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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치유04) 사회적 종교와 정치

소검 |2014.06.02 11:48
조회 52 |추천 0

사회적 종교와 정치

 

인간사회의 바른 발전을 위해서는 인간의 가치를 바르게 정립하여 인간의 존귀함과 인생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며, 인간세상이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바로 서서 이치적 조화와 이치적 질서가 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극에서 태극이 이루어지는 이치는, 양에서 음을 태동하는 이치이며, 태양의 빛이 달로 하여금 빛을 이룰 수 있게 하여 달빛과 함께 태극을 이루어 땅에 빛을 내리는 이치이다. 그러나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이 무극이라고 하는 것은, 무극이 양과 음이고 양과 음이 무극인 것이니, 양만이 무극이 아니고 음만이 무극이 아닌, 양과 음이 무극인 것이다.

 

태양에 의하여 달빛이 이루어지는 것은 달이 있기 때문에 달빛이 이루어지니, 달이 없다면 달빛이 이루어질 수 없고, 태양은 스스로 달빛을 이룰 수 없다. 달이 햇빛으로부터 빛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햇빛이 달빛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달은 달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햇빛을 받아 빛을 내는 것이니, 달빛이 햇빛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을 오해하여 달빛을 햇빛의 부속정도로 생각한다면 현상적인 면만을 생각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달빛은 존재할 필요도 없고, 햇빛은 스스로 달빛과 같은 빛을 내야 하는 것이니, 햇빛은 근본적으로 그러할 현상적 능력이 없다.

   그런즉, 해와 달은 동등한 것이고, 동등해야 무극이 되는 것이며, 양과 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차이가 난다면 무극은 찌그러진 무극이 될 것이니,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치가 없다. 현상적인 면에서는 태양이 달보다 수 백배 크다고 하지만, 존재적인 면에서는 햇빛과 달빛이 다를 수 없는 것이니, 다르다면 무극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남녀가 존재하고, 이러한 이치에 따라 인간세상에 종교와 정치가 있게 된다.

 

종교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인간의 영혼의 빛을 밝게 하는 것이며, 정치는 땅의 이치에 따라 인간의 삶을 밝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론적인 삶은 종교가 체(體)가 되고 정치가 용(用)이 되며, 현재론적인 삶은 정치가 체(體)가 되고 종교가 용(用)이 된다. 이러한 체와 용의 관계에서, 종교는 인간의 존재의 삶으로부터 철학적 물음에 답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치는 인간의 현재의 삶으로부터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는 답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종교와 정치가 태극적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내세를 위한 보람된 존재의 삶을 이룰 수 있고, 밝은 현재의 삶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는 그 관계에 있어서는 체와 용의 관계이지만, 종교와 정치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이며, 둘이 각기 완전한 하나를 이루어야 둘이 완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니, 종교가 정치에 포함된다거나, 정치가 종교에 구속되면, 그것은 정상적인 태극이 되지 않는다.

 

종교는 종교의 본질에 따라 독자적으로 완성을 이루어야 하고, 정치 또한 정치의 본질에 따라 독자적으로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 태극이 태극인 것은 양과 음이 있기 때문이며, 양이 완전한 양이 아니면 음과 함께 태극이 될 수 없고, 음이 완전한 음이 아니면 양과 함께 태극이 될 수 없다. 종교가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고, 정치가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른 종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즉, 종교와 정치는 상보적인 관계에서 독자적인 존립을 이루어야 한다. 종교로는 존재론적 가치를 찾는 삶을 이루게 할 수는 있지만, 현세적 가치관에 따라 형성된 사회에, 내세적 가치관이 겹쳐지게 되면, 사회적 혼란으로 인하여 현세적 가치든 내세적 가치든 이룰 수 없게 되고, 정치로는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할 수는 있지만 사회구조의 다양성에 의하여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것까지는 할 수 없다. 인간세상을 책임질 수 있는 두 집단적 기능인 종교와 정치는, 인간의 내적인 내세와 외적인 현세에 대하여 바른 정의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사회형성에 책임있는 관리와 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의 사상적 핵심은 인간의 가치적 존중과 사랑이며, 정치의 이념적 핵심은 상보적 사회성에 의한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인간사회를 형성시키는 두 기능으로서, 그 실천적 방법에 있어서는 정신과 물질의 성질과 같이 정반대가 되지만, 그 목표는 “인간다운 삶”으로 일치하게 된다. 종교적 사상이 잘못 되어 존재론적 인간의 가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인간세상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고, 정치적 이념이 잘못 되어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할 수 없다면 또한 인간세상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 행복한 인간세상이 되어야 존재의 삶이든 현재의 삶이든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와 정치가 혼합되면, 종교적 혼란과 정치적 혼란에서 사회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칫 비극의 역사를 만들게 되니,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면 인간의 가치를 훼손시키게 되고, 정치가 종교에 관여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그런즉, 종교와 정치가 바르게 형성된 사회에서, 만약, 종교가 인간의 가치를 훼손시키면 사회단체가 나서서 정치와 함께 종교를 바로 잡을 수 있고, 정치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게 되면 사회단체가 나서서 종교와 함께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으니, 무엇보다 먼저 종교와 정치가 바른 사상과 이념에 따라 개체적 기능이 이루어져야 한다.

 

종교적 사상과 정치적 이념이 바르게 정립되고, 그 사상과 이념에 따른 기능이 기능의 역할을 다 하여야, 인간세상에 행복한 삶과 보람된 인생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종교적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가치를 선에 두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의 가치를 선에 두지 않고 악에 두면, 인간세상을 악으로 몰고 가게 된다. 즉, 악을 저지하고 선을 세워야 하며, 선을 지키기 위해서 악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를 악에 두고서 선이 이루어지를 바란다는 것은, 선을 악의 노리개로 만들게 되니 역겨운 인간세상이 되어,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는 짐승이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이념의 핵심은 인간의 본질을 행복에 두어야 하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을 행복에 두지 않고 불행에 두면, 인간세상을 불행으로 몰고 가게 된다. 즉 불행을 감싸기 전에 행복을 먼저 감싸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불행에 두고서 행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든 인간의 행복을 불행에 빠트려, 행복을 훔치려는듯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회가 되게 하니, 인간의 현재론적 삶은 짐승의 각축장과 같이 되어 인간의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그러한즉, 종교는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바르게 정립된 사상으로 종교의 본질을 바르게 실천하여야 하며, 정치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바르게 정립된 이념으로 정치의 본질을 바르게 실천하여야 한다.

 

권력적 인간사회

인간사회에 인간의 가치와 생존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권력(權力)이다. 권력현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선과 악의 양면인 진선미와 탐진치에서 탐진치가 극단적으로 들어난 현상이다. 극단적인 탐진치가 실질적으로 힘을 갖게 되는 것이 권력이며, 이러한 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권력형 단체가 형성되는 것이니, 대표적인 권력형 단체가 정치단체와 종교단체이다. 그리하여 단체적 권력을 잡은 인간들은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위에 군림하여 명예와 존경, 지식과 재물, 생존과 가치를 강제적 형태의 방법으로 획득하고, 그 획득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권력현상은 인격의 향상과 사회적 집단생활의 차별과 다툼을 교정하기 위한 필요에 따라 그 위치적 자리를 잡기 위하여 발생한다. 그리하여 특정 권력을 잡은 집단이나 인간이, 다른 집단이나 인간으로 하여금 인격의 단일화와 집단의 통일된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강제적 형태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강제적 형태의 형식에 따른 현상은 사회의 여러 가치의 배분과 형식 안에서의 체계유지 또는 변혁을 요구하고, 그 배분과 유지와 변혁체계를 강제적 명령에 따른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극단적인 탐진치로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된 권력형 인간들은 그러한 삶 자체를 자신의 삶에 유효한 가치적 생활로 결정하고, 그러한 권력형 주체가 필요로 하는 사회의 여러 형태적 가치와 배분을 결정, 유지, 변경하도록 강제적으로 복종시키어 인간위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형 주체의 필요에 의한 발현은 크게 두 가지 강제적 형태로 나타나니, 육체의 속박(束縛)과 물질의 탈취(奪取)이다. 육체의 속박은 육체의 감금에 의한 처벌로 억압적 제약을 하게 되며, 이러한 속박은 강폭적 처벌과 유약적 처벌을 하게 된다.

   물질의 탈취는 물질의 압취에 의한 처벌로 제약적 억압을 하게 되며, 이러한 탈취는 압수적 처벌과 과료적 처벌을 하게 된다. 이러한 처벌은 결국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억압하여 강제적 복종을 하게 만들며, 그렇게 하여 권력형 주체가 군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형 지배는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과 현실론적 삶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게 되니, 육체의 속박에 의한 기본권 억압은 정신적 충격을 주게 되어, 인생에 대한 절망과 삶에 대한 체념과 국가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하며, 물질의 탈취에 의한 생존권 억압은 현실적 고통을 주게 되어, 행복한 삶에 대한 좌절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낙담과 국가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한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삶의 의지와 희망을 꺾는, 온갖 강제적 권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합법적이라고 인정하여 권력을 승인하였기 때문이며, 그 승인에 따라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탐진치의 권력이 탐욕적 권력을 사회에 침투시켜 직접 간섭하는 것에서 온갖 부조리와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인간사회의 집단생활은 인간의 본능이며, 집단생활의 구성원은 최소 집단인 가정이다.

   이러한 사회집단은 기본권을 실현하고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순리적 집단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공존을 위한 양보로서 타인과의 타협이 이루어지며, 서로를 지키기 위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실현하고, 상호 협력적 사회가 되도록 하기위한 상보성이 형성 된다. 또한 반면에 상보성을 저해하는 요소에 대하여 금지하며, 배려에 대한 악용을 막기 위하여 저지하며, 공존을 위협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러한 부정적 요소에 대하여 개인과 가정의 안정을 위한 방지와 예방을 하게 된다.

 

공존공생을 위한 상부상조를 이루기 위하여 순리적이며 자율적인 인간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리적이며 자율적인 인간사회를 극단적인 탐욕적 권력이 지배하면 순리적 인간사회가 복종적 타율적인 인간사회로 된다. 즉, 인간의 본성에 따라 도리나 이치에 자기의 행동을 규제하는 순리적이며 자율적인 인간사회가, 권력형 특정단체의 권력의 힘에 의하여 자율적 본성이 아닌 타율적 명령에 의한 속박 및 탈취 등에 따라 행동하는 복종적 타율적인 인간사회가 되는 것이다.

   복종적 타율적인 인간사회는 여러 형태적 가치와 배분을 결정, 유지, 변경하도록 일정한 행동양식을 만들며, 그러한 양식에 위반이 그 집단이 정한 행동양식에 위반이 되고, 그 위반으로 위반자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속박 및 탈취 등에 의하여, 여러 형태적 가치와 배분을 억압 및 제약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권력형 집단이나 인간이 다른 집단이나 인간을 복종시키는 방법이며, 이러한 방법을 승인하고 실행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 강제력에 의한 단순한 폭력과 같은, 구금, 격리, 탈취, 압취, 파면, 해임, 질책, 망신 등의 방법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탐욕적 권력형 집단이 이러한 행위를 하며 복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권력집단이 정한 생활양식이 사회정의와 실현을 위한 것임을 선전하고, 동시에 배분체계에 대한 유지 및 변경을 위하여 강제력을 발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탐욕적 권력형 집단의 행동양식을 뒷받침하여 복종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근거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에, 강제에 의한 수동적 복종이 아닌 “능동적 복종성”을 갖고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강제력을 행사하여 복종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성의 기초적 근거로 삼고, 인간의 약점 아닌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복종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탐진치로 실질적 힘을 갖게 된 탐욕적 권력형 집단이나 인간은,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능동적 복종성”을 인정하도록 계획적 선전과 선동을 하며, 의도적 궤변과 신화를 만들고, 음모적 모략에 의한 수단과 간계(姦計)를 구사하여, 강제력에 의한 수동적 복종을, 인간의 본능적 심리에 스스로 복종하려는 능동적 복종이 있는 것처럼 쇄뇌(鎖腦)시킨다. 그렇게 하여 탐욕적 권력형 집단이나 인간은 그 탐욕적 욕구를 객관화시키고, 자신들의 가치와 배분체계를 결정, 유지, 변경하는 것에 대하여, 쇄뇌된 쇄뇌자들에게 설득하고 합리화 시킨다.

 

인간사회에 이러한 탐욕적 권력이 발생하고 발전성향을 갖는 것은, 권력적 탐욕에 물든 사악한 인간들이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비를 걸어 분쟁을 일으키고, 극악무도한 싸움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와 인간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형 사회가 갖는 기본 생활방식은 약육강식과 인간차별이 되어, 탐욕이 많은 자가 강한 자가 되어 선량한 인간들을 억압하며, 탐욕적 권력을 가진 자가 우등(優等)한 존재적 인간이 되어 다른 인간을 저등(低等)한 존재로 취급하는 현상이 사회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형 사회는 그 권력의 범위에 한계가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능동적 복종심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인간에게는 복종심이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복종을 강조하는 인간일수록 더 잘 알 것이며, 강조 자체가 복종심이 없다는 것을 항변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탐욕적 권력의 지배력의 한계에 벗어나는 것이 사회의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대표적이며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도시형 사회에서 드러나며,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말살(抹殺)되고, 가정의 안정과 행복을 근본적으로 몰수(沒收)시키게 된다.

 

종말적 인간세상

정치는 인간세상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에 따라 그 목적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밝은 인간세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종교는 그러한 정치적 체제의 바탕 위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의 목적을 이루도록 밝은 길을 제시하고 밝음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종교가 인간으로 하여금 밝음을 이룰 수 있도록 밝음의 길로 인도할 때, 정치는 안정되게 세상을 다스려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간세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을 어둠으로 몰고 감으로 해서 인간의 심성이 어두워지면, 정치는 불안정하게 되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치를 하게 되니, 인간세상은 불행하고 추한세상이 되어 비극적인 역사를 낳게 되는 것이다.

 

정치는 현실적 인간의 삶이며 종교는 미래적 인간의 삶이다. 그러한즉 종교가 정치성향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 정치가 종교성향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세상의 결과적 책임은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즉, 인간의 삶의 체제는 정치로 하여 이루어지지만, 삶의 질은 종교로 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거짓종교는 인간세상의 지난역사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폐습만을 골라 그것으로 인간의 본질을 재단한다. 또한 지난 역사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역사를 이룬 것이 종교이건만 그것을 정치의 잘못으로 핑계를 돌린다. 거짓종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여야 인간세상을 어둡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밝아질 수 없으니, 귀신은 마음 놓고 인간의 영혼을 수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서 미래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미래의 삶을 끌어와 현실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이러한 순리와 이치를 거스름으로 해서 현실의 삶이 모순적 비극이 이루어진다.

 

거짓종교가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인간세상을 추하고 저질스럽게 하니, 정치는 그에 맞는 탄압적이고 폭력적이 된다. 정치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밝음을 따르지 않고 어둠을 따르니 그것을 제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짓종교는 세상을 먼저 어둡게 만들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정치적 부당성을 들어 더욱 인간세상을 어둡게 만드니, 또한 정치는 더욱 탄압적이고 폭력적이 되어 비인간적인 현실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백성들의 안정적 평화는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진다.

   인간의 존엄을 땅에 떨어트리고 인간세상을 어둡게 하려는 것이 거짓종교의 목적이다. 그렇게 해야 인간세상을 귀신들이 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귀신에 놀아나 존재의 목적과 목적을 이룰 능력이 사라짐으로 해서, 인간의 가치는 짐승의 가치로 전락하게 되고, 존재론적 목적과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창조의 목적이 지리멸렬되고 인간세상이 더 이상 구제의 길이 없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지난 수고로움을 포기하고 인간세상을 접어버리게 된다. 인간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생명체들을 거두어 버리고 새로 시작하시니, 그것을 인간세상에서는 종말이니 개벽이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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