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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의 스토리 & 서태지와의 인연 ]

리슨 |2014.10.25 16:08
조회 2,165 |추천 1



그의 이름은 락밴드 X-japan(엑스재팬)의 '히데'

중성적인 외모에,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그는

시대를 뛰어넘은 작곡,작사 실력과 변신의 천재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는 패션리더의 선두주자였습니다.

故히데, 데뷔년도를 보면아시겠지만 그당시 그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등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지만, 과하다는 느낌도 그닥 안들고..

그 시대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받아드렸을지 상상조차 안가는데요?


아무튼 대단하시는 분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였습니다.

히데와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고..








히데는 엑스재팬 공연 뒷풀이 파디에 초대하여

엑스재팬 전 멤버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히데는 마유코를 바래다주기까지 하고,

종이에 자신의 연락처와 메일주소를 적어주면서,

"언제든지 연락해도 좋아"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X-japan 멤버중

가장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다고 알려진 히데.

그는 유명해지기전, 그의 과거 나름대로

시련과 고통을 겼었고, 그러므로 소녀의 고통을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한번뿐 만남으로 마유코를 모른척 한다는것은,

히데 자신을 배신하는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한것입니다.

그렇게 히데와 마유코의 교류는 깊어져 갔습니다.

또 히데는 자신이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고민끝에,

골수이식 뱅크에 등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HIDE: 제가 할수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저 아이의 손을잡고,

'힘내 힘내자!'라며 격려해주는 것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죠.

아무래도..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왠지 그렇게 병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마음이 끌립니다.





히데가 전해주었던 물건은

인디시절부터 껴오던, <행운을 부르는 눈알반지> 였습니다.







마유코는 백혈구의 수가점점 증가하고,

곧이어 무균실까지 나올수있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밖에 할수없다며 놀랐죠.



후에 히데는 마유코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Misery(고통)'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바로 엑스재팬의 '해체'라는 발표였습니다

이유는 보컬 토시의 탈퇴.


79년에 탄생한 밴드 'X' 그때 당시 그들은 단칸 하숙방에서 지내던 가난한 밴드였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채 무수한 열정만을 가지고 계속 달려온 결과,

눈을떠보니 이 자리까지 올라올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추억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고 멤버들 각자 상처를 입기 마련이였습니다.

"지금의 난 X의 친구들 모든걸 잃어버렸지만,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싶지는 않아.

그 상처가 없어져 버리면, 그땐정말 내 모든걸 잃게 될테니까..."


해채후, 히데는 정식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발표하자마자 큰 성공을 거듭해나갔습니다.


<↓오리콘 차트(싱글판매 기록)↓>




역시 히데 대단하네요!!!


그리고 다시 히데는 레코딩작업을 하러 로스엔젤리스로 떠납니다.


늘 두시간만 자면서 활동을 해온 그이지만,

마유코가 메일을 보내오면 꼬박 답장을 해주었고,

소식이 없을땐 걱정이되어 직접 전화해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히데 귀국.


















히데(hide)

1964 - 1998

『여문 과일의 향기롭게 눈부신 향기도

가만히 시들었다 해도

넝쿨에 감긴 몸은 썩어서 죽어 버리고

추억의 조각은 땅으로 되돌아가

다시 꽃이 되잖아요?

봄에 다시 만나요.』


-hide <hurry go round中>

엑스재팬 해체로 인한 충격에 이어 5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의 죽음은 전국민을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는데요..

쯔키지 교통을 마비시킬정도의

엄청난 인파가 히데의 장례식에 몰려왔고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자살'이라 보도되었던 기사는,

수 많은 팬들이 실신,자해,자살 등등 소동을 벌이는등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히데의 시신을 본 사람은


가족들, 엑스재팬멤버들, 그리고 마유코.. 뿐이였다고 해요

그만큼 히데가 그 소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겠네요ㅠ..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냉정하지만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았던 그사람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며, 가끔은 너무나 천진난만한 그 사람

아이를 음악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사람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사람


시대를 앞선 음악으로서도,


그리고 훌륭한 인격으로서도,


당신은 진정한 뮤지션이였습니다.


떠난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영원히 제이락의 존경받는 선배로 남아있을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사랑합니다..




++





예전 삼성 경제 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건국이래 대한민국 히트상품 no.1 이 바로 서태지와아이들 이었죠.

나라를 뒤집어놨던 유일한 보이그룹이라고 할정도입니다.

그중 리더였던 서태지는 일본에서 공연을 하며 히데와 친분을 쌓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둘의 음악적 코드도 잘맞았다고 하구요.


80년대 90년대 한국에서 락을 했다 하는 사람들중 엑스재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의 대한 안좋은 시선이 있지만

그당시에서는 일본의 시선, 대중문화 조차 금기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본 뮤지션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지는 못했을것입니다.




 

히데가 죽고 난 후 서태지는 자신이 개최한 Rock페스티벌에

히데가 키우고 함께 했던 밴드 'Hide with Spread Beaver' 를

히데의 이름으로 라인업에 추가 시킵니다.

과거 히데의 영상과 노래에 Spread Beaver의 연주를 덧씌우면서

마치 히데가 환생한 듯한, 퍼포먼스를 벌였는데요!

그 공연에 히데의 부모님을 초청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히데의 친동생이자 매니저가 히데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하트 페인팅 기타를 서태지에게 선물합니다.

히데가 이 기타를 생전에 서태지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소중한건 받을수 없다고 서태지가 한번 정중히 사양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서태지가 보관중인 히데가 가장 아꼈던 기타 입니다..

일본의 한 재벌 사업가가 3억엔을 주고 양도 받길 원했으나

서태지가 거절함.



음악의 대한 열정이 남다른대다, 음악적인 색깔도 남달르고

마음씨마저 넓었던 히데.


살면서 이런분을 꼭 만나보고 싶네요

 

 

출처 - 앤메이트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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