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겪은 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9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청의 침입으로 인조와 소현세자가 피신했던 남한산성-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소현세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인 인조의 철저한 불신과 의심과 인조를 부추겨 소현세자를 밀
어내려고 한 후궁들의 궁중잔혹사였다.
인조는 쿠테타로 집권한 왕답게 소현세자가 청의 지원을 받아 쿠테타
를 일으켜 자신을 왕에서 몰아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고,인조
의 후궁이었던 소용조씨는 인조의 이런 의심을 이용해 소현세자를 밀
어내려고 인조를 뒤에서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인조와 그 주변세력의 의심과 모함에 대응할 시간
도 갖지 못한채 벌어진 궁중잔혹사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두 달만에 몸에 열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가 침을
맞고 3일만에 죽은 것이다.
-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묻혀진 쓸쓸한 묘지-
소현세자가 독살된 정황은 여러가지 근거가 있지만 가장 움직일 수 없
는 증거는 소현세자의 시신의 상태였다.
'인조실록'은 소현세자의 시신상태를 이렇게 적었다.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나오고 있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것 같았다"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도 인조를 독
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게되며,소현세자의 세 아들도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자신의 친아들과 손자, 며느리, 그리고 사돈까지 죄없이 죽여버린 인조가
그의 시호에 '어질 인'자를 써서 인조(仁祖)라고 불리게 된 것은 당시 조선
을 지배한 권력층이 '서인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소현세자 죽음의 미스터리
1. 소현세자의 담당 의원은 '이형익'라는 자였다. 그는 소현세자 내외와 사이가 좋지 않은 후궁, '조소용'의 친정을 출입하던 자였다. 소현세자 죽음 후, 대신들이 이형익을 국문해 처벌해야 한다고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다.
2. 소현세자의 장례는 서둘러서 이뤄졌다. 장례마저 간소했으며 예법 역시, 세자의 지위에 걸맞지 않는 것이었다.
3. 소현세자가 죽은 후, 보통 후계는 왕손으로 이어지는 법이지만 '인조'는 특이하게 둘째, '봉림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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