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내 첫사랑 ㅇㅊㅎ 에게
오호, 우리가 이제 환갑 진갑이 지났군요.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ㅇㅊㅎ,
내가 사랑했던 ㅇㅊㅎ...“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둘 다 정확하게 20세였지요. 대학 합격자 발표 게시판 앞에서.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당신의 청색 코트의 모양까지 생각납니다. 당신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당신의 온몸에서 진주빛 광채가 은은히 발산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나는 철봉과 평행봉이 있는 곳에서 당신과 당신의 단짝 여자친구가 나타나기를 항상 기다렸었지요, 당신들이 나타나면 나는 턱걸이를 20번 이상하고, 평행봉에서 멋진 도립을 과시했었지요.
동산에서 둘이 시험공부를 하다 어두워지면 내려왔었지요. 당신이 넘어질 뻔 했을 때 나는 당신의 허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아보았지요.
당신의 예교스러운 경상도 억양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거립니다.
나는 그때 지극히 수줍고 겁이 많아 당신에게 제대로 접근도 못했었지요. 하지만 방학 때, 당신은 어떤 여자보다 많은 양의 연애편지를 내게서 받았을 겁니다. 대학노트 서너장은 기본이었지요. 당신을 위해 쓴 수많은 영시(英詩)들... 하지만 그것들 모두를 내가 다 쓴 것은 아닙니다.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인용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때 당신은 내가 무척 박학다식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사실은 그렇지 않았는데.)
몹시 추운 겨울날 인천에 살았던 나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당신이 살고 있다는 친척집을 주소만 가지고 찾아갔었지요. 여러 시간을 헤맸지만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추운 날씨였지만 내 몸에서 땀이 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케 그 부근에서 만났었지요.
서울역 시계탑 밑에서 만나기로 했었던 적도 기억납니다. 머리칼 바람결에 날리며 인파를 헤치고 달려오던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남산 벤치에서 인생과 문학을 논하다 어두워진 줄도 몰랐었지요. 그때 나타난 두 명의 깡패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었지요. 그때 나는 무척 침착 대담해졌습니다. 우선 당신에게 저쪽에 가있으라고 했지요. 그리고 깡패들에게 싱글거리면 벤치 양쪽에 앉으라고 권했지요. 그들에게 작지만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야, 이놈들아, 너희는 오늘 사람을 잘 못만났어. 내가 모처럼 좋은 여자를 만났는데 너희들 때문에 망했다. 어쩔거야?” 조무래기 양아치들은 잠시 어리둥절했지요. 내가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저기 저 건물이 뭔지 알지? 남대문 경찰서야. 우리 큰 형이 그곳 강력계 반장이야. 너희들 내일 거기서 만날까?” 이 말에 양아치들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신 절을 하며 슬그머니 내뺏답니다. 아무 일 없이 금방 돌아온 나를 보고 당신은 어리둥절했었지요?
그후 나는 대학을 옮기고 군에 입대했고 월남까지 갔습니다. 당신은 그때까지 내 편지에 답장을 해주셨습니다. 얼마후 당신은 절교를 선언했고 나는 쿨하게 받아드렸지요. 내가 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당신을 서너번 만났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나는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당신에게 다시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젊었을 때 무척 갸날펐으니까 지금도 몸이 뚱뚱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같습니다. 키 170에 몸무게 60. 아직 흰머리도 적고, 목에도 주름이 전혀 없습니다.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혈압 110/80; 코레스톨수치 185).
공무원인 두 아들은 교사인 여자들과 결혼했습니다. 30년 이상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마누라는 큰아들네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근심걱정은 커녕 항상 즐겁고 유쾌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당신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