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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왜곡된 조선의 국왕이야기...

콜로라도 |2014.12.09 20:01
조회 7,002 |추천 39

조선왕조 최초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사람

학문과 병법은 물론, 육예와 천문등 다방면에서 뛰어남. 배우고 익히는 것마다 신묘한 경지에 올랐다며 조선임금중 최고의 찬사를 받음

무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군사적 업적이 많음.

과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측우기 등 뛰어난 발명품 남김.

당대 최고이 명필 중 한명

조선왕조 사상 가장 준비가 완벽했던 국왕 문종(1450~1452)

인품이 매우 자상하고 아버지 세종 못지않은 천재에 아버지 이상가는 독서광이였다고 함

일찍부터 천재 아버지 옆에서 30여년에 가까운 세자 생활동안 건실하게 보필함으로 제왕의 기초를 차근차근 준비함

할아버지가 미리 불화의 싹이될만한 세력들을 다 뿌리뽑아놓았고

장자인 탓에 특별한 견제세력도 없었으며 본인또한 굉장히 정치력이 좋아서 일찍부터 조정을 장악했음

재위 기간 동안 언론의 활성화와 역사책 편찬, 병법의 정비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유연함과 강함을 병행하는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음.

왕세자 시절 이미 진법을 연구해서 책으로 내고....

세종이 병으로 누운 42년부터 섭정을 시작 군사조직 기틀을 마련함과

화차를 개량해서 신무기 개발..문종은 무기개발에 관심을 가진 사실상 마지막 군주였다고...

 

또한 세계최초로 측우기를 발명 천문학과 산술에도 천재적인 능력을 보임

세종시대 후반의 업적은 거의 문종의 손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심지어 외모도 잘생김 "수염이 풍성하여 관우와 같은 풍모를 보였고, 얼굴 또한 매우 잘생겼다"

그 호방하던 수양대군도 문종앞에선 감히 찍소리 못하고 엎드려있기만 했다고 할 정도...

-실제 실록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문종: 나는 병법에도 매우 통달해 있어서, 옛 후한의 제갈공명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일듯
수양대군: 어디 제갈공명 같은 사람이 형님에게 비교 할 수 있겠나요 헤헤헤...

위엄있고 막강한 포스의 군주였음 그리고...

문종이 몸이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풍채가 좋아 신하들이 감히 업신여기지 못했다고...

그러나 종기가 났음에도 3년상을 2번 연속으로, 총 6년을 치뤄내며 정사까지 돌본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가 예상보다 일찍 승하한 이유였다...

 

실제로 조선역사에서 3년상을 한번 치루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일이었다...

 

그런데... 문종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허약, 문약, 수양대군이 겁나 두려움에 떨던모습(공주의 남자), 일개 관상쟁이 시켜 수양 관상보게하는 이미지(영화 관상)...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보통 조선왕조 500년을 시작으로 하여 문종은 그저 힘없고 단종 생각에 눈물짓는 이미지가 되었고 드라마 한명회 에서도  주인공은 세조측 인물이다... 거기서 수양대군은 카리스마 있게 나오고 반면 문종은 항상 병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종의 이미지에 결정타를 먹인게 초 인기드라마 용의눈물의 후속작 x와x 채시라가 인수대비로 나왔고 안재모가 연산군으로 사이코 군주의 연기를 보여준 그 드라마...

 

여기서  세조는 조카를 애틋하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임금이 되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반대로 문종은 병들어서 골골거리기만 한다. 이 드라마의 이미지를 통해 문종에 대한 이미지는 확정되었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실록을 중점적으로 봐서 세조는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찬탈을 막은 킹왕짱의 인물이라는 점을 그대로 따왔다는 것...이 때문에 많은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문종은 죽을때까지 수양대군은 안중에도 없었고...(뭐 수양이 왕을 노린다구? 허허허허) 수양도 문종이 살아있을 때는 눈치보며 살았으며... 심지어 우리 형님 짱이셈.... 하며 찬양하기 바빴다고 한다. 

추천수39
반대수0
베플|2014.12.09 21:11
문종이 살아있었다면 꽤 많은 역사가 바뀌었을거라고 함. 명이 짧아서 매우 안타까웠던 왕 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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