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당히 선두에서 길을 트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겁으로 무장한 채 누군가가 일궈놓은 발자취를 그저 수동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타인의 비판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 비판이 비난을 위한 비판이라면 무시로 토스해 버리면 그만이고, 발전을 위한 비판이라면 자신의 허점을 포착하는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정작 스스로는 참된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비판 만을 즐겨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동안 해왔던 대로 열심히 꿈을 향해 내달리는 것뿐입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압력과 압박을 가한다면, 그것은 비판하는 타인이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난 척 병에 걸려 비판만 하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말고, 꿈에 대한 확신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잘했는가, 못했는가는 비판을 일삼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내적으로 최선을 다한 후, 직접 스스로에게 만이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을 아주 강력히 지지합니다. “내 스스로 확신한다면 나는 남의 확신을 구하지 않는다.”
자기확신은 자신감의 온상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에너지를 보이는 세계의 물질로 끌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도전에 따른 결과가 우리가 가진 역량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확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꿈에 대한 가능성’ 대신 ‘꿈에 대한 확신’을 택할 수 있게 됩니다.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꿈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인데 자기확신은 이러한 점을 완벽히 제거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비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확고히 믿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현실의 벽이란 그저 잠시 시간을 지체하게 만드는 교통 체증과 같은 것입니다. 문은 언제나 벽을 뚫어서 만들어지고,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되듯이, 현재 눈앞에 펼쳐진 난관과 장애물들은 당신의 자기확신력을 시험하는 기회일 뿐인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꿈을 주실 때에는 그것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다.”라는 레그손 카이라의 말처럼, 큰 꿈일수록 도움의 손길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마치 식사가 급해 음식을 찾는 것보다, 인류의 구원이 급해 자선단체를 찾는 것이 훨씬 더 다양한 루트를 모색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일 겁니다. 자기확신 아래 간절한 꿈을 갖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꿈의 <뜨거운 심장 프로젝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