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인류의 하느님
민족이 주체성을 상실하면 그러한 세계는 뿌리없는 세상이 되어 인류적 타락이 이어질 것이며, 개개인의 가정이 무너진 민족은 뿌리없는 민족이 되어 결국 그 백성들이 타락할 것이며, 개개인의 주체성이 상실된 가정은 뿌리없는 가정이 되어 개개인 모두 타락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정치나 어떠한 종교도 이것을 지켜야 한다. 즉 각각의 민족을 인정하고, 각각의 가정을 인정하고 개체적 개인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 타락하고 나서 가정이 어떻게 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며, 개개의 가정이 무너지고 나서 그 민족이 어떻게 바르게 갈 것이며, 각각의 민족이 무너지고 나서 인류는 어떻게 바르게 갈 수 있겠는가?
정치적 근시안과 종교적 근시안은 인간세상을 비극으로 내몰고 모든 정체성을 무너트리게 되니, 거기에서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위대한 영혼은 사치스러운 말이 될 뿐이다. 더더욱 인류적 공동체를 내세워 각 민족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각 민족의 전통적 정체성을 무너트리는 집단이나 인간은 인류의 공통된 적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민족을 위한 공동체이며,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를 알아서, 이러한 사악함으로부터 민족을 지키고 가정과 개인을 지켜야 한다. 어떠한 민족이 민족적 주체성이 흐려지면 그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도록 도와주고, 어떠한 민족이 전통적 정체성이 흐려지면 그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각각의 민족이 민족적 주체성과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인류의 평화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인간세상에서는 인류의 평화를 주장하고 바라겠는가? 그것은 인류가 평화로워야 각 민족이 평화로워지며, 민족이 평화로워야 개개의 가정이 행복을 눌릴 수 있고, 가정이 행복하여야 개개인은 그 안에서 존재적 자아를 이루는 밝은 영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인간세상이며, 이러한 인간세상이 되어야 인간세상이 하느님의 세계와 가까워지게 되고, 개개인의 영혼은 하느님의 세계로까지 갈 수 있는 영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인즉,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
편협적 인류애
인류 안에 각각의 국가가 있고, 국가 안에 각각의 사회가 있고, 사회 안에 각각의 가정이 있고, 가정 안에 각각의 개인이 있다. 그러나 가정 안에 개인이 있다고 하여 가정이 개인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사회 안에 가정이 있다고 하여 사회가 가정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국가 안에 사회가 있다고 하여 국가가 사회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인류 안에 국가가 있다고 하여 인류가 국가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악한 무리들은, 가정 안에 개인을 구속하려 하고, 사회 안에 가정을 구속하려 하고, 국가 안에 사회를 구속하려 하고, 인류 안에 국가를 구속하려 한다.
가정 안에서 개개인이 서로를 인정할 때, 가정의 개인은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으며, 사회 안에서 개개의 가정이 서로를 인정할 때, 사회의 가정은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으며, 국가 안에서 개개의 사회가 서로를 인정할 때, 국가의 사회는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으며, 인류 안에서 개개의 국가가 서로를 인정할 때, 인류의 국가는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때,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자유를 잃고 불행한 삶을 이루는 인류가 된다. 왜 인류는 이러한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인가? 인류의 불행은 국가들의 적대적인 전쟁이며, 국가의 불행은 사회들의 적대적인 투쟁이고, 사회의 불행은 가정들의 적대적인 충돌이며, 가정의 불행은 개인들의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적대감에 있으니, 이러한 불행은 인류의 불행을 조장하는 종교집단으로부터 근원적인 발생이 이루어진다.
신을 믿는 자는 인간을 믿지 않아도, 인간을 믿는 자는 신을 믿는다. 또한, 신을 사랑하는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아도,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신을 사랑하며, 신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도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신을 사랑한다. 신을 사랑하는 자가 도덕성을 잃고 시기와 질투와 비정한 짓을 저지르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도덕성을 잃지 않고 인정과 포용과 정의를 지키며, 그리하여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은 항시 두려움이 없으나, 신을 사랑한다는 인간은 항시 두려움에 산다.
그러한즉,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이며, 신을 사랑하는 자는 편협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랑이다. 또한,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상대가 어떠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잃지 않지만, 신을 사랑하는 자는 그 신이 어떠한 신인가에 따라서 그 사랑의 질이 달라지니, 그리하여 조화로운 이념에 따라 조화로운 사랑을 이루고, 탐욕스런 이념에 따라 탐욕스런 사랑을 이루며, 정성스런 이념에 따라 정성스런 사랑을 이루고, 저주하는 이념에 따라 저주하는 사랑을 이루며, 어진 이념에 따라 어진 사랑을 이루고, 비굴한 이념에 따라 비굴한 사랑을 이룬다.
인류(人類)란, 지구촌의 모든 국가와, 모든 국가에 있는 모든 사회와, 모든 사회에 있는 모든 가정과, 모든 가정에 있는 모든 개인을 합쳐 하나의 인류라 한다. 이러한 인류는 모든 국가 중에서 하나의 국가라도 빠지면 인류가 되지 못하며, 모든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라도 빠지면 인류가 되지 못하고, 모든 가정에서 하나의 가정이라도 빠지면 인류가 되지 못하며, 모든 인간에서 하나의 인간이라도 빠지면 인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악한 무리들이 인류를 보편적 인류가 아닌 특수적 인류로 생각하여, 특정한 국가나, 특정한 사회나, 특정한 가정이나, 특정한 인간을 위한 편협적인 인류로 만든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인류애를 주장하여 인류동포의 사랑을 주장하지만, 특정한 인간과 특정한 가정과 특정한 사회와 특정한 국가를 위한 편협적인 인류애는 어떻게 인류동포의 사랑을 이룬다는 것인가? 그러한 편협적인 인류애는, 특정한 인간과 특정한 가정과 특정한 사회와 특정한 국가를 제외한 다른 인간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적으로 만들어 불행의 인류가 되게 하니, 그리하여 편협적인 인류애는, 남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인간이하로 취급하며, 남의 가정을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취급하여 불행하게 만들고, 남의 사회를 함부로 짓밟아 비극적인 사회를 만들며, 남의 국가를 함부로 공격하여 전쟁에 의한 무수한 살상을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편협적인 인류애에 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저주적 미움이며, 그러한 무리들의 정신이나 마음에는 사랑이라는 그 씨앗도 없을뿐더러, “사랑”이라는 그 뜻도 모르는 인간들이다.
“사랑”이라는 뜻도 모르는 인간들이 인류애를 운운하고 인류동포애를 운운하는 것은, 인간 개인의 영혼으로부터 사랑을 지우기 위한 것이며, 가정과 사회에 사랑을 싹트지 못하게 하기위한 것이고, 국가와 인류에 사랑을 멸망시키기 위한 짓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가 편협적인 인류애로 인하여 불행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는 첫 번째 원인은, 특정한 종교에 쇄뇌된 정신에 의한 차별적 인류애이다. 그러한 차별적 인류애는, 악의 종교적 이념에 쇄뇌당하며 자란 영혼을 잃은 인간의 인류애 인지라. 선을 위한 인류애가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악을 위한 인류애만을 유일한 인류애라고 하는 인식이 뇌리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인류애를 위하여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인류애를 위하여 자신의 사회를 버리고, 인류애를 위하여 자신의 국가를 버리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러한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인류를 버리게 되니, 인류애(人類愛)가 아니라 인류악(人類惡)으로 비극적인 인생과 비극적인 역사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세상이 인간의 이성적인 성품의 삶을 이루지 못하고, 짐승차원을 벗어나지 못하여, 인류애가 인간을 위한 인류애가 아니라, 인간을 짐승 취급하는 것을 인류애라고 하니, 그리하여 인류애라는 미명아래 국가적 평화와 안정을 잃게 하고 전쟁과 파괴를 일으키며, 인류애를 내세워 사회적 질서와 상보성을 잃게 하고 투쟁과 폭력성을 부추기며, 인류애를 내세워 가정적 화합과 조화를 잃게 하고 분열과 혼란을 일으키며, 인류애를 내세워 개인적 의지와 주체성을 잃게 하고 망상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인간세상에서 악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어 왔으며, 종교적 사명에 따른 악의 사상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는가?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종교로 인하여 많은 인간들이 사상적 쇄뇌를 당하고, 그러한 쇄뇌에 따른 죄악의 역사를 반복하면서도 그러한 역사를 단절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 정신이 미개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며, 그 영혼이 어두워 밝은 인간세상을 오히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인류애든, 사랑이든, 말로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자기자신에게서 사랑이 없는 인간이 가식의 사랑을 내세우며 고귀한척 인류애를 거들먹거리지만, 자기자신이나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 인류애(人類愛)를 논하는 것은, 인간세상으로부터 비극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기자신에게 사랑이 있다면 굳이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도 사랑은 베풀어진다.
그러나 속에는 온갖 시기와 질투와 저주로 가득찬 인간이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인류애라 말하고, 강제적 인류애의 실천으로 비극적인 인류의 역사를 이어온 것을 보면서도 입빠른 인류애를 말하는 것은, 그러한 비극적인 인류를 원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한즉,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경애하는 것과 같으며,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인류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니, 인간에 대한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랑의 근본임을 알라.
대립적 사상
사상적 대립은 국가와 국가들 간의 관계를 적대적관계로 만들며, 또한 국민과 국민들 간에도 적대적관계를 만든다. 이러한 대립이 극단적으로 흐르면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을 야기시키고, 국민과 국민 간의 폭동이 일어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전쟁과 폭동 등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며, 다만 남는 것은 비극적인 역사에 의한 국민들의 깊이 상처만이 남게 되니, 이것은 정치사상에 의한 폐단이다.
종교사상에 의하여 이러한 폐단이 나타나면 그것은 정치사상에 의한 폐단보다 더 심각한 비극이 발생한다. 가장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하는 종교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종교의 배신행위이며, 하느님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진정한 종교란 다면 절대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이러한 종교들의 공통된 특징은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며, 그러한 종교를 믿는 신자들 또한 다른 신앙인들에게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자기 종교가 아닌 종교는 모두 악마의 집단이며, 다른 종교를 믿는 신자는 모두 악마의 자식일 뿐이다. 그러한즉 자신들의 종교로 귀화시키지 못한다면 살생하는 것도 무방하며, 오히려 그러한 짓이 사탄을 물리친 영광과 함께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종교가 할 짓이며, 이것이 진정 종교인이 할 짓인가? 국가와 국가 간의 대립을 야기시키는 사상이 인간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를 적대시하게 하는 종교는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인간세상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상의 탈피
이성은 항시 새로움을 이루어야 하며, 마음은 항시 깨끗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성이 항시 새로움을 이루지 못하면, 물이 고여 썩는 것과 같이 정신이 썩으며, 마음은 항시 깨끗하게 닦아야 하는 것으로, 잠시도 닦지 않으면 곧 더러워진다. 삶의 행복은 항시 이성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지며, 삶의 불행은 이성이 고여 썩은 정신과, 마음을 탁하게 만드는 게으름에서 이루어진다.
육체적인 행위는 이러한 정신과 마음의 결과일 뿐이니, 육체적인 행위를 보고 그 정신과 마음을 다스려 나가되, 육체적인 행위 자체를 놓고 새롭게 하거나 깨끗하게 하려는 것은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면 먼저 자신의 행실을 보고, 그 행실의 근원인 정신과 마음을 보아야 하며, 그 정신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신의 사상으로부터 그 시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즉 불행은 일차,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발생하며, 두 번째, 그러한 사상에 의한 정신과 마음의 다스림에서 이루어지고, 세 번째가 그러한 정신과 마음에 따른 실천적 행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불행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 뿐 행복은 점점 멀어지게 됨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