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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3일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최초로 우리나라에 방문한 교황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나름 독재 정권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교황을 초청하게 된다
그리고 몇년간 유화 정책(통금 금지, 장발 단속 같은 유신의 유산 해제, 학내 전투 경찰 철수(이야기 들어보면 그 후 민간 복장을 한 경찰로 대신했다) 등을 통해 결국 이 방한이 성사 된다.
김포 공항에 들어온 요한 바오로 2세는 전두환의 아주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교황이 선택한 곳은 바로 당시 전남 광주라고 불렸던 지금의 광주 광역시...
당시 당국에서는 교황청에 위험하다며 극구말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만 소련도 안 무서워 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그깟 전두환의 만류를 무서워 할리가 없었고
그냥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심지어 바로 돌아가겠다고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당국은 공항에서 시내를 거치지 않고 가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교황은 그마저도 무시하고 당시 시내이자 5.18의 상징과 큰 관계 있는 도청과 금남로 거쳐 무등경기장으로 가겠다고 하여 이를 끝내 관철시킨다.
중앙일보 기사에 이에 대한 인터뷰가 나온다.
- 사실 광주행은 당국에서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꼭 가야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혀 성사된 것이었다. 당시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회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장익 주교는 최근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공개한 동영상 인터뷰에서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 사태와 당시 한국 젊은이들의 상황 등 세세한 자료를 엄청나게 요구하고 꼼꼼히 검토했다. 방한 의미, 가장 먼저 갈 장소를 고민하던 교황은 광주를 가겠다고 결정했다. 공항에서 시내를 빗겨 가는 방법도 있다고 했는데, 교황이 도청 앞으로 해서 금남로로 가야겠다고 했다. 우리 당국은 펄펄 뛰었다. 5·18 항쟁의 상처가 아직 생생할 때인데…. 하지만 교황이 우겨서 결국 가게 됐다. 모든 것이 본인 결정이었다.” -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8/14/15108149.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