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 사연을 어떻게 하면 일본에 전달 할 수 잇을까요..?ㅠ
여러분 글이 길어도 제발 읽어주세요.. 알려주세요
사연의 주인공은 저희 외할머니이신데요 ..
저희 외할머니의 엄마 아빠 모두 일본분이셨구요..
이름은 야이코이고 성은 기억이 잘 안나신답니다ㅠ 야마모토 아님 사토 등... 이런 성이신 거 같구요.
약80년전이라(1925~1928) 사는곳은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시는데 오사카이구요. 집은 산 중턱에 있었구요. 산 옆에 몇가구 없엇고 큰산길을 걸어서 내려 가면 오사카의 조그만 읍내가 나왓데요.
신체특징은... 할머니가 여섯살 때라서 형제들의 신체적특징은 기억이 잘 안나시구요.
일단 형제는 오빠 두분이 계셨는데 첫째 오빠(5~6살위)는 화물차 조수를 하셨구요(할머니가 여섯살때라서 정확하진 않아요)
둘째오빠(3살위)는 공장에 다녔는데 집에 같이 살지 않고 기숙사에 사셔서 가끔 집에 저녘에 늦게 오셔서 저희 할머니(당시여섯살) 머리맡에 간식을 두곤 하셨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아버지는 무슨 잘못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을 다니시다 나중에 잡히셔서 감옥에 가셨답니다.
오빠들은 일을 가시고 아버지는 도망자 신세라 집에는 할머니의 어머니와 할머니 단 둘이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집에서 카이코(비단)라는 실을 풀어서 읍내에 나가 파셨다고 합니다. 읍내에 나가시면 국화빵을 사가지고 오셔서 저희 할머니에게 주시곤 하셧답니다.
그리고 어린 저희 할머니(6살)에게 어렸을 때 일찍 죽은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그 언니분이 10살 정도에 돌아가신 걸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그 언니가 입었던 기모노를 할머니의 어머니께서 할머니가 크면 꼭 입으라고 하셨데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불교를 믿으셔서(할머니가 그당시에 어리셔서 불교인지 정확하지는 않음) 집에 호토케사마를 모셔 놓은 방에 맛있는 게 생기면 거기에 두시고 밥도 두시고 하셨답니다.
할머니가 기억하시는 유일한 친척이 외삼촌(어머니의 오빠)이신데 그분은 읍내에 사셨답니다. 그래서 그 외삼촌 집에 가면 저희 할머니(6살)또래의 말을 못하시는 벙어리 사촌(외삼촌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 할머니께서 한국에 오시게 된 계기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할머니의 어머니께서 저희 할머니를 키울 형편이 못 되셧나봅니다. 외삼촌과 상의 끝에 한국에서 오신 어떤 아주머니(새엄마)께 할머니를 입양하셨다고 합니다. 그 아주머니는 슬하에 자식이 없으셔서 저희 할머니를 입양하신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저희 할머니가 기억하시기에 키도크고 이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외삼촌 집에서 그 아주머니께 저희 할머니를 주시면서 저희 할머니는 친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셨습니다.
그 때 6살 밖에 안된 저희 할머니가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십니다. 어머니께서 저희 할머니께 우시면서 커서 꼭 오라고 하셧답니다. 꼭 오라고..꼭 ..
그게 두 분의 마지막이었어요.
그 후에 저희 할머니는 이제 새엄마이신 한국 엄마와 함께 일본의 여러 지역(거의 오사카 안에서)을 전전하시다가 18살 때 사이다마겡 키타라지긍 노비또메 라는 학교에서 졸업까지 하시고 18살때 한국에 오셨습니다.계속 옮겨 다니셔서 그런지 친엄마를 만나지 못하신 것 같아요.그리고 1945년도에 군함을 타시고 부산으로 오셨어요. 그 후 책 한권을 써도 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죠.
제가 글 주변이 없어서 너무 장황할진 몰라도 꼭 읽어주시고 퍼뜨려 주세요 널리 널리 퍼뜨려 주세요.. 제발
할머니가 지금 연세가 87세 신데 살아 계실 때 할머니 오빠들의 후손이나 외삼촌의 아들분이나 그 후손들의 귀에 들어갈 수 잇게요.. 절 키워주신 할머니께 철없는 손녀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사실을 일본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 전 그 분들의 후손이라도 꼭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만약 후손분들이 또는 할머니의 오빠분들이 보신다면 .. 저희 할머니는 당신들을 잊으신 적이 없어요. 꼭 뵙고 싶어하세요..
연락 바랍니다 keg2413@naver.com 아니면 페이스북으로 연락 꼭 부탁드립니다
皆さん文章が長くてもお願い、読んでください。 お知らせください. 事情を持つ主人公は私の母方です。 私の 母方 のママとパパはすべて日本人です。 名前はヤイ子で名字は思い出せません。 山本でなければ佐藤など... このような城だったようです。 約80年前だから(1925~1928) 住んでいるところは正確に覚えていないが、大阪です。 家は山の中腹にあります。山のそばに 何世帯ない、大山道を歩いていくと大阪の小さな町が出たそうです。
身体の特徴は.....おばあさんが六歳の時でしたので兄弟の身体の特徴はよく覚えておりません一応兄弟はお兄さんが二人いらっしゃたのですが一番上のお兄さん(5~6歳上)は貨物自動車の助手をやってました(おばあさんが六歳の時ですから正確ではありません)
二番目のお兄さん(3歳上)は工場で働きましたが家で一緒に住んだわけではなく寮に住みましたのでたまに家に夕方遅く帰って私のおばあさん(当時六歳)の枕もとにおやつをおいといたりしてました
そして、祖母のお父さんはどんな罪があったかは分かりませんが、方々を逃げ回ったあげく結局捕まり、投獄されたそうです。
お兄さんたちは働きに行ってたし、お父さんは逃亡者であったので、祖母は祖母のお母さんと二人きりで暮らしていたそうです。
祖母のお母さんは家で蚕の糸を取り、町に出てそれを売ったそうです。町からの帰り道にはプルパン(円型の安いたい焼きみたいなもの)を買ってきたそうです。
そしておばあさんには4つ上のお姉さんが一人いましたけどおばあさんが6歳の時死んじゃったらいしんです。それでお姉さんが着てた着物をおばあさんのお母さんが大人になったら着なさいと言ったらしいです。ほひてお母さんは仏教だったので家に仏様を置いた部屋に美味しい物が出来たらそこにおいたりしたと言います。(おばあさんが当時は子供だったので仏教かどうかはきちんとおぼえてないです)
お婆ちゃんが唯一覚えている親戚は町に住んでいた叔父だそうです。その叔父の家に行くと当時6歳だったお婆ちゃんと同い年ぐらいの言語障害者の従兄弟がいたそうです。
私の祖母が韓国に来たきっかけは家がとても貧乏だからお祖母さんのお母さんが私の祖母を育つ立場ではなかったようでした。叔父との相談で韓国で来たあるおばあちゃん(義理の母親)が祖母を養子にしたらしいです。あのおばあちゃんには子供が居なくて私の祖母を養子にしたみたいです。あの方は私の祖母の記憶の中では背が高くて綺麗な方だったらしいです
そんなに住む叔父の家でそのおばさんに私の祖母を任せながら私の祖母は実の母と生き別れをしました。
その時6歳しかなってない私の祖母に、お母さんが泣きながら言った言葉がまだ記憶に残るとしてください。大きくなって、きっと来なさい。必ず来い必ず...
それが二人の最後でした
その後,私のおばあちゃんは継母である韓国のままと一緒に日本の色んな地域(ほとんど大阪の中で)を転戦して,18歳の時に埼玉県の北地区ののびとめと言う学校で卒業して,韓国に来ました。ずっと転戦して回ったせいなのか,実母を会えられなかったそうです。そして1945年に軍艦に乗ってブサンに来ました。その後,本を一冊書いても良いぐらい波乱万丈な人生を生きました。
私がうまく書けないんですが、ぜひこれを読んで周りの人々にお伝えください。
私の祖母は今87歳なんですが、生きている時祖母の兄の子孫や、おじの息子やその子孫の耳にたどり着くようにしてください。私を育ってくれた祖母に物心な孫娘が少しだけでも役に立てば良いと思っています。このことを日本にどうやって知らせばいいのか、、私はその方の子孫でも必ず見つけられると信じています。
もし子孫と祖母の兄たちが見たら.. うちのおばあさんはあなたたちを忘れたことがありません。ぜひお目にかかりたいです。
ご連絡お願いします。keg2413@naver.comとフェイスブックで、必ず連絡お願いします。
할머니가 제일 젊었을 때 사진이 이것 밖에 없네요.
그리고 어제 할머니 생신이셨어요^^
おばあさんが一番若い時の写真はこれだけですね。
そして昨日おばあさんお誕生日でした。^^