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초로 상업용 필름을 도입한 코닥의 조지 이스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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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의 창시자 조지 이스트만은 1854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시작되었고,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심각한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부양해야 했다.
이스트만이 24살 되던 1878년, 그는 동료와 함께 산토도밍고로 휴가를 가기로 계획하였고 그의 동료는 이스트만에게 여행 기록을 남기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계기로 이스트만은 완전히 사진촬영에 심취하게 되었고 복잡한 사진촬영 과정을 단순히 하는 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스트만은 영국 매거진을 통해 사진작가들이 젤라틴 감광제를 사용하는 것을 본 뒤 젤라틴 감광제는 건조 된 뒤에도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야외활동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고 젤라틴 감광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실험을 진행하는 강행군을 계속 하였고, 3년간의 실험 끝에 그는 마침내 효과 있는 방법을 발견해냈다. 1880년 이스트만은 건판 방식을 발명했을 뿐 아니라 대량의 감광판을 생산해 내는 방법도 특허를 받았다. 이로써 사진작가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건판 제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필름 탄생의 순간이었다.
건판 제작에 성공한 이스트만은 1880년 로체스터 스테이트가에 위치한 빌딩의 3층을 임대하여 판매용 건판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코닥 회사가 탄생하였다.
2. ‘활명수’의 창시자 노천 민병호 선생과 그의 아들 동화약품 초대사장 민강

19세기 말 궁중 선전관이었던 노천 민병호 선생은 기독교 신자로서 서양의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양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년의 연구 끝에 마침내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인 구급위장약 ‘활명수’ 이다. 고종이 대한민국의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의 일이었다.
같은 해 9월 25일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민강이 아버지가 만든 활명수를 대중화 시키기 위해 한성부 서소문 차동 (현재의 중구 순화동)에 ‘동화약방을’설립하였다. 이로써 100여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기업 동화약품이 탄생한 것이다. (동화약품 초대사장 민강)
이후 활명수, 인소환 등을 제조하여 교회에 보급하는 등 소규모의 약방으로 운영되던 동화약방은 서양문물이 급속히 들어오기 시작하자 양약의 대중화를 위해 86종의 의약품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특히 1910년 ‘부채표’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표들을 특허국에 등록하여 우리의 상표를 보고하고 고유상표의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후 1937년 보당 윤창식 선생이 이 주식회사 동화약방을 인수하였고, 지금까지 ‘가스활명수’는 동화약품을 대표하는 의약품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화제가 되었다.
3. 에도시대의 천재 발명가.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

일본의 유명 기업 도시바의 창업자 다나카 히사시게는 에도시대 말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주목받던 천재 발명가 다나카는 지금으로부터 165년 전에 ‘활 쏘는 인형’을 제작했다. 지금의 기술로 보면 그다지 놀랄만한 기술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총 4발을 쏘도록 만든 인형인데,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1발은 맞히지 못하도록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에디슨으로 칭송받는 다나카는 이 이외에도 정교한 만년 시계를 제작하여 후에 일본 열도를 놀라게 하였으며, 1855년에는 움직이는 증기선과 증기기관차의 모형을 완성하여 일본의 근대화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875년 7월. 다나카는 모터 등 중전기를 제조하는 다나카(田中)제작소를 설립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노트북으로 유명한 도시바의 모태이다. 1904년에 도시바 시바우라 제작소로 상호를 바꾸어 오늘날에 도시바에 이른 것이다.
4. 어음할인업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창업자, 마르쿠스 골드만

투자회사 골드만 삭스의 창시자 마르쿠스 골드만은 독인계 유대인이다. 소떼를 거래하던 농부의 아들이었고, 전직 교사였던 그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1848년이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1869년 뉴욕이 중심지 맨해튼의 어느 지하실에서 사위 샘 삭스와 함께 차용증을 거래하며 어음의 0.5%를 챙기는 허름한 어음할인 가게를 열었다. 그는 매일 다이아몬드 도매상과 가죽상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약속어음을 사들였다. 그는 사들인 어음을 자신의 모자 안쪽 덧감 속에 넣어둔 뒤 한꺼번에 은행에 가서 재할인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당시 뉴욕에서 어음 할인업자의 성공은 그 사람의 모자 높이로 측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그의 모자는 그 중 가장 높은 높이를 자랑했다. 그는 곧 월가의 전설이자 금세기 가장 위대한 성공신화가 되었다.
이후 골드만은 점점 사업을 확장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세계적인 투자 기업.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골드만 삭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