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가정치유15) 믿음의 불행

소검 |2014.06.03 23:10
조회 58 |추천 0

믿음의 불행

 

인간이 불행해야 한다는 믿음이 불행한 삶을 이루고, 인간세상이 고통의 세상이라는 믿음이 인간세상을 고통스럽게 한다. 진실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을 불행에 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진실로 하느님께서 인간세상을 고통의 세상이 되게 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악한 귀신임을 알라. 하느님을 사악한 귀신으로 취급하는 악의 존재들이 있어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인간세상을 고통의 세상으로 만든다. 인간세상의 불행의 근원은 모두 여기에서부터 발생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불행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악의 존재들이 인간을 불행하게 해도, 그것에 대한 불만을 품지 않고 굴복하기 때문이며, 인간세상이 고통의 세상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악의 존재들이 인간세상을 고통스럽게 해도 반항하지 못하고 굴복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을 행복에 두었기에 인간의 본능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세상을 고통 없는 행복에 두었기에 인간세상이 행복한 세상을 이루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법도를 왜곡하고, 파괴시키는 악의 무리들이 있어, 하느님과 인간세상이 단절되니, 불행한 인간의 역사가 반복된다.

 

인간의 삶의 기본법칙을 파괴하여 불행한 삶이 되게 하고, 자연의 법칙에 따른 질서를 무너트려 인간세상을 고통스럽게 하며, 신의 법칙을 왜곡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의 고통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찾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여 주체적 정신을 갖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소리를 편협되게 하여 상보적 소리를 갖지 못하게 하며, 인간의 마음을 억압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니, 육체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하게 만든다.

   행복한 삶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삶의 권리이며, 영혼의 자유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영혼의 본질인즉, 이러한 삶을 해치고 억압하는 존재들이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물리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온전한 삶인 행복의 권리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숭고한 영혼의 씨를 찾아,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어 인간의 고향인 하느님세계로 갈 수 있는 인간세상이 되게 해야 한다. 진리의 길은 행복의 길이며, 행복의 길은 하느님의 길인즉, 하느님의 길에는 모든 근본에서 함께하니, 그러한 삶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라.

 

불행의 씨앗이 되는 악의 정신

존재론적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며, 존재론적 자아를 부정한 뒤의 선행은 모두 악행이 되니, 그것은 다른 인간의 영혼까지도 부정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대상에 영혼을 빼앗긴 인간에게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빼앗긴 영혼의 삶은 고통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며, 그러한 인간이 고통을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빛을 썩게 하는 행복이 아닌 고통으로 끝나는 것인즉, 고통에서 영혼의 빛은 죽게 된다. 영혼의 빛이 죽는 것이 영혼의 고통이거늘, 그것을 오히려 영혼의 빛을 밝게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고통의 인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니 영혼은 완전히 썩어 없어지게 된다. 인간의 삶에서 벌써 영혼이 썩어 없어졌다는 것은 그 정신이 어둠의 정신 즉, 귀신의 정신에 완전히 빠졌다는 것을 말한다.

 

불행한 일이 발생하여 괴로운 처지에 떨어졌을 때, 그것은 시련 이전에 뭔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원인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알고 직ㆍ간접적인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배제시키고 시련을 당한 처지만을 생각하여 벗어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회피하기만 하려는 비열한 짓이며, 또한 그러한 처신은 또 다른 불행한 일을 용인하게 된다.

   불행한 처지에 떨어진 괴로움에 대하여, 그러한 괴로움이 전에 보다 덜 괴롭다고 하는 것은 전에 보다 덜 잘못을 지질렀다는 것이며,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보다 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것이며, 그러한 불행한 일은 여러 시련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여러 잘못 중에 하나의 잘못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러한 불행한 일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나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비겁한 말과 같으며, 그러한 시련을 발판으로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보다 더한 잘못을 저지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과 같다. 불행이라는 것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극복의 과정으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된다면, 불행이 불행을 낳게 되는 것이니, 더욱 불행하다 할 것이다.

 

불행의 미련탈피

자신의 불행을 슬퍼하며 한탄하는 것은, 삶이 불행하거나 영혼의 좌절에 의한 고통으로 인함이다.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슬퍼하거나 한탄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그러한 처지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잠시의 슬픔이나 한탄은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불행에서 탈피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연들까지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또한 영혼의 좌절감에 느껴지는 슬픔은 허상이나 망상에 빠져 존재론적 자아를 왜곡하기 때문이니, 먼저 정신을 차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자신의 정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영혼의 젓줄은 정신이기에 정신이 외부에 팔려 있으면, 영혼은 그러한 정신을 끌어오게 하기위하여 불행에 의한 슬픔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불행과 비추어, 자신의 불행이 그래도 덜 불행하다는 자족적인 만족에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참으로 못난 생각이다.

   긍정의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에 부정은 부정을 낳는 진리적 이치에 따라, 부정에 부정이 일시적으로 위안이 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더욱 부정한 불행에 빠지게 된다. 불행할 때 일수록 행복함을 찾고 타인의 행복을 보면서 자신의 불행과의 차이를 느끼고, 그러한 불행에서 탈피할 수 있는 행복을 느낄 때, 불행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위안 삼으려는 그러한 얄팍한 생각은, 그 생각자체가 불행을 놓지 않으려는 미련한 짓임을 알라.

 

건강한 내생의 영혼

건강이란, 신체적 기능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여, 질병이란, 신체적 기능에 이상이 생기여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신체적 기능이란, 정신적인 기능과 육체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니, 건강과 질병은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각기 건강한 정신과 육체, 병약한 정신과 육체로 구분된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따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며, 표리관계를 이루어 같이 운행을 하여,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를 이루고, 건강한 육체는 또한 건강한 정신을 이루게 된다.

   인간은 유기체적 존재로서 건강할 때 유기체적 역할을 다하게 되며, 병약할 때에는 유기체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유기체적 존재라는 것은 생물학적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의 정신 또한 유기체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유기체적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육체에 병이 들면 영적인 면에서도 이상이 발생하고, 영적인 면에서 이상이 생기면 육체에 또한 병이 들게 되는 것이다.

 

육체가 건강하거나 병약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의식주에 의한 생활에서 이루어지며, 정신이 건강하거나 병약하게 되는 것은 정신과 소리와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이러한 건강과 질병에서, 정신의 건강과 질병이란 영혼의 건강과 질병을 말한다. 그리하여 영혼의 건강은 밝은 정신과 상보적인 소리와 긍정적인 마음에서 이루어지며, 영혼의 질병은 어두운 정신과 배타적인 소리와 부정적인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그런즉, 영혼의 건강은 진선미를 이루는 삶에서 이루어지며, 영혼의 질병은 탐진치에 빠지는 삶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건강한 인간은 건강한 생기를 주변에 베푸는 행복한 삶을 이루고, 영혼이 병약한 인간은 병약한 사기를 주변에 옮기는 불행한 삶을 이루게 되니, 그러한 영혼의 건강과 질병을 확인하는 것은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서 확인 되는 것이다. 인간은 현생에서 운명의 수를 다 마치고 내생으로 가는 죽음에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육체로 끝마치는 것이, 가장 밝고 강한 영혼을 이루어 내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러한 죽음에서 바른 인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질적 질병의 인생

영혼이 없는 인간은 질병에 걸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고질적 질병은 인생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타락하여 망령적 영혼이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정신과 소리의 영향으로 이루어지지만, 마음에 의한 영향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이 간접적인 마음은 육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어, 마음이 건강해야 육체가 건강하고 육체가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진다.

   그런즉 육체가 질병에 걸리면 심적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며, 심적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정신과 소리가 썩게 되니 그리하여 영혼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이 없는 인간에게 고질적인 질병이 떠나지 않으니, 오히려 그러한 인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집이며, 영혼의 산모역할을 하는 신체인즉, 이러한 육체가 질병에 걸리는 것은 존재론적 목적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며, 현재론적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니, 인간의 삶에서 건강은 모든 삶의 기초적 기본이라 할 것이다.

 

기적의 종교

능력이 없는 귀신이, 정신력이 미약한 인간에게 보이는 헛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말은, 말 자체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인간에게 어떠한 기적을 보이고 하느님인체 하겠는가? 참으로 우스운 짓일 뿐이다. 기적이라는 말과 기적적인 행위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사기치기를 좋아하는 사악한 인간의 말을, 남이 사기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간악한 인간들이 작당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한즉 기적이라는 말 뒤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을 잃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기 위한 사악한 인간의 말임을 알라.

   또한, 귀신의 기적을 찬양하는 인간은 악마의 기적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영적인 투쟁을 종용한다. 귀신의 헛장난을 기적이라 하여 찬양하는 것은, 그렇게 하여야 하느님을 악마로 몰수 있기 때문이니, 결국 기적이라고 하는 모든 말의 최종목표는 하느님을 악마로 몰기 위한 사악한 짓임을 알라. “기적”은 귀신에게 영혼을 빼앗긴 사악한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위에 군림하기 위하여 만든 말이며, 또한 그러한 짓을 좋아하는 간악한 인간들에 의하여 인간세상이 귀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기적이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의 발달이 미개하여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영혼의 진보가 미비한 미개인의 시대에 인간을 속이기 위한 사악한 짓을 기적이라 말하며, 영혼을 잃은 인간들의 간악한 소망이 기적을 용인하게 된다. 이성적인 능력이 부족하면, 이치적으로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말을 하는 망령에 사로잡히고, 이치적 사실이나 사실적 이치에 벗어난 생각에서,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실제 하는 양 믿는 망상에 떨어지니, 영혼을 잃은 인간으로부터 영혼에 의한 열등의식에서 망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인 능력이 부족하면, 실상이 아닌 허상에 따른 헛것이 보이고, 진리에서 벗어난 거짓에 마음을 빼앗겨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미망에 떨어지게 된다.

   영혼을 잃은 인간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성이 없는 곳에 하느님은 없으며, 이성이 없는 믿음에서는 영원히 영혼을 찾을 수 없으니, 인간으로서 하느님께서 부여하여 주신 영혼을 찾는 것은 오로지 이성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인즉, 기적은 영혼을 잃은 인간이 원하는 허망한 짓이니, 그러한 허망한 삶에서 귀신으로 타락하는 인생이 되지 말라.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