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환상 열석이라고 부르며 환상 열석이란 직렬로 세운 다수의 선돌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배열한 것을 일컫는다.
< 현재의 스톤헨지>
< 스톤헨지 복원도 > 스톤헨지는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야에 위치해 있으며 높이는 7m, 무게는 최대 45톤에 육박한다.방사선 탄소연대측정 법에 의하면 스톤헨지의 건설시기는 기원전 2500년으로 문자와 바퀴가 발명되기 이전인 석기시대이다.
< 스톤헨지의 위치 > 피어슨이 주장하는 스톤헨지에 관한 가설은 스톤헨지는 큰 무언가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보다 큰 그림의 한 요소로서 건조되었다는 것이다.스톤헨지는 종교의식겸 축제장소의 반쪽으며 그 반쪽은 불과 몇킬로미터 떨어진 목재로 지어진 우드헨지이다.우드헨지의 모양은 스톤헨지의 모양과 꼭 닮아있다.
< 스톤헨지와 우드헨지의 위치 >
< 우드헨지의 복원도 > 두 유적지 사이에는 에이번강이 흐르고 있다. 스톤헨지와 에이번강은 큰 대로로 연결되어있다.그리고 우드헨지와 에이번강 사이에서도 큰 대로를 피어슨 발굴팀이 발견했다.
< 스톤헨지와 에이번강을 잇는 대로 > 고대 브리튼족은 하지에 스톤헨지 대로와 에이번강을 따라 우드헨지로 갔으며 동지에는 그와 반대로 우드헨지 대로를 따라에이번강을 거쳐 스톤헨지로 향했다. ( 그림 스톤헨지와 우드헨지 위치 참고 ) 그럼 스톤헨지와 우드헨지의 건설목적은 무엇일까? 그 답을 하나씩 알아보자.
< 커서스 > 스톤헨지 북쪽에는 커서스라는 2.4km의 도랑이 있다. 커서스의 축조 연대는 스톤헨지보다 500년 앞서있다.이것은 스톤헨지가 축조된 땅이 예전부터 신성한 땅으로 여겨졌다는 뜻이기도하다. 커서스를 중심으로 스톤헨지가 있는 남쪽에만 무덤들이 있다.즉 이 도랑은 산자와 죽은자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볼수 있다. 즉 스톤헨지 주변에 죽은자의 영혼을 기리는 공간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는 신전이라는 가설을 전면으로 반박한다.죽은 자의 영역이 있다면 산자의 영역 또한 있어야 할것이다.스톤헨지에서 2.4km 떨어진 곳에 커서스 넘어에는 더링턴 벽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유적이 있다.
< 더링턴 벽 / 위치는 위 커서스 그림 참고 > 이 유적은 스톤헨지의 20배의 규모이며 도랑과 제방으로 둘러싸여있다.이전 고고학자들은 이 더링턴 벽 안쪽을 조사하였지만 그 어떤 마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피어슨은 도랑 안쪽이 아닌 바깥쪽을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가옥의 윤곽을 찾아냈고 발견된 가옥들의 분포로 실제 마을의 크기를 조사했다.
< 가옥 유적 > 마을의 크기는 1000채가 넘었으며 거주 인구는 수천명으로 북유럽에서 발견된 석기시대 최대의 마을규모이다.
< 우드헨지와 거주지 모습 > 고대 브리튼족은 스톤헨지 건설을 위해 영국 전역에서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씨앗들도 발견되었다.하지만 이곳 주변에서 농사를 지은 흔적은 없었다. 이를 볼때 그들은 이곳에서 영구적으로 거주 한것으론 보이지 않는다.즉 평소때에는 각자 부족의 마을에서 생활하다 스톤헨지의 건설과 종교의식, 축제 때에만 일시적으로 마을을 만들어 거주했다는 의미가 된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농부들은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준 조상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스톤헨지에 모여들었다.하지때 스톤헨지는 떠오르는 태양과 일직선 상에 놓이기 된다.
< 스톤헨지 일출 모습 > 태양은 원형안에 위치해있는 삼석탑의 중앙을 지난다.이것은 하지 축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스톤헨지에서 3km이상 떨어진 더링턴벽의 암반에서 거대한 구멍들이 발견된다.그것이 바로 우드헨지의 유적이다. 이 우드헨지는 스톤헨지를 만들기전에 시험삼아 만든 나무로 만든 모형물이라고 알려졌는데 암반의 구멍 연대를 측정한 결과 스톤헨지의 건설시기와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그 배열이나 모양은 스톤헨지와 매우 유사했다.160개가 넘는 대형 기둥으로 이루어진 우드헨지의 안쪽 고리는 그 모양과 크기가 스톤헨지와 거의 똑같다.
< 우드헨지의 유적 >
< 우드헨지 복원도 > 고대 브리튼족은 하지일출을 스톤헨지에서 보고 에이번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그 행렬은 해가 지고 하루가 끝날 때쯤 더링턴의 우드헨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서쪽으로 지는 태양은 우드헨지와 일직선상에 놓인다. 스톤헨지와 우드헨지가 한 쌍이라는 점은 재미있는 궁금증을 던져준다.모양과 크기는 일치하지만 하나는 돌로 하나는 나무로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스톤헨지는 위의 커서스를 경계로 죽은자들의 땅이다.그럼 우드헨지는 당연히 산자를 위한 건축물로 해석되는 것이다. 또한 돌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나무는 영원하지 않다.이것은 삶의 영원하지 않음을 말한다.스톤헨지가 죽은 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였다면 우드헨지는 생명을 찬양하는 장소이다. 그들은 우드헨지에서 축제를 벌였다. 우드헨지의 근처에서 발견된 수많은 동물뼈조각과 토기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이 하지축제는 밤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리고 9개월후 동지때 똑같은 의식과 축제가 진행된다. 동지때는 우드헨지에서 스톤헨지로 이동한다. 하지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이다.1년에 하지와 동지 두 번의 축제가 있은 것에 대한 증거는 우드헨지 근처에서 발견된 돼지 턱뼈이다.이 돼지 턱뼈로 볼때 생후 9개월에 축제음식으로 쓰여졌음을 알 수있다. 스톤헨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지동지축제는 계속되었다. 이 축제들이 끝나면 각자의 부족마을로 돌아갔다.그리고 선택된 일부 사람들은 스톤헨지 건설을 계속하게 된다.스톤헨지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암석들은 사르센석으로 화강암과 같이 거칠고 단단한 암석이다.사르센석의 채석장은 스톤헨지에서 40km나 떨어져있는 곳이었다.그들은 사스센석을 고르고 연마하여 스톤헨지 옮기는 전 과정을 신성한 임무로 여겼다.그렇지 않았다면 이 고된 노동을 기꺼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톤헨지를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고도의 건축기술이 동원되어야한다. 우선 그들은 채석장까지 긴 여정을 시작한다.그리고 채석장에 도착한 후 신중하게 거석을 고른다. 나무자를 이용하여 길이와 넓이를 측정하였다.그리고 사슴뿔을 이용해 거석 근처를 파낸다.이 과정만해도 몇주가 걸린다. 그리고 거석을 운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바위 밑에 받치고 굴려야할 나무를 구하고 거석을 묶고 끌어당기기위해 물에 적신 얇은 나무껍질로 밧줄을 만들었다.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바위를 들어올리고 아래 나무기둥을 넣었다. 이 단계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위가 깨지는 일이다.바위가 깨지게 되면 큰 낭패였다.그래서 그들은 수백시간을 들여 크고 둥근 돌을 가지고 표면을 가공했다. 모든 준비과정이 끝나면 스톤헨지까지 바위를 끌고 갔다.그러는 동안 일부는 부상당했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 사르센석의 운반 과정 > 스톤헨지로 옮겨온 사르센석을 마저 가공하였다.그리고 돌기둥위에 수평으로 거석을 올린후 고정하기 위해 요철과 같은 홈을 파서 결합하는 방식을 썼다.이 모든 과정은 아주 정교한 계산하에 이루어졌다.
< 선돌과 위 상층부의 가로 돌의 결합 모양 >
< 위 상층부 둘레원의 결합 모양 > 연마작업이 완료되면 나무자를 이용하여 선돌(수직으로 서있는돌)이 될 바위의 둘레를 재고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각각의 선돌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기위해 긴돌이 세워질 자리의 구멍은 깊게 팠으며 짧은 돌이 세워질 자리는 얇게 파는등 그 깊이를 조정했다.그리고 삼각형 지지대를 세우고 밧줄로 돌을 끌어 당겨 수직으로 세웠다.
< 삼각대를 이용해 돌을 세우는 장면 >
< 스톤헨지 건설 전 과정 > 스톤헨지 근처에서는 약 250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당시 스톤헨지 거주 인구 보다 훨씬 적은 수였는데 이것은 특별한 인물만이 스톤헨지에 묻혔다는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이 위대한 건축물은 기원전 2500년경 금속이 영국에 전파되면서 더이상 건설되지 않았다. 금속제조술은 석기시대의 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주조에 의해 액체상태에서 원하는대로 모양을 만들수 있는 금속제조술은 돌의 형태불변성을 믿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놓은 것이다.금속은 삶, 죽음, 내세에 대한 생각을 바꿔 놓았던 것이었다.그렇기 때문에 스톤헨지 이후에는 그 어떤 환상열석도 발견되지 않았다.
< 진지는 점심때 먹어버린 공룡으로 만든 스톤헨지 ㅋㅋㅋ > 참고 : 네셔널지오그라피, 구글 더 추가해야될 것이나 틀린것이 있으면 제보 받습니다.(오타는 지적해주시면 원문에서 고치도록하겠습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출처 오유 삼색이님
1. 만리장성의 끝(사진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