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와 도보 여행가 김남희, 두 사람은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나 그런 대로 합을 이루는 모습이 신기하다. 부러운 마음도 든다. 이토록 성별과 세대, 국경이 다름에도 교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부탄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며 만난, 느리지만 행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이란 수필집을 냈다. 늘 쫓기는 일상을 살다 보니 조급함은 우리의 동반자가 됐다. 쓰지 신이치와 김남희는 이들과 이별하라며 그 대신 '느림'이라는 친구를 소개시켜준다.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냉정과 열정이 함께한 여행
쓰지 신이치(61)와 김남희(42)는 한일 공동 NGO 교류 행사 '피스 앤드 그린 보트'에서 만나 친구로 지낸 지 5년째다. 최근 두 사람은 부탄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며 분발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절친한 친구 사이도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생기고 의가 상하게 마련인데, 둘의 여행은 어땠을까?
김남희
신이치 선생님은 저보다 더 완벽한 여행가세요. 선생님과 함께라면 매일 몇 번씩이나 웃으며 다녔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분을 만나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세요. 편견도 없고 기준을 세워 판단하려는 자세도 없어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죠. 저는 불평불만을 내뱉은 후에 반성하는 유형이라 배울 점이 참 많았던 여행이었어요.
쓰지 신이치
남희씨는 불만도 많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빠르게 반응해요. 낯선 것과 교감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지요. 저는 학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무엇이든 거리를 두고 보는 편인데 남희씨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반응했죠. 저에게는 참 신선한 면이었어요.
김남희
싸운 적이 한 번 있었죠. 한일 역사 문제를 놓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 언성을 높이기도 했어요. 물론 저 혼자 얼굴이 벌게져서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요.
쓰지 신이치
제 할아버지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얼을 알지 못하는 저를 남희씨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죠(웃음). 그러나 과정 중에 생기는 모든 갈등과 깨달음 그리고 이해가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아닐까요?
김남희
저는 항상 혼자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제 스타일, 제 속도대로 해왔죠.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참 어려웠을 거예요. 선생님은 지구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고 여행하세요. 그런 점도 존경합니다.
김남희는 쓰지 신이치와 함께한 여행은 언제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내가 지구 위의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긍정하는, 나를 살아갈 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 인정하는 것, 그 인정을 바탕으로 나 자신, 이웃,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자연과 마주하기
두 사람이 여행한 나라 부탄은 GNH(국민총행복지수)라는 단어를 만든 나라다.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예 왕추크 왕은 행복이야말로 국민과 국가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라는 철학을 내걸고 부탄식 느린 성장 정책을 펼쳤다. 군인보다 승려의 수가 더 많고 1999년에야 TV가 도입됐다. 담배의 제조, 판매가 금지된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다. 전 국민에게 의료와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김남희
부탄 사람들은 가진 게 별로 없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어요. 빈한한 살림마저도 기꺼이 나누며 살아가는 듯했죠. 문득 우리 시대의 유행어인 '위시리스트', '머스트 해브 아이템' 따위가 생각났어요.
쓰지 신이치
'가지고 싶은 물건 목록'뿐 아니라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물건 목록'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행복이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원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탄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전통 속에도 많은 지혜가 있었어요. 세계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이런 전통을 배우려고 하는데 정작 일본과 한국은 자신의 전통 사상에 흥미가 없어요. 매우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는 그저 무한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 뒤에 오는 늙는 것과 죽음을 애써 안 보이는 척 숨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프고 괴로운 겁니다.
김남희
'어떻게 늙느냐'보다는 '어떻게 늙지 않느냐'를 고민하는 시대죠. 한국에는 동안 열풍이 불고 있어요. 주름은 무조건 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구요.
쓰지 신이치
그럴수록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이지 행복의 길이 아니에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고, 자연의 순환처럼 언젠가 죽는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살률이 높아가고 있지만 죽음 앞에 마주 설 수 있으면 자살할 필요가 없죠. 그냥 죽을 때까지 살면 되는, 간단한 이야기잖아요.
김남희
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나 갈라파고스를 여행하며 만난 야생동물을 보고 느꼈어요.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 혹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게다가 그런 생명의 세계가 인간에 의해 빠르게 파괴되고 있는 걸 보니 더욱 안타깝죠.
쓰지 신이치
맞아요. 인간이 자연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예요.
우리 삶의 기본은 무엇인가? 깨달음이라고 하기는 거창하지만 일상에서 스쳐 지나쳤던 관념들을 여행을 통해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 김남희는 자연을 마주하고 깨닫기 위해 짐을 싸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연과의 일체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 마음가짐의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남희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서울 한가운데에서도 매일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피어나는 개나리에 감동할 수 있어요. 어디로 여행을 가느냐보다 도시에서도 남아 있는 자연을 찾아내는 훈련이 필요해요. 선생님은 그런 사소한 행복을 찾는 능력이 있으세요. 평소에도 "오늘은 바람이 참 좋다. 꽃이 예쁘다"라는 말씀을 잘 하세요.

쓰지 신이치
어떤 학자가 기도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에게 하루 동안 감사한 점을 다섯 가지 기도하라고 했더니 2주 만에 그들의 행복도가 높아졌다고 해요. 진짜 기적적인 일은 나무에 매년 꽃이 피는 것이죠. "기적은 희박한 공기 속이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대지 위를 걷는 일이다"라고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셨죠. 꽃을 보는 기적을 매일 느낀다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적에 기뻐할 수밖에 없어요. 행복은 그런 겁니다.
김남희
일상에서 힘든 일을 겪고 눈물이 난다면 창문을 열어보세요. 하늘이 새파랗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그 안에서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다시 기쁨을 느낄 거예요. 사소한 것에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중요해요. 그것은 여행을 통해 훈련되곤 하죠.
쓰지 신이치
그렇지요. 노력을 위해서는 트레이닝이 필요해요. 우리는 멀리 보이는 것을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지요. 그러나 생각을 바꿔서 '그런 거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면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의 여유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김남희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가난한 이들이 더 풍족하고 여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게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문을 꽁꽁 닫아요. 사실 집에 고가의 물건이 있으면 낯선 여행자를 재워주기 쉽지 않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흔쾌히 재워주고 밥상을 차려주는 삶의 윤택함을 보여주죠.
우리는 덧셈만 하고 있다. 뭐든 좀 더 크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쓰지 신이치는 초등학교 때 뺄셈도 배웠으니 가끔은 써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먹을 때도 적게 먹고, 할 일도 조금 줄이고, 덜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힘들지 모르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행복해지기 위한 훈련이다.
생활 속 슬로 라이프 실천하기
'자연과 마주하라', '생활 속에서 뺄셈을 생각하라'. 흠잡을 수 없이 좋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마치 외딴 섬처럼 혼자 자연을 찾고, 거품을 빼는 일이 과연 쉬운 일일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쓰지 신이치
정해진 사회 시스템에서 100%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요. 상황에 따라 50% 혹은 20%만이라도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게 중요해요. 각각의 조건 안에서 조금씩 시작하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기뻐하는 일들을 찾아보세요. 단 일시적인 흥분을 주는 것들은 안 됩니다. '내 영혼이 즐거워하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 마음에 물어보면서 속도를 맞춰 걸어가면 됩니다.
김남희
저는 옥상에서 채소를 기르고 있어요. 사 먹는 것보다 부실하고 맛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느껴요.
쓰지 신이치
제게 어떤 아주머니가 길을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온마음을 다해서 도움을 드렸죠. 그렇게 하니 하루 종일 행복하더라고요. 바로 그런 일들이죠. 누구나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어요. 기쁨을 찾아가다 때로는 더 큰 욕구와 불만에 휩싸일 수 있어요. 이걸 부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것을 느끼고 시험해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김남희우리 삶의 방식은 여행의 방식으로 고스란히 따라와요. 욕심 부리고 살다 보니 어딜 가도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카메라에 담으려고 분주하죠. 그렇다 보니 여행 중 나를 흔드는 만남, 깨달음이 자리할 여유가 없어요. 저는 빼고 버리고 천천히 해야 오히려 더 많이 얻는다는 진리를 여행을 통해 몸소 체험했어요.

쓰지 신이치는…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 현재 메이지가쿠인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슬로 라이프'를 최초로 제창했다. 삶의 관점을 덧셈에서 뺄셈의 미학으로 옮겨가자고 이야기하는 그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를 이야기한다. 저서로는 「행복의 경제학」, 「슬로 라이프」, 「슬로 라이프를 위한 슬로 플랜」 등이 있다.

김남희는…
도보 여행가이자 여행작가. 서른네 살에 방을 빼고 적금을 깨 배낭을 꾸린 후 지난 10여 년간 세상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가진 것 없어도 아낌없이 나눠주었던 길 위의 사람들처럼 자신도 수입의 10%는 여행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 저서로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전 4권),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일본의 걷고 싶은 길」(전 2권),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등이 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자료출처 :http://durl.me/4y8x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