자라는 인간들의 정신구조는 국가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믿음의 대상을 위하여 충성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책임감이 없으며,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서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상식도 외면하고 비상식적인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또한, 그러한 인간들이 정치에 간여하면, 그 정치는 폭력지배적 정치가 되어 인간세상을 암울하게 만들게 되며, 인간의 존엄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종교적 믿음에 의한 영혼은 이치에도 없는 가설과 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망상에 불과한 것을, 종교적 믿음이 영혼의 빛을 밝게 하여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종교적 삶과 함께 사후에 신의 세계에서 그 영혼으로 영광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잃어버린 영혼을 사후에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종교적 삶에서 위안과 자족적 삶을 이루려 한다.
정치적 속박과 종교적 노예가 된 인간세상에서, 인간의 가치적 삶은 그 존재를 실망스럽게 하고, 영혼의 존재론적 삶은 귀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가장 인간의 삶을 책임지고 행복하게 하여야 할 정치가 반목과 투쟁을 부추기며, 전쟁의 비참함으로 민중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가장 진실하게 인간의 존재론적 영혼을 책임지고 밝게 하여야할 종교가, 민중을 이간질시켜 적대적인 암흑의 인간관계를 조장한다.
가장 검소하게 살림을 하여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여야 할 정치가 사치와 낭비적 살림을 하여 민중의 삶을 헐벗게 만들고, 가장 진실하여야 할 종교가 허영심에 가득 찬 교당을 짓고, 가장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할 종교지도자가 사치와 허영심에 허드레를 핀다. 정치판에서는 선량한 민중들에게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미명아래 세금을 수탈하여 고통스런 삶에 짓눌리게 하고, 종교에 영혼을 빼앗기고 쇄뇌된 인간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정치판과 종교판에서 던져주는 것을 먼저 주워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한다. 종교판에서는 나약한 영혼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가진 재산을 협박적으로 빼앗아 절망과 불행에 빠트리며, 인간사회에 대한 배타적 증오심을 갖게 하여 가정과 사회를 찢어 놓고, 그 야만적인 기쁨에 만족감을 가지며 의기양양해 한다.
바른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감시의 눈을 크게 뜨고 민중을 위한 깨끗한 정치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할 종교가, 정치와 결탁하여 민중의 피를 빨아먹으며 세상을 장악한양 민중 위에 군림하려 한다. 희망과 사랑과 화합을 하도록 하여야 할 종교가, 다른 종교인들의 머리에 포탄을 퍼부어 그 민중의 삶을 절망적 피부림으로 만들고, 또 다른 종교인들은 포탄을 몸에 두르고 스스로 자폭하는 비참한 민중의 삶을 만든다. 이웃집이 믿고 사는 종교가 못마땅하여, 그러한 종교적 삶은 잘못된 삶이라 비난하며 공격하듯이, 다른 나라에 간섭하여 악의적인 전쟁을 벌여 인간을 살상하고, 민중들의 삶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비열한 종교적 정치를 행한다.
검은 옷과 회색 옷은 귀신의 색과 죄인의 색인즉, 그러한 어두운 영혼을 닦아 밝은 영혼을 갖추기 위하여 종교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오히려 선량한 민중 위에 군림하여 더러운 색채를 던지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또한, 종교의 비열한 사상에 쇄뇌되어 부모와 자식을 버리는 짐승 이하의 짐승 짓을 하며, 영혼의 갈증과 굶주림에 지친 민중들이, 근엄한 종교장에서 던져주는 어두운 영혼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하여, 비굴한 눈물을 흘리며 매달린다.
종교적 믿음에 의한 환상은 인간의 약점 아닌 약점인 심리적 갈등을 부추겨, 인간의 삶을 갈등에 따른 투쟁의 인생이 되게 하고, 뿌리없는 정신에 의한 영혼의 실패를,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제멋대로 끼워 맞추며 실패가 성공인 것처럼 만든다. 그리하여 종교의 성향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망상적인 영혼에 정신을 빼앗기게 하고, 그러한 삶에서 오히려 의의를 찾게 하며, 강제주입에 의하여 쇄뇌된 저주와 공갈에 의한 영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인간의 삶을 절망과 회의에 빠지게 한다.
종교에 쇄뇌되지 않고 정신이 깨어있는 인간이 볼 때, 그러한 종교의 성직자라는 인간은, 영적폭력에 의한 망상과 강제적 주입에 의한 쇄뇌로 인간의 삶을 미망에 떨어트리고, 인간세상을 저질적이고 추악한 세상이 되게 하려는, 귀신에 영혼이 매수된 인간들임을 안다. 그러한 종교적 망상과 행위는 그 종교 자체로는 본질을 바꿀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종교의 본질이 그러한 망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제적 주입에 의한 쇄뇌와 저주에 따른 공갈이 절대적인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미명아래 자행되는 모든 행위들은 변명의 여지없이 인간세상의 가장 사악한 악(惡)인즉, 자신의 영혼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인간은 그러한 사악함에 끌려가 같은 사악한 인간이 되어 영혼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사악한 종교가 인간세상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종교적 악행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 스스로 사라지지 않으며, 수수방관에 의하여 인간의 삶을 지속적으로 암울하게 하고, 개인과 가정에 불행이 끊이지 않게 한다. 종교에 쇄뇌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영혼의 빛이 형성된 인간들의 의식에서 그러한 인간을 다스려 나갈 때, 비로소 종교적 악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하여 인간세상이 귀신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에 의한 하느님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에 쇄뇌되지 않은 인간들이 영혼을 잃은 인간들에게 억압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만을 믿고 혼자만이 강한 영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악의 무리들은 똘똘 뭉쳐 선한 인간을 공격하며, 선한 인간들이 단합을 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이간질을 하고, 아름다움 인간세상을 험악하게 만들어 인간의 실망에 따른 도피적 삶이 되게 한다. 이러한 불행의 역사를 인류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서는, 종교에 쇄뇌되지 않은 인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간을 살리고 인간세상을 살려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