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토독. 경쾌한 소리로 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그 줄기가 굵어져 거리를 질척이게 만들고 있었다. 카페 안에 있을 때에는 이렇게 거세질 줄 모르고 나왔건만. 찬열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을 적시며 얼굴선을 따라 흐르는 물방울을 손으로 연거푸 지워내기 바빴다. 빳빳하게 잘 길들여져 있던 검은 정장은 이미 쏟아지는 빗줄기에 묵직해져 형편 없이 선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장대비 속에서 온 몸이 젖은 채 걸어가는 찬열을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한번씩 돌아보았다. 지나가며 일기예보도 안봤나봐, 하고 딴에는 목소리를 낮춘다고 속닥이는 채를 하는 여자들의 높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빗발이 굵어질 수록 얼굴의 굴곡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시야를 자꾸 방해했다. 언제나 익숙하게 다니는 길이었다.
병원 앞에 높이 자리해 있어 그의 병실이 언제나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카페, 그리고 그 카페에서부터 자신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지 않은 길. 그 사이에는 꽤 넓직한 4차선 도로가 존재했다. 자신보다 한 뼘이나 키가 작은 그에게 찬열 자신이 늘 신호 내에 길이나 제대로 건너겠냐며 짖궂게 그를 놀리던 길목. 너무나도 익숙한 길목에는 언제나 너무나도 익숙하게 함께 길을 건너던 자신들이 존재했다. 성인 남성 두 명의 어깨를 충분히 감싸줄 정도로 큰 우산을 받쳐 들고 온 거리가 싸늘하게 느껴져서 비오는 날이 싫다며 투정하는 그를 바라보던 자신. 그 익숙한 장면에서 그의 얼굴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아 찬열은 바뀐 신호에도 불구하고 계속 멈춰서있었다. 마치 장대비를 따라 도로의 먼지가 씻겨 나가듯이, 지워져가는 그의 얼굴에 찬열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빗줄기를 연거푸 손으로 씻어내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빗방울에는 방울방울 그의 흔적이 내리는 것만 같았지만 정작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숨이 멈추는 것만 같아 찬열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래, 눈을 감으면 기억 속 네가 되살아 날지도 몰라. 하지만 여전히, 차디 찬 빗줄기가 온 몸을 훑고 지나가서인지 온기를 잃어가고 있는 몸과 함께 멍해진 머리 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디 찬 물줄기와는 다르게 눈가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얇은 줄기를 만들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세차게 쏟아지는 비 속에서 그 온기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만 갔다. 입가에는 그 빗줄기에 눈물자욱이 너무나도 쉽게 쓸려내려간 것인지 짭쪼름한 그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꼭 그것이 지금 그와 자신의 사이와 같아 찬열은 다시 뒤를 돌았다. 멀리 오지 않은 거리에서 바라보아지는 병원은 대학병원답게 커다랬다. 그 커다란 공간 속에서는 매일매일 삶과 죽음이 갈리고 있었다. 살아보겠다는 모든 의지가 마치 혼령처럼 모든 공기를 잠식하고 있는 그 곳에서 그는 매일매일 같은 날자의 자신을 살아가고 있었다. 눈을 감고 일어나도, 매일매일 그는, 그 곳에서 항상 같은 자신을 살고 있었다.
그와 자신이 처음 만난 곳은 후각을 마비시킬 듯한 온갖 약들의 향과는 사뭇 먼 곳이었다. 건강한 육체의 젊은이들이 모여 청춘의 한 장면을 보내고 있는 락 페스티벌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마치 오늘처럼 약한 빗줄기로 시작해서 페스티벌이 절정으로 향해갈 때 빗줄기는 젊음의 뜨거움을 식혀주었었다. 그것이 더 흥을 돋아 청춘들은 미친 듯이 두 발을 콩콩이며 심장이 흥분해서 세게 뛰는 것인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울리는 비트의 소리 때문에 심장이 세게 뛰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미친 듯이 온 몸을 불사지르고 있었다. 채 가시지 못한 여운을 숨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려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도로로 향했을 무렵 자신을 잡아오던 손길. 그리고 개구지게 웃으며 마치 알던 사람인 양 굴었던 뻔뻔한 너의 목소리. 그 때 너의 모습 또한 자꾸 시야를 지우는 빗줄기에 가려 채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센 빗줄기의 소리 속에서도 울리던 너의 음성을 나는 잊지 못한다. 온 몸을 차갑게 식혀가던 빗줄기에도 네 웃음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나는 아직도 잊지를 못해. 나를 기억하지 못한 채, 수백번을 자고 일어나도, 매일 다른 태양과 달을 보면서도 같은 하루라고 알며 살아가는 너일지라도. 매일 그렇게 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너일지라도.
아무리 빗줄기가 지워내고 지워내며 나의 시야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나는 너의 그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매일 속에서도 가끔 이렇게 우리의 기억이 생경하게 느껴져 채 기억이 나지 않을 때 나는 덜컥 겁이 난다.
ㅡ 저기요,
ㅡ ... ?
ㅡ 그렇게 가면 감기 걸려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내는 말 치고는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던 너의 음성이,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나 백현아.
ㅡ 그러니까,
ㅡ ...
ㅡ 나랑 같이 쓰고 가요. 우산.
꽤 오래된 나중에서야, 내가 너 꼬시던거야 병신아. 그렇게 말하며 킬킬 웃던 너의 웃음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자리하고 있어. 자신은 모든 것에 천연덕스러운 것처럼 굴다가도 나의 손길에 수줍어하는 것을 억지로 감추려던 너를 아직도 기억해 나는.
ㅡ 우리가, 알던 사이였나요?
그렇게 매일매일 나에게 다시 물어오는 너일지라도, 나는 선명하게 너를 기억해. 어쩌면 기억해야만 한다고 나 자신에게 매일 억지로 주문을 거는 것일지도 몰라. 이미 오랜 시간을 건너 온 내 기억 속의 너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사실은 많이 변하고 변해서, 우리가 지니고 있던 추억에서 멀어져 있을 지도 모르지만. 왜곡된 기억이라도 나는 매일매일 어떤 한 순간조차도 잊지 않으려 그렇게 악을 쓰며 나 자신에게 속삭여. 사랑해 백현아. 너의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어. 이제는 그 모든 기억이 나를 떠난 실체 없는 겉 껍데기일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못해.
이거 그냥 그 때 어떤 감풍이가 사진 보고 써달래서 썼던 건데 막상 쓰고 나니 마음에 들어서 내용은 끝까지 짰는데 여기다가 올린 이상 내 홈에도 올릴 수가 없어 낙동강 오리알이 될 글이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워서 한 번 더 올린다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